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 향기에 붕붕 떠서, 점마까지 왔다. 고찰(古刹) 부석사(浮石寺)의 저녁 법고소리까지 듣고 오느라 날이 어두웠다. 어느 꽃 속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나?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들을 피안처럼 건너다본다. 꺼졌다 켜졌다 하는 가로등 하나 다리 건너에 서 있고, 낯선 목소리들에 놀란 개들이 왈왈 컹컹 짖는다. 하늘엔 별, 땅에는 개소리, 숨쉬는 공기 속엔 음력 스무 여드레 어둠도 어쩌지 못하는 사과꽃 향기가 있다.
점마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도 제일 끝 마을이다. 국망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기에, 우선 부딪쳐보자는 생각에서 왔다. 다 저문 시간에 길 끝의 마을을 찾아 무작정 달려온 우리 꼴이 우스웠던지, 컴컴한 주차장에서 서성거리던 이도윤씨가 "이거는 완전히 오지 탐험대네!"하며 담배 한 대를 붙여 문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니! 현지조달에 나섰던 김봉관씨가 "됐다! 됐다!"하며 때마침 불꺼진 다리를 환하게 밝히며 건너왔다. 덕현리 18통 3반 반장 홍옥표씨가 불시에 닥친 산꾼들에게 방을 하나 빌려 주셨다. 소똥 냄새 은은한 방에서 늦은 저녁을 지어먹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고단한 눈을 붙였다.
5월 4일 일요일 아침, 우리를 깨운 모닝콜은 채소트럭에서 흘러나온 흘러간 유행가 한 소절이다. 10시엔 교회에 가야한다는 홍옥표씨(50). 갈림길까지라도 안내를 해주겠다며, 내 배낭을 짊어지고 우리보다 더 서둔다. 상월봉(上月峰·1,395m)을 향하여 석전폭포골로 들어선 시간은 오전 7시 15분. 점마에서 상월봉까지는 6.3km.
사과꽃이 만발한 과수원 옆을 지나, 못자리 할 무렵에 피기 때문에 '못자리 꽃'이라 부른다는 조팝나무 꽃이 만발한 언덕을, 설레임을 안고 올라간다. 소먹이로 쓰는 호밀들이 무릎 높이로 자라, 부풀렁한 씨알들을 머금고 있다.
낫 한 자루 손에 들고, 길 쪽으로 뻗치는 가지들을 잘라가며, 날듯이 걸어가는 홍옥표씨를 따라, 덕현리 나물꾼들이나 애용한다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찌르찟찟 부르고 대답하는 새. 왼쪽 옆구리에 찰싹 붙어서 따라 오르는 물소리. 새로 돋은 이파리들이 머리 위 허공에 풋풋한 무늬들을 펼쳐 놓는다. 호젓하기 그지없는 숲길을 걸으며, 모처럼 마음놓고 깊은숨을 쉬어 본다. 끈끈하게 따라온 도시의 먼지들이 투명한 바람이 되어 숲에 섞인다. 노고지리 한 마리 날아오르는 것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으리라!
물푸레나무꽃 피어있는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간다. 각시붓꽃 한 무더기, 나무그늘에 앉아 있다. 찌르찟찟 찌르찟찟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새소리 계속 따라 온다. 미치광이풀꽃들은 어느새 색이 바래었고, 줄딸기꽃들은 요염하게 벌을 부른다. 산벚나무 한 그루 마지막 꽃잎들을 바람에 맡기고 있다. 자갈 위에 흩어져 있는 분홍 꽃잎들, 밟고 가려니 애잔하다. 계곡 저쪽의 개복숭아꽃이 하도 화사하여 물 건너는 걸음이 잠시 휘청거린다. 그래, 이 산은 저 나무들의 산, 저 풀꽃들의 산이다. 저 작은 것들이 베푸는 커다란 위로! 그것이 그리워서 그것을 만나려고 나는 산에 온다.
