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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노벨문학상 수상자 해럴드 핀터  

2005/10/13 21:22 송고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 해럴드 핀터

<펌/연합>

                  
   (스톡홀름 AP.AFP=연합뉴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영
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해럴드 핀터(75)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핀터가 "작품을 통해 일상의 잡담속에 묻혀있는 (현대인의) 위
기를 들추어내고 '닫힌 방'과 같은 억압 속으로 헤쳐 들어가려 했다"며 그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했다.

   한림원은 또 "핀터는 사람들이 서로서로의 처분에 맡겨지고 가식의 편린에 취약
한, 그리고 폐쇄된 공간과 예측할 수 없는 대화라는 연극의 기본을 되살려놓았다"고
설명했다.

   1930년 영국 런던의 해크니에서 유대계 양재사의 아들로 태어난 핀터는  청년기
'반유대주의'를 경험하면서 극작가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으며 1957년
'방'(The Room)으로 극작가로 등단했다.

   한림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런던 공습이 핀터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
향을 미쳤다고 부연했다.

   핀터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향해 '바른 소리'를 하는  인물로도  유명한데
특히 영국의 이라크전쟁 참전을 강력히 비난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소신있는 발언을 종종 해왔다.

   핀터는 지난 2월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희곡 집필은 잠시 접고 시작에  몰두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인권옹호운동가로도 유명할 뿐 아니라 1981년 상영된 '프랑스 장교의 여인'
(The French Lieutenant's Woman)을 비롯해 영화와 TV 각본을 여러편 집필하기도 했
다.

   또한 문단에서는 극의 특정한 분위기를 일컬을 때 그의 이름을 따 '핀터레스크'
(Pinteresque)라는 형용사를 사용할 정도로 핀터는 극 분야의 거장으로 꼽힌다.

   발표 이전 유력한 수상 후보 가운데 한명으로 꼽혔던 핀터는 1천만 스웨덴 크로
네(약 13억5천만원)을 상금을 받게 된다.

   economan@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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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핀터의 삶과 예술 세계



                  
   (서울=연합뉴스) 김정선.이윤영 기자 =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국의
헤럴드 핀터(1930~)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가 아닌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적 차원에서
인간의 실존을 다룬 부조리 극작가로 유명하다.

   연극계뿐 아니라 대학 영문학과 희곡 관련 과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
가다.

   유대계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핀터는 런던 해크니 문법학교에 다니면서  연극
공연의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했으며 졸업 후 18살 때 왕립 연극 아카데미를 입학했
지만 그만둔다.

   1951년 스피치와 연극학교에서 공부한 뒤 아뉴 맥매스터 극단에 들어가  배우로
활동했는데 이후 10여 년간 '데이비드 배론'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13살에 시를 쓰기 시작한 핀터는 1957년 첫 단막극 '방'을 쓴뒤 '생일파티',  '
벙어리 웨이터'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들 작품의 특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기관이 휘두르는 폭력의 위협에 개인이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그의 초기작품 등장인물은 대부분 하층계급 출신 노인이었다.

   또한 1980년대 이후 핀터의 작품인 '산골 사투리' 등에도 정치적 성향이 가미됐
다.

   평론가들은 핀터가 왕립 연극 아카데미 재학시 군복무 명령을 받았지만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양심선언을 했던 사실, 런던에서 태어난 유대계이면서 2차대전 때 폭
력을 경험했던 일 등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구체화하지 않은 위협적 요소를 극에서 일상적 상황으로 나타내고 정치적  상황
을 작품의 소재로 다루면서도 이를 해체시켜 부조리로 제시한다는 것.

   자신 스스로 초기 '일종의 정치적 극작가'에서 비정치적 작품'을  썼던  시기에
발표됐던 작품은 '귀향'(1964), '사장된 땅'(1974), '배신'(1978) 등이다.

   이어 고문과 핵문제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한 작품은 '최후의 한 잔'(1984), '산
골 사투리'(1988) 등을 들 수 있다.

