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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장백산 유람객으로 와서 천지(天池)를 보니  


<백두산 / 노란 만병초 군락>
*사진 / 김유성 (사진작가) *복제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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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답사기>

장백산 유람객으로 와서 천지(天池)를 보니



                                                                  이  향  지


 '백산(白山)은 동북쪽 모든 산의 시조이다.'
 '백산에는 여덟 개의 이름이 있으니, 불함(不咸)·개마(蓋馬)·도태(徒太)·백산(白山)·태백 (太白)·장백(長白)·백두(白頭)·가이민상견(歌爾民商堅)이다. …우리의 무산부(茂山府) 서남쪽으로부터 200리를 가다가 북쪽을 향해 100여리를 기어올라가면 비로소 그 마루턱에 이르게 된다.'  ―정약용著,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백두산엘 간다. 늘 마음에 있었으나 갈 수 없었던 산.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의정부∼동두천∼철원을 거쳐, 반백 년 가까이 끊어진 철교를 다시 이으며, 산모퉁이 돌아설 때마다 통일의 기적(氣笛)을 길게 울리며, 평강∼원산∼함흥∼흥남∼길주∼혜산을 거쳐서 가는 길이 아니다. 북녘 땅 초목들의 기쁜 마중을 받으며, 허항령과 대연지봉을 밟아볼 수 있는 것도,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2,750m)에 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해를 건넜다, 서해를 건넜다, 일본 땅 중국 땅을 빙빙 돌아서 간다. 그런데도,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가슴이 뛴다.  
1991년 7월 23일 화요일 오전 11시 40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아시아나 항공기는 1시간 5분을 날아서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상해로 가는 중국동방항공 소속 MU 914편이 연결될 때까지 공항 대합실에서 어슬렁거리며 5시간 반을 기다린다. 대형 유리창 밖에서는 쉴 새없이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번개 섞인 소나기도 한 차례 유리창을 훑고 지나갔다. 유리창 바깥쪽에 매달렸던 빗방울들이 얼룩으로 말라붙은 석양 무렵에야, 상해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후쿠오카에서 상해까지는 1시간 50분이 걸렸다. 상해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인 7월 24일  아침엔 장춘행 전세기에 올랐다.
상해(上海)를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반을 날아서 장춘(長春)에 도착했고, 장춘 공항에서는 다시 푸로펠라기를 바꿔 타고 1시간 10분을 더 날아가서 연길(延吉)에 내렸다. 우리나라와 중국간의 직항노선이 개설되기 전이어서, 서울에서 연길까지 오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고, 비행기를 네 번씩이나 갈아타야 했던 것이다.

긴 기다림과 짧은 비행의 연속 끝에 밟아보는 만주벌판. 연길 공항 활주로에는 모자를 벗겨갈 정도로 거센 모랫바람이 분다. 비행기에서 공항청사까지 걸어오는 동안에 한 손으론 줄곧 모자를 누르고 있어야 할만큼 바람 발이 드세다. 연길 공항청사 꼭대기엔 '延吉 연길' 네 글자가 파란 하늘에 인주 빛으로 박혀있다. 바람막이 없는 만주벌판에서, 한자와 한글을 나란히 띄워놓고 살아온 조선족 동포들의 뿌리깊은 애환을 보는 것 같다.
연길에서는 버스를 타고 두만강을 보러갔다. 연길에서 동쪽으로 약60km를 달려, 도문(圖們)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강변에 높직한 망루가 서 있고, 난간 빛이 우중충한 다리가 하나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큰 소리로 이름을 외쳐 부르면 이내 대답이 들려올 것 같이 가까운 강 건너 저쪽이 우리 땅(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이라 하는데, 삼엄한 감시의 눈초리가 곳곳에서 번득인다. 우리 일행중 한 사람이 그쪽으로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댔다가 국경경비원에게 필름을 검열 받고 지워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강은 수량이 많지 않아서 바닥이 드러난 곳이 많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은…'은커녕 내 짧은 무릎을 적시지 않아도 건너갈 만큼 강심이 얕아 보인다. 귀국 후, 함북도민회의 도움으로 알게된 이유는 상류인 무산 쪽에 수문을 막아두었다가, 원목 수송을 위한 뗏목을 띄우거나 할 때만 수문을 열기 때문에 강이 그렇게 얕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 산! 통행증이 없어서 건너가 볼 순 없지만, 우리나라 시골의 앞산처럼 나지막한 저 산! 진초록 어깻죽지를 당당하게 펴고, 7월말의 뙤약볕 아래 주름 깊은 가슴을 열어놓은, 저 산머리의 흰 구름. 저 산그늘에서 살고있을 동포들의 마을을 강 건너에서나마 바라보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돌아설밖에…!
     
