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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 고통과 환희의 뒤범벅을 견디게 해준 일출  


*두타산 / 댓재에서 본 일출
*그림 / 서시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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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 산행기>

고통과 환희의 뒤범벅을 견디게 해준 일출



                                                                                                이  향  지

해가 떴다. 삼척 앞 바다 수평선을 가린 두툼한 구름 층을 뚫고, 눈썹 모양의 불덩이 하나 천천히 솟구치며 둥글어졌다. 갓 돋은 해를 둘러싼 구름과 하늘에, 신선한 해의 불길이 옮겨 붙는다. 어둑하던 하늘이 푸른빛을 되찾으며 드넓어지고, 눈 아래 공중에선 아른아른한 구름 베일을 목덜미에 걸친 봉긋한 산머리들이 차례로 돋아난다. 삼척시 미로면 산허리를 깊게 파며 돌아 오르는 424번 지방도로의 모습이 한결 선명해진다. 길고 굴곡이 심한 비탈길 치오르느라 숨찬 자동차들의 심장소리. 마른풀과 헐벗은 나무들이 발그레 물들어 춤을 춘다.
우리는 저 해를 보려고 캄캄한 새벽을 달려 왔다. 저 햇빛은 1997년 11월 17일의 노동을 위한 것이지만, 저 찬란한 일출은 1998년 새해 첫 날을 위한 것이다. 새로운 태양이 후끈한 모닥불을 놓아, 내 심장이 뛴다. 그렇다. 내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뛰고 있는 심장처럼, 그 심장의 주인도 새로운 한 해를 묵묵히 걸어 갈 것이다.  
선 자리에서 왼쪽(서북쪽)으로 120도쯤 몸을 돌리면 두타산과 청옥산이 보인다. 우리가 선 지점에서 두타산 정상까지는 직선거리로 6km남짓. 두타산 머리에서 청옥산 머리로 이어지는 능선이 빠르게 흐르는 구름 아래 활시위처럼 늘어져 있다. 일출 때면 붉게 물들리라 기대했던 산 빛은 그러나 검다.
두타산 정상에서 바다 쪽으로 흘러내리는 두 겹의 능선이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드러내며 포개져 있는 것이 보인다. 저 날카로운 능선 너머 너머에 쉰움산(五十井山·683m) 능선이 출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쉰움산의 알터. 쉰 개가 넘는다는 돌로네들이, 저마다 해를 담고 붉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태양교의 신도처럼 해를 향해 서 있는 지점은, 백두대간 댓재 마루턱(810m)에서 바다 쪽으로 3km쯤 내려온 돌출 부분(650m)이다. 편도 1차선으로 내려오던 아스팔트 길이 갑자기 2차선으로 넓어지는 모퉁이 지점. 〔빙판주의〕안내판이 조그맣게 서 있는 도로 경계석 밖이다. 이 언덕이 댓재 마루턱보다 시야가 넓다.
산과 바다와 마을과 길이, 하나의 태양 아래 저마다의 특징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차를 돌려 다시 댓재를 넘었다.
댓재 마루턱에서 하장면 쪽으로 1km쯤 내려오면 번천리 입구다. 길 오른쪽 밭 가운데  집이 한 채 보이고, 조금 더 내려오면 가드레일이 잠깐 끊긴다. 이 지점에서 오른쪽(서북쪽)으로 가지를 치는 비포장도로가 두타산 진입로다. 차를 탄 채 2km 정도는 더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지점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이 길은 잘 알려진 코스가 아니므로 초입에 아무런 표지판도 없으나 424번 지방도로 댓재 마루턱과 길가에 있는 댓재산방을 염두에 두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댓재산방은 우리가 하차한 지점에서 200m쯤 더 내려가면 길 건너편에 있다. 1:50,000 지형도 '임계'와 '삼척' 두 장을 붙여서 개념을 확립하고, 1:25,000 지형도 '도전'과 '미로' 두 장을 연결해서 보면 도움이 클 것이다.

