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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7/3(목) 02:49 (MSIE6.0) 218.155.236.142 1024x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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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작품상], 시상식장 '수상소감'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이향지 시인(2003.6.30.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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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현대시 작품상> 시상식장에서 발표한 수상소감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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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었는데, 하늘이 제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비가 그치면 걱정이 그치고 비가 내리면 걱정이 내리는 며칠이었습니다. 오늘, 지금, 이곳은 제 걱정의 종착역입니다.
시가 무엇인지 아직 완전히 모릅니다만, 시가 제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세워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땅의 시인들을 위해 이 상을 만드시고, 부족한 저에게 이 상을 주시는 현대시와 심사를 맡아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문학의 귀감이 되어주신 원로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문단의 선배님들, 후배님들, 동료 시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이 상을 받습니다만, 제 시가 다른 시인들의 시보다 월등해서 받는 상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단과 사회에 시로써 공헌한 바가 지대하여 받는 상이 아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짙게 부각되어 있는 늦깎이 주부 시인입니다. 저를 둘러싼 악조건들을 전혀 괘념치 않고, 동등한 조건에서 추천하고 심사하고 수상의 영예까지 안겨주신, 현대시의 용기와 진보적 결단에 존경과 찬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제가 이 상을 받습니다만, 저 혼자 받는 상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수상으로 저와 비슷한 조건의 시인들이 용기를 얻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배경이 미미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영예로운 논의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되어온 좋은 시인들을 두루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제가 이 상을 받습니다만, 저의 시가 얼마나 큰 유익을 끼쳤는지는 모릅니다. 저는 그저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시를 택했습니다. 시로써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아픔을 치유하고, 성숙에 이르는 단계를 느릿느릿 거쳐 왔습니다. 저의 삶이 그러하듯이 저의 시 또한 소외와 고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문턱까지는 간신히 도착하였습니다만, ‘나’ 밖의 세계를 부르고 ‘우리’를 껴안는 데는 여전히 많이 서투릅니다. 이처럼 좁은 세계를 바탕과 배경으로 거느리고 있는 저의 시가 이처럼 공적인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하여 기쁘면서도 송구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결단은 우리 시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지고 깊어졌으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 이전에 말이 있었고, 말 이전에 소리와 몸짓이 있었습니다. 저의 시는 이제 간신히 소리와 몸짓을 지나 말과 함께 걸어가는 단계에 도달하였습니다. 말과 함께하는 단계의 종점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말과 함께하며 지나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시 한 편 한 편은 종점이 아니라 정류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완성이란 종점에 도착해보지도 못한 채 도중하차로 끝날 지도 모릅니다만, 변함없는 사랑으로 가르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올해의 6월은 제 생애에서 가장 긴 달이었습니다. 이 상을 빨리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상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시를 향해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새로운 시를 향해 또박또박 다시 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날 이 자리를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6월 30일
이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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