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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구간], 삼방협곡을 가로지르지 않고 우회하는 까닭은?  

제8구간 학미현∼백등령∼성산∼허목현∼마상산

삼방협곡을 가로지르지 않고 우회하는 까닭은?

                                                                                 이  향  지

 가을이 가기 전에 건너야 할 길고 깊은 골짜기가 바로 눈 아래 있다. 추가령열곡이나 추가령구조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삼방협곡이다. 더 오랜 기록들에서는 장곡(長谷) 또는 대곡(大谷)이라 불렀다. 상방(上防), 중방(中防), 하방(下防)이라 부르는 관방을 세 곳에 설치하여 통행인을 감찰하고 침략자를 막아내던 길목이었다. 상중하 삼방의 이름은 지금도 웃삼방, 중삼방 등의 이름으로 남아, 한민족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깊은 골짜기를 지키고 있다. 그 골짜기를 동서남에서 물샐틈없이 감싸고 있는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학미현 마루에서 내려다보면 노랗게 빨갛게 물든 잎새들에 가려져 있어서 우리의 눈에는 황홀한 단풍빛만 보인다. 이 아침 햇빛 속에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고즈넉이 물들이는 단풍빛 아래, 천만년 세월을 새로운 물방울들에 침식당해온 길고 깊은 골짜기가 있다. 천만년 메워지지 않는 골짜기를 따라 늘 새로운 물이 흐른다. 자동차와 기차가 오르내린다. 사람들의 삶이 이어진다. 우리가 서있는 학미현에서 서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내려가면 그 골짜기는 반나절이면 건널 수 있겠지만, 그 골짜기가 상징하고있는 커다란 틈은 곧장 건널 수가 없다.
 우리 앞의 백두대간은 그러한 골짜기를 만날 때 꾹 참고 우회하라고 가르친다. 가을이 가기 전에, 노랗게 빨갛게 물든 잎새들이 송두리째 낙엽이 되어 흩어지기 전에, 펑펑 쏟아지는 백설이 그 골짜기를 덮어버리기 전에, 한 달음에 건너뛰고 싶은 성급함을 누르고 우회해보라고―. 길고 깊은 골짜기의 한 부분을 건너뛰는 것 보다 그 골짜기의 전부를 끌어안고 걸어 가보라고, 사흘 나흘 한 쪽 손을 그 골짜기에 맡기고 달래면서 붙잡고 걸어보라고, 핏줄이 통하는 온기에는 아무리 길고 깊은 골짜기인들 긴 잠에서 깨어나듯 눈뜨지 않겠는가고―.  
 삼방협곡 건너편에서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있는 산은 마상산이다. 쏟아질 듯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가서, 그 골짜기를 가로질러 오르면 하루면 도착할 거리다. 하루면 도착할 산을 사흘 나흘 우회하는 백두대간 위에 우리는 섰다. 예정대로라면 나흘 뒤 석양 무렵 저 산정에서 이 쪽을 건너다볼 수 있을 것이다.
 땀에 젖은 목덜미에 쌀쌀한 바람을 두르고, 동쪽에서 내려다보던 골짜기를 서쪽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날의 태양이 서산머리에 핏빛 같은 노을을 토할 때, 발아래 산록을 물들인 단풍빛과 머리 위 구름을 물들인 노을빛이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때, 그 깨달음 헛헛하여 주루룩 눈물이 흐를 때, 통일이 왔으면 좋겠다. 긴 겨울을 예고하는 기러기떼 V자로 편대를 이루며 날고, 길고 어두운 밤이 먼 곳에 집을 둔 우리 앞에 적막한 문을 열어놓고 기다릴 때, 아아 바로 눈 아래 마을이 있어도 달려 내려가 밥과 잠을 기댈 수 없을 때, 우리의 눈과 얼굴빛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저절로 붉어 노을처럼 타고 있을 때, 그 씁쓸하고 절박함이 더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우리를 끌어들이려 할 때, 통일의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먼길을 걸어도 발바닥이 부르트지 않고, 마음만 부르트는 지도 위의 길. 이 걸음, 이 길, 이 안타까움―. 우리 나라 우리 땅 우리 산줄기를 타고 백두산까지 땀흘리며 걸어가고 싶은 사람들.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통일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움이 한이 되어 가슴 두드리는 사람들, 가고 싶은 고향, 보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오가고 만날 수 있게….