두타산으로 가는데 왜 동해로 가지 않고 태백으로 가느냐고 누가 물었다. 두타산의 다른 얼굴을 보러 간다고―! 동해시 삼화동 무릉계곡을 관문으로 삼은 두타산 북쪽의 빼어난 골체미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를 관문으로 삼은 두타산 남쪽의 푸근한 육체미를 만나러 간다고―! 그러나 산을 다녀오기 전에는 말할 수 없었다.
번천리(番川里)는 오지다. 평균 고도 760m나 되는 고지대다. 600여m만 고도를 높이면 두타산(頭陀山·1,352.7m) 정상에 설 수 있다. 동해시 삼화동 무릉계곡쪽이 해발 150∼170m인 점과 비교해보면, 무릉계곡에서 두타산성을 거쳐서 오를 때보다 절반은 거저 먹는 셈이다. 번천리 코스는 수직 어프로치보다 수평 어프로치가 길다.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 설 때까지 힘든 구간이 없고, 찾는 사람도 없어서 호젓한 반면 길은 뚜렷하다. 무엇보다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 무공해 지대다. 그러나 여러 차례 물을 건너야 하므로 장마철이나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피해야 한다.
출발 당시엔 일출을 본 감격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날씨가 변화 불측이었다. 댓재 너머 바다 쪽엔 해가 떴는데 내륙 쪽으로 넘어오니 구름이 짙었다. 그러더니 결국, 30분쯤 걸으니 비가 오고, 30분쯤 더 걸으니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백두대간에 올라서니 싸락눈으로 바뀌고, 나목들의 어깨와 가슴팍에 눈이 척척 들러붙고, 축축한 광풍 속에서 상고대가 피기 시작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준비가 불충분했다. 규칙을 지키느라 코펠과 버너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새 등산화가 발목과 복사뼈를 조이고, 비를 맞아 젖은 옷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걸어서 동사를 면하는 수밖에, 쉬지 않고 걸어서 두타산을 벗어나는 수밖에―! 고백하건대 나는 '산을 안다'는 말을 두타산에서 잊어버리기로 했다.

번천리 입구 출발 오전 7시 41분, 출발시 기온은 섭씨 0℃. 추수에서 제외된 배추들이 선 채로 얼어죽게 생겼다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밭옆을 지나갔다. 저 아까운 것들! 한 포기 뽑아서 짊어지고 가면 산정에서의 점심이 맛있겠지만 길은 멀고 배낭 속엔 빈자리가 없다.
담장이 없거나 문 열린 집 서너 채를 지나, 가도 가도 두타산이 나올 것 같지 않은 평지 길이더니, 단무지 무가 선 채로 썩어서 시들어가고 있는 밭을 지나면서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계곡으로 내려가서 물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물 건너는 곳을 확인만 하고 밭두덕을 거슬러 산 쪽으로 올라갔다. 희미한 오솔길이 물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 더 가니 물소리가 요란했다. 검고 우둘투둘한 암반 사이로 흐르는 물이 서로 먼저 가겠다고 포말을 튀기며 솟구치는 게 보였다. 거무소 쪽으로 돌아왔을 경우 이 지점에서 물을 건너와야 한다고 김부래씨가 일러준다. 얼마쯤 더 오르니 정말로 넓은 물을 건너야 한다. 물이 제법 불어서 징검돌들이 잠겨있다.
이 골짜기 역시 골지천의 상류에 해당되지만, 한강 발원봉인 금대봉 쪽 골지천보다 길이가  짧다. 이 골짜기는 원래 '아곡천(阿谷川)'이었고, 금대봉에서 시작하는 골짜기는 '죽현천(竹峴川)'이었다. 아곡천의 '阿'는 언덕이란 뜻도 있지만 '아형(阿兄)'의 경우처럼 '곡천(谷川)'을 높여서 아름답게 수식해 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정밀 측량이 불가능했던 옛날 사람들은 이 골짜기가 금대봉 쪽보다 긴 것으로 보았고, '골지천(骨只川)'이란 이름은 한일 합방 후에 일제가 남긴 오류인 것이다. 골짜기란 뜻의 '골(谷)'이 뼈라는 뜻의 '골(骨)'로 와전되어도 주권을 잃어버린 국민들은 연명에만 급급하여 돌아볼 겨를도 없었고, 주권을 회복한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 계곡을 지금의 댓재와 연관지어 '죽천천'이었다고, 금대봉 북쪽 창죽동 사이를 흐르는 계곡을 '대박천'이라고 전파하시는 어느 분의 말씀을 들었기에, 오류의 확산을 막아보자는 작은 염려에서 조사한 내용들을 밝힌다.
고산자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 권16 삼척>편에 나와 있는, 《阿谷川·西五十里 源出頭陀山 合于竹峴川》과 <대동지지 권15 정선>편에 나와 있는 《竹峴川·東五十里 源出蒼玉峯 北流 至兎山 過白福嶺及大朴山之水 至餘粮驛…》이란 내용과 지금의 지형도를 대조하며 분석한 내용에 근거한다. '아곡천'에서의 '西五十里'란 그 당시의 삼척현으로부터 서쪽 50리에 있다는 뜻이며, '죽현천'에서의 '東五十里'란 정선현으로부터 동쪽으로 50리밖에 있다는 뜻이다. 창옥봉은 본고 금대봉(1,418.1m) 편에서 밝힌 것처럼 금대봉의 옛 이름이다. 백복령쪽에서 흘러내린 물은 임계천, 대박산은 함백산, 대박산지수란 동남천을 뜻하는 것으로 나는 본다.

