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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白頭山], 神들은 벌거숭이산에서 산다  


<문학기행/백두산>

神들은 벌거숭이산에서 산다



                                                                  이 향 지

1. 어머니의 산

야생화 지천으로 피어 흔들리는 길을 따라 몇 시간 째 달리고 있었다. 날개가 크고 검은 나비들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다 버스 앞 유리창에 부딪쳐 떨어지거나 죽었다. 가미가제 같았다. 환히 보이면서 들어갈 수 없는 세계. 달리는 유리창이란 텅 빈 길에서 한가롭게 날고있던 야생의 나비들에겐 한없이 잔인한 존재였을 것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앞 유리창에 날개가 찢어지고 창자가 터진 나비의 시체들을 너절하게 붙인 채 백두산 그늘로 들어섰다. 나는 벌써부터 등산화로 갈아 신고 있었다. 일정표에 그 날의 도착지가 백두산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였고, 정보 부재였다. 우리가 가는 백두산이 등산화 없이도 오를 수 있는 산이라는 걸 몰랐다. 산꼭대기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는 관광지라는 걸 몰랐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백두산은 밀림을 뚫고 솟아있는 돌올한 존재였고, 마르고 닳도록 우러러야할 영산이었다. 나는 산아래 이르러 갑자기 등산을 하게 될 경우에 대비해서 미리 신발을 갈아 신고 방풍의를 걸쳤던 것이다. 나는 오르는 속도가 늦기 때문에 출발이라도 먼저 해야 많이 뒤 처지지 않고 산정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탄 버스는 장백산 보호구 내 천지빈관에 도착한 채 오래도록 움직일 줄 몰랐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안내인을 찾아서 물었다. "백두산엔 안 가나요?" "백두산 다 왔어요. 여기가 백두산이요." 그는 오히려 기막히다는 듯 웃으며 발을 한차례 들었다 내려놓았다. 그의 발 밑에 내 발 밑에 판판하게 다져진 백두산, 아니 장백산이 있었다. 밀림을 밀어내고 넓은 길을 닦고 삼각뿔 같은 호텔을 세우고 푹푹 꺼지는 침대를 마련해놓고 조잡한 토산품들을 잔뜩 늘어놓고, 셰셰! 자이젠!

    어찌, 중국인의 지프를 타고 나뉘어 오르라십니까
    두메양귀비 노란만병초 떨리게 떨리게 피워놓고
    어찌, 바람에 뒤틀린 자작나무에도 셰셰 자이젠 하라십니까
    어찌, 우리 강산의 흙내음 밴 저의 등산화를 비틀거리십니까

    구름보다 더 높은 구름 속에서 구불탕 구불탕 내려보내시는
    콘크리트 포장도로, 낯두꺼운 보도불럭 깔려있는 길
    黑風口 페인트 글씨에 주먹을 쥐었다 놓습니다
    바람맞이고개 쇠사슬 난간 너머엔 구름 찢는 파란 하늘
    아홉 달 겨울 끝에 돋았다는 풀빛은 차라리 아립니다

    말을 알고부터 그리움이던 상징의 어깨에 내려섭니다
    산을 알고부터 그리움이던 길 끝 더듬으며 말을 버립니다
    잿빛 안개 속에서 재투성이 비탈만 내려보내시는 산이여,  
    얼굴을 보여주십시오, 이제는 더 오를 곳 없는
    언덕 끝까지 왔습니다

    (아, 지독한 내 원망 듣고)

    자욱한 구름 밀어 천지 물빛 소롯이 보여주십니다
    분화구 안 풀빛 질곡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천지 수면에 어리는 구름빛 하늘빛, 아끼던 신비를 기울여
    제운 와호 관면 장군 삼기 고준 자하
    저쪽에 남은 일곱 봉우리 윤곽이나마 둘러보게 하십니다

