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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내설악의 내밀한 비경들  


<설악산 / 백운동 계곡>
*그림 / 서시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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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백운동계곡 산행기>

내설악의 내밀한 비경들



                                                                        이  향  지

백운동계곡은 설악산의 마지막 비경(秘境)이다. 귀때기청봉(1,577.6m) 북록을 파며 시작한 물줄기가, 용아릉 발치에서 건천골 물과 합수하여 구곡담계곡으로 흘러든다. 주계곡의 길이는 4.2km쯤 된다. 상단은 곡백운(曲白雲·굽은 백운)과 직백운(直白雲·곧은 백운)으로 갈리고, 직백운 상단에서는 제단곡(祭壇谷)이 가지를 친다. 지도를 거꾸로 들고 보면 밑동이 실하게 생긴 고목 한 그루가 서북릉 허리 부분을 궁륭처럼 휘어잡으며 줄기와 가지를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곡백운의 백운폭포 위쪽과, 직백운과의 합수머리 부근의 경관이 특히 아름답다.
가야동계곡 또한 버금가라면 서러울 만큼 때묻지 않은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오세암 앞쪽의 만경대는 설악의 등뼈인 공룡릉(恐龍稜線)과 내설악의 음핵과도 같은 용아장성릉(龍牙長城稜線)의 진면목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천혜의 조망대다. 조락을 앞둔 잎새들이 비탈과 계곡을 잉걸불 도가니처럼 끓이는 단풍 철에도 찾는 이가 드물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처럼 목이 긴 금마타리꽃이 아스팔트 길섶에서 샛노란 꽃말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늦여름에 3박 4일을 예정하고 길을 떠난다.
인제군 북면 쇠리(우와리) 민박촌에 도착하니 밤중이다. 서북릉 끝자락에 솟은 안산(鞍山·1,430.4m)과 가리봉(加里峰·1,518.5m)을 넘어온 '가리산 능선'이 좌우를 막고 있는 협곡 안이어서 심연에라도 빠진 듯 별들이 멀다. 늦도록 불을 끄지 않은 이강국씨 댁에서 민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엔 트럭을 얻어 타고 한계천을 거슬러 오른다. 옥녀탕과 장수대 부근엔 평일 아침인데도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보인다. 설악산의 인기는 여전하다. 아니, 점점 더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가려는 길은 적막하리만큼 호젓한 길이다.
한계천(寒溪川)은 '재내'라고도 부른다. 고갯마루(재)에서 시작하는 개천이란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를 보면 장수대 위쪽은 자양천이다. 이름 위에 이름을 덧붙이거나 말거나 이 산에 내린 빗방울들은 이 산이 생길 때부터 파인 물길을 따라, 또 낮은 곳으로만 흐르게 되어 있는 물의 계율을 따라 흐르고 있다.
들머리는 한계령. 양양 쪽에서 부르자면 오색령(五色嶺)이다. 도둑바위골을 들머리로 삼고 싶었지만, 언제부턴가 시멘트 옹벽을 둘러치고 철조망을 촘촘하게 막아놓아서 물이 흐르는 바위 쪽만 빼꼼히 열려 있다. 그래도 저 길이 제일 빠른 길인데 싶어 미련을 못 버리고 기웃거리는데, 국립공원 직원을 만났다. 산림청장이 발행한 산림보호지도요원증을 보여주었지만 통하지 않는다. 덕분에 능선 산행을 병행할 수 있게 되어, 계곡으로 올라 계곡으로 내려가는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게 되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그쪽으로 못 가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의 태도가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볕 좋고 바람 좋은 한계령을 향해 아스팔트길을 걸어 오르며, 그 쓸쓸함마저 툭툭 털어서 바람에 날려버린다.

