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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포기산], 산이 저기 있으니  

<산행에세이/고루포기산>

산이 저기 있으니



                                                                              이  향  지


"여자와 북어는 두들겨야 한다"
는 고약한 속담이 아직도 회자되는 곳이 우리나랍니다. 바짝 마른 북어야 촉촉한 행주에 싸서 두어 시간 눕혀두었다가, 물푸레나무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들겨서 뼈와 껍질을 발라내고 양념을 해서 굽거나 찜을 만들어 술안주나 밥반찬을 삼아도 되시겠지만, 여자를 북어처럼 두들긴대서야! 그 말이 그리도 좋아서 방망이 가진 사람들끼리 눈맞추며 킥킥거린대서야! 아무리 내장 빠지고 넋이 빠져 바싹 마른 북어라도 순서를 지키며 달래가며 두들겨야지, 방망이를 들었다고 마구 두들기면 살이 다 부서러져서 찜이나 구이는커녕 국도 못 끓여 먹습니다.
이것은 송천가 덕장에서 말라가는 북어를 보며 동류의식을 느낄 때, 운좋게 한국에 태어나서 방망이를 들게 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입니다.
다 늙은 겨울이 껌처럼 들러붙어 목구멍이 답답해지는 2월의 우수(雨水)무렵이면, 하루쯤 분질러 동해쪽으로 차를 몰아보십시오. 영동고속도로를 따라가다가 대관령을 넘기 직전에 바다쪽을 포기하고 횡계리쪽으로 우회전을 하십시오. 내처가면 발왕산 기슭 용평스키장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우회전해서 5분쯤 지나거든 슬슬 속도를 늦추시고 건어물점들이 늘어선 삼거리 부근에 이르시거든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십시오.
고루포기산 오르는 길을 물어서 오목골로 들어서시면 눈 깊고 설화가 만발한 산을 만나 몸은 고단해도 눈과 마음은 즐거움을 만끽하시겠지만, 장비도 소홀하고 안내인도 없고 산은 무슨! 걱정이 되시거든 눈부시고 하얀 산은 멀리서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길 오른쪽 냇둑을 더터 개울을 건너보십시오. 맑은 물이 잔돌들에 미끈미끈한 물이끼를 입히며 흐르는 내(川)가 정선의 여량 아우라지로 가서 골지천과 만나는 송천입니다. 송천(松川)은 좁다·솔다·조붓하다는 뜻의 '솔내'가 와전되어 소나무 '松'자 송천으로 바뀐 것입니다.
송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두대간 소황병산(小黃柄山·1,338m) 동북쪽 능선에 다다를 것입니다. 소황병산 동북쪽 능선을 끌고 흘러내린 물줄기가 송천의 원류이기 때문입니다. 횡계5리 덕장옆을 흐르는 송천은, 소황병산에서 시작한 물줄기를 주축으로해서, 장군바위∼노인봉∼소황병산∼매봉∼선자령∼대관령∼능경봉∼고루포기산에 이르는 광활한 산줄기의 안자락을 끌고 남쪽을 바라고 흘러내린 세 가닥 물이 합쳐진 것입니다. 송천의 세 가닥 원류가 합쳐지는 지점은 횡계5리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300∼400m 정도 상류인 도암교 부근입니다. 느슨한 물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하호(水下湖)가 있고, 수하호를 거친 물은 발왕산·노추산·다락산·상원산·옥갑산 발치를 깊게 파며 구불구불 돌아, 여량 아우라지에서  골지천과 합쳐져서 조양강이 됩니다(골지천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이 책 '금대봉'과 '두타산' 내용을 참고 하시압). 구절리에서 송천을 끼고 거슬러 오르는 길은 길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곳이 많은 비포장도로이긴 하지만, 그런만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조용한 절경들을 끼고 있습니다. 특히 길을 막는 바위에 단풍이 곁들여지는 가을철이 더 그렇습니다.  