좁고 밋밋하던 길이, 넓어지고 가팔라지면서 물소리가 커진다. "이 아래 폭포가 있어요, 보고 가셔야지요?" 홍옥표씨를 따라 낙엽과 돌이 뒤섞인 비탈을 30∼40m쯤 내려간다. 몇 덩이 바위들이 얼커렁 설커렁 둘러선 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웅덩이를 파며, 10m 남짓한 물기둥이 쏟아져 내린다. 이 골짜기의 상징인 석전폭포다. 아는 이가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우묵이에 들어앉아 있어서 길에서는 안 보인다. 폭포는 물 뿌리가 닿는 바닥에서부터 재기 때문에 실제 높이는 20m라 한다. 새하얀 물기둥을 등지고 서서 기념 촬영들을 하고 손을 씻는다. 좁은 단풍나무들이 연둣빛 햇잎들을 달고 웅덩이 쪽으로 가지를 뻗치고 있다. 단풍 철에 여기 오면 더욱 좋으리라!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복간터골에 석천폭포가, 덕현계곡 자리에 석천폭포골이 표시되어있으나 모두 오식이다. 석천폭포골은 지형도에는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복간터골 동북쪽 골짜기로, 석천폭포는 744.7m봉에서 서쪽으로 1km쯤 떨어진 지점, 즉, 해발650m 지점을 꺾어 도는 골짜기 안으로 옮겨서 표시해야 한다. 골짜기와 폭포의 이름도 석천(石川)이 아니라 석전(石田)이라고 홍씨는 주장한다. 달밭골, 월전계곡, 등의 소백산 안의 지명들이 모두 돌밭을 의미하듯이, 이 골짜기도 또 하나의 달밭골 즉 돌밭골인 셈이다.
내려온 비탈을 다시 올라, 황장목 가지 사이로 햇살이 흘러드는 언덕을 넘는다. 인공정원처럼 아담한 와폭들을 곁눈질하며, 한 시간쯤 더 오르니 희미한 길이 하나 오른쪽으로 가지를 친다. 참샘내기재(신선바위 동쪽에서 두례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찬 샘이 있다함)로 통하는 길이란다. 우리는 계속 직진하여 계곡을 한번 더 건넌다.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면서 버들강아지들이 군락을 이룬 습지로 들어섰다. 이 부근은 30년 전에 열 대여섯 가구가 살던 석전포라는 마을이 있던 곳이라 하며, 잎갈나무숲 뒤로 훤하게 보이는 동남릉을 타고 원목들을 운반하던 산판길이 있다고 한다.
택리지 복거총론에 보면 '…태백산과 소백산의 천석(泉石)은 모두 낮고 평평한 골 안에 있고, 산허리 이상에는 돌이 없는 까닭에 산이 비록 웅장하여도 살기(殺氣)가 적다. …옛적에 술사(術士) 남사고(南師古)가 소백을 보고서는 갑자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하였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무던히도 찾아들어 이 산자락에 기대 살던 흔적들이 아닌가 싶다.
햇잎이 돋기 시작하는 잎갈나무들이 둘러선 쉼터에서, 홍옥표씨가 두 시간을 지고 온 배낭을 건네준다. 두 시간 오른 길을 30여분만에 뛰어내려가야 할 그. 고맙기 그지없다. 간식을 들면서 20여분을 쉬다가 배낭을 지고 오른다. 길이 점점 가팔라졌으므로 '비둘기목(鳩頂·비들기목지)'이라고 부르는 능선에 도착할 때까지 무던히도 끙끙거렸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에 산이 흔들리는 것 같다.
석전포에서 비둘기목에 이르는 비탈길 주변에는 야생화가 많다. 노란 꽃, 흰꽃, 보라꽃. 지난해의 낙엽들이 주저앉아 있는 마른 풀 더미 사이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노란 꽃들은 피나물꽃, 동의나물꽃들이다. 멀리서 보면 같은 꽃 같아도 가까이 가보면 다르다. 흰털괭이눈도 동그레한 잎새 사이에서 조그맣고 노란 꽃눈들을 틔우고 있다. 저 낙엽들이 덮어주지 않았더라면, 저 마른풀들이 감싸주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건강한 꽃들을 피워낼 수 있었을까? 자연은 주검조차도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흰색 꽃은 태백제비꽃이 으뜸이다. 이름을 확인하려고 한 포기 뽑아서 수첩 사이에 끼워 넣었는데 이차돈처럼 흰 피를 뚝뚝 흘려, 카메라 집이 하얀 얼룩 투성이가 되었다. 소백산의 자랑인 모데미풀도 가늘한 꽃대 위에 하얀 꽃을 피웠다.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비둘기목을 돌아들다 만난 개별꽃 군락이다. 불면 날아갈 것처럼 여린 것들이 바람 찬 능선에 좌르르 뿌려놓은 듯이 모여 서서, 비둘기목을 쓸고 가는 바람을 놀리며 까르륵 까르륵 웃어대는 것 같다. 용감한 개별꽃들!