    두만강을 보러 갔다. 국경에 처해진 강변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다. 통행증이 없으면
    건널 수 없는 다리가 하나
    강물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우중충하지 않은 것은
    강 건너 산빛과 하늘빛, 그 하늘에 뜬 구름빛.
    감시초소들은 강 안까지 목을 뽑고 쌍안경을 번득였다.
    통행증이 없는 풀들은 길고 우중충한 다리 아래로
    끈질기게 강물을 건너오고 있었다.
    하얀 날개를 달고 굽이치는 물결 너머로
    종아리까지 물 속에 잠긴 풀들의 깊게 휜 허리와
    누릿한 머리카락이 우리 쪽으로 나부끼는 게 보였다.
    우리들의 머리카락도 안타깝게 그쪽으로 나부꼈지만,
    뙤약볕만 부서져서 다리 아래 강물을 반짝였다.

                ―「두만강을 보러 갔다」

연길로 되돌아와서 하룻밤을 자고, 백두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7월 25일. 창 밖을 스쳐 가는 산과 들, 지붕의 모습들이 내가 어릴 때 보던 우리 시골 풍경과 너무나 흡사하다. 용정을 지날 때는 더욱 그랬다. 동흥중학, 해란강 미용청, 호흥술집, 자전차수리부…. 한글간판이 보일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간판들을 바라보며 옛날 생각을 하곤 했다.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사람들, 노새가 끄는 작은 수레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남자, 참외 복숭아 옥수수 같은 농산물을 길가에 벌여놓고 파는 아낙들…. 40∼50여 년 전의 우리나라 어느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 듯 착각할 정도로 사는 모습들이 닮았다.
마을이 멀어지면서 길 왼편에 산이 하나 나타났는데, 산 이름은 비암산(琵岩山), 산꼭대기의 정자는 일송정이라고 한다. 버스 안의 누군가가 '일송정 푸른 솔은…'을 시작해서 모두 함께 '선구자'를 부르면서 지나갔다.
화룡현과 서성현이라는 마을을 지나자 비포장도로가 계속된다. 중국의 행정구역은 성(省)·자치주·직할시로 나뉘어있고, 자치주는 시→현→진으로 세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화룡현은 우리나라의 면 소재지 정도가 되는 마을인 셈이다. 비포장도로는 끝날 줄을 모르고, 계곡은 좁아지고 산은 갈수록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왼쪽의 계곡은 해란강 상류라고 하는데 수량이 풍부하고 물줄기가 괄괄하다. 용정을 가로지르는 해란강은 돌아가는 길에 보기로 했다. 용문교에 서서 내려다보았는데 비가 온 탓이었는지, 물빛은 흐렸지만 물 흐름이 빠르고 도도하다.
팔가자임업국(八家子林業局)이 있다는 곳을 지나갔다. 산은 청청(靑靑)하고, 산나리는 소소(笑笑) 웃고, 내 마음은 풍풍(風風)한데, 날개가 크고 검은 나비들이 버스 앞 유리에 부딪쳐선 파닥거리곤 한다. 어딘가 물으니 청산리계곡. 그 유명한 청산리전투가 벌어졌다는 곳이냐니까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탄 버스 앞 유리에 부딪쳐서 죽는 나비들은 그냥 나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돌아갈 조국도 머물러 살 조국도 마땅하지 않았을 때, 조국의 광복을 위해 전신을 던져 산화한 선조들의 혼령은 아닐까? 꼭 저 검은 나비들이 아니더라도, 나는 잠깐 창 밖의 경치로부터 눈을 감고, 청산리 골짜기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 선조들의 명복을 빌며 청산리 고개(1,100m)를 넘었다.
검문소가 있는 갈림길을 통과한 것이 오후 4시 55분. '天池 31.7km'라는 푯말을 보았고, 안도현(安圖縣)이란 곳을 지난 때는 오후 5시 20분이나 되었다. 나는 청산리 고개를 넘을 때부터 백두산엘 다 온 줄 알고 갑자기 산을 오르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등산화까지 신고 있었는데, 백두산엔 언제 올라간다는 것일까? 그때까지도 나는 백두산 등반객으로 온 게 아니라 장백산 유람객으로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첩첩한 산중 같은 마을을 지날 때도, 조선족 동포들은 알아보고 달려와서 조잡한 물건들을 팔아달라고 내밀었다. 한중 국교가 수립되기도 전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다녀갔으며, 또 그들이 떨구고 간 동포애의 종류가 어떤 것들이며, 또 이 여름 이 길을 지나는 우리가 수렴해야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애잔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백두산 아래 첫 동네라는 이도백하(二道白河) 마을(860m)을 지난 것은 그보다 20분 후였다. 오후 6시 5분 또 검문소를 통과했는데, 백두산 구역내 제1검문소다. 갈림길 왼쪽에 TV안테나 같은 것이 서 있는 건물들이 보였는데 초대소라고 한다. '二道白河→25km→白頭山'푯말을 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 6시 40분. 650리, 260km에 달하는 지루한 장정이 끝이 나고 장백산 초대소에 도착했다. 천지빈관이란 곳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고, 밤에는 장백산 유람특구 안에 있는 상점들을 돌며 남편에게 선물로 줄 큰 붓을 한 자루 샀다. 그러나 그 붓은 귀국해서 한 획을 긋기도 전에 이음새가 부러져 버렸으니, 그곳 동포들에 대한 내 애틋한 신뢰가 부러진 것에 다름 아니다.

