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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작품상/추천작을 읽고], 뚜껑이 덮인 우물
<현대시 작품상> 추천작을 읽고
뚜껑이 덮인 우물
사랑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
금 동 철 (문학평론가)
삶을 만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는 '관계'라고 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이나 사물들과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이 관계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만나고, 그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 '관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삶에서 느끼는 행·불행이 결정된다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것이다. 이런 관계 중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것 중의 하나를 들라면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랑'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관계의 존재 여부나 상태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은 누구나 경험한 일일 것이다.
이향지 시인의 이번 시는 이러한 사랑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함께 얽혀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변절한 애인'을 생각하는 '나'와 그늘만 살짝 드리우고 찾지 않는 '왕'을 가슴에 담고 평생을 살아간 '왕비'라는 두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이 두 가지 관점의 대비를 통해 시인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현대적인 삶의 방식, 자유와 억압, 욕망과 윤리 등과 같이 다양한 항목들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것이다.
시인은 먼저 '왕비'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뚜껑이 덮인 우물'이라는 이미지로 제시한다. 고궁의 뒤뜰에서 마주친 우물 하나를 놓고 시인은, 그 우물 앞에서 자신을 찾지 않는 왕을 생각하면서 힘겹게 살았을 왕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 여인의 이미지에서는 가부장적인 세계관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전통적인 여성의 존재방식이 나타난다. 왕비이기에 다시 왕이 찾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랑을 만들 수 없는 여자. 그렇지만 "젖가슴 아래까지 차 오른 물"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의 모순된 삶의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가슴까지 차 오른 물이 이 여성의 성적인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면, 그것을 덮고 있는 '뚜껑'은 이러한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남성중심 적인 가부장적 권력과 윤리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몸을 기우려 엎질러 질 수도 없는 여자"의 모습은 자신을 내리누르는 이러한 모순된 힘 앞에 스스로의 욕망을 포기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체념적인 삶의 방식이다.
이 전통적인 여인에게 '오늘의 하늘'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 속에는 현대적인 삶의 방식 혹은 자유와 욕망에 따르는 삶의 방식이 나타난다. "여자 속의 왕을 부수어 바람에 날려 버리"고 '뚜껑'을 열고자하는 '나'는 그러므로 여인을 억누르고 있는 권위와 억압을 부수고자 하는 현재를 살고있는 시인의 간절한 욕망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등까지 덮이는 하이힐'과 '감색 바지'로 대표되는 이 이미지에는 전통보다는 개인의 삶과 욕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억압과 권위를 버리고 자유롭게 세상을 살고자하는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이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가지 관점이 서로 관계가 없이 객관적으로 구별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 속에 함께 공존하는 두 욕망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뚜껑이 덮인 우물'을 사이에 두고 시인과 여인이 모두 '변절한 애인' 혹은 다시 찾지 않는 왕이라는 하나의 상황 속에 묶이면서 이 두 삶의 방식이 내면 속에서 강한 갈등을 동반하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결국 시인의 내면 속에는 체념과 숙명으로 썩어 악취와 암흑으로 가득한 뚜껑 아래의 세계가 있는가하면, 그 뚜껑을 과감하게 열어 젖히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또한 함께 공존한다. 문제는 폐쇄와 개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두 관점 사이에는 뛰어넘기 힘든 엄연한 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관점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아픔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가가는 고통과 다가오는 고통'은 이 두 관점을 한 마음에 담고 있는 자아가 겪어야하는 고통의 무게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전통적인 여인의 체념인 삶의 방식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삶의 형태가 아니라, 그 뚜껑을 열고자하는 '나'의 힘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그 속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삶의 형태라는 점이다. "완강하게 뚜껑을 잡아당기며/악취로 대답하는 여자"의 모습은 자신을 완강하게 내리누르는 전통이라는 뚜껑에 순응하여 그 속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또 다른 형태의 욕망인 것이다. 이 욕망은 그 힘이 너무 강해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바꿔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욕망은 뚜껑을 열어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욕망과 끊임없이 부딪치며 자아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이 때 시인이 선택하는 것은 '그 여자'를 '죽어서 살기에 꼭 좋은 곳'에 그냥 놓아두고, '나'는 "수수꽃다리 향기를 좇아 돌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에 순응하여 체념적인 삶을 방식을 고집하는 그 욕망은 그대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현대의 삶의 방식이 제공하는 욕망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따라 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라는 두 삶의 방식을 조화시켜 새로운 삶의 자세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서로의 영역을 버려 두는 어중간한 공존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을 대하는 두 가지 존재 방식의 이와 같은 공존 상태는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일 수도 있지 않을까. 파상적인 근대화 과정 속에서 극심한 혼란을 경험하면서 만들어 온 우리들의 삶의 방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전통과 현대의 어정쩡한 공존 상태. 겱구 사랑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변절한 애인'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의 이와 같은 어정쩡한 공존의 모습에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내면에 짙은 어둠으로 드리워져 있는 전통과 현대라는 두 삶의 방식에 대한 혼란스러운 이중적 성향이 아프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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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철·문학평론가. 서울대 및 동 대학원 졸업. 1995년 현대시 평론 부문 당선. 저서로 '한국 현대시의 수사학', '구원의 시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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