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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시], 수순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던, 1991년 5월 27일자 <국제신문> '이 달의 시' 난에 수록되었던 강남주 시인의 시평입니다. 설합 아래 깊이 들어있다 이제야 그 복사본이 나타나서, 같은 내용 종류의 글들을 모아두는 의미에서 뒤늦게나마 여기에 올려두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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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이 달의 시’
이향지의 <手順>
바둑판 黑白으로 人間事 갈등 인식
감성배척… 현상과 사물의 진실 밝혀
강 남 주
시를 인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한 방법들을 요약해보면 하나는 표현주의적 시론이 되고 다른 하나는 인식론적 시론이 된다. 대략 이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써 시에의 접근이 가능해진다.
표현주의적 방법론은 시속의 화자가 자기의 주관에 따라서 사물을 표현하고 시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령 김소월이 「저 달이 설움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고 노래했을 때의 그 달은 시적 화자의 주관적 해석, 주관적 감정에 따른 것이다. 시적 의미는 주관적 감정에 의해서 획득되고 또 표현되는 것이라 하겠다. 인식론적 시론의 경우는 시적화자가 세계와 사물을 표현하되 주관적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작용에 의해서 사물과 현상을 새롭게 파악하는 방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론적 시론은 시적 인식을 통해서 인간이 느끼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려고 한다. 표현주의적 방법에서는 대상의 본질을 바꾸어 표현하고 있는 것을 여기서는 그 바꾼 것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체계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로서 존재의 의미화에 기여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인식론적 시론은 감정에 치우친 사물의 표현이 아니다. 또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상황이나 사물을 통해서 시의 독특한 본질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달의 시 가운데 인식의 수단으로서의 시로는 이향지의 <手順>(現代文學 1991년 5월호)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내 心中의 흰 돌 한 점 天元에 놓았다/그대 회심(懷心)의 흑 돌 젖혀 단수(單手)치며/달아나도 축(逐)이야 했다//天元의 흰 돌 한 점/최초의 희생양이 되었다/텅 빈 중심을 바둑판 위에 남겨놓고’(<수순>첫째, 둘째 연).
화자는 바둑판에서 검은 돌과 흰 돌을 본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거기서 黑과 白의 대결을 본다. 배꼽점에 해당되는 天元에 흰 돌이 빠졌을 때 축(逐)으로 몰고 가는 人間事를 화자는 바둑판 위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흰 돌이 희생양으로 죽었을 때 바둑판 위에는 텅 빈 중심이 생긴다. 텅 빈 중심이 우리에게 주는 것, 우리를 인식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투쟁과 희생과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공백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인간세계의 진실의 일면이다. 시인은 이같이 인식의 수단으로써 바둑판을 동원하고 있으며 인식의 수단으로써 시를 빚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존재의 진실한 일면에 대한 규명 작업이다. 존재에 대한 관심, 존재에 대한 인식이며, 사물의 진실을 밝히려는 이성적 작업인 것이다.
‘그대와 나 돌아가며 바둑을 둔다/더 넓은 네 집 내 집 다투며/서로 담을 쌓는다//그대와 나 돌아가며 바둑을 둔다/스크럼을 짜고 몰려드는 검은 세력에 흰 돌이 흰 피톨처럼 죽어나간다//그대와 돌아가며 바둑을 둔다/상대가 없어 심심해진 검은 돌들이/포로로 잡힌 흰 돌들을 모두 토해놓을 때까지//그대와 나 서로 포로가 되어 바둑을 둔다/하늘처럼 깊어진 天元에 풍덩 빠져서/검은 돌 흰 돌 모두 天元에 빠져서’(<手順> 3,4,5연과 끝연).
3연과 4연 5연 첫 행에서 우리는 「그대와 나 돌아가며 바둑을 둔다」는 되풀이 되는 담화를 듣게 된다. 그것은 서로 다투는 집과 담을 쌓는 인간관계와 연결된다. 그리고 스크럼을 짠 검은 세력과도 연결되며 동시에 죽음과도 연결된다. 인간의 대결의식과 비극적 상황이 바둑판 위에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끝연에서는 헤어나지 못하는 天元에 흰 돌 검은 돌이 모두 빠지는 비극적 상황도 제시되고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검증되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이 속에서 분명하게 인간의 진실 된 한 면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시는 개인 감정의 주관적 표현에 머물고 있지는 않다. 시는 인식의 수단이 되는 것이며, 현상과 사물의 진실을 밝혀주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시인, 부산수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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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27일자 『국제신문』(11704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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