1991년 7원 26일. 화요일. 드디어 백두산엘 오르게 되는 날, 새벽. 나는 거의 뜬눈으로 밝히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사방은 고요해서 무서울 정도지만, 초대소 주변의 가로등은 밝았다.  새벽비가 내려서 땅은 축축하고 하늘엔 별빛마저 드물었다. 우리보다 사흘 먼저 다녀간 팀이, 천지 아래까지 갔으나, 돌이 날리는 바람과 소나기를 만나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지만, 나중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비바람 걱정까지 미리 하고 싶지 않았다.
백두산 원시림이 하늘을 찌를 듯 도열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어제 우리가 버스를 타고 들어온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물론 어제의 그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백두산에서 내려갈 때까지 내 등산화 끈을 풀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비록 중국의 영토이지만,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가 웅거하던 터전이며, 내 발아래 흙은 백두산의 한 부분이며, 내가 그리도 오르고 싶어하던 백두산의 속살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나는 백두산 흙에게 우리 강산의 흙내음을 전하고, 내 등산화에게는 백두산의 흙냄새를 듬뿍 맡게 해 주는 신성한 의식을 거행 중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사람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걸었다. 비록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길이긴 하지만, 새벽 비를 머금은 흙은 부드럽고 근원을 알 수 없는 향수를 달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숲으로부터 번지는 공기는 상쾌하고 사방은 고요했다. 숙소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왔을 때, 등 뒤쪽에서 해가 떴다. 나보다 앞서가는 내 그림자가 조금씩 선명해지고, 해뜨는 쪽 산 그림자가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 찬 숲에 빗금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 빗금의 그림자는 빠르게 키를 낮추며 숲을 밝게 만들었다. 갖가지 새소리가 깨어나고 새벽 비를 머금었던 나뭇잎에서는 이슬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백두산의 자잘한 표정들까지 아끼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되돌아서서 발그레한 햇빛을 안고 걷기 시작했다. 백두산 숲에 번지는 햇살을 뼛속까지 전하려고 깊은숨을 들이켜도 보았다. 그리곤 어딘가에 앉고 싶었다. 어딘가에 앉아서 이 모든 것들을 조용히 느끼면서 바라보고 싶었다. 길 양편으로는 꽤 넓은 수로를 만들어 두었는데 물은 흐르지 않았다. 나는 그 마른 수로를 건너 뛰어 백두산 숲속으로 들어갔다. 새벽 비를 머금었던 나뭇잎에서 이슬들이 떨어졌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 그 이슬들을 받았다.