한계령 휴게소 뒤편의 시멘트 계단을 오르니 '설악루'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다. 양양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산허리를 들락날락 돌아 내리는 게 보인다. 숨바꼭질하는 길을 따라 흘러내리던 눈길이 먼 해안선을 더듬다 길 건너편 하늘로 되돌아온다. 갖가지 모양의 회백색 암봉들이 하늘을 뚫고 일어서 있다. 점봉산과 가리봉의 한계령 쪽 들머리에 해당되는 저 날카로운 암봉군들을 '한계령 만물상'이라 부른다고 한다. 하나 하나의 모습을 가늠하기엔 멀지만, 우리는 들머리에서부터 설악의 진면목을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몇 차례 무서리가 내리고 나면 저 갈매빛 산자락들도 불꽃처럼 타오를 것이다. 또 몇 차례 바람이 불어 불타는 잎새들을 거두고 나면, 헛헛해진 산자락을 백설이 뒤덮을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雪嶽'의 진짜 얼굴을 만날 것이다.
한계령 매표소를 지나서 신갈나무 우거진 숲길로 든다. 길이 허리를 펴고 일어서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절로 허리를 굽히고,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 올리듯 나를 밀고 올라간다. 숲빛이 어둑해지면서 빗방울이 후둑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갈려고 하는 계곡은 빗물이 불면 못 가는 길인데 비가 계속 오면 큰일이다. 내가 두 손을 펼쳐들고 빗방울을 밀어 올리는 시늉을 하며, 제발 구름 좀 들고 계시라고 하늘에다 얍! 얍! 기합을 넣어보지만, 비를 맞으며 기다려준 일행들을 잠시 웃겼을 뿐 신갈나무 잎새에 비 떨어지는 소리는 그칠 기미가 없다.  
 1,307m봉을 지나면서부터 한동안 내리막 길이 계속된다. 안개가 짙어 갈림길을 놓쳤나 걱정했지만, 길은 내내 외길이었다. 때마침 중청에서 온다는 사람을 만나 우리가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는다. 때마침 빗줄기도 가늘어진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을 따라  '한계령 2.1km/중청대피소 5.6km' 이정표가 서 있는 샘터에 도착하니 비 걱정은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산은 경치만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사람도 만나게 해주는 곳이다. 이 샘터에서 우리는 일행이 하나 늘었다. 혼자 설악을 찾아온 대학생 서영호씨다. 우리 나이로 스물두살 용띠인 그는 나중에 삼룡이란 별명을 얻었다. 46세 용띠인 이도윤씨가 일룡이, 34세 용띠인 서시환씨가 이룡이, 22세 용띠인 영호가 삼룡이가 된 것이다. 열두살 터울의 용 세 마리가 한꺼번에 한계령을 오르고 있었으니 어찌 비가 오지 않았겠는가고 말들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었다.
한계령에서 서북릉 갈림길까지는 2.3km. 대청으로 간다는 부부 팀을 작별하고 귀때기청봉 쪽으로 좌회전한다. 200m쯤 걸으니 제법 넓은 안부가 있다. 그 안부의 왼쪽(남쪽)에 보이는 소로가 도둑바위골을 거쳐서 한계령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귀때기청봉 쪽으로 150m쯤 전진하면 길 오른쪽(북쪽)에 한 무더기 바위가 있다. 내 걸음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을 때였으므로 김승진 대장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번했다. 그 바위 무더기를 끼고 우회전하는 길이 하나 있다. 비록 좁고 희미해 보이지만 그 길이 곡백운(曲白雲) 주계곡으로 내려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서북릉에서 주계곡까지의 거리는 1km정도지만, 1시간 이상 걸렸다. 이끼 덮인 너덜과, 눈측백나무 가지들과, 땃두릅나무 가시와, 쥐다래덩굴 터널과, 제멋대로 가지를 펼치고 있는 고산식물들과, 드러누워서 썩어가고 있는 덩치 큰 나무들을 넘거나 끼어서 통과해야하는 구간이 걸음을 더디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간에서는 물길을 염두에 두고 계곡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하면 곧 다시 길을 만나게 된다.