 새벽에 꾼 꿈이 아침에 생각나지 않는 곤한 잠의 끝에서 또 다시 꿈을 꾸었다. 그 꿈자락 가을 바람 속 낙엽처럼 날아가지 않게 손 붙잡고 걸어간다. 이번 산행에는 든든한 분들이 지원을 나왔다. 실전독도의 달인 김종선 선생과, 달빛 아래 걷고 별빛 아래 잠들며 백두산까지 같이 걸어가고 싶다는 산악인 이상년씨, 지난 번 산행에 왜 안 데려갔느냐고 한사코 따라 나선 최성순씨다. 덕분에 나는 배낭이 가볍다. 예정은 산에서 7박하면서 원산시와 법동군을 연결하는 천령까지 가는 것인데, 여의치 않으면 마상산 안부에서 산행을 끝내려고 한다.
 학미현은 언덕 바로 아래까지 사람 사는 집이 올라와 있어서, 식수를 얻고 길도 물어볼 수 있었다. 1100m 가까운 고지대에서 동포를 만나고 길 안내를 받았으니, 축복 받은 출발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하나 넘어서니 길은 다시 편편하다. 대간 능선까지 올라온 싸리나무 잎새를 바람이 흔들고 간다. 간밤에 된서리가 내렸던 모양으로 누렇게 변해버린 잎새들의 표면엔 반짝이는 물기가 있다.
 싸리잎에 반짝이는 물기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평지 같은 능선을 30분쯤 걸었다. 길은 다시 고도를 높이며 1120m봉으로 이어진다. 1120m봉은 좌우가 모두 가파른 산비탈이다. 전망은 좋지만 선두가 서두르니 앉아있을 겨를이 없다. 1시간쯤 더 걸어 1185m 봉에 섰다. 여기서도 안 쉬면 어디서 쉬느냐고 주저앉았더니, 눈치 빠르고 상냥한 최성순씨가 사과 하나를 깎았다. 안변 지방의 사과 맛은 일찍부터 소문이 났는데, 달콤하고 아삭한 맛이 헛소문이 아니다.
 울퉁불퉁한 산봉우리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어서 회양 쪽 마을은 보이지 않지만, 내 땀을 식혀주는 바람 속에는 분명 사람 사는 마을을 거쳐온 비릿한 온기가 섞여있다. 오전 8시. 논밭이든, 공장이건, 어른이 된 사람들은 삶터를 찾아 집을 나설 시간이다. 그 비릿한 온기를 흔들며 기적이 운다. 삼방역에서 기차가 떠나는 모양이다. 신고산역을 거쳐서 원산으로 가는 길인지, 세포역을 거쳐서 평강으로 가는 길인지. 가는 곳 알 수 없는 기적소리는 저 골짜기 둘레를 벗어날 때까지 무수히 들을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끊어진 경원선을 생각하고, 휴전선 부근에서 부서진 채 녹슬어가는 철교를 떠올리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침묵의 구호를 떠올리고, 그때마다 가슴이 조금씩 더 무거워 질 것이다.  
 립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긴 해도 짤막해서 좋다. 립암산은 삼각점이 있는 정상을 중심으로 높이가 비슷한 봉우리 두 개가 비슷한 간격을 두고 좌우에 솟아있어서 삼형제봉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멀리서보면 옛날 사람들이 쓰던 관이나 삿갓처럼 생겨서 립암산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립암산 정상에 서니 주변의 산과 마을이 모두 눈 아래 있다. 남쪽 능선의 바위 빛은 백의민족의 표상처럼 희고, 그 하얀 바위들을 둘러싼 소나무 빛은 가을볕 속에서도 청청하다. 활엽수들은 틈새마다 불타는 단풍을 펼쳐놓았다. 이 산하 이 자연  목석인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 번째 봉우리에서는 늦은 점심을 먹고 배등령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 중간쯤에는 적목령에서 올라온 소로가 있다. 비탈진 능선을 비스듬히 올라와서 대간에 허리를 걸치는 소로를 잘못 따라 내려가면 대치로 빠지게 된다. 적목령은 대간에서 서쪽으로 1km쯤 되는 길목에 있어서 삼방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옛 회양땅 난곡면이나 금덕면으로 가려면 꼭 거쳐야하는 길목이다. 그러나 추가령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적목령쪽 된 고개를 거치지 않고 계곡을 따라 올라와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배등령 길을 택했다. 배등령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실린 고지도에선 배등현(背登峴)이라 나와있는데, '령'이라 부르기엔 좁고 한적한 잘룩이에 있는 소로다.
