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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탐승기], 4박 5일 간의 금강산  

<금강산탐승기>

금강산이 왜 명산인가? 나는 왜 감탄사를 아끼지 못했나?



                                               
                                                                                       글·사진 이  향  지  시인

나와 금강산, 그 불면의 나날들

 한 노인이 오 백 마리의 소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갔다. 그 노인은 며칠 뒤, 함박 웃음을 띄고 그 길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고고성 같은 한 마디를 터트렸다. "금강산 관광을 합의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한마디는 강철 해머보다 강하게 분단의 벽을 두드리고, 애써 잠재워 두었던 그리움의 뇌관을 터트렸다. 그때부터 금강산으로 향한 나의 불면은 더욱 깊어져 갔다.  
 필연 같은 우연이, 나를 전율하게 했다. 그 무렵 나는 금강산 주능선을 혼자 걷고 있었다. 나는 월간 <山>에 '북한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를 연재하고 있다. 산은 우리 민족의 신앙이며 삶터였다. 끊어진 백두대간! 실제로는 갈 수 없는 북쪽의 산을 1:50000 지형도 위에서 걸어 보는, 일종의 '가상산행'이다. 나는 그 길에서 금강산을 만났다. 그럴 때들은 '금강산 관광 합의'소식은 내겐 전율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 금강산!' 600여 매를 월간 산 8월호에 단신 연재했고, 그 원고는 '금강산은 부른다'는 단행본으로 엮어졌다. 내가 금강산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금강산이 내 손을 빌어서 자신을 쓰는 듯 했다.
 금강산! 통일이 되기 전에 그 산에 갈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내 생전에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산이, 남과 북, 반세기의 단절을 푸는 가장 희망적인 열쇠로 다가올 줄이야!


 석양의 배웅·별·갈매기들과의 동행

 1998년 11월 18일 오후 5시 45분. 금강산 가는 첫배가 드디어 시동을 건다. 금강산 찾아가는 내 몸도 배와 함께 흔들린다. 배가 항로로 접어들어 고요를 되찾을 때까지, 나는 작고 동그란 창을 통하여 멀어져 가는 동해항을 내다보고 있었다. 석양이 불타는 산머리! 부두에 서서 손을 흔드는 수많은 사람들. 저 뜨거운 배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우리는 안다. 내 개인적인 희망을 말하라면 백두대간을 타고 걸어서 가고 싶지만, 통일의 그날까지는 이렇게 흔들리면서라도 가보는 것이다. 이렇게 흔들리면서 가고 오다보면, 한반도의 허리를 조이고 있는 철조망들도 사라질 날이 오리라.  
 바다 위의 특급호텔로 불리는 현대 금강호의 선실은 화려하다기보다는 깔끔하다. 창밖에 어둠이 내리자 자리를 바꾸지 않는 큰 별 하나가 반짝이며 따른다. 저 별은 모든 별들의 좌표가 되어 주는 북극성이리라. 잠깐 잠이 들었다 다시 창 밖을 보았을 때, 그 별은 여전히 작고 동그란 창 밖을 지키고 있다. 뱃전을 훑고 가는 파도소리에 이끌려 눈길을 수면 쪽으로  향했을 때, 놀라워라, 하얀 물결 위엔 갈매기 몇 마리가 따르고 있다. 처음엔 파도 끝에서 솟구치는 물거품들인가 하였으나, 진짜 갈매기들이다. 불빛 때문인가. 유난히 날개 빛이 하얀 갈매기들. 내 창은 그 갈매기들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어서 그 작은 새들의 날갯짓 하나까지도 낱낱이 내려다보인다. 아아 저 갈매기들도 우리를 따라 금강산으로 가는구나! 이 밤엔 나만이 날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일출을 등지고 서서, 연꽃산을 보다