우기의 열대림처럼 음습한 구렁지대를 뚫고 나와 다시 햇볕을 본게, 오후 1시다. 징검돌을 밟고 주계곡을 건너니 심마니들의 모듬터. 구들장처럼 편편한 돌들을 깔아놓아서 다섯 명이 둘러앉아 라면을 끓이기에 안성맞춤이다. 모듬터에서 건너다보니 우리가 헤치고 나온 길의 입구가 수풀에 가려져 있다.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폭이 6∼7m쯤 되는 계곡을 다시 건너갔다 와본다. 서쪽에서 흘러내리는 계류를 1.5km쯤 거슬러 오르면 귀때기청봉으로 오를 수 있지만, 위쪽엔 별로 볼 것이 없다 한다. 그러므로, 이 모듬터에서부터 곡백운의 절경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파도처럼 흘러내리는 바위 비탈에 구절초꽃이 만발했다. 비로용담도 보랏빛 봉오리를 열었고, 꽃며느리밥풀도 이 깊숙한 계곡까지 내려와 있다. 바위틈, 아니면 이끼 사이에 그들을 서 있게 하고 꽃 피우게 하는 흙이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 바로 그 자체다.
모듬터에서부터는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게 아니라 한 장의 통바위로 이루어진 듯한 협곡을 파며 좁아졌다 넓어졌다하는 계류를 따라 내려간다. 폭포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폭포의 높이만큼 깊은 소(沼)가 있다. 또 폭포 주위의 숲엔 어김없이 우회하는 길이 있게 마련이다. 구곡담계곡에 합류할 때까지 구불거리는 계류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가고 건너오기를 스무 번도 더 한 것 같다. 곡백운이라는 이름의 실체를 실감하는 현장인 것이다.
모두들 물이끼 앉은 바위를 타고 잘도 내려가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이도윤씨가 발바닥 전체로 힘있게 밟으며 내려오라고 가르쳐 주는데도 잘 안 된다. 카메라 걱정 신발 걱정에 절대로 물에 빠져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다리를 후둘거리게 하기 때문이다. 혼자 숲길로 뛰어 들었다 가시덤불과 거미줄 세례를 당하고 다시 바위 비탈로 나서면 또 폭포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몇 차례 들락거린 끝에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는 곳. 높지 않은 폭포아래 커다란 웅덩이가 있고, 나팔처럼 열린 협곡밖에는 험상궂은 용아릉과 공룡릉 봉우리들이 겹쳐져서 석양을 받고 서 있다. 태양과 구름이 펼치는 표정에 따라 그늘졌다 밝아졌다 하는 연봉들. 삼룡이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괴성을 지른다. 경치에 취하고 물소리에 취하고 발그레 익어가는 열매 빛에 취하여 마냥 머무르고 싶다. 웅덩이 둘레에 둘러앉아 간식을 들며 소박한 소망의 몇 퍼센트는 푼다.
그러나 돌아갈 시간을 돌아보지 않은 그 희희낙락의 끝자락에는 높이가 25m는 될성싶은 백운폭포가 걸려 있었다. 백운폭포의 오른쪽 사면을 돌아 내리는 일이 내겐 가장 고역이다. 2년전 가을에 왔을 땐 측백나무 한 그루가 거꾸로 박혀 있어서 대롱대롱 붙들고 내려왔는데, 잡을 것이라곤 물이끼 자욱한 바위와 축축한 흙에 뿌리내린 허술한 나뭇가지들뿐이다. 이도윤씨의 도움으로 그 에움을 통과하여 백운폭포 아래 섰다. 활시위처럼 늘어진 황톳빛 절벽 위에 깊고 푸른 하늘이 가득 들어차 있다. 며칠 비가 오지 않은 탓에 수량이 줄어, 올올이 풀린 베폭처럼 날아 내리는 폭포물에 세수하고 다시 배낭을 짊어진다. 오후 5시 19분.
좁아졌다 넓어졌다하는 계곡을 1시간쯤 건너뛰며 흐르다보니 광활한 바위지대. 직백운(直白雲)과의 합수지점이다. 수량이 많지 않아서 계류를 따라 걸을만하다. 직백운 안쪽을 기웃거려 보지만, 하단에 있는 폭포 하나가 볼만할 뿐이고 그 위쪽은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골짜기가 가파르고, 측백나무가 우거져서 걸음을 옮기기 어려울 정도라 한다. 땅거미가 짙어 가는 시간인데도 하늘 한쪽이 밝다. 그러나 S폭포를 음미할 여유는 없다. 능선을 뚫고 일어서 있던 소나무들이 산그늘 속으로 사라진 뒤에야 백운계곡을 벗어났다.
구곡담계곡에 걸린 철계단에 올라선 시간 오후 6시 50분. 우리가 너무 여유를 부렸나싶기도 했지만, 돌아갈 시간에 쫓겨서 바람처럼 다녀간 날에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가를 알게 되었다. 산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우리에겐 어둡지 않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감동이 길눈마저 밝게 해주는 것 같다. 수렴동산장에 도착하니 오후 7시 30분. 한계령 출발한지 9시간 만이다. 도상거리 9.5km에 불과하지만 백리 길은 걸은 것처럼 뻐근한 피로와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

