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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하], 택리지 복거총론 중에서 금강산 부분  

택리지에서 만나는 금강산

"고려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는 말이 어찌 헛말이랴"

*택리지(擇里志)는 영조 때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1690-1756, 호는 淸潭)이 우리나라 각처를 돌면서 저술한 지리책이다. 숙종 40년(1714년)에 지었으며, 저술 당시에는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던 것인데 뒤에 이긍익이 '팔역복거지(八域卜居志)'라 한 데서 '팔역지(八域志)'란 이명이 생겼다.
택리지의 복거총론은 산수편에서 금강산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내가 본 바와 들은 바를 참고하면 금강산 일만 이천봉은 순전히 돌봉우리·돌구렁·돌내(川)·돌폭포이다. 봉우리·묏부리·구렁·샘·못·폭포가 모두 돌이 맺혀서 된 것이다. 이 산의 딴 이름은 개골인 바, 이것은 한 치의 흙도 없는 까닭이다. 이에 만 길 산꼭대기와 백 길 못까지 온통 하나의 돌이나, 이것은 천하에 둘도 없는 것이다. 산 한복판에 정양사가 있고, 절 안에 헐성루가 있다. 가장 요긴한 곳에 위치하여 그 위에 올라앉으면 온산의 참 모습과 참 정기를 볼 수 있다.  
마치 구슬 굴 속에 앉은 듯, 맑은 기운이 상쾌하여 사람의 장위(腸胃) 속 티끌 먼지를 어느 틈에 씻어 버렸는지 깨닫지 못한다. 정양사 서편에 장안사와 표훈사가 있다. 이 절에는 원나라 떄와 고려 떄의 옛 자취가 많고, 또 궁중에서 하사한 값진 보물이 많다. 정양사 북쪽을 따라서 들어가면 만폭동이 되는데, 못이 아홉 곳이나 있어 경치가 훌륭하다. 구렁 벽면에는 양사언이 쓴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여덟 개의 큰 글자가 있다.  글자의 획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살아 있는 용과 범 같으며 날개가 돋쳐서 너울너울 날아가는 것 같다. 안쪽에는 마하연과 보덕굴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그 지음새는 신의 조화와 귀(鬼)의 힘 같아 거의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칠 바 아니다.
제일 위에 있는 중향성은 만 길 봉우리 꼭대기에 위치하였다. 바닥이 모두 흰 돌이며 층계가 있어, 상과 탁자를 벌여 놓은 것 같다. 그 위에 하나의 선돌이 놓여 있다.  불상 같으면서 눈썹과 눈이 없는 바, 이것은 천작(天作)이다. 좌우 돌상 위에도 작은 석상들이 두 줄로 벌여 서 있는데, 또한 눈썹과 눈은 없다. 전해 오는 말에 담무갈 부처가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한다.
옆은 만 길 골짜기이고, 오직 서북쪽에 있는 가느다란 길을 따라 들어가게 되는데, 만 봉우리가 하얗고, 물과 돌, 못과 골이 굽이굽이 기이하여 다 기록할 수 없다. 이름난 암자와 작은 집이 그 위에 섞여 있어, 거의 칠금산(七金山)과 인조산(人鳥山)의 제석궁전 같으며 인간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제일 꼭대기는 비로봉이다. 거센 바람이 바로 치솟아서 거기에 오르면, 비록 여름이라 하여도 오히려 추워서 솜옷을 입어야 한다. 산 서북편에 영원동이 있어 따로 한 경계를 이루었다. 동편은 안물참(內水岾)인데 곧 영 등성이이며, 등성이를 넘으면 곧 유점사다. 절 동북쪽에는 구룡동 큰 폭포가 있다. 높은 봉우리에서 물줄기가 날아 내리므로 구멍이 패서 커다란 돌확으로 된 것이 아홉 층이며, 층마다 용 하나가 지킨다고 한다. 산 벼랑과 물길이 모두 빛나고 조촐한 흰 돌이다. 다만 위태롭고 험하여 발을 붙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삼엄하고 숙연하여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유점사에 고적이 가장 많은데 중의 말에는 불상 53 구가 천축에서 바다를 건너오므로, 지주 노춘(盧春)이 절을 세워 편케 모셨다 한다. 그러나 황당한 일이어서 말할 것이 못 된다. 하지만 지난 세대에 불탑과 불당을 숭봉하던 사람이 굉장하게 꾸몄던 것이다.
