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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황금모자 잡으려고 백설을 아프게 했네  


<한라산/윗세오름에서 본 백록담의 황혼>
*글/사진  이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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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에세이/한라산>

황금모자 잡으려고 백설을 아프게 했네



시야를 가리며 흩날리는 눈발은 백록의 눈물 같고, 차창을 두드리는 우박은 백록담이 내려보내는 옐로카드 같다. 어떻게 가나? 어렵사리 찾아온 산은 짙은 안개와 눈보라를 불러 쓰고 천만리 바다 밖으로 달아나 버린 것 같고, 체인도 못 채우는 기사가 모는 렌트카는 망망대해에 표류 중인 낡은 테우(뗏목) 같다.
애태우며, 애태우며, '99번 도로의 보트피풀'을 면한 것은, 제주에 도착한지 사흘째 되는 1월 8일, 오전 10시가 넘어서였다. 어리목에 있는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입산허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라산의 모든 등산로는 며칠 째 폐쇄 중이고, 한라산 산록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두 개의 횡단도로도 전면통제 중이다. 해안도로까지 눈이 쌓이기는 제주에서도 10년만 이라 한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코스는 윗세오름 길뿐이다. 탐라계곡으로 올라 성판악으로 내려오거나, 역코스를 택하려던 계획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만나는 한라산(1,950m;백록담 서벽 정점의 표고). 그 품안엔 아무도 밟지 않은 설국이 펼쳐져 있다. 아, 모두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싱싱해진다. 아, 나도 지느러미를 흔들며 산 안으로 뛰어든다.
환한 눈꽃에 둘러싸인 어승생악(1,176m;정상엔 2차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만든 포대가 남아있다.)과 관리소 직원들의 걱정 섞인 시선이 우리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종아리 아래 살랑이는 눈 속에 서서 나는 두 손을 모은다. 나무 한 그루 돌뿌리 하나까지 신성(神性)을 인정했다는 제주 인들의 심성(心性).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그들의 산을 다녀오리라.
나목들 사이로 구불거리며 돌아나가던 숲길이, 갑자기 눈을 밀어 내리며 계곡으로 쏟아진다. '한밝교 제1대피소'와 '제2대피소' 사이를 휘돌아나가는 광령천 상류이다. 대열이 잠시 흩어진다. 오목한 세상에 펼쳐진 설경(雪景) 때문이다. 볼록 볼록 눈을 쓰고 있는 바위들이 '오름 천국' 제주의 오름들을 연상시킨다. 카메라 셔트를 누르는 소리들이 상쾌한 바람을 몰고 온다. V자를 허물며 들어찬 하늘빛이 발그레하다. 바람이 얼마나 빠른지, 이제야말로 날씨가 좋아지려나 보다 생각하는 사이에 구름이 몰려오고, 또 구름이구나 생각하는 사이에 다시 하늘이 들어와 찬다.
본격적인 오름 길로 들자, 등산로 표식 말뚝과 로프들도 대부분 눈에 묻혀버렸다. 나뭇가지 끝에서 나풀거리는 빨간 리번을 따라 가는데,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언듯언듯 돋아나는 계단모서리들이, '여기에 길이 있었노라, 수많은 발길이 닳도록 오르내린 길이 있었노라' 전설처럼 깨우쳐 준다.    
김승진 대장이 이끄는 산악스키 부대가 앞을 서고, '특별취재반' 표식을 배낭에 부착한 김봉관 씨가 보병대장이 되어 서시환씨와 나를 이끌고 간다. 이오봉 위원은 큼지막한 배낭에 카메라 가방까지 메고 러셀을 한다. 몇 차례 러셀을 하던 서시환씨가 "까마귀 몸으로 울었다" 하며 털퍼덕 주저앉더니, 한 동안 앞 설 생각을 않는다. 내가 몇 차례 앞 서 보지만 역부족이다. 스키부대가 사뿐히 즈려 밟고 지나간 길을, 허우적거리며 따라 가자니 상대적 빈곤감에 사로잡힌다.  