개별꽃과 참개별꽃이 다른 점은 참개별꽃은 꽃잎이 다섯 장이고 개별꽃은 꽃잎이 여섯 장이라는 것이다. 별꽃은 꽃잎이 열 장이란다. 넉장이나 다섯 장의 꽃잎이 모자라 대대손손 '개'자를 이름에 붙이고 살아야하다니, 잔인한 신분차별이 야생화의 세상에도 있다. 그러나 저 개별꽃들은 인간의 안쓰러움 따위는 아랑곳 않겠다는 듯이 까르륵 까르륵 웃고 있는 것이다.
보라빛 꽃은 각시붓꽃과, 현호색과 벌깨덩굴이 핀 것을 보았다. 길만 따라 왔으므로 그 밖의 꽃들은 살피지 못했다.
능선의 나무들은 아직도 겨울이다. 소백산의 상징인 철쭉도 죽은 나무처럼 거무튀튀한 잔가지들을 노천에 펼쳐놓고 사과꽃 만발한 산 아래로 내려가 놀고 있는가 싶다. 어쩌다, 만나는 진달래꽃이 아지매! 하며 눈 안으로 뛰어든다. 모여있는 꽃들도 아름답지만, 바람 센 능선에 외롭게 서서 겨울을 넘기고 피어나는 꽃들은 애잔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런 꽃들의 뿌리에 생긴 심연을 안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바람 속을 걸어왔다. 또 걸어간다.
상월봉의 상징인 버섯모양의 바위는, 늦트재에서 상월봉으로 치올라온 동릉상의 마지막 잘룩이를 내려서기 직전 봉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야말로 바위 위의 바위 위에 또 하나의 윗돌을 깎아서 얹어놓은 것처럼 기이한 조각품이다. 경상도 말로 하면 상월봉은 '웃돌봉'이다. 상월봉이란 이름은 아마 신의 솜씨로 만든 것 같은 저 바위 때문에 생긴 것이리라. 국망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서 보면 상월봉은 그저 그렇고 그런 바위 무더기들이 모여있을 뿐이다.
다른 때 같으면 "가자! 가자!" 재촉할 이도윤씨도 김봉관씨도 오늘은 마냥 기다려 준다. 원추리와 비비추 한 웅큼 캐고 싶은 내 마음을 헤아렸나 보다. 상월봉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가 가까운 11시 5분이다. 구인사로 간다는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국망봉으로 향한다.
국망봉(國望峰·1,420.8m)은 이조 선조 때 무쇠장이(水鐵匠) 배순(裵純)이라는 사람이 왕이 승하하자 3년 동안 이 봉우리에 올라와서 왕성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통곡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나라에서 그를 표창하고 무쇠점을 하사하여 배점(裵店)이라 한 것이 배점리라는 지명이 생긴 유래이다(한국지명총람 참고). 점마도 절이 있던 곳이어서가 아니라, 무쇠점의 '점'과 관련된 이름일 것이다.
국망봉에 부는 바람은 아직도 드세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구인사 쪽으로 종주를 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과는 거꾸로 산을 타는 셈이다. 저 멀리 뿌연 가스를 베일처럼 두른 정오의 태양 아래, 오늘 우리가 가닿아야할 마지막 봉우리인 비로봉이 있다. 국망봉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암릉은 달리기를 하듯이 지나가면 아쉬움이 남는 길이다. 오늘만은 한 고개 한 고개 느릿느릿 짚어가며, 육산(肉山)으로 알려진 소백산의 또 다른 진면목을 만끽한다.
비로봉(毘盧峰·1,439.5m) 북록의 민배기재에는, 지난 해의 풀들이 바람을 떠넘기며 물결치던 그대로 말라 있다. 어의곡 쪽에서 불어와서 배점리 쪽으로 불어간 바람의 세기와 모습을 상형문자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냥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의 풀들이 풋풋한 새싹들을 밀어 올리도록 알맞은 크기의 공간을 만들어두고 바람을 막아준다. 저 마른풀들의 보호를 받으며 돋아난 새싹들은 저 풀들을 거름으로 이 등성이 초원을 지켜갈 것이다. 먼저 온 세대의 희생을 거름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생명의 계율! 나는 어머니와 딸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내 사랑은 과연 내 발아래 풀들보다 더 나은 거름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죽령 쪽으로 바람을 안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5월의 바람도 시리다고 덧옷을 껴입는 내가 아닌가?
