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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0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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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버지께 진 빚 훌훌 털은 느낌"
[중앙일보] 입력 2004.05.07 18:00 / 수정 2004.05.09 09:53
'반달' 윤극영 전집 엮은 며느리 이향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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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지씨는 “시아버지 윤극영은 낭비 없는 자연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대표작인 ‘반달’과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 저절로 장단을 맞추게 되는 ‘고기잡이’와 ‘우산’, 아련한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따오기’에 ‘설날’과 ‘어린이날 노래’까지.

윤극영(1903~88)이 작곡한 동요들은 세대를 넘어 동심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동요와의 만남은 이땅의 유년들이 성인이 되기 전 당연히 거치는 통과의례였다.

윤극영의 동요는 물론 그가 발표하지 않고 갖고 있던 중편소설과 미완성 시나리오, 이런 저런 지면에 실렸던 회고록 등 '윤극영 문학'의 모든 것을 담은 '윤극영 전집'(현대문학)이 출간됐다. 각각 800쪽에 육박하는 두 권의 전집에는 미발표 유고 시 264편도 실렸다.

유고시 264편, 소설 등 실어

전집의 출간은 윤극영의 둘째 며느리이자 시인인 이향지(62)씨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李씨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원고지 4500쪽 분량의 '무지막지한' 유고 보따리를 풀어헤쳐 1년 반에 걸쳐 손수 입력했다. 윤극영의 육필 원고는 한자와 약어가 많아 출판사에서도 두손을 들었기 때문에 李씨는 원고 '해독'작업부터 해야 했다. 시아버지가 써둔 시는 300편이 넘었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 50여편을 덜어내기도 했다.

두툼한 책 두 권을 받아든 李씨는 "책이 잘 나와 매우 기쁘다. 빚을 갚은 느낌이고 이제 내 글로 돌아갈 수 있겠다"고 말했다.

李씨는 시아버지를 "역사가 벅차게 떠맡긴 소명의식에 떠밀려 문학과 음악에서 빛을 발한 경우"로 표현했다. 가정적으로는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완고한 남편이었고, 자녀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장악하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 넥타이 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매지 않아도 된다는 확인을 받은 경우에만 방송에 출연했고 점퍼를 즐겨 입는 소탈한 성격이었다.

윤극영은 항상 며느리들의 이름을 불렀고 李씨는 그런 시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가끔 시아버지의 머리를 깎아주었던 李씨는 앞머리가 많이 빠진 것을 두고 "'어디까지가 얼굴이시냐'며 귀여움을 떨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처럼 격의 없는 관계였지만 역시 시아버지는 어려워 요구사항들을 챙겨주다 보니 말년에는 내가 병이 날 정도였다. 오죽하면 돌아가신 이듬해 내가 등단했겠느냐"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동요가 꽃이라면 詩는 뿌리"

이씨는 "아버지는 시를 통해 모든 것을 말했다"고 윤극영의 시 세계를 평가했다. 일생이 녹아든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윤극영의 동요와 동시가 꽃이요, 잎이라면 시는 뿌리고 줄기"라며 "앞으로 연구자들이 윤극영에 접근하려면 동요가 아닌 시를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李씨는 "전국의 대학 도서관과 공동도서관 1000여곳 중 200곳을 선정해 전집 두 질씩을 보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서관 목록은 이미 도서관협회를 통해 받아뒀다.

신준봉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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