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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별과 지붕이 없는 곳에서
'별과 지붕이 없는 곳에서'
황 현 산 (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이향지의 「별과 지붕이 없는 곳에서」(『현대문학』 1993년 1월호)는 바로 그런 곳, 어떤 중간지대에서 부른 노래다. 바다와 육지 사이 <해남군 땅끝>에서, 밤과 낮 사이 비 내리는 저녁에. 그리고, 모험은 끝나고 정주 할 자리는 없는 나이에, <말하지 그래> : 말하라고 재촉하는 자기와 그럴 수는 없다고 몸부림치는 자기 사이에서. 시인은 젊은 날의 꿈과 방황이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고 믿는데, 이 비 내리는 저녁은 그것을 위한 방황이 옳다고 말해줄 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안온한 잠자리에 몸을 눕혀야 하는데 그에게는 지붕이 없다. 아니 가능하기만 하다면, 아직은 그 지붕을 거부하고 싶다.
적당히 식고 적당히 무너진 저녁이 되어
적당히 썩고 적당히 버려진 갯벌 앞에 섰으니
낙지 게 바지락들과
울음 같은 악수라도 나누지 그래
사실은…, 사실은…, 하고 말하지 그래
지붕을 갖는다는 것은 이렇게 삶의 모든 구질구질함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며, <사실은, 사실은>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자신을 변명하는 일인 탓이다. 그런데 점으로만 찍힌 그 변명의 내용은 무엇일까? 나는 너희들을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고, 별이 찬란했던 날도 나는 너희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고, 너희들 속에 내 뼈를 묻으려 했다고. 아마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적당히 썩고 적당히 버려진 갯벌>이 이 변명을 받아들일까? <악수라도 나누지 그래> : 시인은 이 악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젊은 날 그 높고 찬란한 별은 눈만 쳐들면 거기 있었지만 저 망각 속에 묻힌 삶은 어떤 특별한 수단이 아니면 다시 찾기 어려우며 그와 화해하기는 더욱 어렵지 않을까? 시인이 이 어려움을 깨달을 때, 그 화해는 포기가 아니라 차라리 가장 빛나는 모험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이향지의 거침없는 운율은 사실 <아직 화려하다>.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 시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그를 오만하다고만 여기지는 않으리라.
<<현대시학>> 1993년 2월호, '이 달의 작품 나는 이렇게 읽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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