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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강원도 태백 고랭지 배추밭  


*고랭지채소밭(태백시 귀네미골)          

글/사진  
이  향  지

한국인의 밥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반찬인 김치. 그 김치의 재료인 배추나 무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저온성 채소다. 이 채소들은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는 곳이어야 잘 자라며, 자체 수분 함량도 많은 작물이기 때문에,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는 기르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발 600∼1,300m의 산간지역에서 행해지는 고냉지농업의 발달로, 요즘은 35℃를 웃도는 삼복 중에도 노르스름 속이 꽉 찬 포기배추 김치와 연하고 달고 시원한 무로 만든 깍두기나 동치미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고랭지농업의 대표적인 지역은 강원도다. 인제∼양양∼강릉∼삼척∼태백에 이르는 백두대간 일대와, 평창∼영월∼정선∼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일대의 고원에는 초원 아닌 초원이 펼쳐져 있다.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백두대간이 바다 쪽 바람을 차단해주고, 깊고 굴곡이 많은 골짜기들을 끼고 있어서 비와 안개가 많고, 고도가 높은 산간지역이라 기온 또한 낮아, 배추나 무를 비롯한 채소들의 생육에 알맞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남한강과 낙동강의 최 상류에 위치한 태백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냉지배추 재배단지를 두 군데나 갖고 있다. 태백시 적각동과 황지동의 경계에 솟아있는 매봉산(1,303.1m) 기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랭지배추 재배단지로, 그 규모는 무려 43만평에 이른다. 이 산의 동북쪽은 정상 바로 아래까지가 전부 배추밭이다. 매봉산은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지점에 솟은 백두대간의 산으로, 남한강과 낙동강, 삼척 오십천 세 강줄기가 분기하는 수원이기도 하다. 매봉산 배추들은 8월이 수확기다. 조선조 말부터 일제에 이르는 절대빈곤의 시기에 산 속으로 파고들어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화전민들의 체취가 역력한 곳. 1960년대 초, 우리 정부는 백두대간 일대에 성행하던 화전을 엄금하고 농지를 산지로 환원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한 바 있지만, 이 산은 거기서도 제외되어 이처럼 계절을 역행하는 농사를 지어 우리의 입맛을 돋우고, 큰 수익도 올리는 부동의 농지로 자리잡은 것이다.
태백시 조탄리와 삼척시 하장면·신기면 경계에 위치한 귀네미골은 광동댐 수몰지구 이주민들이 새로운 촌락을 형성한 집단이주 단지로, 이곳 사람들 역시 여름 배추 농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35번국도변에 입구를 두고 있는 귀네미골은 백두대간 바로 아래 위치한 골짜기로 도로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데, 입구는 좁아도 안은 굉장히 넓다. 삼척시 신기면과 귀네미골이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데, 이 골짜기 정상 백두대간 상에서 내려다보고 건너다보는 바다 쪽과 내륙 쪽의 경치 또한 두루 탁월하다. 귀네미골 배추밭은 규모가 22만평. 귀네미골 배추는 매봉산 배추보다 약간 늦게 출하한다. 귀네미골은 매봉산보다 돌이 많은 지역이지만, 안개와 비가 많은 지역이어서 날씨가 가물 때, 오히려 풍작을 이룬다고 한다.
무는 좀 더 까다로운 작물이라, 흙이 부드럽고 땅이 기름지고 물길이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잘 자란다. 백두대간 댓재 바로 아래 있는 번천리(番川里)가 바로 그런 곳이다. 삼척시 하장면 쪽에서 두타산으로 오르는 길목 마을이기도 한 번천리는 '아시내'라 부르는 번천을 끼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무 재배단지로 알려져 있으나, 요즘은 배추 농사로 전환한 농가가 많다. 번천리는 광동호 삼거리에서 삼척시 미로면으로 넘어가는 424번 지방도로 왼편에 위치한다. 광동호 삼거리에서 번천리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장군바위가 있는데, 장군바위 건너편에 그물속 같이 아늑한 골짜기가 후리안이란 곳이다. 귀네미골과 산 하나를 등지고 있는 후리안골 역시 물길이 가깝고 모이는 산지여서 무 재배를 많이 한다.  
도시 사람들이 바다나 계곡을 찾아 피서를 떠날 때, 이곳 사람들은 땀 흘리며 여름을 보낸다. 쌀이 88번 손이 가기 때문에 '米'라 쓰게 되었다지만, 배추 또한 무수히 손이 가는 작물이다. 파종한 후 20여일 정도면 밭에 옮겨 심고, 40∼60일 후면 수확을 하는데, 모종하고, 풀 뽑고, 비료 주고, 농약 치고, 배추나 무 캐는 일은 주로 여인네들의 몫이고, 수확한 배추를 트럭까지 져 나르는 일은 주로 남자들이 한다. 트럭에 배추를 쌓는 상차 대장은 남자지만, 지게에서 내리고 신문돌이하고 대장에게 배추를 던져주는 일은 여자들의 몫이다. 분무기를 들고 농약을 뿌리는 일은 남자의 몫이지만, 줄이 엉키지 않게 들고 따라가는 일은 여자들이 한다. 고랭지채소재배는 이곳 젊은이들을 고향에 붙잡아두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배추만 져 날라도 한 시즌에 천만원 수익을 너끈히 올린다고 하는데, 이 일로 수익이 짭짤하기 때문에 농번기가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돈벌이를 떠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 한다. 이들의 소원은 "중간 거래상의 횡포를 막고 소비자와 생산자의 직거래를"트는 것이었다.

                                    (<월간조선>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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