    바람의 바늘과 안개의 실로 터진 구름을 깁고
    물과 물의 푸새를 마주 이어 깊푸른 호수를 깁고
    잔주름 만들며 올려다보다, 그 다음 구름을 깁고
    두툼한 구름 손 다시 펼쳐,
    이름에 기대는 무리들을 일시에 쓸어 내리십니다

    머리 위에 거대한 물동이 이고,
    오천 년 역사 속으로 걸어오시는 어머니!
    내가 서 있는 천문봉은 화산재 투성이지만,
    불 뒤의 세계로부터 일어서는 길을 보았습니다.
    잠깐이나마 당신 속의 물과 불을 만났고
    물로 쓰는 불의 문자를 읽었습니다.

    깊푸른 물로 들끓는 불을 누르고 계신 어머니!
    별빛이 삭고 있는 긴 하늘을 다시 건너가렵니다
    당신 머리 위의 물동이 내 머리로 옮겨 이고
    이 재 된 시간 속에서 걸어 나가렵니다.
    1991년 7월 26일 목요일. 새벽비 후 맑음.

    ―졸시, 「―백두산 天文峰에서」


2. 하늘 속의 물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젊은 산이다. 3백여 년 전에도 소규모의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천지(天池) 둘레의 화구륜은 여러 번의 폭발로 인하여 생긴 봉우리들이기 때문에 여러 겹의 용암이 덧입혀져서 바위 빛깔도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천지 둘레의 봉우리들은 해발 2,750m의 장군봉을 필두로 이름 붙은 봉우리만 열여섯이 넘지만, 대부분 중국령에 속한다. '장백산은 …천리에 가로 뻗쳐있고, 높이가 200리인데, 그 마루턱에 있는 못은 둘레가 80리다.(一統志)' 천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정호수라고 한다. 예전에는 용왕담(龍王潭) 혹은 대택(大澤)이라 불렀다. 빗물과 눈 녹은 물과 샘솟는 물이 합쳐서 푸른 못을 이루었다. '하늘 가운데 산이 있는데, 이름은 불함(不咸)이니 숙신씨 나라에 있었다.(山海經)'했다. 천지 물은 분명 하늘 속의 물이다. 용암이 이글거리던 불함지가 비자, 불 대신 깊은 물을 채우고 드넓은 하늘빛을 날마다 새롭게 따 담기에 언제나 그토록 푸를 것이다. 최남선은 '백두산근참기'에서 '海眼'이라 불렀다. 그 높은 산정의 물조차도 그 발끝은 바다에 닿아있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천지의 물이 넘치는 곳은 북쪽의 달문(달門)뿐이다. 백두산 남릉에서 보면 달문이 정면으로 보인다. '달'은 '山'의 옛말이니, '山門'이란 뜻이다. 달문을 빠져나간 천지 물은 새하얀 비말을 날리며 장백폭포로 떨어지지만, 압록강이나 두만강과는 상관없는 송화강의 원류다. 압록강은 장군봉 서남쪽 기슭에서 시작되고 두만강은 대연지봉 동북쪽 봉우리에서 시작되지만, 처음엔 건천이기 때문에 송화강 줄기만 힘차 보인다. 압록강은 서해로, 두만강은 동해로, 송화강은 아무르강이 되어 태평양으로 간다. 백두산 화구륜 밖의 산기슭은 화산재 투성이. 나무들은 해발 2,000m 이하에서만 살지만, 잘못 날아온 꽃씨가 새로운 땅을 만들어 가듯, 이따금 고산족 나무도 발견된다고 한다. 고산족 나무도, 잘 못 날아온 꽃씨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곳까지 나는 올라갔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하늘 속의 물, 만져보지 못했다. 그날 그 녹빛 단애 위에 서서 내려다보던 천지 물빛 생생히 기억하지만, 나는 그때 너무 높은 하늘 속에 있었다. 해발 제로에 가까운 바닷가에서 태어난 내가 가장 높은 땅으로 올라선 날도 그날이었고, 그처럼 깊은 물을 들여다 본 것도 처음이었다. 자욱하던 구름이 밀려가고 그 다음 구름이 밀려오기까지의 약 10분 정도, 그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물보다 아득히 높은 하늘 속에 있었기에, 기쁨보다는 비애를 느꼈다. 너무 깊어서 뛰어내려갈 수도 손을 담글 수도 없었다. 천지 수면과 나 사이에는 476m의 간격이 있었다. 우리가 서있던 천문봉은 해발 2,670m, 백두산 천지 수면은 2,194m이므로…. 내 발바닥에서 눈높이까지의 수치를 더한다해도, 500m도 안 되는 거리에 천상의 물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물을 만질 수 없었다. 나 혼자 물가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지만, 잠깐 사이에 잿빛 구름이 몰려와서 다시 안아가 버렸다.

