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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외,윤극영 전집 발간 관련기사 모음
한국일보 2004. 4. 27.
윤극영 미발표작 대거 공개
어린이날 맞아 전집 출간
http://news.hankooki.com/lpage/life/200404/h2004042717330823340.htm
동요 ‘반달’로 잘 알려진 아동문학가 윤극영(1903~1988)의 미발표 작품이 공개됐다. 현대문학사는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아 윤극영 전집’(전2권ㆍ현대문학 발행)을 펴내면서 이미 알려진 동시 142편, 동요 188곡, 동화 12편과 함께 그가 생전에 써놓고 발표하지 않았던 시 264편과 유일한 소설 ‘누구의 제물이냐’도 함께 실었다.
새롭게 공개되는 시는 윤극영의 둘째 며느리인 이향지(62) 시인이 보관해온 것으로, 총 320편 중 264편을 추려냈다. 이중 1950~60년대에 쓰여진‘탓’등 5편은 월간‘현대문학’5월호에도 공개됐다.
‘사랑은 속삭이다 웃다가 울다가/ 그것이 무거워서 나래 깃을 터는 것/ 감싸며 날다 상처를 입는 것’(‘사랑’에서),‘바루 나의 정면(正面)에 카렌다가 붙어 있다/ 불시에 나는 겁이 난다/ 서열(序列)을 뒤덮고/ 다 다른 날짜들이 한꺼번에 닥쳐오기 때문이다’(‘충격’에서) 등의 시구에서“내면을 성찰하고 천진성과 사랑을 지향하는(평론가 유성호)” 윤극영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향지 시인은 “선생에게 시는 숨이요, 생명 그 자체였다. 선생은 시로써 스스로를 정화하고 갔다”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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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신문
동요작가 윤극영 미발표시 공개
동요 '반달'의 작가 윤극영(1903-1988)씨가 1950-60년대에 쓴 시가 월간 「현대문학」 5월호에 처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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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의 며느리 이향지(62) 시인이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에 공개한 시는 '탓' '과제' '사랑' '도시' '충격' 등 다섯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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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밤송이가 떨어졌다"로 시작하는 '탓'은 1956년 10월 13일에 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어저께 제트기가 구름살을 폈다/오늘쯤 탄두를 문 가마귀가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단번에 불바다가 되어 새까매지고/하나도 없는 지구 위에 낯모를 신교들이 들어섰다기로//그것이 바루 하늘 탓은 아니다"로 끝나는 이 시는 전후의 피폐해진 시대상을 연상시킨다. '도시'와 '충격'은 1965년작이고 나머지는 창작연대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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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생전에 많은 동요.동시.동화를 발표했지만 시집을 발간한 적은 없다. 그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초까지 남긴 264편의 시는 현대문학사가 5월말 발간하는 「윤극영 전집」(전2권)에 공개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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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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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04.05.18 (화) : 문학신간
■윤극영 전집1,2/이향지 엮음=민족 수난기에 동요·동시를 통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제창한 ‘반달 할아버지’ 윤극영(1903∼88)의 전집. 윤극영의 둘째며느리인 이향지(62) 시인이 엮었다. 동시 142편과 동요 188곡을 비롯해 동화 소설 자유시 수필 등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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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윤극영 전집 발간
'윤극영 전집' 동시·동요 330편등 담아
우리 맘에 늘 떠있는 반달이시길…
▲ 윤극영씨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하는, 모든 세대에게 도저히 잊힐 수 없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 ‘반달’이 노래로 불린 지 80년이 됐다. 민족 수난기에 동요·동시를 통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제창한 ‘반달 할아버지’ 윤극영(尹克榮·1903~88)의 전집(전2권)이 어린이날을 맞아 현대문학사에서 나왔다. 현대문학 5월호는 윤극영 특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윤극영의 둘째 며느리인 이향지(62) 시인이 엮은 이번 전집은 동시 142편과 동요 188곡을 비롯, 동화·소설·자유시·수필·회고록 등을 수록했다.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근대 창작동요의 기원을 마련한 그의 생애는 ‘동심’과 ‘민족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설날’ 중) 같은 동요는 민족 고유의 서정과 애환을 절창으로 노래한다.
윤극영이 처음 동요에 눈을 뜬 것은 도쿄 유학시절 처음 만난 소파 방정환(1899~1931)으로부터 촉발됐다. “우리는 밤이 이슥한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갑자기 소파는 ‘왜 우리가 일본 노래를 부르지?’ 하고 물어보았다. ‘우리 고유한 노래가 없잖아?’ … ‘문제는 어린이들이야. 윤극영, 어린이에게 줄 노래를 지어라. 그들은 10년, 20년이 흐르면 바로 우리나라를 지고 갈 역군이다.’ …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회고록 ‘나의 이력서’ 중)
윤극영은 1923년 방정환 마해송 등과 함께 도쿄에서 어린이문화운동의 시원이 되는 ‘색동회’를 창립하고, 그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듬해에는 동요보급단체 ‘다알리아회’를 조직, 일제에 의해 금지곡으로 취급된 우리말 동요 악보를 인쇄해 서울의 보통학교(현 초등학교) 조선인 교사들에게 몰래 보내기도 했다.
그는 문학과 음악을 넘나들었다. 윤석중 방정환 박목월(동시 필명은 박영종) 이원수 박팔양씨 등의 동시가 그의 손을 거쳐 노랫가락으로 태어났다.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기찻길옆’) ‘동동동동 동대문 동대문을 열어라…’(‘동대문놀이’) 등은 윤석중과 윤극영이 콤비를 이뤄 각각 글을 쓰고 곡을 붙인 동요들이다.
*최홍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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