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전신으로 몽둥이를 받으며 으릉거렸다
곰은 피를 흘리면서도 곧게 서서 덤볐다
뱀은 몸을 접었다 솟구치며 독니를 꽂았다
멧돼지는 올무 걸린 나무를 뿌리째 뽑아 쩡쩡 휘둘렀다
사슴은 제 뿔을 바위에 짓부수며 울부짖었다
꽃은 진액으로 손을 끈끈히 적셨다
때가 아닐 땐 모두가 무섭게 용감했다
노인 초상은 상주들도 피식피식 웃는다
조객들도 떠들썩하다 취하고 화투를 친다
달구질도 우렁차다
모두가 자연이라 받아들이는 때
매달릴 곳 놓친 잎새들만 골짜기에 엎어져 운다
때 맞춰 날아오는 기러기떼 끼룩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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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메모>
사는 것은 무얼까. 척척한 구덩이에서 일어서려는 노력이 아닐까. 죽는 것은 무얼까. 척척한 구덩이에서 척척하단 말도 못하는 순응이 아닐까. 때를 웃으며 받아들일 때까지, 기러기떼는 때의 반대편으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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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표현>> 2003년 9~10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