쉼터를 잡아 모이자, 너도나도 보병 않고 스키부대 해야 겠단다. 더 크게 웃은 것은, "먼저 가네" 인사를 남기고 비탈을 오르려던 이도윤씨가 보병들 앞에서 스르륵 누워버린 일이다. 뒤집혀진 거북이처럼 머리를 흔들며 일어서서 목 쉰 까마귀처럼 웃는 그는 보병들로부터 '월남 스키부대'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는 그렇게 전신으로 보병들을 웃긴 뒤 멀어져 갔다.
한 동안 발 밑만 보며 눈을 헤치고 가다, 숨 돌리며 둘러보는 산의 언저리는 어느 지점에서 보나 둥드렷하다. '이 산을 한편 원산(圓山)이라고 부르는 것은 산의 모습이 우뚝하면서 둥글기 때문이다(동국여지승람)'. 물론, 부악(釜岳), 두무악(頭無岳), 두모악(豆毛岳) 등으로 불리는 정상 부분을 이르는 말이지만, 내 눈은 내가 선 곳마다에서, 비스듬한 원반(圓盤)의 중심에 갇힌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윗세오름 3.1km전 12시 5분이다. 어리목 떠난지 1시간 50분만이다. 1시간 50분에 겨우 1.6km 왔다. 수령이 500년이나 된다는 물참나무(송덕수·조선조 정조 18년, 제주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우박치듯 도토리를 떨구어 허기에 지친 계집종을 구했다는 나무)의 우람한 시선으로 보면 눈 한 번 깜박일 사이도 안 될 시간을, 재며, 쪼개며, 허우적거리는 우리. 아무튼 이 나무의 가지를 붙들고 핀 설화는 '꽃'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정말 대단하다.
백설에 짓눌린 주목이 가지를 처뜨리며 만든 터널 밖에서, 환한 설원이 손짓한다. 사제비동산이다. 눈을 쓰고 둘러선 구상나무들이, 허리를 잔뜩 졸라맨 야회복을 입고, 무도회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여자들 같다. 그러나, 눈길을 아래로 향하면, 초록 바탕에 노란 테를 두른 '제주조릿대'잎이 "나 여깄어요!" 하는 듯이 손끝만 눈 밖으로 내밀고 흔들지도 못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곁에 머물 수가 없다. 지나가야 한다.
안개를 헤치며 마중 오는 붉은 깃발들을 따라간다. 바람막이 없는 등성이에서 굽은 허리들이 애처롭다. 평지처럼 보이는 설원엔 수많은 눈 수렁들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제주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테왁(제주 인들이 눈 위를 걸을 때 신었다는 설피)'이라도 등산화 바닥에 붙였더면 싶다.  
키대로 뽑아든 스톡이 팔을 끌고 몇 차례 눈 속으로 잠긴다. 김봉관씨가 결심한 듯 눈 위를 기기 시작한다. 서시환씨와 나도 그를 따라 눈 위를 기어간다. 기며, 걸으며, 엎드리며, 내 무거움을 탓하며, 늪처럼 통과하는 만세동산 언저리. 표지판과 깃대와 표고를 알리는 표석과, 등산로 주변의 키 작은 관목 무더기들과 검은 화산암들까지, 백 겹 천 겹 이파리를 포갠 눈꽃 투성이가 되어, 뾰족 뾰족한 부리들을 바람 쪽으로 내밀고 있다. 깃털모자 쓴 인디언 추장을 옆에서 본 모습. 그 깃털 돋은 실루엣을 표백제에 담궜다 꺼내면, 바로 저런 모습 저런 빛깔이리라.
