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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곰배령 풀꽃 머리에 내리는 25時의 달빛  


*그림/서시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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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에세이>      

곰배령 풀꽃 머리에 내리는 25時의 달빛



                                                                                             이  향  지

 달빛 속 풀꽃들 만나러 가는 길이, 이글거리는 '태양의 길'이다. 고샅길 넓히느라 어수선한 곰배골에 발을 내린 것이, 오후 두 시경. 뒹굴던 자갈들도 낮잠에 빠져버린 황톳길섶, 초원처럼 넓어 보이는 배추밭에서, 중 늙은 내외가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고 있다. 곰배골 전체가 빈곳처럼 느껴지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호랭이 코빼기는 저어기. 가칠봉은 저어기. 곰배령은 저어기 저 골짝 안에 있어, 여기선 안보여" 모든 지점이 '저어기’로만 통하는 농부의 손가락 따라 반 바퀴를 돌고나서야, 제 자리로 돌아와, 오늘 우리들의 밭인 곰배령으로 향한다. 8월의 땡볕이 땀복처럼 감겨오는 자갈길을, 그림자 앞세우고 15분쯤 걸으니, 그늘 섞인 소로가 빨아들인다.
곰배골은 곰배팔이 골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불구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귀둔리의 곰배골에서, 강선리로 걸어서 넘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한, 곰배령까지는 2.5km 안팎. 출발 지점인 곰배골 표고는 550m 정도, 목적지인 곰배령 표고는 1,100m. 서둘면 두 시간도 남을 길이지만, 해 지기 전에만 도착하면 된다는 느긋함이 새삼스런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돌아갈 시간에 들볶이지 않고' 산을 올라본 적이 얼마나 되던가. 바쁠 것 없다는 데도, '습관적'으로 달려나가는 것은,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다.
모처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걸음들 곁으로, 폭포가 나타났다. 높이라야 7∼8m 정도. 폭포의 높이보다는 훨씬 깊어 보이는 검푸른 소(沼)를 향하여, 주저 없이 내리꽂히는 희디흰 물줄기는, 끈적거리며 따라온 무더위를 서늘하게 씻어준다.
조금 더 오르니, 갈짓자로 비틀거리는 와폭들이 순백의 포말을 튀기며 떨어져 내린다. 설악의 오련폭, 염주폭에 비길만한 규모는 물론 아니지만, 아담하고 작은 것이 때로, 사람을 더 깊이 사로잡을 적 있지 않던가. 조금 더 오르니, 고만고만한 폭포 둘이 구부러지는 계곡을 목청껏 흔들고 있다. 물방울들은 튀어 올랐다 떨어지면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모습을 본다. 가장 작은 한 방울이었을 때의 둥글고 투명한 자신의 모습을….
숲빛이 한결 짙어지고 물소리가 멀어진다.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지를 뻗은 오름 길 우측 나뭇가지에, 〔← 곰배령〕 표지가 묶여 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북쪽)으로 길 머리를 돌려 700∼800m 더 오르면, 곰배령 정상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멀어지는 물줄기를 거스르며 동쪽으로  직진하면, 호랑이 코빼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늘 길을 30분쯤 오르니, 하늘이 뚫린다. 곰배령 산채막이다.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나물 철에는 아예 산에서 살면서, 채취한 나물을 삶아서 말려서 돌아간다 한다. 드럼통 가마솥이며, 숯덩이 남은 아궁이며, 풀밭 위에 비닐을 깔아 만든 건조장 등등. 사람의 흔적들은 결국 사람에게로 향한다.
자줏빛 물봉선이 성긴 꽃을 달고, 문패처럼 선 곳에 그분들의 샘이 있다. 함석지붕까지 덮어두었다. 무성한 덩굴식물들이 그 지붕을 가리고 있다. 이 샘이야말로, 곰배령에서 내린천으로 향하는 물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다. 이 샘에서 곰배령까지는 10여분.
곰배령은 지형이 고무레처럼, 또는, 곰배팔이처럼 생겼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정산령(丁山嶺)이라고도 한다. 문맹이 대부분이던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것을 글자로 옮기느라, 곤뱃령,곤배골,곤뱃골,곰뱃골, 등으로 실려 있기도 하다. 진부령∼신선봉∼미시령∼설악산∼한계령∼망대암산을 거쳐온 백두대간이, 점봉산 정상에서 단목령(檀木嶺·박달령이라고도 함) 쪽(동쪽)으로 꺾어지지만, 작은 점봉산으로 남진하는 이 지능 쪽이, 오히려 주릉처럼 여겨졌었다.

