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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김수영/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 외,
* 이글은 황형산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현대시 다락방>에서 옮겼습니다. 좋은 글을 주신 황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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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 제 12화
이와 책 - 젊은 김수영의 초상
황 현 산 (문학평론가)
김수영은 1947년에 스물여섯 살이었다. 김수영이 이 나이에만 유달리 괴로웠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 해에 쓴 것으로 알려진 세 편의 시,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 「이(蝨)」 그리고 「아메라카 타임誌」가 모두 마음 속에 쳐박아 두기에도 공공연히 드러내기에도 어려운 어떤 고통을 증명하려는 듯 특별하게 난삽하다. 이 시들은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는 과거의 시간에 대해, 젊은날의 방황과 결의에 대해 말한다. 그의 身인 재능과 의지는 나쁜 기억에 잠식되어 있으며, 그의 土인 가족과 사회는 미망에 얽힌 그의 불우한 나날들을 되돌려 보여 준다. 身土는 그때도 지금도 둘이 아니다.
「아메리카 타임誌」1)는 이 정황을 포괄적으로 전달한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낭비한 시간을 기름방울(油滴)로, 그 보잘 것 없는 결실을 "능금"으로 표현하고, 자신을 "아메리카"2) 벌판의 낯선 시간에서 떠돌게 하던 실질없는 "활자"들과 다시 돌아와 맞이하는 부황한 현실을 한데 묶어 "瓦斯의 정치가"라고 부른다. 그는 회한과 고뇌로 "응결"된 눈물을 떨어뜨리고, "바위"를 물둣 어금니를 앙다물지만. 그의 희망도 세상도 모든 것이 헛바람("瓦斯")으로만 부풀어 있다. 그에게는 단단한 어떤 것, 서로를 끝없이 되비치기만 하는 이 身과 土의 숙명을 벗어나게 할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물론 시쓰기이다. 나머지 두 시와 또 한 시를 읽으면 그의 실존에 이 시쓰기의 가치가 무엇이었던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蝨)」는 시인이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언급하는 세 편의 시 가운데 시기적으로 첫 번째 것이다. 그의 전집에 딸린 연보에 의하면, 시인의 아버지는 이 시가 쓰여지기 두 해전부터 병상에 누워 있었으며, 그리고 다시 두 해 후에 세상을 버렸다.
倒立한 나의 아버지의
얼굴과 나여
나는 한 번도 이(蝨)를
보지 못한 사람이다
어두운 옷 속에서만
이(蝨)는 사람을 부르고
사람을 울린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수염을 바로는 보지
못하였다
新聞을 펴라
이(蝨)가 걸어나온다
행렬처럼
어제의 물처럼
걸어나온다
"倒立한 나의 아버지"라는 말에는 별다른 뜻이 없다. 그것은 "바로는 보지 못한" 아버지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가 아버지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家長의 권위인 그 수염 아래 불결한 <이>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염 밑에 실제로 이가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겠다. "어두운 옷 속에서만" 사람을 부르고 사람을 울리는 이 이는 필경 시인의 가족사와 얽혀 있을,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게 만들 나쁜 기억들이리라. 그것이 직시하기에 너무 괴로운 것이라면 어두운 곳에 감춰두는 것이 타당하겠으나, 기억은, 더구나 부끄러운 기억은 우리의 의지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적절하지 못한 시간에 악질적으로 떠오르며 바로 보려 할 때는 오히려 이미 가슴을 할퀸 그것은 사라진다.
新聞을 펴라
이(슬)가 걸어나온다
행렬처럼
어제의 물처럼
걸어나온다
신문에서 이가 걸어나온다는 말은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이다. "新聞을 펴라"는 다른 활자들보다 한 글자 뒤로 물러서 있다. 그것은 전체의 시행들과 다른 어조의 목소리이다. 젊은 시인은 행렬지어 기어나오는 몹쓸 기억들을 막아내기 위해 신문을 펴고 그것을 읽으라고 저 자신에게 권고한다. 신문은 기억을 풍문으로 가리고 역사를 시사로 차단한다. "어제의 물"에서 풍기는 악취를 오늘의 잉크 냄새로 중화한다. 그것은 이 기억의 고통에 일종의 아편이다.