    뜬눈으로 밤을 밝힌 내 손바닥에/백두산 백화나무/밤사이 머금었던 물방울을 떨어뜨린다//바늘 같은 잎새에서 떨어지는 굵은 이슬방울/내 머리와 어깨에도 스며든다//골 깊은 손금마다 어제 본 두만강이 출렁거린다/오늘 보러 갈 천지 물이 출렁거린다//내 손바닥에 고이는 두만 강물/백화나무 뿌리에 부어준다/천지 못물도 부어준다//백두산 백화나무 푸른 잎새 끝에서/국적이 다른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 「백화나무 옆에서」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장백폭포로 출발한 것은 오전 7시 55분. 10여분 후에는 장백산 검문소를 통과했고, 20여분 후에는 화산재로 뒤덮인 삭막한 봉우리를 잠깐 보았다. 1984년 세계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원시림을 지나, 장백폭포 입구 주차장에 도착 것은 오전 8시 40분. 큰비가 씻어 내린 뒤처럼 골이 파이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뒹구는 길을 25분쯤 걸어 오르니 순백의 물기둥이 V자로 들어찬 하늘을 끌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 속으로 곤두 박힌다.  
그 구덩이 속의 바닥을 만나 다시 솟구친 물길은 검은 돌밭 사이로 골짜기를 파며 흐르는데, 그 물줄기는 부글부글 끓는 거품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삭막한 돌밭에 순백의 베폭을 널어놓은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곳은 폭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내 발 앞을 스쳐가는 물줄기는 새하얀 포말들의 집합 그 자체여서 신비감마저 감돈다. 나는 아직 이렇게 하얀 강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놀란 거품들의 강을 본 적이 없다. 손을 담그니 얼음물 같다.
천지폭포라고도 부르는 장백폭포는 천지에 걸쳐진 유일한 폭포다. 조중(朝中)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이나 두만강은 천지에서 직접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압록강은 장군봉 동남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두만강은 장군봉에서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대연지봉 기슭에서 시작하여 동해로 빠진다. 장백폭포의 물은 북으로 흘러서 우리가 지나온 이도백하로 흘러들고, 이도백하는 송화강으로, 송화강은 흑룡강(黑龍江)으로, 흑룡강은 아무르강이되어 연해주 사할린 앞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오르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며 날계란도 익힌다는 노천온천을 보았지만, 내 눈 속에서 부글거리는 새하얀 거품강의 잔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버스는 출발하고 5분쯤 달려가서 다시 내렸다. 그리고 4명씩 5명씩 나뉘어서 지프에 올랐다. 아무도 자세한 일정을 말을 해주지 않는다. 물어볼 여유도 없다. 저마다 백두산이란 존재의 거품에 취해서 타인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고집스레 운전석 옆자리에 앉았다. 중국인 운전사에게 니하오마! 인사를 한 것이 말의 전부다. 내 마음에도 오직 백두산이 있을 뿐이다. 드디어 시동이 걸리고 차는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길은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있다. 그것이 불만이다. 오를수록 풍경은 삭막해 지고, 낡은 지프는 그르렁거린다. '黑風口'로 오르는 계단 앞을 지날 땐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그러나 삭막한 산등성이를 덮은 초록빛에는 목이 메어온다. 저 초록빛은 아홉 달 겨울 끝에 돋아난 풀빛이다. 둥그스름한 산의 어깨 너머로 광활한 하늘이 펼쳐지고, 그 하늘빛이 너무나 푸르고 흰 구름이 가까워서 차에서 내려 걸어가고 싶지만 어림없는 꿈이다.  