3. 지도 위의 산

내게 문학은 유람인가, 논개가 열 반지 낀 손으로 자물쇠 채워 껴안고 함께 남강에 빠져죽었다는 왜장 같은 것인가, 속리산 법주사 원통보전 옆 희견보살 머리를 천년 넘게 짓누르고 있는 돌 자배기 같은 것인가, 초크를 쓰지 말고 기어오르라 명령받은 5.14급 암벽 같은 것인가. 밥상이 부실할 때마다 내 남편은 그런다. "시인은 시로써 밥을 먹어야 하네!"
나는 목석들과의 입맞춤을 위해 더 깊은 산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나는 발로써 산문을 쓰며 이 땅의 명산을 돌아다녔다. 그러므로 내 '散文'은 주로 '山文'이었고, 내가 발로 그린 이 땅의 지도에 다름 아니다. 명산마다 대찰을 껴안고 있었지만 '道'로써 밥 먹는 세상은 있어도 '詩'로써 밥 먹는 세상은 없었다.  
나는 지도를 그린다. 갈 수 없는 산. 지도에 지도를 이어 붙이며, 갈 수 없는 길 하나를 그리고 있다. 이 길의 종점이자 정점에는 백두산이 있다. 이 길의 이름은 백두대간이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이어지는 분수령을 백두대간이라 하는데, 이 길의 절반 이상이 군사분계선 이북에 있다. 나는 맨발로 이 길을 걸어 백두산으로 간다. 스무 달 전 아카시아 꽃 필 무렵에 진부령을 등졌고, 두 달 전 눈이 내릴 무렵에 허항령에 내려섰다. 백두산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이 길이 슬프다. 지도를 그리다 밤이 깊으면 지도 위에서 잔다. 잠들 때까지 걸어온 길과, 거쳐온 강과, 마을의 모습과, 개짓는 소리까지 글로 쓰지만, 나는 그것들을 상상 속에서 그리고 만났을 뿐이다.
지도는 기호로 말하는 세계다. 지도 위에 엎드리면 강과 산과 마을과 기차역과 밭과 광산과 고압선과 바위와 나무와 길과 고적들이 생생히 보이지만, 지도 위에서 일어서면 50년을 쓰러뜨리지 못한 철조망이 어른거릴 뿐이다. 나는 이산가족도 실향민도 아니다. 내가 그리는 지도 위의 길을 따라 북에 둔 고향과 가족을 만나러 가는 노인들이 있다. 나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등고선 한 눈금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뒤집어보면 백지에 불과한 얄팍한 세계 위에서 나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그리고 걷는 지도는 1:50,000으로 축소된 세계여서, 내 발자국 둘이면 60리를 덮을 수 있다. 평면 위에서 오글거리는 세계를 밟고 가는 외로운 거인. 진부령을 떠난 지 2년이 가까운 지금, 내 가슴은 물먹은 종이처럼 무겁다. 내가 그린 길은 지도 위에서만 통일을 이루고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 가슴의 물기가 내가 그리는 지도에까지 스미지 않도록 전전긍긍한다. 지도 위의 길조차 물을 먹고 무너져 내리면, 통일이 온들 누가 이 길을 다시 잇고 알아볼 것인가. 지난 달 드디어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산 장군봉까지 1,572km의 산줄기, 안개 속에 묻혀 있던 북쪽 구간 910km가 나로 인하여 그 신비를 벗었다. 그러나 내 두 발은 여전히 지도 위에 있다. "백두대간 허리를 조이고 있는 철조망이 걷힐 때까지 나는 이 산정에 있겠다"고 했지만, 지도 위에서 한 발자국도 걸어 나가지 못했다. '분단국가 분단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하여' 내가 걸었던 길, 지도 위에서만 이어지고 통일을 이루었다.