그러나 김수영이 그의 정신위생을 위해 선택하고 싶어 했던 것은 언제나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 아편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은 한 연으로 이루어졌고 어조가 재빠르다.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이 있다
이것은 먼 바다를 건너온
容易하게 찾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것이다
주변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될 冊
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冊
가리포루니아라는 곳에서 온 것만은
確實하지만 누가 지은 것인줄도 모르는
第二次大戰 以後의
긴긴 歷史를 갖춘 것같은
이 嚴然한 冊이
지금 바람 속에 휘날리고 있다
어린 동생들과의 雜談도 마치고
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
이루울 準備를 해야 할 이 時間에
괴로움도 모르고
나는 이 책을 멀리 보고 있다
그저 멀리 보고 있는 듯한 것이 妥當한 것이므로
나는 괴롭다
오오 그와 같이 이 書籍은 있다
그 冊張은 번쩍이고
연해 나는 괴로움으로 어찌할 수 없이
이를 깨물고 있네!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이여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이여.
외국 서적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에 비교될 만큼 어려웠던 그 시절에, 미국에서 저작되어 바다 건너왔고 외국어로, 필시 영어로, 쓰여졌을 이 문제의 책에 시인은 심정적으로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주변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될 冊"이며, "긴긴 歷史를 갖춘 것같은" "嚴然한 冊"이다. 그는 이 책을 경외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점을 트집 잡아 시인의 서구편향을 논하고 그의 <모더니즘>을 규정해야 옳을까.
책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책일 때 그 책으로서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책은 여타의 사물과도 다르고 사람과도 다르다. 실존주의의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책은 사물처럼 그 자체로 완성되고 항상 충만한 즉자적 존재에 그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의식처럼 그 비어 있음을 다른 대상으로 채워야 하는 대자적 존재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한 저자의 책은 그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즉자일 수 있다. 둥근 바위를 그렸으면 그 둥근 모습 그대로, 시든 꽃을 말하였으면 그 시든 내용 그대로, 독자에게 책은 거기서 완결되어 있다. 반면에 저자의 눈에 그의 책은 여전히 대자이며, 그것도 뒤틀린 대자이다. 내 글을 내가 읽을 때, 거기에서 나는 나의 작전과 나의 서투름과 나의 망설임과 나의 무모함을 다시 발견한다. 내 글은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니며, 나는 여전히 도중에 있다. 내 글에서 내가 발견한 것을 물론 독자도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나와 같은 방식으로는 아니다. 내가 무모하게 한 구절을 썼을 때, 독자는 거기에 영원히 그 모습으로 있을 무모함을 발견하지만, 나에게 그 무모함은 나를 뉘우치게 하거나 합리화를 유혹하는 방식으로, 방치하거나 제거하거나 고쳐 써야 할 것으로, 언제나 심리적 부담을 주는 것으로, 그러나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으로 거기 있다.3)
책은 독자에게 즉자이며, 저자에게 대자이다. 그러나 모든 독자가 한결같은 것은 아니다. 독자들 가운데는 저자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언어와 다른 사고법으로 길들여진 사람도 있고, 그와 같은 토양에서 그의 생각을 같이 나누거나 깊이 이해하며 살았던 사람도 있다. 저자의 가족과 친구와 연인은 어느 정도는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 저자의 책을 읽으며, 저자처럼 자신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책은 저자에게서 멀어질수록 즉자적 성격을 더 강하게 지닌다.
김수영이 원했던 것은 이 즉자로 완결된 책이었으며, 그것을 "容易하게 찾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서적에서 발견한다. "누가 지은 것인지도 모르는", 다시 말해서 한 생활인으로서의 그 저자가 문제되지 않는, "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다시 말해서 접촉과 독서로 그 완결성을 홰손하기보다는 그대로 보존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은, "第二次大戰 以後의 긴긴 歷史를 갖춘 것같은", 다시 말해서 전후의 고뇌를 역사적 전망으로 삭여 안고 있는 것같은 이 "嚴然한 책"은 그의 불안정한 생활과 심란한 정신의 대척점에 있다. 이 책에서 이가 행열을 지어 "어제의 물처럼" 걸어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책은 또한 신문과 다르다. 신문의 번화한 소식들은 나쁜 기억을 미봉하는 그 순간 그것들 자신이 기억들 속에 눅눅하게 섞여 들어가 "어제의 물"이 된다. 책은 불투명하게 흐르는 기억을 거기 투명하게 정리된 기억으로 누르고 항상 현재를 확보한다. 책은 끈끈하고 걸기적거리는 현실 속에 깔끔하게 완결된 공간을 들어 앉힌다. 책은 나쁜 기억에서, 그리고 나쁜 기억으로 저주받은 삶에서 우리를 해방한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 자야하는 김수영이 어떤 구원의 기획처럼 책에 걸었던 희망이 그것이다. 그러나 시에서 이 기획은 실패한다. 시의 첫머리에서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이 있다"라는 중립적인 서술은 끝내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이여"라는 두 번 겹치는 영탄이 되어 시를 막음한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먼 책일 뿐만 아니라 돌아앉는 책이었다. 책장이 배타적으로 번쩍이는 이 책의 투명할 수도 있는 공간을 시인은 자신의 현실 속에 들어 앉히지 못했다. 그는 이 시를 시집 『달나라의 장난』에 넣지 않았다.