스키부대는 언제쯤 만세를 부르고 지나갔는지 만세동산엔 희미한 궤적만 남고 터엉 비었다. 윗세오름(위쪽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이란 뜻. 상봉,중봉,하봉으로 부름) 도착할 때까지 김승진 대장이 두 번씩이나 마중을 왔다. 윗세오름 대피소(1,700m)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두 시간이면 오를 길을 여섯 시간 가까이 걸린 것이다. 우리 도착 늦는다고, 관리소에선 몹시 걱정을 했나 보다. 그러나 백록담엔 절대로 갈 수 없단다. 어제는 내리는 눈 때문에 일정을 늦추어야 했고, 오늘은 쌓인 눈 때문에 백록담엘 못 간다. 아, 내 마음은 또 다시 파도 속을 표류하는 작은 배. 그러나….
오름 길 내내 겹겹의 베일을 쓰고, 빙하기의 보름달처럼 어른거리던 태양이, 서쪽 하늘을 미끄러지기 직전에, 잊은 것을 전하려는 듯 베일을 걷고 돌아볼 때. 나는 미친 듯이 카메라를 들고 뛰었다. 백록담 화구벽이 황금덩어리처럼 봉긋한 머리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이미 잿빛으로 어두워가던 산록(윗세오름 상봉과 장구목 1,860m봉이 느슨한 곡선을 흘리며 붙들고 있는 안부) 너머에, 그 주인의 표정을 짐작할 수 없는 황금덩어리가 솟아오른 것이다. 호롬보 산장 쪽에서 본 킬리만자로의 스노캡에 불타는 노을이 얹히면 저런 모습일까? 아니, 그 보다 훨씬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정교하면서도 생명감이 넘치는 황금캡. 조금만 늦으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황금모자를 향하여, 설원을 뛰는 내 두 발은 진공 속을 허우적거리는 듯 느리게 느껴지고, 내 두 귀는 지상(地上)의 주파수를 놓아버렸다.  
구릉 저 쪽의 황금모자를 잡으려고 뛰고 있을 동안, 내 욕망의 달팽이관을 흔들며 와와거리던 불협화음들이 말끔히 빠져나간 뒤, 청아한 바람과 함께 나를 어루만지는 선율. 무거운 육신을 벗어난 내 영혼은, 내가 죽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아홉 겹의 하늘 위까지 나를 데리고 갔다. 그 하늘들 어디에도 황금은 없었다.
내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을 때, 나는 눈 속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다. 쌓인 눈이 무거워, 있는 대로 가지를 처뜨린 구상나무들이 만물상(萬物像)을 이루고 있는 상봉 기슭에, 추락한 새처럼 헐떡이며 조그맣게 앉아 있었다. 탐라계곡 쪽에서 밀어 올리는 구름이 화구벽을 한 차례씩 휘감았다 풀어놓을 때마다, 황금빛은 구리 빛으로, 구리 빛은 납빛으로 칙칙해지더니, 어둠의 바다로 잠겨 갔다. 눈부신 황금빛이 납빛으로 변하는데 20분도 안 걸렸다. 옷깃을 파고 든 눈송이들을 털어 주며, 나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를 찾아 일어서며 돌아보는 자리. 백설들이 짓눌려서 굼부리를 이루고 있다. 아, 내가 황금모자 잡으려고 백설을 아프게 했네!
경이로운 풍경을 접한 여운과,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에 사로잡혀 서성거릴 때, 구름 한 점 없는 광활한 하늘을 끌고 별들이 돌아왔다. '이 산을 한라(漢拏)라고 한 것은 은하수를 끌어당길 만 하기 때문이다(동국여지승람)'. 그러나, 그 은하(銀河)는 내 손이 닿기에는 아득한 높이에 있다.  
오늘, 이 산엔 우리들뿐이다. 흐린 불빛 아래 펼쳐진 저녁의 향연은 산장지기 환웅(정환웅씨)을 위한 것이다. 사람 그립던 그도 아끼던 물과 미역 한 잎을 들고 나와 국을 끓였다. 우리는 그를 위로하는 노래들을 불렀다. 그가 "스톱!"을 외치면, 누구든 노래를 그치고 그의 노래를 들었다. 이 큰 산, 어느 '궤(굴)'에선가 웅녀가 나타나기를, 외로운 세상을 함께 건널 좋은 배필을 만나기를….