 물위의 잠, 끝자락을 다홍빛으로 물들이며, 둘째 날의 태양이 수평선을 열고 솟구치는 시간에, 우리들의 배는 장전항 내항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해가 떠오르는 반대쪽 갑판 위에서 바다 저쪽 마을과 산을 둘러보았다. 잎 지는 가을을 길게 거쳐온 탓일까? 바다 기슭의 산들엔 안타깝게도 나무가 없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바다 쪽으로 창을 내고 있지만, 너무 멀어 이야기를 주고 받을만한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떠오르는 태양이 천불산(654m) 머리를 붉게 물들일 때, 내 눈은 산으로 돌아와 한 송이 연꽃이 피는 것을 보았다. 아아 저래서 옛 사람들이 금강산을 한 송이 연꽃에 비유했구나! 알아볼 정도로 천불산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바위 무더기들이 거대한 연꽃 송이를 빚어 보이는 순간이다.  
 좀더 먼 곳에는 집선봉∼채하봉∼장군성∼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동해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고, 금강산 제3봉인 채하봉(1,588m)과 최고봉인 비로봉(1,638.2m) 머리엔 하얀 눈이 덮였다. 제2봉인 능허봉(1,601m)과 영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비로봉이 가리고 있어서 바다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저 비로봉 위에는 배바위가 있다는데, 이곳 사람들은 바다로 나갔다 돌아올 때면 그 배바위를 등대 삼아 돌아온다는데, 저 뾰족한 침봉의 끝자락에 그 바위가 있는가? 비로봉까지 오를 수 있는 날, 그 바위를 찾아보리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하는 산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산은 추위를 느끼게 했지만, 산 속으로 들어오니 오히려 훈훈하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철조망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부동자세로 세워놓은 군인들의 모습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지만, 그 묵묵부답의 풍경 속에서도 이따금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있어서 우리를 뭉클하게 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풍경을 등지면, 때묻지 않은 자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산 안은 정말 따뜻했다. 금강산의 자랑인 소나무 그늘로 들어서면서부터 길의 좌우를 따르던 철조망도 사라지고, 신계천 물소리가 도란거리며 깨어났다. 주차장에서 목란관으로 향하는 길은 정성을 다하여 손질되어 있었다. 숲 그늘 속으로 들어섰을 땐, 여늬 산이나 다를 바 없다 싶었지만, 앙지교를 지날 무렵부터 금강산의 특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경(一景)이 있으면 반드시 일대(一臺)가 있어서 숨 돌리며 바라 볼만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바라보게 하는 풍경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건너다보며 음미하게 하는 여백이 있다. 이름난 연못도, 폭포들도 무대와 관객과의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둠으로써 하나 하나의 풍경마다 명소로 떠올리게 한다.  

 
 은둔자의 고독, 구룡폭포를 찾아서

 금수다리 부근에 오니 비로봉이 보인다. 구룡폭포 앞에서 세존봉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가다가 비사문을 거쳐서 아홉소골로 들어서면 저 봉우리로 치오르는 오래된 길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아서라! 이번에 다 걷고 나면 이 다음엔 무슨 명목으로 또 오겠느냐.
 산삼과 녹용이 녹아서 흐른다는 삼록수는 사람이 많아서 지나치고, 만경다리를 지나서 조금 더 오르니 집채만한 바위가 앞을 가리는데, 옥류동의 비경으로 들어서는 금강문이다. 바위와 바위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바위 사이에 길이 있다. 스무 개 정도의 계단을 돌아오르면 출구로 나서게 되는데, 들어가는 쪽보다 나오는 쪽 입구가 좁아서, 돌아보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옥녀봉 기슭의 소나무들에 넋을 다 뺏기고, 허궁다리를 건널 때는 마음이 허뚱거린다. 눈발이 희끗거리다 멈춘 뒤론 산빛이 우중충해져서, 저녁 산을 걷고 있는 듯 마음 바쁘다. 세존봉 기슭에 한 마리 봉황이 드리운 듯 새하얀 비말을 날리던 비봉폭포도 며칠 전 추위에 가장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나 내 눈엔 저 빙폭이 더 아름답다.
 조금 더 가니 골짝 안에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듯한 구정봉이 나타난다. 저 봉우리 위에는 상팔담의 전망대인 구룡대가 있지만, 그 역시 다음을 기약한다. 마지막 허궁다리와 은사류를 지나쳐, 구룡폭포를 마주보고 서서 느끼는 아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얼마나 오고 싶어하던 산인가! 머물고 싶어도 머물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얼어붙은 물길을 건너가서 구룡연을 들여다보고 싶어도, 아아 나는 너무 늦게 왔구나. 시간은 오후 2시밖에 안됐지만, 산 안은 이미 저녁 같이 어둑해졌다. 서둘러 돌아서려니 발이 안 떨어진다. 저녁 같은 산그늘 속에서 "오마니! 또 오시라요!" 인사하던 산지기와 산처녀를 오래 못 잊으리라.