   1985년 터키 방문시 구타, 고문 등을 직접 경험하게 된 핀터는 이와 관련, 미국
대사를 모욕적 언사로 공격한 것을 계기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남녀간의 사랑을 폭력의 시각으로 바라본 '재는 재로'(1996), 상류 계층을 조롱
하면서 탐욕스럽고 침묵을 강요하는 지적 기준들이 지배하는 사회를 그려낸 '축하파
티'(2000)도 대표작이다.

   배우,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한 핀터는 셰익스피어상, 유럽 문학상, 피란델로상,
데이비드 코언 영국문학상, 로런스 올리비에 특별상 등을 수상했으며  바르셀로나와
더블린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페스티벌이 열렸다.

   핀터는 영국의 현대 극작가 중 국내에 가장 많이 소개된 작가로 꼽힌다. 1970년
대 초 유덕형(현 서울예대 이사장) 연출, 박영희 번역으로 대표작 '생일파티'가  드
라마센터에서 공연 된 것으로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무대에 올려졌다.

   최근에는 정경숙 인천가톨릭대 부교수가 2002년 '제1회 해럴드 핀터  페스티벌'
을 시작으로 지난해, 올해에 이르기까지 여러 극단과 함께 핀터와 관련된  세  번의
페스티벌을 열었다.

   지난 9월 7일부터 이달 2일까지 대학로 블랙박스씨어터에서 4개 극단이  참가한
가운데 '컬렉션', '귀향', '핫 하우스', '배신'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고 지난 8일에
는 국민대에서 학술제까지 진행됐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여러 극단이 선보이는 작가 페스티벌로는 국내 유일한 행사
다.

   핀터의 극은 확실한 것이 없어 모호하며 등장인물에게 공격이 가해지는  이유도
불확실하다.

   정확하지 않고 불합리하며 자기 모순적인 대사 표현, 비슷한 말의 반복이  특징
이어서 이를 일컫는 핀터식(Pinteresque)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채승훈 서울연극협회장(수원대 연극영화학부 교수)은 "국내 처음 소개된 핀터의
작품은 1970년께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 '생일파티'로 기억한다"며 "핀터의 작품 특
색은 구성이나 인물, 주제 등이 안개처럼 모호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미 희곡의 세계'를 펴낸 연출가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는 "언어의 파괴, 인물
의 해체, 모호한 주제 등 그의 작품엔 부조리극의 요소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지만
정작 자신은 부조리극 작가로 분류되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며 "어떤 면에선 극사실
주의에 가까운 작가라 생각한다"고 평했다.

   jsk@yna.co.kr

   y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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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터 노벨상 수상 동료작가 반응



                  
   (런던.빈 AP.AFP=연합뉴스)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해럴드 핀터가 13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데 대해 동료 작가들은 "아주 잘 된 결정"이라며 반겼다.

   희곡 `점퍼스'의 저자인 톰 스토파드 이번 수상은 "전적으로 가치가 있고  나는
완전히 감격했다"며 "작가로서 해럴드는 50년간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을 다룬 드라마 `스터프 해픈스(Stuff Happens)"'를 쓴 데이비드 헤
어는 "한림원이 뛰어난 선택을 했다"며 "핀터는 뛰어난 희곡을 썼을 뿐 아니라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대중적, 정치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진부한  영국문
학계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다"고 주장했다.

   작가이면서 핀터의 희곡에도 증장하는 앨런 에이크본도 "가장 적절한  사람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갔다"고 반겼다.

   이라크전을 지지로 인해 핀터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수
상을 축하했다. 총리실은 "우리는 물론 그가 받은 인정에 대해 핀터에게  축하한다"
면서 핀터를 총리실로 초청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식으로든 그것(노벨문
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행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사 조웰 영국 문화장관은 핀터를 `거의 50년만에 나타난 영국 문학계의 거두'
라고 평가했다.

   40년 이상 핀터와 함께 작품활동을 한 영화감독 피터 홀도 이번 수상은 "위대하
고 독창적인 시인을 위한 위대한 상"이라고 말했다.

