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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石]의 <비> 개비린내에 대하여  

白石의 [비], 개비린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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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白 石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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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石의 [비], 개비린내에 대하여



                                                                  이 향 지

  "농촌이나 산골 서민들의 삶을 북방 지역의 토속적인 어휘에 실어 이야기하듯 노래한 백석(1912∼?) 시인의 초기 시입니다. 자연의 정황을 특정한 감정 부여 없이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실재감을 물씬 느끼게 하는 시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지요. 어느덧 몰려와 있는 비의 계절을, 아카시아 꽃들이 만발한 숲길에서 곧 쏟아질 것만 같은 '비'냄새로 예감하는 때의 표현이 볼 만 하군요. '두레방석'(여러 사람이 둘러앉을 수 있는 방석), '물쿤' (냄새가 확 풍기는 모양을 뜻하는 '물큰'의 사투리), '개비린내'(바닷물이 드나드는 때의 비린내) 등 사라진 말들의 쓰임이 이 시에 싱싱한 기운을 돌게 합니다."

위의 글은 조선일보 2000년 7월 27일 자 <아침마다 시 한 편을 배달합니다>난에 실린 Q씨의 해설이다. 나는 이분의 '개비린내'에 관한 해석에 견해를 달리 한다. <비>의 '개비린내'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때의 비린내'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개의 비린내'다. 박덕규씨는 '개비린내'를 갯비린내로 혼동한 것이다. 바다의 개펄을 흔히 '개'라고 한다. 그러나, '개' 뒤에 다른 말이 올 때는 갯바람, 갯내음, 갯사람, 갯가, 갯고동, 갯망둥어의 경우처럼 '갯―'으로 쓰지 '개―'라고는 쓰지 않는다. 이 표기법은 백석이 시를 쓰던 일제 때나 지금이나 똑 같이 쓰이며, 바뀐 적이 없다.

개를 길러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비 오는 날, 특히 더운 날 비가 올 무렵 축축하고 무거워진 공기 속에서 맡게 되는 개비린내는 정말 역겹다. 아카시아꽃 향기도 가까이에서 맡아보면 밤꽃 냄새, 정액 냄새 비슷한 비린내가 섞여 있다. 비 올 무렵이면 아카시아 꽃향기도 멀리 퍼지지 못하고 저기압을 타고 아래쪽으로 가라앉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비>의 개비린내는 비 오는 날의 개 비린내와 비가 오려고 할 때의 아카시아꽃 비린내가 복합적으로 풍기는 비린내. 백석은 이 냄새를 '개비린내'로 함축해서 그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닷물은 들고 날 때만 냄새가 나는 게 아니다. 민물이건 바닷물이건, 물비린내가 심한 때는 가뭄이 오래 계속 될 때, 즉 수중의 염도가 높아졌을 때, '물쿤' 할 정도로 풍긴다. 그것은 물 자체의 농담에 의한 비린내가 아니라 다른 물질이 혼합되었을 때 나는 비린내다. 바다는 비가 오면 오히려 비린내를 줄이게 된다. 강물도 마찬가지다. 한적하고 깨끗한 바다에서는 '비린내'라고 할만한 갯내음이 나지 않는다. 물론 비린내 물쿤 풍기는 개펄에 비가 내릴 땐, 마른 흙에 빗방울이 처음 떨어질 때 나는 냄새처럼 일시적으로 더 역한 냄새가 날 수 있다. 그러나 <비>에서의 '개비린내'를 갯내음으로 보는 것은 이 시의 육감적인 면을 간과한 탓이다.

백석은 '개비린내'란 말을 <비> 이외의 시에서는 쓰지 않았다. '―내'라는 말도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에서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의 '습내'와, 西行詩招2 에 해당되는 <北新>에서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에서 쓴 '모밀내', 단 세 곳뿐이다.
백석은 '―내'보다는 <국수>의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처럼 '내음새'나 '냄새'라는 말을 훨씬 즐겨 썼다. 그리고 그가 전해주는 냄새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제시하는 정황이 구체적이고 비유가 적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 <統營>의 끝연 '저문 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가 나는 비가 내렸다'거나, 시 <枾崎의 바다>에서 '病人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 같이 누웠다'에서 보듯, '김냄새' '미역 냄새'처럼 선명한 냄새를 전달해 주고 있다.

'개비린내'가 '개+비린내'인 것은 백석의 시어를 굴려 가는 버릇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모닥불>에서 '…개니빠디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이라 한 것이나, <머루밤>에서 '개方位로 말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등에서 볼 수 있는 합성어들이다. 물론, <머루밤>의 '개方位'에서의 '개'도 바다가 아니라 '개(犬)'다. '개方位'란 24방위의 하나인 술방(戌方)을 의미하며, 신방(辛方) 다음 방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창비 刊, 백석 시전집, 이동순 편. 낱말풀이 참고). 술(戌)은 개(犬)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머루밤>이란 머루처럼 까만 밤을 말할 것이다. 머루는 익어야 까만 빛을 띠고, 까만 빛을 띠었을 때라야 비로소 단 맛이 난다. 그리고 이 시는 '門을 연다 머루빛 밤하늘에 / 송이 버슷의 내음새가 났다'로 맺는다. <비>의 개비린내와 <머루밤>의 '송이버슷의 내음새'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식물 이미지와 동물 이미지를 교직시킴으로써 이미지의 확장을 꾀한 점은 같다. 백석의 시는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쓰여진 시가 아니다. 그는 저울질하듯 제 자리에 꼭 넣어야 할 말을 하나씩 새겨서 넣고 있기에, 드러난 뜻과 숨겨놓은 뜻이 함께 살아서 묘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단 두 줄로 비 올 무렵의 안팎의 정황을 아주 적확하게 그려낸 시. <비>.
백석의 <비>에는 이처럼, 비 오는 날 '개비린내'처럼 역하면서도 돌아보게 되는 꽃비린내가 섞여 있다. 보이는 것, 냄새 맡는 것, 들리는 것, 만져본 것, 먹어본 것을 그처럼 정교하면서도 구수하게 시로 엮을 수 있는 시인이 얼마나 되는가. 백석은 이처럼 자신 안의 관능조차 자연 속 사물의 향기에 숨겨서 드러낼 줄 아는 탁월한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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