고루포기산으로 들어가는 횡계5리 송천 가에는 명태덕장이 벌판 같습니다. 매년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열리는 파시(波市)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송천을 건너 덕장 앞에 이르면 녹슨 철조망 사이로 팔려갈 날을 기다리는 명태들을 구경하십시오. (아)하고 입벌리고 (아) 소리도 못 지르는, 서러운 고기들을 측은히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저기 저 덕대에 내가 걸려서 말라가고 있다고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십시오. 바람불고 눈내리는 노천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명태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내일 물푸레나무 방망이가 내 마른 몸을 두들긴다해도, 오늘 나는 말라가는 지느러미마다 황태의 꿈을 심겠다"고 말할 수 있는 명태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옛날엔 연근해의 명태들이 차지하던 덕대를, 지금은 알라스카나 캄차카에서 잡힌 명태들이 차지하고 있답니다. 저 명태들이 놀던 알라스카나 캄차카 바다가 얼마나 넓고 깊고 물이 찬지는 몰라도, 거대한 어선의 그물에서 풀려나는 순간 자유를 되찾기는커녕 꼬리와 머리를 맞대고 차곡차곡 궤짝에 담겨 냉동고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라 합니다. 냉동상태에서 주문진항으로 들어오면 아줌마들이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지하수를 퍼올려 목욕을 시킨답니다. 옛날에는 송천 물에 담궈서 씻었다는데 지금은 수질 오염을 염려하여 주문진에서 씻어온다 합니다. 알과 내장은 소금 범벅이 되어 젖갈통으로 들어가고, 내장빠진 몸은 트럭을 타고 대관령을 넘어와서 꽁꽁 얼게 추운 날을 골라서 덕대에 건답니다. 40일이나 60일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희고 부드럽던 살은 스폰지처럼 부풀었다 가라앉았다하며 노리끼하게 변한답니다. 말하자면 동태가 황태로 탈바꿈하는 고통스런 과정이지요.
드넓은 바닷물 속에서 헤엄치던 것들을, 머리는 하늘로 꼬리는 땅으로 향한채 꼼짝도 못 하게 매달아 놓았으니, 죽은 고기인들 어찌 눈물이 없겠습니까? 잃어버린 쓸개 대신 '써그리'라 부르는 아가미에서 쓸개즙같은 것이 흘러내려 살속으로 번진답니다. 바다를 잃은 고기로보면 눈물겹고 애닯은 현상이겠으나, 써그리 즙이 살속으로 스미면서 남긴 향기 때문에 황태빛과 맛이 그렇게 좋아지는 것이랍니다. 황태가 된 명태들은 트럭에 실려 다시 대관령을 넘어, 언채로 할복을 당하던 바닷가에 이르면 다시 덕대에 걸린채 바닷바람에 남은 물기를 말린답니다. 싸리나무 줄기에 스무마리씩 머리통을 가지런히 꿴 것을 관태(串太)라고 부른다는데, 관태 감에서 탈락한 것들은 포가 되거나 채가 되어 술국도 되고 무침도 되고, 잘생긴 것들은 제사상에도 오르고 산소에도 따라가고 하는 거랍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은 횡계5리에서 건어물전을 하시는 유봉필(43)씨입니다.
길고 긴 명태 이야기를 서두에 늘어놓은 까닭은, 제가 년중행사처럼 고루포기산을 찾는 이유가 산행보다는 덕장 구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이 저기 있으니 오르지 않을 수가 없군요. 이젠 저도 용평스키장쪽에서 내려오는 자동차들이 눈 녹은 물을 튀기며 지나가는 길을 가로질러 먼저 간 일행들의 발자국을 따라 고루포기산으로 들어가렵니다.