 4. 낯선 산, 새로운 길

다시 백두산으로 간다. 처음 다녀온 날로부터 8년 1개월 7일째 되는 날이다. 이번에는 북·중 국경선을 따라 천지 남릉으로 올라설 것이다. 이 길은 아직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미개척지대다. 같은 산을 찾더라도 코스를 바꿈으로써 낯설음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산행은, 마지막 세 구간을 앞두고 있는 '북한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월간山, 98.6.∼00.1.)'에 현장감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천지 남릉은 송화강과 압록강의 분수령으로, 중국쪽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가장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능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분수령 정점에 있는 4호경계비에서 5호경계비까지, 그 북쪽에 있는 청석봉까지, 천지 서남쪽 화구륜을 따라 능선종주를 할 계획이다. 이 구간은 우리가 최초로 도전한다. 같이 가는 분들은 베테랑 산악인들이다. 암릉이 막으면 모두가 꾼들이니 나만 두레박으로 퍼 올리면 된다. 4명의 남자와 내가, 선양공항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는 기사와 가이드까지 6명의 남자와 내가, 기대고 비비고 굶고 포개져도 불평을 안 하기로 약속을 하고 최소한의 경비만 모아서 출발했다. 그것도 백두산만 달랑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압록강 2천리와 두만강 상류까지 기웃거리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우리가 찾은 길에는 너무나 이야기가 많았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변경답사는 두만강 전구간 단독답사로 이어져서, 10월16일부터 5일간 중국행, 11월 23일부터 5일간 러시아행을 혼자 더하게 된다. 나의 '북·중·러 변경답사기(월간중앙, 99.11.∼00.1.)'는 이렇게 하여 쓰여졌다. 길은 예상보다 나빴고 만나는 풍경들은 가슴 아팠지만, 꽃피는 백두산과 백설에 덮인 백두산. 한해 여름이 겨울로 바뀔 때까지, 내가 겪은 아름다운 고통들 무슨 말로 다 그릴 수 있을까.  