아아, 물은 흐르는구나. 갑론도 을박도 아랑곳 않고 옛 산에 새 물이 흐르는구나. 옛 사람들은 짚신도 아끼느라 맨발로 건넜을 물을, 나는 등산화 신고도 발이 젖을까봐 절절 매며 건넌다. 황금빛 잎갈나뭇잎 수북히 깔린 숲길로 뛰어드니 오전 8시 25분. 카페트 위를 걷는 것처럼 발밑이 푹신하다. 그러나 국수나무와 산죽들이 도열한 길에서 비를 만나면서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문바위골과 통골이 갈리는 지점엔 삼척시 하장면 청타산악회(회장 권상태)가 세웠다는  〔두타산→〕푯말이 조그맣게 서 있다. 백두대간에 올라 설 때까지 이 푯말이 유일한 안내판이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우회전하면 통골, 직진하면 문바위골이다. 우리는 통골로 올라가서 문바위골로 내려왔다. 번천리∼통골∼통골목이∼1,243m봉∼두타산 정상∼박달령∼문바위∼문바위골∼번천리. 요약하면 이렇다. 도상거리 18km, 예정 시간은 9시간이다.
오늘 우리가 택한 코스는 96년 12월호 <월간 산>에 소개된 코스를 거꾸로 타는 것인데, 이유는 오르막에 약한 내가 등고선을 검토하며 조금이라도 더 편한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능선으로 올랐다 계곡으로 내려오는 편이 헤매는 시간을 줄이는 이점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만족했다. 정상에서 박달령 쪽으로 내려설 때와 문바위 턱밑 너덜지대를 내려설 때, 특히 그랬다. 이 가파른 길을 치올랐더라면 시간이 훨씬 더 걸렸겠지 싶었다. 우리가 택한 코스는 오전에는 백두대간을 타며 눈 아래 굽이치는 산세와 바다를 보고, 오후에는 골짜기를 훑어 내리며 역광 속에 서 있는 잎갈나무 나목 숲을 볼 수 있어서 크고 작은 감동을 골고루 수확할 수 있다.  
〔두타산→〕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아가니 이내 계곡이다. 통나무 세 가닥을 엮어서 걸쳐둔 다리가 재미있다. 이후에도 계곡을 네 번 더 건넜다. 길은 좁지만 뚜렷하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서 좋은데 비에 젖은 산죽들이 스치면서 바지를 흠뻑 적셔 놓았다.
펑퍼짐한 안부에 올라서니 오전 9시 39분. 백두대간 종주 팀들이 남긴 리번들이 나뭇가지에서 팔랑거린다. 이곳이 통골의 정점인 통골목이(1,020m)다. 어느 틈엔가 비는 진눈깨비로, 진눈깨비는 싸락눈으로 바뀌었고, 젖은 바지는 얼어서 뻗뻗해졌다. 대간 바람은 바다로 날려버릴 듯 씽씽 부는데 후드 달린 방풍의마저 놓고 왔던 것이다. 이 멍청한, 잊을 걸 잊고 와야지 내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 박아보지만 나를 도와줄 바지들은 모두 집에 있다. 걷자, 부지런히 걸어서 바지도 말리고 산을 벗어나자. 이때부터는 목적 의식이 나를 끌고 갔다.
1,243m봉을 오르다보니 설화가 핀다. 춥다 춥다하면서도 사진 찍고 메모하고 하는 내 꼴이 우스웠던지 김부래씨는 놀린다. 저 할마이 저러다 얼어죽겠다고. 바지는 얼었지만 상의는 잔뜩 껴입었고 장갑도 모자도 충분하니 괜찮다고 여유를 부려보지만, 그는 내 심중을 꿰뚫고 있는 모양이다.