"고루포기산이요?" 누구나 묻습니다. "고루포기가 무슨 뜻이냐?" "어디에 있는 산이냐?" 저도 그렇게 묻다가 고루포기산에 빠졌으니까요. 이름이 이상해서 따라왔다가, 설욕(雪浴)을 할 만큼 깊은 눈에 빠졌고, 내장 빠진 명태들이 빽빽하게 걸려있는 덕장 풍경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 산악계의 원로이신 김장호 교수께서도 그 이름에 빠지셨던지, <'고루포기'란 순수한 우리 말로써 '머릿골'의 속어인 '골패기'의 표준음>이라고,「월간 산」에 기고한 '명산행각'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고루포기'의 어원은 알게 되었으나, 그 이름을 있게 한 현장과의 접목은 이루지 못한채 5년여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가촌 어귀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강원(72) 박태원(72) 두 할아버지 덕분에 오랜 숙제를 풀게 되었습니다. 반은 녹고 반은 얼어서 미끄러운 마을 길을 혼자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한가롭게 서 계시는 두 할아버지. 그분들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함께 늙어가는 친구 사이라고 하십니다. '고루포기'란 고루포기산 정상 서남쪽 기슭에 있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않는 마을 이름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고루포기란 결국 골짜기의 사투리인 '골패기' 혹은 '골팍'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또 그 마을에서 시작하는 골짜기 이름이 우두머리를 뜻하는 '머릿골'이었을 거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고루포기산 정상에서 피덕령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동쪽 비탈을 차지한 광활한 고랭지채소밭과, 추수가 끝난 밭두둑을 덮고 있는 새하얀 눈과, 겨울이면 아무도 남아있지 않는 빈집들을 떠올렸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밭들과 빈집들만 남은 채소밭을 지나 피덕령으로 하산할 것입니다. 두 분은 또 지도에는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큰골' '궂은골'등의 이름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오목골로 알고 있었던 골짜기는 큰골이고, 오목골은 큰골 동북쪽 능선 너머 골짜기에서 시작해서 큰골과 합쳐지는 오목한 골짜기를 말한답니다. 고루포기산 동록인 왕산리쪽에도 큰골이 있는데, 둘다 고루포기산 정상 부근에서 시작하나, 한가닥은 서쪽 송천으로 흘러들어 서해로 빠지고, 한가닥은 동쪽 왕산천으로 흘러들어 동해로 빠지는 것입니다.
해묵은 근원들로부터 고개를 들고, 오늘 올라야 할 산을 바라봅니다. 오늘 내가 향하는 고루포기산은 설화가 장관입니다. 사흘 전에 큰 눈이 내린 뒤라 횡계리 둘레의 산들이 눈부신 은세계를 펼쳐 놓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하고 눈부시고 깊은 눈이 가리고 있어도 올 때마다 산이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잡종개들이 떼를 지어 짓는 집앞을 지나, 독가촌 다리 앞을 지나가는데 또 개가 짖습니다. 이 마을은 올 때마다 개가 늘어나서 개짖는 소리에 떠밀려가는 내 걸음은 산 속으로 달아나는 바람같습니다. 개소리를 따돌리고 나니 윙윙 소리가 두 귀를 가득 채우며 머리를 흔들게 합니다. 933m봉에서 고루포기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도깨비뿔같은 고압선 철탑들이 돋아 있기 때문입니다.
횡계5리 오목골 입구에 버스가 서자마자 내 눈길은 습관처럼 고루포기산 정상쪽으로 향했는데, 밝은 햇살이 번지는 산머리엔 설화가 만발했지만, 어쩐지 작년과는 산이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산기슭은 하얀 눈이 덮고 있어서 눈이 부시지만, 산과 나 사이를 들보처럼 가리고 있는 것은 처음 보는 회색 철탑들이었습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고압선과 도깨비뿔같은 철탑들을 발견하는 순간, "고루포기산도 이제 끝났다"는 말이 전류처럼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지만, 어쩌겠습니까? 방망이를 든 사람들이 아끼고 지킬 의지가 없으면 산은 저렇게 뿔이 돋아 무너지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 능선은 우리가 하산 코스로 종종 이용하던 길이었고, 작년엔 그 길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작년 이맘 때, 저 능선에서 둘레가 1∼2m씩 되는 소나무 참나무까지 무참하게 잘려있던 이유가 저 철탑들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자연은 몇 백년이 걸려서 키운 나무를 문명의 톱날은 단 몇 분이면 베어눕힐 수 있다,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군요.
개발과 보존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꿉니다. 그러나 정상까지 따라오는 윙윙 소리는 사뭇 고압적이고 사람의 접근을 막으려는 방편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왜 하필 저 능선이었어야 했을까? 왜 정상까지 쌍뿔을 돋게 했을까?하는 의문과 아쉬움은 년중행사처럼 고루포기산을 찾던 사람으로서 내려놓을 수가 없군요.