드디어, 내 시야에서 나무들이 사라진다. 구릿댄지, 강활인지, 기름나물꽃인지, 다른 풀꽃들보다는 눈에 띄게 키가 큰 흰 꽃들이, 파라솔처럼 한들거리고 있다. 아, 드디어, 광활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넓은 풀밭으로, 두 눈으로는 한꺼번에 담을 수 없는 풀꽃들의 영토로 걸어 들어간다. 저마다, 제 줄기와 제 잎에 어울리는 모양과 빛깔의 꽃들을 달고, 빽빽하게 서 있는 풀꽃들의 천국으로 걸어 들어간다. 섣부른 접근을 거부하는, 가파른 설악의 갈래능 끝머리에, 곰배팔이 모양의 고갯마루가 숨겨져 있었다.
모습도 이름도 아슴한 작고 작은 꽃송이들이, 노랑, 보라, 하양, 주홍, 어떤 물감으로도 그대로 표현할 길 없는 빛깔의 꽃들이, 석양의 이방인들을 경계하듯 옆으로 눕는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누구의 언젯적 말이던가? 이 풀꽃들은 오래도록 그렇게 살고 있었다. 등산화만 스쳐도 옆으로 눕는 여린 것들이, 뿌리와 줄기를 서로 얽고 서로 기대며, 바람의 바다, 눈의 바다, 뙤약볕의 바다를 건너며, 그 모습과 그 빛깔을 이어오고 있었다. 가는 바람에도 줄기째 흔들리는 여린 존재들이 빽빽하게 뒤섞여서 창출하는 이상한 조화. 사람이 심고 가꾼 꽃들이라면, 이토록 강렬한 생명감은 못 느꼈을 것이다.

묻는다. 노숙을 해보았는가? 텐트 속 잠은 자 봤는가? 대답은 모두 아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몹시 설레고 있다. 곰배령 헬리포트에 우리들의 집이 섰다. 세 남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집을 세웠다. 곰배령 정상에서 풀이 우거지지 않은 곳은, 이 헬리포트 주변뿐이다. 군인들이 풀을 베며 관리를 하기 때문이란다. 비 몹시 내리던 어느 날, 나는 땅끝에서 돌아서며, 『별과 지붕이 없는 곳에서』란 시를 썼었다. 오늘은 별도 지붕도 있는 곳에 있게 되었다.
용숫골 토박이 약초꾼 이재규(62세)씨가 챗목쪽에서 왔다. 곰배령 초원이 인위적인 벌목에 의해(전쟁 또는 군사 목적으로) 형성된 것 아니냐니까, “아냐, 아냐, 바람이 하도 쌔서, 나무가 못 서 있어, 이깐 건 센바람 불면 금세 날라가버려”우리들의 텐트를 가리키며 웃는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곰배령을 올라서던 순간, 나는 뱃전 없는 배를 연상했다. 나는 바다로부터 왔으므로 바다로부터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이 곰배령이 풀꽃들의 방주로 보인다.  

 
 보십시오. 이 방주에는 좌측과 우측을 감싸는 현(舷)이 없습니다. 곰배골은 좌현의 닻, 강선골은 우현의 닻. 저 멧비둘기가 아무리 날아도, 이 방주의 돛은 아닙니다.

가뭇하게 들린 앞고물은 작은 점봉산이, 배암을 품었다는 뒷고물은 호랑이 코빼기가, 아무데도 못 가게 붙들고 있어서, 저 청봉 삼형제가 아무리 불러도 이 방주의 항구는 아닙니다.

 이 방주엔, 바람의 바다를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줄기 여린 풀꽃들이, 기대고 안아 주며, 얽혀 있습니다. 영아자, 냉초, 톱풀, 구릿대, 산꿩의 다리….

 하현달 하나가 깊숙이 앉았다 일어서면서, 동자꽃 수만 송이를 주홍빛으로 울립니다. 구름 속 태양이 눈부신 화살 문을 한꺼번에 열면서, 쥐손이꽃 수천만 송이를 연보랏빛으로 물들입니다.

 제비나비 나는 길로 물 뜨러 가는 길, 내 귀는 듣습니다. 노아의 새들이 나뭇잎을 스치며, 방주로 드는 소리를….

                       ―「곰배령」


“곰배령 나물도, 꽃도 이젠 틀렸어, 외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버스를 타고 와. 나물 철엔 몇 대씩 몰려오기도 해”그래 그런지 곰배령 정상에 지천이라는 곰취는 늙은 잎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그나저나, 이 할마이 추워서 어찌 잘라나”그는 곰배령 주인장처럼, 초면인 나를 걱정하고, 우리들 텐트가 바람에 날려 갈까봐 걱정하고, 손바닥보다 넓은 영지 두 장을 나에게 주고, 쥐손이꽃 쏟아질듯 피어있는 언덕길을 바람처럼 내려갔다. 그는 이 산자락의 어느 꽃들보다 강인한 야생화였고, 나는 이 야생화들의 왕국에는 걱정스러울 만큼 어울리지 않는 온실 식물인 것이다.

