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4/11(금) 08:35 (MSIE6.0) 218.155.239.117 1024x768
'로사리오 페레'의 단편 '막내인형(La muñeca menor)'  

단편소설

--------------------------------------------------------------------------------
*푸에르토리코 사회의 변화와 여성의 삶을
묘파한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의 백미
로사리오 페레의 <막내인형>, 원제는 La muñeca menor
출전: 『판도라의 책』(Papeles de Pandora)
--------------------------------------------------------------------------------

막내 인형


로사리오 페레 지음 / 박병규 옮김

 늙은 숙모는 꼭두새벽부터 사탕수수밭이 보이는 발코니로 안락의자를 끌어냈다. 인형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는 언제나 그랬다. 숙모는 어릴 적에 강에서 자주 멱을 감았다. 그런데 비가 내려 강물이 용트림하던 어느 날, 뼛속이 시린 느낌이 들었다. 물기가 묻어 반들거리는 검은 바위 사이에서는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해변에서 폭약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근처에 바다가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무언가 종아리를 지독하게 깨물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는 숙모를 물에서 끌어냈다. 들것에 실려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숙모는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다.
 
       숙모를 살펴본 의사는 독이 있는 차가라 새우에게 물린 것 같은데 별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한 달 후, 의사는 종아리 속으로 들어간 새우가 자라고 있는 게 틀림없다면서 겨자 습포를 처방했다. 열기 때문에 새우가 밖으로 나오리라는 것이다. 숙모는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겨자를 바르고 일주일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처는 더욱 악화되었다. 게다가 온 다리에 부스럼딱지 같은 게 생겼는데,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숙모는 체념하고 종아리 속에 틀어박힌 새우와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숙모는 무척 예뻤다. 하지만 치마 속, 칭칭감은 붕대 밑에 숨어 있는 새우 때문에 모든 꿈을 접어야 했다. 청혼자들을 만나보지도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혔다. 처음에는 여동생의 딸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퉁퉁 부은 발로도 집안을 능숙하게 돌아다녔다. 그때는 식구들이 낡은 식탁보 위에 떨어진 유리등 파편처럼 차례차례 주변으로 살림을 차려 나가던 시절이었다. 조카딸들은 숙모를 존경했다. 숙모는 머리를 빗겨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동화책을 읽어 줄 때면 숙모 주위에 둘러앉은 조카딸들은 고름이 흐르는 다리에서 번지는 시큼한 과나바나 냄새를 맡으려고 몰래 치마자락을 들추었다.
 