변경(邊境)
1999년 8월 28일. 선양(瀋陽)공항에 도착, 랜드크루즈로 바꿔 타고 압록강변으로 왔다. 신의주와 마주보는 단둥(丹東)에서 하룻밤을 묵고, 압록강 하구 장산포구에서 바다를 등질 때부터 강은 내내 길의 오른쪽에 있다. 짧은 비행 뒤의 긴 주행이다. 벅차고 벅찬 역류다. 벌써 닷새 째 달리고 있다. 오리는 못 가도 십리는 갈 수 있는 것이 팔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바로 그 팔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손닿지 않는 곳을 어루만져 줄 다른 쪽 팔은 50년 넘게 저쪽에 있다. 이 뻔한 수수께끼를 50년 넘도록 못 풀고, 남의 나라로 건너와서 피 같은 기름을 태우고 있다.  
밥을 짓는가 옥수수를 삶는가. 강 건너 우리 땅, 퇴락한 지붕들 틈에서 흰 연기가 오를 때, 그럴 때만 모처럼 아랫목을 만난다. 옥수수밭만 지천으로 이어지는 길.
압록강은 북·중 국경선을 겸하고 있다. 하류의 물빛은 누렇게 변했지만 상류로 갈수록 푸르다. 위화도와 구련성, 수풍댐을 먼발치에서 보고 느꼈다. 수풍댐에 막혀 지안(集安)까지는 내륙으로 우회했다. 지안으로 가는 길목에 고구려의 첫 도읍지 환런(桓因)이 있었다. 지안은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산성하떼무덤 국내성 등을 보았다. 파묻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흘러가고 지배자들은 바뀌지만, 산천에 새겨진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중강진'이나 '두지리'처럼 강 건너 집들이 가까울수록 마음은 더 세찬 여울목을 겪었다. 아가미와 비늘이 터질 듯이 아팠고, 눈길과 등뼈가 갈 수 없는 쪽으로만 휘는 것을 느꼈다. 뱃속에 가득한 알을 낳으러 백두산으로 돌아가고 있는 회귀어! 늦여름 태양은 악착같고, 만주의 공기는 메마르다.
내가 닷새 째 잡았다 놓치고 있는 것. 그것은 아마 시간일 게다. 우리 옆의 강물처럼 거슬러 오를 수 없는 것. 동북아의 변경이자, 북·중 두 나라의 변경. 만주 벌판은 거대한 타임캡슐이다. 곳곳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만났다. 우리 민족이 천년 가까이 지배하던 땅. 청나라의 개국과 함께 청조의 발상지를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비어 있던 땅. 그 빈 땅을 향해, 기아가 닥칠 때마다 배고픔을 이기려고 강을 건너온 불법도강의 후예들은 휘도는 물목마다 남아 있었다. 우리가 중국말을 쓰지 않은 때는 그들을 만날 때뿐이었다.    
백두산이 가까워질수록 물결은 푸르다. 언덕이 높을수록 포말들은 희고 거세다. 지안에서 린장(臨江)까지는 내륙으로 우회했다. 운봉호에 막혀서였다. 린장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언덕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 중강진을 건너다보았고, 린장과 중강진을 연결하는 국경다리를 절반쯤 건너갔다 오기도 했다. 북한에서 건너온 목재트럭과, 북한으로 돌아가는 트럭들을 보았지만, 말문을 틀만한 게재가 아니었다. 우리는 어쩌다 이처럼 살벌한 사이가 되었을까.  
린장에서 창바이(長白)로 통하는 도로는 해발 1,000m 가까운 고원지대를 넘어서 이어진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들 너머로 흰 구름 흐르는 하늘이 있었고, 그 구름 아래 북한의 산들은 아름다웠다. 김정숙군으로 이름을 바꾼 신파 앞강에서는 뗏목을 고쳐 매는 사람들을 보았다. 창바이 강변에서는 혜산 쪽 사람들을 건너다보며 오래 서있었다. 강폭은 아이들도 건널 수 있을 만큼 좁아졌다. 강변으로 나와 빨래하는 사람들, 목욕하는 사람들, 고기를 잡거나 낚시하는 사람들, 총을 메고 오락가락 보초서는 군인. 너무나 가까운 곳에 같은 말과 같은 글을 쓰는 동포들이 있어도, 무어라 부르고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팔을 한번 흔들어 주고 돌아설밖에!  