어둠과 바람이 몰려오면서 기온이 뚝뚝 떨어진다. 고도계의 바늘도 한 눈금 내려앉았다. 산 아래서는 피서를 걱정했지만, 산 위에서는 피한을 걱정하고 있다. 내 체온은 서너 눈금이 떨어지는 것 같다. 체면 불구, 침낭을 펼쳐 두르고, 저녁을 먹는다. 뜨거운 숭늉까지 마시고 나니, 회복이 된다. 구름을 잔뜩 몰아다 놓고는 바람도 잠잠해 졌다. 구름이 복사열을 가려주어선지, 기온이 조금 상승한다. 그러나, 머리 위의 별들은 기대하던 빛이 아니다. 머리 위에 비껴 뜬 카시오페아도, W로 보였다, V로 보였다 아예 안보였다 하며 구름 속을 들락거린다. 어둠 속의 설악, 청봉 삼형제도 중청 산장의 불빛 때문인지 뒤척이는 것 같다. 점봉산도 가칠봉도, 방향으로만 짐작한다. 조기자는 벌써부터, 카메라를 차려놓고 최상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달빛 속 풀꽃들의 말을 들으려고, 바람 속을 서성인다. 우리들의 기다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님은 반쪽 짜리 얼굴을 자정이 넘도록 내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드문 별 아래 앉아서, 몰려드는 졸음을 쫓으며 기다리는 달은, 38만4천4백km 저 쪽에 있는 그 달이 아니다. 우리들의 추억과,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달이다. 일정한 주기를 두고 이지러졌다 차올랐다 순환하는 달은 암흑 속에서 초생달을 탄생시킨다. 달의 모성, 달의 여성성은 지구상에 산재하는 신화의 유물들로 증명 되고있다. 달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달을 향하여 비는 마음은, 어머니가 그리운 마음이다. 태양의 빛이 사물들의 개성을 밝히고 드러내는 남성적인 빛이라면, 달의 빛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아우르는 여성적인 빛인 것이다.
몇 년 전, 덕유산 종주를 마치고 하산하던 길에 만난 한 시골학교의 처녀 선생님으로부터, 헷갈리지 않고 달 보는 법을 배웠다. 초승달은 오른손으로 받쳐들듯이, 그믐달은 왼손으로 쏟아버리듯이…. 그녀는 한창 차 오르고 있는 상현달이었다.
우리 동요사에 초석을 놓은, 윤극영의 「반달」은 상현달을 바라보며 지은 것이지만, 죽음과 몰락을 상징하는 하현달의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시집간 큰 누님의 사망소식을 듣고 지었기 때문이다. 일제하의 민초들의 심경을, 비참 그 자체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희망의 길 찾기 쪽으로 이끌어낸, 달의 선물이었다. 샛별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그 반달과 그 노래 지은이를 생각하며 누웠는데, 오른 쪽 머리맡이 훤해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그 사이, 깜박 잠이 들어 있었다. 텐트 자락을 들추니, 분명 달빛이다. 25時의 달빛이다. 25時의 요한 모리츠를 생각하게 하는 달빛이, 내 잠을 깨운 것이다.
어둠이 내리면서부터 산자락들이 겹쳐져, 누워있는 여자의 실루엣처럼 보이는 검은 산머리에, 눈시울 그렁거리는 달무리 두른 하현달이 떠 있다. 달은 반쪽 달이지만 달무리는 둥글다. 드넓은 풀꽃들의 땅은 거대한 카펫처럼, 나의 왼쪽에 펼쳐져 있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하현 달빛에도, 곰배령 초원은 밝아 있다. 그 빛은 눈부시게 찬란한 밝음이 아니라, 은은하게 포용하고 통일을 이끌어내는 밝음이다. 석양 속에서도 저마다의 모습과 빛깔을 굽히지 않던 여름 풀꽃들이, 거대한 카펫에 심어진 작은 무늬처럼, 희미한 달빛 아래 일체를 이루고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이라도 더, 선명한 달을 잡아보려고 동분서주하는 조기자의 모습이, 어떤 달, 어떤 달빛보다 밝고 아름답다. 저 밝음 저 아름다운 걸음들은 창조를 향해 열려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름 걷히면 깨울 테니, 눈 좀 부치라고, 등을 떠밀어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깨어보니, 아침이다. 달 있던 자리에 해가 떠 있다. 구름은 여전히 꾸물거리지만, 바람은 상쾌하다.  아침 지을 물이라도 내가 떠 와야지. 곰배령 산채막 쪽으로 물 뜨러 가는 길. 곰배령 풀꽃들이 동숙자를 알아보고, 제비나비가 앞을 선다. 새들이 나뭇잎을 스치며 날고 있다.

                                       (『월간 山』'9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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