보도불럭이 깔린 길은 구름 속까지 올라와서 그르렁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발 밑의 흙이 연탄재를 부스려뜨려 놓은 것 같다. 푸슬푸슬한 화산재를 밟고 비탈을 오르는데 걸음이 휘뚱거렸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고소증이라는 것을 알았다. 5분도 오르지 않았는데 더 오를 곳이 없다. 다 올라온 거란다. 여기가 백두산이라니, 나는 허망했다. 이 짧은 거리를 걸어 이 자욱한 구름을 만나려고 그 어려운 바다를 갈짓자로 건너왔나 싶어서 허망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마음을 돌리고, 어려운 산을 만나면 늘 그래왔듯이 떨리는 손끝을 모아 입술에 붙이고 작은 소리로 빌었다. 제발 이 구름 좀 거두어 주세요!
산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서쪽으로부터 잔잔한 바람이 밀려오면서 내 눈앞의 구름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둘 곳을 몰라 서성거리던 내 시선이 아득한 깊이에서 눈뜨는 푸른 바다를 발견했다. 그것은 분명 바다였다. 푸른 섬들에 둘러싸인 다도해 물빛을 보며 자란 내가 처음 본 천지는 분명 바다 같았다. 그러나 그 바다는 너무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분명 내가 오랫동안 갈망하던 물빛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선 곳이 너무 높아서 손을 담글 수도 목을 축일 수도 없다. 물 건너 비탈은 깊게 파여 붉은 흙이 드러난 곳도 있다. 오랜 세월 흙과 돌이 흘러내리며 만들어놓은 골짜기 위의 멧부리들은 안타깝게도 구름이 가리고 있다. 그러나 건너편 땅의 초록빛 질곡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벅차다. 태양이 구름을 걷고 천지 위에 눈부신 빛의 구덩이를 파기 시작할 때 내 감격은 절정에 이르렀다. 잘 왔다 잘 왔다는 말이 피처럼 전신을 돌았다.
모든 시간이 내 발아래서 멈추었다. 옆에 누가 있는 것도 돌아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셔트를 누르는 소리들이 계속 들려오고 그때야 나도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몇 장 찍는 사이에 다시 구름이 몰려 왔다. 안내인이 빨리 내려오라고 태극부채를 흔들며 내려갔지만 나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보고 뛰어내려갔다. 화산재가 흐르는 비탈은 미끄러웠지만 내 등산화는 그 미끄러운 길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천지로 내려가는 길은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지나가는 중국인에게 카메라를 주며 사진을 찍어줄 것을 부탁했고, 그날 그 이단의 흔적은 오래도록 나를 위로한다. 잠깐 사이에 더 짙은 구름이 몰려와서 천지는 완전히 구름 속으로 잠겨버렸다. 내게는 너무나 짧았던 시간이 기다린 사람들에게는 무척 길었던 모양이다. 백두산의 일기는 변덕이 심해서 언제 지프를 날리는 돌풍이 불지를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차들은 서둘러 내려가 버렸고 나 때문에 우리 차만 남았던 것이다.
핀잔 섞인 눈총을 받으며 다시 지프에 다시 올랐을 때, 백두산은 또 한번의 기적을 나에게 선사했다. 지프가 시동이 걸리려다 고장이 나 버린 것이다. 부속 하나가 빠져서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잘하면 걸어서 내려가는 행운을 만날지도 모른다. 나는 엉뚱한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무슨 조화 속인지 조금 전까지 짙은 구름에 휩싸였던 백두산 머리에 다시 밝은 빛이 돌아왔다. 중국인 기사가 동료들과 함께 지프를 고칠 동안 노란만병초가 무리 지어 피어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리로 갔다. 바람 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작고 여린 꽃송이들. 나는 어릴 때 양귀비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분명 작은 양귀비꽃이었다. 그 만병초꽃의 노랑은 창백한 노랑이었지만 결코 병든 꽃빛은 아니었고 가장 좋은 날에 입는 속옷처럼 숨겨진 화사함이 있었다. 사람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백두산 머리를 지키고 있던 작은 꽃들과의 만남. 나를 기다리던 일행들도 작은 꽃들의 아름다움에 빠져 굳어진 얼굴을 풀며 오히려 감사했다. 중국인 기사가 우리를 부를 때까지 우리는 노란만병초를 보고 또 보았다.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지만, 내리막길에서 볼트가 빠졌더라면 우리는 크게 다치거나 백두산에 뼈를 묻었을 것이라고 모두들 가슴을 쓸어 내렸다.