  해금강과 삼일포, 흐르는 물과 흐르지 않는 아픔 사이에서

  1998년 11월 20일. 해금강과 삼일포를 보러 가는 날이다. 길 양쪽을 따르는 철조망 너머로 새집을 짓는 주민들이나, 경지정리를 하고 있는 군인들이 보인다. 남강 하구의 충적평야가 얼마나 넓고 기름진 땅인가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다. 우리가 도착한 해금강은 해금강의 절경이 집결해있는 남강 하구에서 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바위들이 해금강의 암질인 변성암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우리에게 해금강의 일부분이라도 보여주기 위하여 겹겹으로 철조망을 둘러친 통제구역까지 개방했다. 나와 함께 첫배를 타고 간 사람들은 하도 푸르러 벽해라 부르는 바다를 보자, 갈 수 있는 데까지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햇빛이 너무 좋아 물결조차 눈부신데, 해금강 입석리가 고향인 이창식, 영식, 홍용찬, 익찬씨 형제들이 고향 쪽을 향해 어머니를 부르며 제사를 지낼 때는 모두 둘러서서 따라 울었다. 삼일포에는 바다와는 다른 고요와 풍광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반세기의 단절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음을 알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과 자연의 상처들로부터 고개를 돌리면 수수천년 변하지 않는 자태로 우뚝 서있는 금강산이 있었다. 삼일포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 언덕길에서 건너다 본 금강산의 모습은 얼마나 가슴을 설레게 하던가. 그래 나는 저 산을 보려고 여기에 왔다.


 금강산 최고의 볼거리, 만물상을 찾아서    

 1998년 11월 21일. 금강산 구경, 첫 번째 경치로 일컫는 만물상을 찾아간다. 온정리에서 온정령으로 오르는 길은 백 여섯 구비. 온정리 부근의 소나무에는 금강산의 역사와 공기가 그대로 스며있는 듯 하다. 이곳 소나무들은 우리나라 소나무 중에서도 훤칠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금강송(金剛松)들이다.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금강산의 세월이 남긴 걸작품들이다.
 하관음봉∼중관음봉∼상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모퉁이를 돌아들 때마다 차창 밖 하늘의 모습이 세모꼴도 되었다가 네모꼴도 되었다가 저고리 동정처럼 좁아지기도 한다. 창 밖의 풍경 속에서 소나무가 드물어지고, 잡목들이 나타났다. 비탈길에서 서행하던 버스들이 멈춘 곳. 만물상 입구인 만상정 사거리에서부터 만물상 구경이 시작되었다.
 오늘 나는 작정한 바가 있어서 천선대(天仙臺)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지만, 만상정∼절부암∼안심대∼망장천∼하늘문∼천선대로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길은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다. 모퉁이 하나 돌아설 때마다 달라지는 산의 모습. 그 말없는 매혹에 입이 딱딱 벌어져서 사진을 찍느라 더 늦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길로 들어섰지만, 최대한 양보하며, 재촉을 받으며 원하는 사람은 모두 천선대까지 올라갔다. 오르던 길을 되짚어 내려와서, 귀면암 앞에 섰을 때, 오늘의 태양도 금강산에 취한 내 마음도 절정을 이루었다.

 
 금강산이 왜 명산인가? 나는 왜 감탄사를 아끼지 못했나?

 옛 사람들은 왜 그토록 금강산에 그토록 환호했던가? 이번에 금강산을 찾으면서 나는 이 점이 꼭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금강산을 먼저 보고 도취한 사람이 아니라.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글과 그림과 사진을 통하여 이 산에 빠져들었고, 지도를 보고 지형을 파악하고 '금강산 가이드북'을 쓴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번 산행에는 꼭 그 까닭을 알고 싶었다.
 그 첫째는 금강산이 결코 가파르지 않으면서 속내가 깊고 넓은 산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모퉁이 하나 돌아설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다. 셋째로는 한 경치가 있으면 그 앞에는 꼭 그 경치를 바라보며 음미할만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넷째는 봉우리 하나마다 모습이 독특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계절을 다 답사하지는 못했지만, 계절마다  연출하는 풍취가 다른 점이다.
 옥류동과 구룡폭 앞에서도 느꼈지만, 만물상에서는 더 그것을 느끼게 되었다. 모퉁이 하나 돌아설 때마다 능선과 산비탈의 모습이 달라지는 이 노릇을, 이 독특한 경치를 돌처럼 굳은 심정인들 어찌 예찬하지 않을 수 있겠던가! 어찌 이 산에 머물며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금강산의 꽃과 단풍은 아름답기로 소문 났지만, 내 생각엔 그것 또한 한갖 허울에 불과하다. 금강산은 알몸인 바위 그 자체로도 자족한 풍경을 연출하는 산이다. 나와 금강산의 첫 만남이, 온갖 가식을 벗어 던진 이 계절에 이루어진 것도 우연 같은 필연으로 생각된다.       이제는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결코 지어서 금강산을 찬양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사외보 (1998.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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