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약수 떠먹고 주전골로 들었다. 엽전 찍는 소리처럼 숨어서 피는 진달래. 절벽 틈에 붙어서 더 곱게 피는 진달래. 아른아른하고 아슬아슬한 벙어리 꽃나팔. 건너다보고 치어다보느라 목 타는 골짜기. 굽은 목이 펴지기도 전에 다시 굽는 골짜기….
열두 굽이 돌아내리는 폭포를 거슬렀다. 머릿골까지 쿵쿵 울리는 철계단의 끝. 흙도 노는, 돌도 노는, 까칠한 등성이로 붙었다. 이끼와 마른 잎이 행인 없는 길을 덮었는데, 까치독사가 발목을 휘감았다 황급히 달아난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간이 뚝 떨어진다. 저 징그러운 등어리에서 꿈틀거리는 무늬. 독니를 어디다 숨겨둔 지 몰라, 죽은 나무를 주워들고 툭툭 두드리며 간다
푸슬푸슬한 등성이 넘어서니, 표백한 명주필처럼 흐르는 폭포가 맞이한다. 고와라! 교태 어린 흰 물줄기여. 명주폭포라 부르면 더 좋을 것을, 무명폭포라 한다. 무명! 저 부드럽게 휘감기는 물줄기에 무명폭포라? 남기고 따돌리고 건너뛴 냇돌이 수만. 손바닥 웅크려 떠먹은 계곡물이 또 수수만.
미치광이풀이 무리 지어 꽃눈을 뜨는 반 그늘. 큰 나무들은 잎새 피워 하늘 만지고, 작은 나무는 꽃을 피워 땅을 덮었다. 앞서 가던 사람이 문득 걸음을 멈추며 여심폭포를 아느냐 한다. 지도에서만 보았소 하니 크게 웃는다. 안 보아도 다 안다오 하니 더 크게 웃는다. 짓궂은 사람. 그는 자칭 나무꾼이다. 나는 하루만 선녀.
망대암산 줄기가 청봉을 향해 뻗어오다, 뚝 끊어지는 곳에 등선대가 있다. 틈 깊은 곳 골라 발 올리고 손으로 당기며 올라간다. 팔도 짧아 다리도 짧아 허리는 뚱뚱해. 나무꾼 무릎과 어깨를 빌려 밟고 올랐다. 마지막 바위는 손도 발도 못 붙들어주게 생겼다. 이 바위는 나 혼자 올라볼라오. 카메라까지 벗어주고 납작 엎드렸다. 배를 붙이고 끙끙거리며 부채꼴로 돌았다. 무슨 폼이 그러냐고, 껄껄 웃건 말건, 마지막 바위만은 내 힘으로 올랐네.
올라보니, 한계령 만물상의 중심. 한계령 등지고 서북릉으로 오르다 뒤돌아보던, 그 수만 암봉 중심에 등선대가 있다. 그 암봉의 정점에, 지금 내 몸이 있다. 하나뿐인 옥좌에 정좌하면, 지척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점봉산 주봉을 향하게 된다. 남쪽으로 달리는 산맥의 기상 우렁차다.
= 詩 =
등선대(登仙臺)
이 향 지
좋구나, 등선대 오르니
내 몸이 왕이네
내 마음이 신선이네
오르던 길의 고통이 멀리 달아나네
산 싫어하는 당신 불러
바위로 만든 옥좌에 앉혀드리고 싶네
별 덮고 바짝 누워
함께 지새우고 싶네
험상궂고 가파르고 거무튀튀한
바위의
정점
한 사람이 앉으니 꽉 차는 의자
한 사람이 마주서니 꽉 차는 뜨락
당신 불러 신선시계 거꾸로 돌리고 싶네
[남설악 등선대], 까치 독사를 멀리 쫓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