    어찌, 중국인의 지프를 타고 나뉘어 오르라십니까
    두메양귀비 노란만병초 떨리게 떨리게 피워놓고
    어찌, 바람에 뒤틀린 자작나무에도 셰셰 자이젠 하라십니까
    어찌, 우리 강산의 흙내음 밴 저의 등산화를 비틀거리십니까

    구름보다 더 높은 구름 속에서 구불탕 구불탕 내려보내시는
    콘크리트 포장도로, 낯두꺼운 보도불럭 깔려있는 길
    黑風口 페인트 글씨에 주먹을 쥐었다 놓습니다
    바람맞이고개 쇠사슬 난간 너머엔 구름 찢는 파란 하늘
    아홉 달 겨울 끝에 돋았다는 풀빛은 차라리 아립니다

    말을 알고부터 그리움이던 상징의 어깨에 내려섭니다
    산을 알고부터 그리움이던 길 끝 더듬으며 말을 버립니다
    잿빛 안개 속에서 재투성이 비탈만 내려보내시는 산이여,  
    얼굴을 보여주십시오, 이제는 더 오를 곳 없는
    언덕 끝까지 왔습니다

    (아, 지독한 내 원망 듣고)

    자욱한 구름 밀어 천지 물빛 소롯이 보여주십니다
    분화구 안 풀빛 질곡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천지 수면에 어리는 구름빛 하늘빛, 아끼던 신비를 기울여
    제운 와호 관면 장군 삼기 고준 자하
    저쪽에 남은 일곱 봉우리 윤곽이나마 둘러보게 하십니다

    바람의 바늘과 안개의 실로 터진 구름을 깁고
    물과 물의 푸새를 마주 이어 깊푸른 호수를 깁고
    잔주름 만들며 올려다보다, 그 다음 구름을 깁고
    두툼한 구름 손 다시 펼쳐,
    이름에 기대는 무리들을 일시에 쓸어 내리십니다

    머리 위에 거대한 물동이 이고,
    오천 년 역사 속으로 걸어오시는 어머니!
    내가 서 있는 천문봉은 화산재 투성이지만,
    불 뒤의 세계로부터 일어서는 길을 보았습니다.
    잠깐이나마 당신 속의 물과 불을 만났고
    물로 쓰는 불의 문자를 읽었습니다.

    깊푸른 물로 들끓는 불을 누르고 계신 어머니!
    별빛이 삭고 있는 긴 하늘을 다시 건너가렵니다
    당신 머리 위의 물동이 내 머리로 옮겨 이고
    이 재 된 시간 속에서 걸어 나가렵니다.
    1991년 7월 26일 목요일. 새벽비 후 맑음.
         ―<백두산 천문봉에서>

내가 올랐던 천문봉(天文峰·2,618m)은 우리 땅이 아닌 중국의 영토였고, 내가 오른 길은 산길도 아니었다. 등산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백두산엘 갔으나 백두산이 아닌 곳! 중국인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만든 장백산 유람지! 나는 그곳엘 갔었다. 백두산 등반 객이 아닌 장백산 유람객으로 그곳엘 갔었다. 30분도 안되는 만남이었다. 제운(梯雲), 와호(臥虎), 관면(冠冕), 병사(兵使), 삼기(三寄), 고준(孤準), 자하(紫霞). 그 예전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천지 저쪽의 봉우리들을 모두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삶에 지친 손을 천지 물에 담그고 천상의 물을 만진 듯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북에 고향이나 가족을 둔 실향민도 아니고, 국수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지만, 백두산 방문을 계기로 이 땅과 내 몸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날 백두산에서 반쪽이 아닌 온전한 천지를 보고 왔다. 천지를 둘로 나눈 조중국경선(朝中國境線)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엔 백두대간을 타고 장군봉에 오르고 싶다. 그리고 우리 쪽 천지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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