밤이 가고 아침이 와도, 백록담은 돌아앉아 있다. 드넓은 설원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까마귀 떼가 날고, 어제와는 다른 해가 상봉(1,743m) 머리에 솟구쳐도, 돌아앉아 있다. 중봉(1,714m) 머리에서 까치발을 뜨며 불러도, 오백나한 쪽을 보며 허리를 굽혀도, 아흔 아홉골 쪽을 보며 한숨을 쉬어도, 장구목 쪽을 보며 발을 동동 굴러도, 배낭 지고 내려오며 풀썩 주저앉아도, 돌아앉아 있다. 나는 노루가 아니어서, 누운 향나무·시로미·털진달래가 아니어서, 구름이나 눈이나 비가 아니어서, 돌아앉아 있는 백록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수행굴을 지나서 칠성대에 닿는다. 이 칠성대로부터 5리 정도 올라가서 올려다보면 석벽이 가파르게 서서 하늘을 지탱하고 있는데, 바로 상봉(上峰)이다. 빙 돌아서 밀고 당기고 하며, 구름에 닿을 듯한 가파른 돌길을 오르면,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둘러선 봉우리들이 성곽과 같은 가운데 깊고 넓으며, 한 길 깊이는 될 법한 못을 백록담이라 한다(대동지지·김치(金緻)의 漢拏山記).'
유감스럽게도 나는, 중국 땅을 빙빙 돌아 백두산 천지를 보고 온 2년 후에야 백록담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백록담이 천지처럼 푸른 물을 담고 있는 깊은 못인 줄 알았다. '정상은 아래로 꺼져 마치 솥과 같은데, 두 개의 못이 있다. 얕은 곳은 정강이가 잠길 정도, 깊은 곳은 무릎이 잠길 정도이며…(동국명산기)'를 읽고, 월간 산 `95년 6월호와, `96년 6월호 별책부록에 실린 항공 사진으로 확인할 때까지, 백록담 바닥에 두 개의 분화구 두 개의 못이 있는 줄도 몰랐다.
털진달래 꽃불이 분화구 기슭을 휘감을 적에 처음 본 백록담. 그땐 이미 남벽과 분화구 안은 통제 중이었다. 외길이나 다름없게 된 성판악코스엔, 스타킹 신은 아가씨, 슬리퍼 끄는 아저씨까지 섞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누운 향나무 위에 벌렁 누운 사람들, 분화구 안을 꾸역꾸역 기웃거리는 사람들. 얼마나 목이 타고 애가 탔으면, 핸드마이크 든 관리인이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신 분! 거 나와 주십시오! 거 욕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지금!"외치다말고, 마이크 끄고, "비나 쫙쫙 맞아봐라. 빨리들 안 내려가고 비나 쫙쫙 맞아봐라" 혼잣말하는 것을, 바위에 앉았다 들리기에 듣고, "거 아저씨! 저 많은 사람들이 정말 비 맞으면 어떡할려고 그래요?"했더니, "하도 속이 썩어서요"하며 웃던 날이었다.
그러더니 결국, `96년 3월 1일부터 `99년 2월말까지, 3년 동안 백록담을 닫는다고 해서, 지난 해 1월엔 두 번 찾아와서 한 번, 백설을 담은 백록담을 들여다보고 탐라계곡까지 밟아볼 수 있었다.  그러더니, 열 달 만에 '눈꽃 축제'가 열리게 되고, 1월 18일부터 3주간 백록담까지 연다 한다.
돌아앉은 백록담! 저 거대한 굼부리의 굳은 침묵을, 아쉽지만 이해한다.
어려운 취재를 허락하고 안전을 염려해 주신,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소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월간 산』 '9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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