정상이 보이는 곳까지 오니, 어느 틈엔가 눈은 그치고 얼어붙게 축축한 바람 속에서 상고대가 피기 시작한다. 일출을 볼 때처럼 가슴이 뛴다. 저것은 분명 또 한번의 일출이다. 아침에 뜬 태양은 구름 속을 헤매고 있지만 두타산 정상을 뒤덮은 상고대는 우리 세 사람을 위해 펼쳐놓은 산의 향연이다.
봄인가 하고 꽃눈을 틔우던 진달래 가지에도 상고대 핀다. 너무 일찍 껍질을 벗어 던진 성급함을 자책이라도 하는 듯 휘청거리는 바람을 꺾어 제 몸을 친다. 울지 마라! 때를 잘못 알고 왔다 가는 꽃이 어디 너뿐이겠는가!
드디어 정상. 오전 11시 29분, 온도계의 눈금은 영하 10℃를 가리키고 있다. 산정묘지를 덮고 있는 마른풀들도 백발이 성성해졌다. 이쪽 저쪽 둘러보아야 그리운 풍경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다. 언제부터 이 산정을 지켜온 것인지, 처음 보는 태극기가 전신에 휘감기는 바람을 털며 소리치고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처럼 은근한 청마 유치환선생의 '깃발'이 아니라, '빨리 내려가라'고 재촉하는 산의 목소리 같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서서 청옥산 쪽으로 간다. 박달령 거의 다 와서 생각하니 손이 허전하다. 7년 동안 같이 다니던 스틱을 어딘가에 놓고 왔다. 김부래씨와 서시환씨는 등성이 하나를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지팡이를 찾으려고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어려운 길에서 동고동락하던 지팡이를 이 추운 산에 혼자 두고 가려니 발길이 저절로 돌아섰다. 세 갠가 네 개의 등성이를 도로 넘어가서 지팡이를 찾아들고 오니 난리가 났다. 내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 줄 알고 두 사람이 목이 터지라고 부르며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고마운 양반들. 지팡이 찾느라 35분을 허비했다. 박달령 정상 통과 13시 25분, 문바위 앞에 도착하니 13시 35분이다.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도시락을 펼쳤지만,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 언 속을 뎁혀줄 코펠과 버너들은 규칙을 지키느라 모두 집에 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났다.
싸락눈이 살짝 덮인 낙엽에 미끄러지며 문바위 정상으로 올라갔다. 상고대로 뒤덮인 두타산의 위용이 멀지 않은 곳에 펼쳐져 있었다. 오, 숨막히게 아름다운 은빛 두타산! 그것도 하산 직전에 보여주는 산의 깊은 속내를―! 얼마나 더 걸어가야 나는 알게 될까?

                                               (『월간 산』'9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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