별은 하늘에서 잠들고 우리는 수렴동 산장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8월 30일 토요일이다. 배낭들은 산장에 두고 가야동계곡을 건너간다. 만경대∼오세암∼가야동 사거리∼가야동계곡∼수렴동계곡∼백담산장∼용대리로 이어질 길고 긴 하룻길의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오세암으로 가는 길을 따라 얼마쯤 오르니 갈림길이다. 오세암은 왼쪽으로, 만경대는 직진한다. 만경대(萬景臺·922.2m)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다. 기울기가 45도는 넘을 것 같다. 특히 마지막 200여m가 곧추 선 듯이 가파르다. 밋밋한 바위를 안고 돌아가게 되어있는 곳도 있지만 볼트를 설치해두어서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내 무릎과 등짝이 어제 산행의 피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석고를 붙인 것처럼 뻣뻣하다. 그러나 모두들 씽씽 걸어 오르는데 나 혼자 후퇴할 마음은 없다. 수렴동산장 떠난 지 1시간 여만에 만경대 정상에 선다. 오전 10시 22분. 무릎과 등짝을 조이던 석고도 걸어오는 동안에 슬슬 녹아버리고 정말 잘 왔다는 생각뿐이다.
중청(中靑峰·1,676m)에 가려져서 대청(大靑峰·1,708m)은 안 보이지만, 공룡릉과 용아릉을 이토록 가깝게 비슷한 높이에서 둘러본 것은 처음이다. 중청∼끝청∼귀때기청(귀때기靑峰·1,517.6m)으로 이어지는 서북릉의 웅장한 자태와, 그 넉넉한 품에 날카로운 어깨를 기댄 용아릉의 모습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건너뛰면 한 걸음에 닿을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우리들의 발 아래선 깊고 깊은 가야동계곡이 용트림하듯 흐르고 있다. 곰골과 길골쪽에도 갈매빛 밝음이 출렁거리고, 마등령에서 시작한 공룡릉은 날카로운 암봉들이 겹겹으로 겹쳐져서 설악산의 진면목을 아낌없이 연출하고 있다. 이 만경대가 설악의 중심이구나, 배꼽과도 같은 중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빼어난 능선들이 우리를 중심에 두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만경대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릿지로 옮겨 내려다보는 가야동계곡은 갈매빛 벽을 둘러친 우물 바닥 같다. 투명하고 신선한 공기의 우물. 절경이란 한꺼번에 다 펼쳐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사방을 막아놓고 자신을 숨기고 돌려세우기도 하며 땀흘리며 걸어온 자에게만 한 컷씩 잘라서 보여주는 거구나 싶다. 그 시점으로부터 6시간 후에는 그 바닥에서 이 지점을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보는 경치보다는 내려다보는 경치가 훨씬 더 좋았다.
만경대 북쪽 길로 내려와서 오세암에 들렀다.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절이 커졌다. 오세암(五歲庵)이 아니라 오세사(五歲寺)라 불러야 할 정도다. 때마침 점심 시간이어서 오세암 불자들에 섞여서 점심 공양을 받았다. 가야동계곡으로 통하는 길을 뚫어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봉정암 가는 길을 따라가는데, 갈수록 갈증은 심해지는데 물통은 비었다. 한 고개 한 고개 넘어설 때마다 바람에 섞인 물 냄새를 맡곤 했지만 막상 가보면 골짜기엔 먹을만한 물이 없었다. 소의 천엽처럼 겹쳐진 산자락 여덟 개를 넘어서야 가야동계곡 사거리로 들어섰다. 마지막 등성이를 넘을 땐 타는 목마름으로 주저앉기도 했다. 가야동사거리 큰 바위 밑에는 '가야찻집'이란게 있다. 커다란 대접에 타주는 미숫가루를 단숨에 들이키고 계류를 따라 내려간다. 또 한차례의 계곡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가야동계곡은 백운동계곡보다는 폭도 넓고 길이도 길어 물 흐름이 완만한 편이지만, 폭포와 소(沼)가 끊이지 않는다. 또 한번의 저녁이 올 때까지, 절경이란 말에 신물이 날 정도로 바위를 넘고 물을 건너뛰었다. 저마다 흩어져서 각개전투를 벌이다가도 개구리 잡아먹는 뱀 있다 소리에도 모이고, 너럭바위만 보면 둘러앉았다. 용대리 베이스캠프인 산여울식당에 도착한 것은 저녁도 한 참 늦었다. 다음 날 아침 집주인 이용구씨는 송이가 얼마나 자랐나 보러 설악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필례령을 넘어서 내린천 줄기를 탔다. 물은 흐르면서 자신을 씻고 있었다.
     
    별이 쏟아지는 새벽에
    밥과 반찬을 지고
    목에는 흔들리는 헤드랜턴을 걸고
    너의 가을을 보려고 줄을 섰었지

    천불동에서 오색에서 수렴동에서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조차 붉게 타는
    용아릉 공룡릉 서북릉에서

    네 안에서 걷고 있으면
    나의 가을이 안 보여
    곰골에서 귀때기골에서 가야동에서
    너의 가을 보면서 내게 온 가을을 잊었다
                  ―「설악산」

                                             (『월간 산』'9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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