경계(境界)
동북아 변경에서 앞발을 쳐들고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슬픈 한반도!
강변을 떠도는 공기 속에는 살벌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 다만 느낄 뿐이지만, 숨을 쉴 때마다 그 공기가 따라 들어와서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변경 사람들의 눈초리는 국적이 어디든 느슨한 기운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번뜩인다. 나는 전장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만, 아마 이런 기운이 조금 더 진하게 감도는 곳 아닐까. 경계를 넘지 마라. 내 쪽으로 오지 마라. 네 정체는 무어냐. 끝없는 경고. 끝없는 의심. 무수히 마주치는 경고판. 물목이 얕고 사람이 건널 만한 강변에는 어김없이 '경계로 되는 강에서 마약·밀수·낚시·도강·수영을 금한다'는 한글 경고판이 있었다. 수많은 동포들이 그리로 건너다닌 다는 이야기겠다. 죽음을 불사한 도강이겠다. 조선조 철종 때부터 가렴주구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변경인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서간도 북간도 연해주 등지로 흘러들었다. 일제 때는 더했다. 얕은 강 저쪽 눈뜨면 빤히 보이는 건너편 땅이 건너가서는 안 되는 남의 나라라고, 배고프고 무지한 백성들을 무슨 말로 붙잡을 수 있었을까. 무능하고 멀리 있는 임금의 법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빈 땅이 더 은혜롭게 보였을 것이다. 간도로 흘러든 사람들은 중국국적을 취득하고 연변조선족 자치주를 이끌어냈지만, 두만강 하류 쪽에서 연해주로 건너간 카레이스키들은 1937년 호열자를 예방한다는 핑계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태워져 강제 추방되었다. 그들은 지금도 중앙아시아 일대를 국적 없이 떠돌고 있다.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떠돌게 한 무능한 왕들과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워 당쟁을 일삼던 양반들은 죽었다. 가렴주구를 일삼던 식민 통치도 벗어났다.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으로 해방을 맞고 새로운 국가가 건설되었지만, 국토와 민족은 두 동강이 나서 이처럼 마주보면서도 반갑게 손을 잡거나 말을 걸 수도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시간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지만, 강물에 떠밀려가던 모래들은 조그만 언덕만 만나도 모여서 새로운 땅을 만든다. 큰비가 내리면 일부가 떠내려가지만, 더 많은 모래들이 밀려와서 오히려 두께를 더한다. 사람이 살만한 평지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후예가 남아있다. 백두산 그늘로 들어선 사람들은 이러한 모래알갱이들의 사연을 모른 채 지나칠 수 없으리. 그러나, 이 강변 이 변경을 떠도는 원혼들은 어느 쪽 조국으로부터 위로를 받을까.
창바이 탑산에 올라 발해 유적 중 가장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영광탑을 보고, 압록강 상류의 물줄기를 더듬어 22도구까지 올라갔다 되돌아 내려왔다. 보천보와 삼지연쪽으로 가는 철로와 도로를 건너다 볼 수 있었다. 분단이 되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 길을 따라 허항령을 넘어 삼지연, 신무성, 무두봉, 대연지봉 거쳐 장군봉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가슴은 갈수록 무겁고, 갈수록 벙어리가 되어 가는데, 무심한 하늘만 닷새 내내 저 혼자 푸르다.
횡산보호참 마루방 창가에 누워 작은 창 저쪽에서 반짝이는 별을 본다. 닷새동안 지나온 길이 긴 강물을 이끌고 곁에 눕는다. 그 아픈 물줄기 멀찍이 밀어내고 내일은 산을 오를 것이다.