 윙윙 소리내어 우는 송전선 아래를 두 차례나 지나서 1020m봉으로 올라서는데, 오늘 코스 중에서 가장 숨찬 구간이다. 1km올라서는데 나 때문에 1시간을 바쳤다. 참나무 잎새 사이로 언뜻 언뜻 드러나는 바위들은 이 산의 기세가 만만치 않음을 알게 한다. 립암산보다 고도는 낮지만 이 봉우리가 내겐 정상처럼 느껴진다. 정상을 향해 머리를 모으는 지능선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형상이 성게의 춤을 보는 것 같다. 서쪽으로 뻗어내리는 능선의 끝자락엔 추가령이 있는 고원평야가 펼쳐져 있다. 남대천 줄기도 기차선로도 골짜기 건너편 백두대간줄기도, 이 산정에서 보면 모든 것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1020m봉에서 백등령까지는 임도를 따라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임도는 식개산까지 이어지는데 산길을 걷는 것만은 못하다. 백등령 가까이 오니 사람 사는 집이 있다. 백등령은 세포리와 대치를 연결하는 고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만큼 넓은 산간도로가 가로지른다. 백등령 주변에서는 야영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가는데 까지 더 걸어두자고 식수만 보충하고 떠난다. 백등령에서 식개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대간 마루금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임도를 무시하고 능선을 고집하며 걷기로 했다. 가을이 좋은 것은 하늘이 높다는 것.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산 타기에 좋다는 것. 피부에 닿는 저녁 공기가 집을 그립게 한다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연료 삼아 어두워 질 때까지 걸었다. 한쪽 가슴을 베어 먹힌 달이 동산머리에 떴을 때.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텐트를 쳤다.
 둘쨋날 아침. 어제 우리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야영한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김종선 선생이 짚어주는데 놀라워라 우리는 식개산 정상을 1km쯤 앞둔 지점까지 걸어와 있다. 또 한차례 된 고개와 씨름해야하니 아침은 식개산 정상에서 끓여먹기로 한다. 서릿발이 주르르 흐르는 텐트를 걷어서 지고 앞장서는 이상년씨. 가뿐한 배낭만 지고 따라가기가 미안하다.
 작정한 것도 아닌데 '食開山'에 식사를 하게 되었다. 무장아찌와 창란젖과 구운 김을 꺼내놓고 둘러앉아 밥이 뜸들 때까지 둘러앉아 기다리는 데, 하하 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식개산에서 식사 개시를 기다리고 있네" 했더니, 일행들도 박장대소를 한다. 이리하여 식개산에서의 아침식사는 산해진미보다 더 맛이 있었다. 식개산 바로 아랫마을 이름이 식개여서 식개산이라 부르게 된 모양인데, 세포리에서 이 산까지 가파른 골짜기를 톺아 오르려면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두지 않고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릇 사람의 길이란 자기가 마시고 사는 물줄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식개산에서 식사하고 백산분기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도 내 눈길은 세포리 쪽보다는 북한강 지류들이 얽혀있는 동쪽 기슭으로 향한다. 식개산 남쪽에 우뚝한 바위산은 백암산이다. 백산분기점에서 가지를 치는 한북정맥이 백암산 줄기를 거쳐서 간다. 백암산 정상은 한북정맥 마루금에서 동쪽으로 1.2km쯤 떨어져 있다. 백암산 정상 동쪽에 '白岩'이라 부르는 암봉이 있어서 백암산이라 부르게 된 모양이지만, 이 주변의 산들은 모두 흰'白'자와 연관된 이름을 갖고 있는 게 특징이다.