   극작가 출신인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핀터에게 전보를 보내  "당신이
노벨 문학상을 받게 돼서 내가 얼마나 기쁜지 모를 것"이라고 축하했다.

   마리아 테레사 페르난데스 델 라 베가 스페인 부총리는 기자들에게 "정부와  호
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자파테로 총리는 핀터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소설가 엘프레데 옐리네크는 핀터가 노
벨문학상을 수상한데 대해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고 오스트리아 언론이 전했다.

   choina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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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예술과 정치에 열정을 바친 극작가 핀터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헤럴드 핀터
(75)는 살아있는 영국 최고의 극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논
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인물이다.

   이번 주 75세 생일을 맞이한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핀터는  문
학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라크 전쟁을 맹렬히 비난하는 등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 세계의  부조리에도 적극적으로 항거해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전기를 쓴 비평가 마이클 빌링턴은 "핀터는 예술과 현실 속에서 공인된 진
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자이자 영원한 사회적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고 평
가했다.

   피터가 20세기 후반 현대 연극에 미친 영향을 지대하다. 1957년 처녀작인  `방'
이 연극 무대에 오른 뒤 3년만인 1960년 이미 그는 유명해져 있었다.

   이때부터 그의 영국적이고 긴장감이 넘치며 애매모호한 스타일을 뜻하는  `핀터
식(Pinteresque)'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그가 연극에 미친 영향을 컸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선정 사유서에서 "핀터는 극장을 닫힌 공간과 예측
할 수 없는 대화라는 근본 요소들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에 의해 좌우되고 가식은 무너진다. 최소한의 줄거리 속에서 연극은 권력투쟁과  대
화의 숨바꼭질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피터의 연극은 애초에는 부조리극의 일종으로 여겨졌으나  나중에는 평범한 대
화 속에 숨어 있는 지배와 복종 관계가 펼쳐지는 것을 엿듣게 해주는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여지게 됐다"고 한림원은 평가했다.

   핀터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뒤 "50년 동안 희곡을 써 왔지만 정치적인
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다. 어떤 때에는 정치와 예술 두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도  했고
때로는 그렇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핀터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 폭격 등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이 추진한 일련의 외
교정책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가했다.

   2002년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앞으로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블레어 총리는 "망상에 사로잡힌 멍청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량
살인자"라고 조롱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 이후 희곡 집필 중단을 선언하고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는  시
를 쓰는데 주력했다. 그가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는 시를 모아 발표한 시집은 지난해
윌프레드 오웬상을 받기도 했다.

   핀터는 지난 3월에 한 반전연설에서 "우리는 이라크인들에게  고문과  클러스터
폭탄, 열화 우라늄탄, 수도 없는 무차별적 살인 그리고 비극과 모욕을 가져다  주였
다. 그리고 그것을 중동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다 주고 있다고 부른다"고 말하기
도 했다.

   런던의 유대계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핀터는 성장하면서 반유대주의를 경험했
으며 이것이 극작가가 된 계기가 됐다. 그는 1949년 징집을 거부해 양심적 병역거부
자로 벌금을 받기도 했다.

   청년시절 이런 경험은 그로 하여금 좌파적 정치철학을 갖게 했으며 이런 정치적
경향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생일파티', '벙어리 웨이터' 등 초창기 작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기관이
휘두르는 폭력의 위협에 개인이 노출돼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최후의 한 잔'(
1984), '산골 사투리'(1988) 등에는 고문과 핵문제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핀터의 최신작 `옛 것에 대한 기억'은 2000년 발표됐으며 런던 국립극장에서 공
연됐다.

   유머있고 유능하며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화를 잘 낸다는 평을 듣고 있는 핀터는
1956년 여배우 비지안 머천트와 결혼했으나 1980년 이혼을 했다.  이후  역사가이자
작자인 앤토니아 프레이저 여사와 재혼했다.

   lc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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