김수영은, 7년 후인 1955년, 이 시의 개작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착상의 토대를 같이 하는 시 「書冊」을 발표했다.
덮어놓은 冊은 祈禱와 같은 것
이 冊에는
神밖에는 아무도 손을 대어서는 아니된다
잠자는 冊이여
누구를 향하여 앉아서도 아니된다
누구를 향하여 열려서도 아니된다
地球에 묻은 풀잎같이
나에게 묻은 書冊의 熟練 ―
純潔과 汚點이 모두 그의 象徵이 되려 할 때
神이여
당신의 冊을 당신이 여시오
잠자는 冊은 이미 잊어버린 冊
이 다음에 이 冊을 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덮어놓은 冊"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책의 다른 이름이겠지만, 이 책의 폐쇄된 상태는 그 본래의 성격보다 시인의 의지를 더 많이 반영한다. 시인은 책이 담고 있을 내용보다 그에 대한 자신의 기대에 더 비중을 둔다. 시인은 방만하게 흩어져 있는 삶을 책에서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 두렵다. 그가 책에 거는 기대는 기도처럼 순결하고 절실한 것이다. 그는 "神밖에는 아무도 손을 대어서는 아니" 될 책을 말하는데, 그것은 신이 창조한 사물들처럼 그 저자에게마저 즉자인 책이다. 책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누구에게나 즉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열어도 잠들어 있는 것과 같이 "누구를 향하여 앉아서도 아니" 되고 "누구를 향하여 열려서도 아니" 되는, 거기에 거는 모든 인간적 예상이 부정되는, 절대적으로 완성된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시인이 바로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그 자신이다. 이미 서책으로 숙련된 그는 반쯤 그 책이 되어 있다. 그 자신의 모든 현실이, 그의 "純潔과 汚點이 모두" 그 절대적인 책의 "象徵"으로 될 수 있을 때, 행열지어 나오는 이와 "어제의 물"을 포함하여 그 자신에 속한 모든 것이 보편적인 진리로 종합될 때, 그 자신의 인격 전체가 순수이성의 투명한 능력으로 되었을 때, 그는 신만이 열 수 있는 책이 제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책은 거친 현실이면서 동시에 현실 속에 들어앉은 투명한 공간이다. 그는 열어도 잠들어 있는 이 순결한 책을 쓸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씀으로서 그 책이 될 것이다. "잠자는 冊은 이미 잊어버린 冊", ― 그는 그 책을 열 때 자신이 그 책을 썼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이다. 완성된 그는 이미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이 시를 『달나라의 장난』에 넣었다.
1) 이 시의 全文읕 다음과 같다. (『金洙暎 全集 1 - 시』, 민음사, p. 17).
흘러가는 물결처럼
支那人의 衣服
나는 또하나의 海峽을 찾았던 것이 어리석었다
機會와 油滴 그리고 능금
올바로 精神을 가다듬으면서
나는 數없이 길을 걸어왔다
그리하야 凝結한 물이 떨어진다
바위를 문다
瓦斯의 政治家여
너는 활자처럼 고웁다
내가 옛날 아메리카에서 돌아오던 길
뱃전에 머리 대고 울던 것은 女人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 또 活字를 본다
限없이 긴 활자의 連續을 보고
瓦斯의 政治家들을 응시한다
2) 김수영은 "옛날 아메리카에서 돌아오던 길"이라고 시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는 아메리카에 간 적이 없다. 이 "아메리카"는 미국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들레르에게서처럼, 또는 서정주에게서처럼, 현실의 "海峽"을 떠나고 싶어하는 젊음이 그 헛된 꿈을 걸어보는 저 <아>자 돌림의 대륙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메리카 타임誌" 역시 잡지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그런 미망의 이력서이다.
3) 사르트르 (정명환 역),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pp. 59-6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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