유점사 서쪽을 내산, 동쪽을 외산이라 한다. 옛부터 뱀과 범이 밤길을 거리낌없이 다니니, 이것은 천하에 기이한 일이다. 당연히 나라 안에 제일가는 명산이 될 것이다. 고려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는 말이 어찌 헛말이랴. 불씨의 화엄경은 주나라 소왕 후기에 창작된 것이다. 이 때는 서역 천축국이 중국과 통하지 않았던 때이다. 하물며 중국 너머에 있는 동이와 어떻게 통했겠는가. 그러나 동북쪽 바다 복판에 금강산이 있다는 말이 이미 경문에 기재되어 있으니, 이것은 부처의 눈이 멀리 내다보고 기록한 것인가.'
복거총론 산수편에는 또한 현재 해금강을 이루고 있는 삼일포를 비롯한 영동지역의 바닷가 풍경에 대해서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산수의 경치가 훌륭한 것은 강원도 영동을 첫째로 꼽는 것이 마땅하다. 고성의 삼일포는 맑고 묘하면서도 화려하고 그윽하며, 고요한 중에 명랑하다. 숙녀가 아름답게 단장한 것 같아서 사랑스럽고 공경할 만하다. 강릉의 경포대는 한나라 고조의 기상 같아 활발한 중에 웅장하고, 아늑한 중에 조용하여 그 형상을 말할 수 없다. 흡곡( 谷)의 시중대는 명랑한 중에 엄숙하고 까다롭지 않으면서 깊숙하다.  마치 유명한 정승이 관청에 좌정한 것 같아, 가까이 할 수는 있어도 업신여길 수는 없다.
이 세 곳의 호수가 호수와 산으로서는 첫째 가는 경치이다. 다음 간성의 화담(花潭)은 달이 맑은 샘에 빠진 것 같고, 영랑호는 구슬을 큰 못에 갈무리한 것 같으며, 양양의 청초호는 그림 경대를 열어 둔 것 같다. 이 세 호수의 기이하고 훌륭함은 위에 말한 세 호수의 다음이다.
우리 나라 팔도 중 모든 도에 다 호수가 있는 것은 아니나, 오직 영동에 있는 이 여섯 호수는 거의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런데 삼일포는 호수 복판에 사선정이 있다. 곧 신라때 영랑(永郞)·술랑(述郞)·남석랑(南石郞)·안상랑(安詳郞)이 놀던 곳이다. 네 사람은 벗이 되어 벼슬을 아니하고 산수 사이에 놀았다. 세상에서는 그들이 도를 깨쳐 신선이 되어서 갔다고 한다.
호수 남쪽 석벽에 있는 붉은 글씨는, 곧 네 선인이 이름을 쓴 것인데 붉은 흔적이 벽에 스며서 천 년이 넘었으나 바람·비에 닳지 않았으니, 또한 이상한 일이다. 읍 객관 동쪽에 해산정(海山亭)이 있다. 서쪽으로 돌아보면 금강산 천 겹이 보이고, 동쪽으로 바라보면 창해가 만 리다. 남쪽에는 한 줄기 긴 강이 넓고 웅장하여 크고 작은, 아늑하고 훤한 경치를 겸하였다.
남강 상류에는 발연사(鉢淵寺)가 있고, 그 곁에 감호(鑑湖)가 있다. 옛날에 봉래 양사언이 호숫가에다 정자를 짓고, 비래정(飛來亭)이라는 세 글자를 크게 써서 벽에 걸어 두었다. 하루는 걸어 둔 비(飛)자가 갑자기 바람에 휘말려서 하늘에 올라,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날아간 그 날 그 시를 알아보니, 곧 양봉래가 세상을 떠난 그 날 그 시였다.  어떤 사람은 "양봉래의 한평생 정력이 이 비(飛)자에 있었는데, 봉래의 정력이 흩어지니 비자도 함께 흩어졌다" 하는 바, 이것은 실로 이상한 일이다.(중략)
시중호에는 정자집은 없으나 모래 언덕이 겹겹으로 쌓여 있고, 호숫물이 이리저리 굽이쳐 휘돌아 괴어서 맑고 깨끗한 경치가 뛰어나게 훌륭하다. 옛날에 한명회가 감사로 있을 때 여기에 와서 잔치를 벌이고 놀았다. 그 때 정승으로 임명되었다는 기별이 마침 왔으므로 고을 사람이 시중호라 하였다.
통천의 총석정은 금강산 기슭이 바로 바다에 들어가서 섬같이 된 곳이다. 기슭 북쪽 바다 가운데에 돌기둥이 기슭을 따라 한 줄로 벌려 서서 뿌리는 바다에 들어갔고, 위는 산기슭 높이와 같다. 기슭과의 거리는 백 보가 못 되고, 기둥 높이는 백 길쯤이다. 무릇 돌봉우리는 위는 날카로우나 밑둥은 두꺼운 것인데, 위와 아래가 똑같으니, 이것은 기둥이고 봉우리는 아니다. 기둥 몸뚱이는 둥글고, 둥근 중에도 쪼고 깎은 흔적이 있다. 밑에서 위에까지 목공이 칼로 다듬은 것 같으며, 기둥 위에는 늙은 소나무가 점점이 이어져 있다.  기둥 밑, 바다 물결 가운데도 수없는 작은 돌기둥이 혹은 섰고, 혹은 넘어져서 파도와 더불어 씹히고 먹히고 하여 사람이 만든 것과 흡사하니, 조물주의 물건 만든 것이 지극히 기이하고 공교롭다 하겠다. 이것은 천하에 기이한 경치이고, 또 반드시 천하에 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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