       조카딸들이 성장하자 숙모는 장난감으로 인형을 만들어주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인형이었다. 무화과나무로 속을 채우고, 떨어진 단추로 눈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은 숙모의 솜씨에 감탄하고 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형은 집안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은 인형을 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조카딸들이 성장해서 더 이상 필요 없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숙모는 조카딸들의 칫수를 재어 등신대(等身大) 인형을 만들었다. 모두 아홉 명이었는데, 숙모는 조카마다 일년에 하나씩 인형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방 하나를 아예 인형방으로 사용했다. 큰 조카딸이 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인형방에는 나이별로 백 스물 여섯 개의 인형이 있었다. 방문을 열면 비둘기 집이나 러시아 황궁의 인형방이나 담뱃잎 건조장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하지만 숙모는 이런 즐거움을 맛보려고 인형방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방문을 잠그고, 콧노래를 부르며 인형 하나씩 집어들고 귀엽다는 듯이 흔들었다. "그래, 네가 한 살 때이지. 이건 두 살 때이고, 이건 세 살 때야." 이처럼 조카딸들을 양팔에 앉아주던 시절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큰 조카딸의 열번 째 생일날, 사탕수수밭을 보려고 안락의자에 앉은 숙모는 두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사탕수수만 쳐다보며 멍하니 지내다가 의사가 진찰하러 오거나 인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만 정신을 차렸다. 그럴 때 숙모는 큰소리로 자기 좀 도와달라며 온 집안 사람들을 불렀다. 그런 날이면 농장의 일꾼들은 신명 난 잉카제국의 파발꾼들처럼 연신 집안을 들락거리며 밀랍, 점토, 레이스, 바늘, 색실을 사왔다. 이처럼 부산한 준비가 끝나면 숙모는 어제 저녁 꿈에 나타난 조카딸을 방으로 불러 치수를 재고, 밀랍으로 마스크를 떴다. 마스크 양면에 석고를 먹여놓은 모습은 마치 죽은 두 얼굴 사이에 산 얼굴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턱 부위에 조그만 구멍을 내면 노란 밀랍이 한없이 흘러나왔다. 도자기로 만든 팔은 항상 투명했다. 엷은 상아색 팔은 하얀 비스크 도자기 얼굴과 대조를 이루었다. 인형의 몸체를 만들기 위해 숙모는 무화과나무 가지 스무 개를 정원에 갖다놓으라고 일렀다. 능숙한 솜씨로 무화과 가지를 하나하나 짜개고, 발코니 벽에 일렬로 늘어놓아 햇빛과 바람에 진액을 말렸다. 며칠 후, 숟가락으로 속을 긁어내어 인형의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끈기와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숙모가 손수 만들지 않은 소재는 눈알이었다. 유럽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눈알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숙모는 이 눈알을 그냥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차가라 새우의 미세한 더듬이 운동을 감지할 수 있도록 며칠 동안 시냇물에 담가놓았다. 그런 연후에 암모니아수로 씻으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이렇게 준비한 눈알은 밑바닥에 두툼하게 솜을 놓은 네델란드산 쿠키통에 보관하였다. 인형의 옷은 아이들이 성장해도 변하지 않았다. 항상 작은 인형은 레이스 달린 천을 사용했다. 큰 인형에는 자수를 사용하고, 머리에는 한결같이 풍성한 매듭을 얹었다.
 
       조카딸들이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결혼식 날 숙모는 조카딸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최근에 만든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네가 부활(復活)했지"라고 말했다. 신랑에게는 신부 집 그랜드 피아노 위에 놓아둔 장식품이라는 말로 안심시켰다. 숙모는 발코니 위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조카딸들을 바라보았다. 한 손으로는 수수한 체크 무늬 옷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자기를 꼭 닮은 등신대 인형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 인형은 가죽 샌들과 망사 천에 수를 놓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인형의 손과 얼굴은 그렇게 투명하지 않았다. 응유(凝乳)처럼 끈적거리는 기운이 있었는데, 결혼식 인형은 섬유질 대신에 꿀로 속을 채웠기 때문이다.
 
       조카딸들이 모두 결혼하고 나이가 제일 어린 막내 조카딸만이 남았을 때, 매달 왕진오던 의사는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을 데려왔다. 청년은 치마를 들추고 벌겋게 부어오른 종기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푸르스름한 종기에서 냄새 나는 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청년은 청진기를 꺼내 조심스럽게 진찰했다. 숙모는 새우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청년의 손을 종아리 위에 올려놓았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새우 더듬이를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청년은 치마를 내리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초기에 치료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의 아버지는 물론이라고 대답하면서, 이십년 동안 너를 공부시킨 새우를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후로 청년이 매달 숙모에게 왕진을 왔다. 누가 보아도 막내 조카딸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숙모는 앞일을 예견하고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청년은 항상 빳빳한 칼라와 번쩍거리는 구두와 멋들어진 동양풍 넥타이핀을 꽂고 다녔다. 숙모를 진찰한 후에는 응접실에 앉아서 타원형 틀 속에 끼워넣은 페이퍼 실루엣을 한쪽에 치워놓고 보라색 스타티스 꽃다발을 조카딸에게 주었다. 조카딸은 생강 과자를 내놓고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꽃다발을 받았다. 마치 거꾸로 웅크린 고슴도치의 배를 만지기라도 하듯이. 조카딸은 청년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페이퍼 실루엣이 궁금했고, 또 돌고래의 뱃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식 날, 조카딸은 인형의 허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져 깜짝 놀랐으나, 너무나 예쁜 모습에 정신이 팔려 이내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손과 얼굴은 고급 미카도(Mikado) 도자기로 만들었다. 조카딸은 숙모가 자기 젖니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아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은 서글픈 미소를 띄웠다. 다른 점도 독특했다. 숙모는 눈동자 가운데 반짝이는 진주를 박아놓은 것이다.
 