神들은 벌거숭이산에서 산다

밀림 속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어둠을 뚫고 달려왔다. 새벽 3시 20분에 '횡산보호참'을 떠났고, 한 시간쯤 달리자, 압록강 서쪽 지류가 길옆으로 다가오다 멀어져갔다. 차는 쉬지 않고 민둥산 비탈을 힘겹게 치올랐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얼마쯤 더 오르자 길 오른쪽에 '2(1)호경계비'가 있다. 높이 1m 정도 되는 화강암에 한쪽 면에는 '中國2(1)' 반대쪽 면에는 '조선2(1)'이라 새겨놓았다. 괄호 안의 숫자는 물줄기 저쪽에 똑 같은 번호의 표석이, 괄호 안의 숫자만 다른 표석이, 하나 더 있다는 표식이라 한다.
3호 경계비가 서있는 산봉우리를 끼고 조금 더 달리자, 자동차가 멈춰 섰다. 그 사이 산은 조금 더 밝아져서 가까운 곳의 물체를 알아볼 만큼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배낭만 들고 흙 위로 내려섰다. 4호경계비가 있는 곳까지는 40∼50m 정도 되는데 거기까지 서둘러 걸어야 한다. 우리가 이처럼 서둘러야하는 이유는, 자동차가 멈춰선 공터가 북한 영역이기 때문이란다. 중국 쪽에서 올라온 차가 북한 쪽 공터에서 돌려서 내려가게 되어있다? 그 흔하던 '월경금지' 경고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군사분계선상의 철조망과 살벌한 경비를 떠올려보면, 아주 뜻밖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높은 곳에 올라오면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구분도 경계도 아득히 사라지는가. 두 나라 사이의 우정이 돈독한 때문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한쪽 마음이 달라져서, 그 돈독한 우정의 뒤통수를 일격에 내리치면 어쩌지?
그러나 모든 경계가 사라져버린 이런 풍경이야말로 인간들이 진실로 꿈꾸는 세계가 아닌가. 신들은 아마 이런 곳에서 살지 않을까. 춥지만, 추운 만큼 인간들이 멀리하는 곳. 지붕이 없지만, 지붕이 없는 만큼 인간들이 오를 생각을 않는 곳. 수만 년 비바람도 날려보내지 못한 화산재들의 땅. 공기마저 희박하여, 그 흔한 나무 한 그루 올라올 수 없는 벌거숭이산에서 죽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리라.
그러나 그런 한가한 생각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다. 우리는 분단국의 남쪽에서 지그재그로 국경선을 넘나들며 올라온 사람들. 본의 아니게 국경선을 넘어 공터에 내린 사람들. 단 몇 뼘의 월경일지라도 머뭇거리고 있을 명분이 없다. 4호경계비를 지나 관면봉 쪽으로 서둘러 걷는다. 서둘러 걸으면서 한없이 슬프다. 처지는 어깨 너머로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재와 생명
관면봉 안부에서 올려다보는 장군봉은 거대한 지붕처럼 보인다. 떠오르는 태양을 후광처럼 두르고 있어서 그런지 가슴 쪽이 어둡다. 그래서 더욱더 우람하고 신비롭게 보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지만, 우리는 저 산정에 오를 수가 없다. 4호경계비에서 5호경계비 까지는 화구륜 능선 마루금을 경계로 분화구 안쪽은 북한영역, 분화구 바깥쪽은 중국령이다. 우리는 아득한 벼랑 위에 서 있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천지 물가로 내려갈 수 없다.
남릉에 서서 내려다보는 천지는 조그만 웅덩이 같다. 천지는 남북으로는 길쭉하고 동서 폭은 좁아서 아프리카대륙처럼 생겼다. 북쪽은 넓지만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점점 좁아진다. 하늘에서 보면 아기들이 끼는 벙어리 장갑 같을 게다. 장군봉 측면의 비류봉이 엄지손가락처럼 불쑥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8년 전 천문봉에서 내려다보던 천지. 그 날의 아쉬움 위로하듯, 오늘의 백두산 태양은 한없이 밝고 너그럽다. 바람 한 점 없다. 청석봉에 도착하면 저 물가로 내려가서 서로의 체온을 섞어볼 것이다.
