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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3/31(금) 15:26 (MSIE6.0,WindowsNT5.1) 59.13.114.236 1024x768
[경상일보/시가 있는 토요일], 이 연장이 사는 법  

경상일보 - [시가 있는 토요일]

    이 연장이 사는 법


                 -  호미

                 이향지



    이 연장에 대해서 조금 안다



    나는 흙을 판다

    나는 흙을 덮는다

    나는 파지 팔지 않는다

    나는 흙이 조금 묻어서 돌아온다

    나는 굳이 흙을 씻지 않는다

    물이 마르면 흙은 알아서 떨어져 간다



    흙을 파고 덮는 짧은 사이에 씨앗을 넣었다

    흙은 알아서 길게 먹이고 재우고 키워준다

    씨앗은 알아서 일찍 죽거나 서리 내릴 때까지 산다



    이 연장은 죽은 것을 캐거나 산 것을 옮길 때도 사용된다

    흙은 알아서 가슴을 뜯어주거나 엉덩이를 들어준다

    흙은 알아서 남몰래 삭이거나 뼈를 남겨준다



    흙이 문을 닫고 겨울여행을 떠나면 이 연장도 알아서 쉰다




오래전 한 문학잡지에 실린, 박경리 선생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때 선생이 거처 주변 텃밭에서 '호미'로 김을 매고 있는 사진이 함께 실렸었다. 익숙한 장면이었음에도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가연하는 작가들의 하얀 손만을 보아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시의 행간을 거닐어보면, '죽은 것을 캐거나 산 것을 옮길 때도 사용'되는 '이 연장', 곧 '호미'는 가장 정직한 삶 그 자체로 읽힌다. 또 화자는 일 끝에 '흙이 조금 묻어서 돌아'와도 개의치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흙은 알아서 떨어지므로'. 참으로 물 흐르듯 순리에 따른 삶이다. 그리고 '이 연장의 끝은 놀고 있을 때 빛이 죽는다'. 즉, 우리네 생활의 아름다움은 저 '호미'처럼 '일하는 삶'일 때 스스로 빛난다는 시인의 이 차분한 믿음. 이는 철학자 안병욱 교수가 어느 글에서 조각가 로댕의 말을 빌려, '현대인의 최대 결점은 직업에 대하여 애정을 갖지 않는 것이다. 직업은 생활의 수단이 아니다. 생활의 목적이다. 직업은 혐오해야할 필요악이 아니고, 인생의 가치요, 환희요, 행복'이라고 언급한 태도와도 맥이 통한다. '춘곤'의 계절이지만 우리 모두 오늘만이라도 주어진 '일'을 자신의 '생활'로 꼭 껴안아 주었으면 싶다.
 안성길 시인·창원대 국문과 강사

[2006.03.1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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