봄은 눈속에서 온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계곡옆을 지나갑니다. 산비탈을 덮고있는 눈은 깊지만 얼음짱이 덮고 있는 계곡물은 군데군데 둥그런 숨구멍을 열어놓았습니다. 그 구멍 사이로 흐르는 물이 보이고, 물밑의 돌들이 보이고, 계곡 옆의 나뭇가지들이 흐르는 물 속에 제 모습을 비춰보며 언제쯤 새싹을 틔울까 가늠하고 있는 게 보입니다. 구경하다 발이 빠지면 종아리까지 눈에 잠기는 비탈을 지나,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쌓인 눈을 헤치며 오르느라 미끄러지고 웃고하는 일행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맨 뒤에서 느긋하게 바라보다 올라갈 것입니다. 아마 오늘 맨 앞에서 러쎌을 하는 이는 요산회 회원 위수현씨나 이창기씨 일겁니다. 그들이 다져놓은 길을 쉽게 올라가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후미가 도착했다는 걸 알려주려고 "거 뭐하는 사람들이오?"했더니, "미끄러지는 사람들이오" 대답하는 이는 안경호 대장입니다.
굵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들어선 능선까지 올라오느라 한동안 낑낑거리다보니 또 아무도 없습니다. 돌아보면 횡계리 일대가 밝은 햇빛 아래 하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군요. 늦은 김에 쉬어가자고 보온병을 꺼내어 더운 물 한 잔 마시면서 산을 둘러봅니다. 나는 눈이 없을 때의 고루포기산이 어떤지 알지 못하지만, 큰골과 오목골 사이의 능선엔 진달래가 장관일 것 같습니다. 푹푹 빠지는 눈속을 걸어 잡목숲으로 들어오는데 목청을 돋구어 나를 부르는 이는 장옥주씨입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는 비호같이 날아서 선두 그룹에 합류하고, 나는  비닐봉투를 스패츠 대신 두른 사람들과 산을 오릅니다. 얇은 면바지를 입고 있어서 갑자기 날씨라도 나빠지면 어쩌나, 남 걱정을 하느라 내 걸음 더디지만, 그래도 그들은 나보다는 잘 걷는 사람들입니다.
나목들의 잔가지에 가시같은 설화가 피어서, 눈과 마음이 즐겁습니다. 이따금 파란 하늘이 돋아날 때, 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잔잔히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 하얀 나뭇가지는 바람 속을 떠돌던 하얀 꽃잎들의 집이 되었습니다. 좀더 따뜻해지면 저 하얀 꽃잎들은 저 나뭇가지들을 떠나 송천으로 가고, 저 하얀 꽃잎들을 잃어버린 나뭇가지마다 연두빛 햇잎들이 돋아나겠지요.
선자령∼대관령∼능경봉을 거쳐온 백두대간에 올라서니, 산은 비로소 오래 아껴온 길과 품안을 열어보이는군요. 그러나 깊고 그윽한 산의 품안도 잠시, 정상을 가린 거대한 철탑과 맞닥뜨리니 주눅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윙윙 소리는 더욱 커지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고압선에는 더 두툼한 설화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저 무거운 전선이 언제 대지를 향해 무거운 팔을 처뜨릴지 모를 일입니다. 철탑을 세우느라 그랬는지 고루포기산 정상(1,238.3m)이 훨씬 밋밋해지고 넓어졌습니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는 백두대간을 타고 강릉쪽으로 이어지는  고압선에 쫒기듯이 정상을 내려섭니다.
정상에서 남릉을 타고 피덕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길이라기보다는 눈부신 눈밭입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주지 않았더라면 설맹이 될 것 같습니다. 눈이 몰린 곳에서는 온몸이 대지의 껍질을 파고 들것처럼 가라앉곤 합니다. 살림집과 창고가 한쌍을 이룬 농가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지만, 오늘 이 마을엔 눈과 정적뿐. 창문 위까지 눈이 차오르는 곳이니 겨울이면 모두들 다른 마을로 떠날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피덕령에서 수하리로 내려오가 포장도로도 눈이 깊게 쌓여서 길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뒤처진 이명자씨 부부와 지름길을 찾아서 들어선 산비탈에서 오랜만에 시원한 설욕을 하였습니다. 비닐 봉투를 깔고 엉덩이 썰매를 타느라 옷에 달린 호주머니마다 눈이 그득합니다. 송천가 명태 덕장앞에 다시 서니 5시간이 걸렸습니다.
바다를 등지고 내장을 버린 명태들이 봄이 오는 하늘 길목을 향해 입을 쩌억 쩍 벌린 채 빽빽하게 걸려 있는 풍경앞으로 다시 돌아 온 것입니다. 저 빽빽한 명태들의 세상 밖에서, 나는 아직도 꿈을 꾸는가. 하늘에서 내린 눈으로부터는 젖은 땅의 꿈을, 잘 마른명태들에게선 꼿꼿하게 말라 가는 황태의 꿈을? 방망이로 두들기지 않아도 요리가 가능한 황태 코다리를 사서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희끗희끗한 눈발이 차창을 두드리다 녹아 내립니다.

         눈이 내려도 모르겠지
         눈이 쌓여도 모르겠지
         철조망 밖에서 눈이 녹고
         냇물이 흘러도 모르겠지

         오목골 오른쪽 등성이에
         진달래 꽃불이 타고
         개짓는 집 항아리에서
         두견주가 익어도 모르겠지
         
         고루포기산 머릿골이  
         배추밭이 되어도 모르겠지
         고루고루 포기포기 들판을 이룬 배추들
         트럭타고 팔려가서 김치가 되어도 모르겠지
       
         포기 포기 심어놓은 내 발자국
         덕장 북어는 모르겠지
         눈과 함께 녹아서
         서해를 만나도 모르겠지

         철조망 밖에서 달이 자라고
         철조망 밖에서 별이 뜨고
         철조망 밖에서 새가 울고
         다시 눈이 내려도 모르겠지

         그러니까,
         명태들아!
         살아서
         산으로 가자!

          ― 「저기 산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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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에세이 <산아, 산아>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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