비로봉에 올라선다. 오후 3시 10분이다. 점마를 떠난 지 8시간이 가깝다. 날씨가 수상하다. 빨리 내려가야지. 달밭재로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 길을 사슴처럼 뛰어 내려간다. 굵은 소나무들이 서 있는 흙길로 들어선다. 소나무 향기에 취해서, 서시환씨와 경쟁하듯이 뛰고 있는데, 저만치 앞서 가는 세분은, 능선에서 만났던 영주 사람들이다. 달밭재에서 초암사쪽으로 넘어가는 길을 아신다는 분들! 내 걸음이 늦기 때문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소백산 신령이 도우셨나 보다.
점마에 가까운 배점리로 통하는 새 길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호기심 때문인지,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며 솔숲을 훑어도 걱정이 안 된다. 세분을 따라 달밭재 능선을 타고 월전계곡으로 들어섰다. 훈훈한 기운이 골짜기를 타고 올라온다. 능선에선 죽은 나무 같던 분홍 철쭉들이 꽃을 활짝 피웠다. 구불거리는 비탈길을 한 동안 내려가니, 밝고 오목한 골짜기 비탈에 외딴집이 한 채 내려다보인다. 개가 컹컹 짖는다. 나도 부지런히 흙벽에 함석을 얹은 오두막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세분은 어느새 자그마한 노인과 한 소년과 대화들을 나누고 계신다.
알고 보니, 호철아 호철아 부르며 외딴집에 사는 제자를 찾아오신 분은 부석초등학교 장건진 교장선생님이시고, 한 분은 영주시의회 송화선 의장, 또 한 분은 풍기호텔 김광한 사장이시다. 그제야 우리도 목적을 밝히고 인사들을 나누었다. 노인은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손수 담근 약주 병을 들고 나와 자리를 편다. 우리 일행까지 아홉 사람이 둘러서니 마당이 꽉 찬다. 그러나 조팝나무꽃 만발한 이 환한 골짜기가 모두 호철이네 뜰이다.
동호철(14)은 우리가 내려온 길을 따라 달밭재를 넘어 풍기까지 편도 6km를 걸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단다. 이 세분은 거의 매주 소백산엘 올랐다가 이 골짜기엘 들러 두 부자를 만나보고 죽계계곡으로 하산을 하신단다. 할아버진가 했던 동정철(74)씨는 호철이 아버지란다. "내가 스물 일곱에 6.25가 났어. 북청서 피난을 와서 이 골짜기로 들어 왔지. 이 앞이 절터야. 보라구 명당이지. 오늘만 해도 이렇게 다들 찾아오시질 않았어? 여기 있으면 다들 오시게 되어 있어. 저길 봐! 저기 호철이 엄마가 있어. 호철이 엄마도 여길 찾아 왔어, 부처님이 보내신 거지. 호철이 엄만 서른 셋이었고 난 예순이었어" 노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맞은 편 비탈에 정성을 다해 가꾼 무덤이 보인다. 노인의 눈에 물기가 비친다. 송화선 의장이 노래를 청하자 호철이가 기타를 내온다. 눈을 감고 기타를 치면서 망향초를 부르는 노인은 일류 풍각쟁이에 못지 않은 실력을 가졌다. 세분도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모두들 얼큰해져서 호철이네를 하직했다.
월전계곡은 석전폭포골보다 넓고, 자그마한 무명 폭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폭포 아래는 검푸른 물을 담은 소(沼)들이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석륜암계곡과 월전계곡이 합류하여 죽계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을 통과한 것이 오후 6시 10분, 배점리를 등진 시간은 오후 7시 20분이다. 뜻하지 않게 만난 분들의 도움으로 낯선 길을 열고 나온 기쁨이 크다. 20km 가까운 길을 걸어낸 기쁨에,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꽃이 피는 현장을 지켜본 기쁨까지 가세했다.
작은 꽃들이 모여서 지키는 큰산을 다시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