       의사는 조카딸을 마을로 데려갔다. 시멘트 건물들 한 가운데 자리잡은 네모난 집이었다. 의사는 유력한 집안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조카딸을 하루 종일 발코니에 앉혀놓았다. 조카딸은 찜통 같은 발코니에 앉아서 남편이 페이퍼 실루엣만 가진 것이 아니라 욕심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느 날 남편은 메스 끝으로 인형의 눈알을 파냈다. 그리고 긴 줄이 달린 값비싼 회중 시계와 바꾸었다. 그때부터 인형은 그랜드 피아노 끝에 앉아 있었으나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몇 달 후, 의사는 인형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조카딸에게 행방을 물었다. 신앙 단체에서 부활절 성체 행렬 때 베로니카 상(像)에 쓸려고 도자기 인형의 팔과 얼굴을 비싼 값으로 구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조카딸은 의사에게 인형 속에 꿀이 든 것을 알고 개미들이 하루밤 사이에 모두 먹어치웠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인형의 얼굴과 팔을 미카도 도자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개미들은 틀림없이 설탕인줄 알고 덤벼들었다가 이빨이 부러졌을 것이며, 지금쯤이면 개미굴 속에서 인형 손가락과 눈까풀을 쏠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의사는 집 주변을 뒤엎었으나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몇 해가 지나고, 의사는 부자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고객으로 만들었다. 고객들은 과도한 진찰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대가 끊긴 사탕수수 농장의 귀족 후손을 가까이서 보려는 욕심으로 찾아왔다. 조카딸은 여전히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 레이스가 달린 옷차림에 눈을 내리뜨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목걸이와 깃털 달린 모자로 치장하고 지팡이를 든 환자들이 돈 냄새를 물씬 풍기며 조카딸 옆에 앉았을 때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과나바나에서 흐르는 진액 냄새 같았다. 모두들 손을, 마치 다리라도 되는 듯이, 북북 문지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의사는 오로지 한 가지가 불만이었다. 자신은 늙어 가는데 조카딸의 피부는 예전에 사탕수수 농장을 왕진할 때처럼 여전히 뽀얗고 탄력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의사는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조카딸의 심장이 멎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청진기를 조심스럽게 심장 위에 대어보았다. 아득한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인형 눈까풀이 올라갔다. 눈알이 빠진 빈 공간으로 분노한 차가라 새우의 더듬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