4호경계비에서 5호경계비가 있는 곳까지 능선종주를 하려했지만, 백두산 화구륜 서남쪽 봉우리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태가 훨씬 불안정한 침봉들이다. 날카롭거나 가파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발을 올려놓거나 붙잡고 올라설 수도 없을 만큼 부서져 내린다. 멀리서 보면 견고해 보이지만, 로프를 걸만큼 튼튼한 암질이 아니다. 무수히 금이 가서 엉성하게 포개져 있다. 땅 속의 용암이 지각을 뚫고 솟구치다 공기를 만나 굳어진 것이 천지 둘레의 봉우리들인데, 이 서남쪽 불길이 훨씬 강렬하게 타올랐던 때문일 것이다.
관면봉 바깥쪽은 하얀 부석들로 뒤덮여서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능선을 탈 수 없기 때문에 등성이 하나를 넘어설 때마다 멀리까지 내려갔다 천지가 보이는 안부로 되 올라오기를 되풀이한다. 다음 봉우리는 로프를 걸 수 있을 거야 기대했지만 우리는 계속 속으면서 간다. 현무암 조각들이 거대한 폭포를 이루고 있는 비탈들. 발을 옮길 때마다,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돌무더기들. 와호봉 북쪽 안부에 올라설 때까지의 고생이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다. 와호봉에서 청석봉으로 건너야할 등성이 앞에서 우리는 결국 손을 들었다. 그때 우리 앞에는 자잘한 부석들이 바로 일어서서 걷기도 어려 울만큼 가파른 사면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무른 산을 계속 무너뜨리며 건너간다는 것은 백두산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우리는 결국 후퇴하기로 했다.
5시간이 넘는 사투로 나는 기진맥진이지만, 기운이 남은 사람들은 깊은 협곡 저쪽의 등성이를 건너다보며 로프를 걸 것이냐 말 것이냐 망설이고 있을 때, 멀리 송강하쪽에서 청석봉으로 오르는 도로가 눈에 띄었다. 그 멀고 먼 길을 향하여 내 배낭을 빼앗아진 가이드가 먼저 뛰어내려가 버렸다. 나도 따라 내려갔다. 발이 푹푹 빠지는 화산재 비탈을, 가파르기 그지없는 화산재 비탈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화산재 비탈을, 무릎이 꺾이는 고통을 겪으며, 비틀비틀 내려와서 초원으로 들어섰다. 길 없는 초원. 초원의 풀들은 억세고 화산재보다 더 지독했다. 미끄러지고 걸려 넘어지기를 수십 번 했다. 그 지독한 투쟁 끝에 나무그늘로 들어섰다. 수목한계선에서 올려다보는 백두산, 아름답기 그지없다. 저 아름다운 산비탈에 그처럼 어려운 길이 있다고 누가 알 것인가. 길이 아니면 가지 마라. 백두산은 내게 그걸 가르친 것 같다.        
백두산을 만들어낸 불길은 얼마나 끈질기고 거대했던 것일까. 백두산 분화구에서 흘러 넘친 쇄빙설은 멀리 장진고원까지 덮었다. 백두산 언저리의 고원지대들은 모두 그때의 쇄빙설이 덮여서 이루어진 땅이다. 그 재위에 무성한 밀림이 형성되었다. 그 이전의 나무들은 모두 쇄빙설 아래 파묻혀 석탄이 되었다. 두만강 건너 훈춘 일대와 함경도 일대에 탄광이 많은 것은 모두 그 때문일 것이다. 백두산 언저리 밀림의 나무들을 가장 많이 수탈해간 것은 일제였다. 이제 백두산 일대의 숲은 말뿐인 밀림이다. 우리가 걷고 머물던 산정. 그 푸석푸석한 화산재 틈에서도 뿌리내리고 사는 생명들이 있었다. 백두산의 풀들은 강인했다. 잿빛 부석 틈에서 발견한 단 한 그루의 두메양귀비. 그것은 사진에 담았다. 화구륜 능선에 핀 비로용담을 찾아 가파른 비상을 하고 있는 작은 벌을 보았다. 백두산의 나무들은 가지가 억세었다. 특히 억센 가지를 낮게 펼쳐 까만 열매를 달고 있는 들쭉나무들은 내게 새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들쭉나무 옆에 주저앉아서 뽀얗게 분이 핀 열매를 따먹으며 목마름을 이겼다. 고마웠다. 자연의 손길은 그 각박한 토양에서도 넉넉하고 은혜로웠다. 재가 안고있는 생명들. 그것들의 삶을, 모습을, 백두산과 함께, 오래 못 잊으리라. <끝>
----------------------<<문예중앙>>, 2000년 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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