 백산분기점은 1:50000 지형도상에 '1095 백산'으로 표고점이 찍혀있는 봉우리보다 30cm가량 더 높은데, 백산이란 이름은 오히려 지능선 상에 있다. 지도상의 표기를 무시하면 백산분기점이 오히려 백산의 정상인 셈이다. 백산은 대동여지도에는 '白氷山'으로, 조선총독부 지도에는 '白峰'으로 표시되어 있다.
 백두대간 백산분기점에서 가지를 쳐서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장명산까지 이어지는 분수령이 한강 수계와 임진강 수계를 가르는 한북정맥이다. 한북정맥도 백두대간처럼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허리가 잘려있다.
 1993년 3월 21일의 태양이 한강 수면을 금빛으로 물들이던 아침에,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포천, 화천을 지나갔다. 대성산 남쪽, 화천과 철원의 경계에 있는 수피령에서부터 한북정맥을 타고 장명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응달마다 잔설이 남아있어서 미끄럽기도 했지만, 허리 잘린 정맥 위에 내가 서있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허뚱거렸다. 태양이 높이 뜰수록 아지랑이 자욱해져서 뒤에 남은 산천도 앞에서 기다리는 산천도 나와 같은 마음인가 싶었다. 그날 그 아지랑이 너머에서 아른거리던 반쪽 산줄기. 그 궁금하던 나머지 산줄기 모두는 볼 수 없을지라도, 그 산줄기가 가지를 치는 지점이 어디이며 어떤 모습인가는 보고 알게 되었으니, 오랜 숙제를 푼 듯 기쁘다.
 백산분기점에서 흰봉까지는 어렵지 않게 내려왔지만, 고목동 고원지대를 바로 눈 아래 두었을 때, 우리는 모여서 회의를 했다. 이제부터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희미해지는 지역을 지나가게 되니, 잘 가건 잘못 가건 속도를 맞추며 같이 걸어야 한다. 고목동을 지나가는 대간 주변에는 습지가 세 군데나 있다. 남대천으로도 한탄강으로도 물길을 만들지 못한 물들이 우묵한 와지를 만나서 고여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양들을 많이 방목하고 있다. 가축을 풀어놓지 않은 땅엔 옥수수며 감자며 무며 배추들을 심어 놓았다. 그러지도 않은 땅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개 짖는 소리 아이들 울고 웃고 떠드는 소리, 이틀만에 사람 사는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밭과 집과 목장이 남겨놓은 길을 비뚤비뚤 돌아서 5번국도 분수령을 찾아가는 길뿐이다. 구검부리와 고목동, 방산동과 성산을 잇는 소로가 작은 십자로를 만들어 놓은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향한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우리가 넘어가는 이 고개가 바로 분수령이다.
 동국여지승람 평강현 편에 '분수령·현의 북쪽 49리에 있다. 백두산 산맥의 기세가 여기에 이르러 동서 둘로 나뉜다.'고 했지만, 그것은 추가령 부근을 함경도와 강원도의 경계로 삼았을 때, 즉 분수령의 위치를 잘못 파악한 때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고려 때 사람 김구(金坵)가 남긴 '두견새소리 속에 보이는 것은 청산뿐이로구나. 온종일 푸르고 빽빽한 산 속을 뚫고 간다. 한 시내를 몇 굽이나 건넜던고 잔잔한 물소리를 보내고 나면 또 졸졸 들려오네.'라는 시도, 분단 전 안변과 평강 경계의 산세를 노래 한 것이다.
 5번국도를 횡단하여 경원선 철도쪽으로 가려했지만,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우마차로를 따라서 성산마을 쪽으로 내려왔다. 철길 아래 굴다리를 끼어서 용강동을 찾아 올라간다. 여기서부터는 마을길만 따라 걸어도 청년이천선을 건너 성산으로 오를 수가 있다. 성산은 이름 그대로 예전에 '城'이 있던 산이다. 이민족에게 삶터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흙과 돌을 날라다 성을 쌓았을 선조들을 생각하면 애잔함을 금할 수 없다.
 시간도 지나가고 사람도 지나간다. 구름도 물도 흐른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 땅 이 산하를 고이 지켜 물려주는 일, 이 땅에 왔던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성산에서 내려서니 해는 서산으로 기울었다. 허목현 부근에 다시 텐트를 쳤다. 이틀동안의 강행군에 모두 녹초가 되어 꿈도 없이 잠을 잤다.