로사리오 페레와 페미니즘 문학론


                 
                 현중문




 로사리오 페레(Roserio Ferré, 1938-)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비평가이자 작가로서 동화, 단편, 장편 소설을 창작하였다. 아버지 루이스 페레(Luis Ferré Aguayo)는 푸에르토리코의 유력한 기업인이었으며, 1968년부터 1973년까지 푸에르토리코 지사를 역임하였으며, 자녀들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도록 사립학교에서 교육시켰다. 이후, 페레는 푸에르토리코 대학과 미국 뉴욕의 매리랜드 대학에서 코르타사르(Julio Cortázar)관련 논문으로 학위를 받고, 푸에르토리코와 뉴욕을 오가며 여성의 시각을 통해서 복잡다단한 푸에르토리코 역사의 이면을 파헤친 중편 소설 『저주받은 사랑』(Maldito amor, 1980)과 영문 장편소설 『호반의 집』(The House on the Lagoon, 1995)을 발표하는 등 사회,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페레의 자서전적인 글에 따르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동기는 이혼이었다. 1960년 이른 나이에 상인과 결혼하여 3남매를 둔 페레는 "완전한 아내"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지적·정신적 공간을 포기하였다. 사랑만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혼을 하고 푸에르토리코 사회의 전통에서 여성의 종속적인 위상을 자각한 페레는 안온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정신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을 꿈꾸게 되었으며, 1972년 문학잡지 《하역장》(Zona carga y descarga)에 단편 「막내 인형」(La muñeca menor)을 발표함으로써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페레가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글쓰기 요리」를 비롯한 비평문에서 전개한 페미니즘 문학비평 이론 때문이었다. 페레는 초기부터 여성작가들의 글과 이론에 관심이 많아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시몬느 드 보브와르(Simone de Beauvoir)를 비롯하여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엘렌 시수(Hélène Cixous), 뤼스 이리가라이(Luce Irigaray) 등 현대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저서를 탐독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페레에 따르면, 여성 문학은 여성의 일상 경험에서 출발한다. 특히 남성 중심적인 문화 전통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여성의 경험은 남성의 경험과 상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사용하는 수단인 언어에는 남성의 언어와 여성의 언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오로지 여성 작가가 다루는 주제에 따라서 선택하는 언어가 다를 뿐이다. 이처럼 페레는 여성의 언어와 남성의 언어를 구별한 시수나 이리가라이와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비결은 훌륭한 요리의 비결과 마찬가지로 성(性)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단지 재료를 조합하는 지식에 달렸다." 다시 말해서, 남성이건 여성이건 글쓰기 능력과 재주에서는 아무런 생물학적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과거의 여성 작가들이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보다는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주제를 많이 다룬 까닭은 아내, 주부, 어머니 등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전통적인 역할에 기인한 것이지 여성 본연의 속성 때문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페레는 버지니아 울프의 견해를 받아들여 여성 작가의 글도 단순한 분노의 표출에서 벗어나 복잡한 아이러니를 담아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페레 주장의 배경에는 자신의 겪은 씁쓸한 경험이 담겨있다. 페레가 작품을 발표하였을 때, 대부분의 푸에르토리코와 라틴아메리카 비평가들은 ―대분분이 남성들이다―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특수한 범주에 넣거나 아니면 여성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하였다. 이 비평가들은 《하역장》이나 단편집 『판도라의 책』(Papeles de Pandora, 1976)에 실린 작품을 읽고 무정부적이고 외설적이고 계급적 이해를 배신을 작가라고 평하고, 문단에서 배제하였다. 페레는 안온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 던졌듯이 이번에는 여성 작가라는 특수한 비평 틀에 도전할 필요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페레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적인 구도로 문학과 사회를 파악하려는 시도에 반기를 든 크리스테바의 견해와 상응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아무튼 페레는 언어의 성적 무차별성에 기초하여, 문체 및 작품의 구성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없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문학 비평가들은 여성 작가의 작품과 남성 작가의 작품은 동일한 비평기준에 의하여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문학 작품은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작품의 미학적 아름다움과 내적 가치를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성은 작품의 가치와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페레는 『암캐들의 대화』(El coloquio de las perras, 1990)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페미니즘 문학을 검토하고 있다. 페레의 견해로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는 소르 후아나 수녀이다.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소르 후아나. 신앙의 덫』(Sor Juana Inés de la Cruz o Las trampas de la fe, 1982)이라는 책에서 소르 후아나는 수녀이기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는 평을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요리를 했더라면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소르 후아나 수녀는 식민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삶을 영위한 여성의 체험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페레는 현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 대한 논평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호세 레사마 리마,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호세 도노소 등의 작품에서 여성은 부정적이고 매우 제한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여성 작가들의 경우에도 성적 편견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여성 작가들은 남성을 바보나 게으름뱅이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사벨 아옌데,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엘레나 포니야토프스카, 루이사 발렌수엘라, 마리아 린치, 클라리세 리스펙토르, 이네스 아레돈도, 로사리오 카스테야노스 등은 여성의 갈등에 치중하기 때문에 남성 인물을 공허하고 부차적인 인물로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페미니즘 운동과 이론이 양극을 오가던 시대에 페레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이론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더구나 전투적이고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페미니즘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정치적 여건 속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작품의 미학을 강조하는 페레의 논지는 환영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여성작가의 작품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레벨을 남발하는 경향을 반성적으로 숙고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를 제공한다.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처음 이전 다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