 셋째 날 아침. 날씨가 흐리다. 대동여지도의 설탄령이 허목현이다. 허목현에는 자동차도로가 나있지만 아직 비포장이다. 트럭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좌우에 민가가 있어서 아침의 활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의 길이 마을에 있지 않고 빗방울도 나뉘는 분수령에 있으니, 또다시 산줄기를 타고 마상산을 향해 출발한다.
 능선 아래쪽에는 세포리와 세포역이 있어서 기차소리 자동차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쇄대골과 병풍골을 연결하는 고개마루턱에서 소로를 건너 20분쯤 오르니 923.6m봉이다. 전망도 좋고 한적해서 아침 겸 점심을 끓여먹는다. 등뒤에는 용치천 지류들이 흐르고, 바로 아래는 동해로 흐르는 남대천이 있다. 남대천 건너편 산줄기는 바로 어제 이맘때쯤 우리가 지나온 백두대간이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한 걸음씩 걸어서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 뿌듯하다.
 불당산 오르는 길이 고도만 높을 뿐 평지 같아서 좋다. 백두대간 능선을 좌우에서 에워싸고 흐르는 두 강줄기. 능선 서쪽의 용치천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동쪽의 남대천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흐린 날인데도 두 강줄기 모두에 반짝임이 있다. 새로운 물방울들이 만드는 무늬들은 이 산록 불태우는 단풍빛보다 찬란하다. 우리도 저 물줄기처럼 푸들푸들 뛰는 심장의 힘으로 걷고 또 걸어가리.
 불당산 정상에 오르니 추가령 부근의 고원 풍경이 더 자세히 보인다. 저 길고 좁은 골짜기 안에 저렇게 넓은 고원이 있다는 것은 경이 그 자체이다. 추가령 고원을 끼고 있는 삼방. 여름에는 비가 많고 겨울에는 눈이 많아서,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아서, 여름에는 폭포와 계곡 구경을 오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다녔다는 어느 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때가 해방 전이었다고 하니, 일본인들이 우리 땅의 명소들을 더 잘 알고, 우리 땅의 풍경에  더 간절히 미치고, 영악하게 돈벌이 대상으로까지 삼았던 것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도 한 해 여름과 한 해 겨울을 일부러 저 협곡에 갇혀서 쉬어보고 싶다. 눈 아래 풍경이 그만큼 독특하고 눈길과 마음을 붙잡고 끌어당긴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이 좋다한들 저만큼 아늑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 삼방협곡을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아닌 휴양지로 개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중간에 다락밭이 몇 군데 있고 조림지가 몇 군데 있었을 뿐, 능선도 뚜렷하고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서 경이적인 속도를 내고 있는 중이다. 용치천 옆의 약수포와 남대천 옆의 약수포를 잇는 825m고개를 오후 3시에 통과했다. 939m봉에 서니 그제 아침 우리가 출발한 학미현이 한 마리 청학처럼 꼬리를 흔들고 있다. 때마침 북서쪽으로부터 빠른 바람이 밀려와서 낮은 구름들을 밀어낸다. 아침부터 흐리던 날씨가 다시 청명해졌다. 머리 위 하늘은 다시 푸르러지고 멀고 깊어졌다.
 우리는 걷고 또 걷기만 하면 되었다. 마상산 정상에서 다시 텐트를 치기로 하고 남은 길에 남은 땀방울을 모두 쏟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마상산 정상에 섰다. 선 것이 아니라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길게 드러누웠다. 불타는 노을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지만, 하늘의 푸른빛은 아직 또렷하고 새털구름엔 아직 태양의 잔광이 남아있다. 금성이 뜨고 북극성이 돌아오고 북두칠성이 걸렸다. 갈수록 또렷해지는 별빛을 덮고 누워 등 아래 대지에서 전해오는 온기를 느낀다. 학미현을 떠날 때 꿈꾸던 통일은 오지 않았지만, 길고 깊은 골짜기를 가로지르지 않고 우회함으로써, 백두대간이 결코 끊어진 산맥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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