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12(목) 18:10 (MSIE5.0,Windows98) 211.104.127.69 1024x768
향로봉도 금강산도 한 줄기 봄비를 타고  

<남한쪽 백두대간 마지막구간, 향로봉 답사기>

향로봉도 금강산도 한 줄기 봄비를 타고



                                                                                         이  향  지

샛별도 구름 덮고 잠든 새벽에 우리는 달려간다. 향로봉! 그 어려운 곳을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 찾아가게 되었다. 덕유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팀이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한지 2년여만에 대망의 마침표를 찍으러 가는 행사에 합류한 것이다.
진부령에 내리니 희미한 빛이 바다 쪽으로부터 번져온다. 출발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서성거려 본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서성거리는 사이에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밝아오는 산자락엔 하얀 눈이 사태져 있다. 저 눈빛이 아니었다면 좀 더 어두웠겠지. 올해는 유난히도 봄눈이 꼬리가 길다. 4월에도 눈이 내려, 저 눈 다 녹아도 꽃빛이 그저 그러리. 내 마음이 꽃길을 찾아 먼 눈을 파는 사이에 집합 신호가 떨어졌다.  
백두대간에 빠진 민간인 65명을 위하여 지휘관이 직접 나왔다. 주지사항을 전달하고 축복의 인사를 덧붙였다. 그리고 드디어 닫혔던 길이 열렸다. 산꾼들은 말없이 걸어 오른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도상거리 640여km를 걸어온 건각들이다. 나 같은 책상물림이 따라갈 걸음이 아니다. 모퉁이 하나 돌아서는 사이에 나는 후미로 쳐졌다. 그러나 나도 갈 데까지는 그들처럼 걸어볼 것이다. 해는 떠오르자마자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산자락엔 눈이 하얗게 덮고 있지만, 길은 녹아서 질척거린다.
봄은 길을 찾아 눈을 녹이고 빗방울들을 데리고 왔다. 한 방울 두 방울 손바닥으로 받아본다. 빗방울은 부드럽고 날씨는 포근하다. 마산 쪽을 되돌아본다. 마산은 오르면서 느낄 때보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니 훨씬 큰산이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대청봉까지도 보일텐데 행운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나는 믿는 데가 있어서 우정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내 배낭을 실어놓은 군용트럭이다. 오늘은 걷는데 의미를 두지 않고 향로봉에 먼저 올라 향로봉 이후의 백두대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려고 한다.  
오늘은 식목일. 아무도 심지 않은 자작나무 가지들이 비를 맞는다. 스스로 싹트고 자라서 꽃을 피운 생강나무들이 샛노란 꽃눈을 화들짝 뜨고, 트럭에 앉은 여자를 들여다본다. 저 어린 나무들은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산비탈에서 눈 깊은 겨울을 보내고 꽃을 피웠다. 아침 식사도 못하고 나왔을 것 같은 운전병과 정보장교에게 미안하다. 나는 내가 가는 길에만 도취해 있어서 위문품 한 점도 안 챙겨들고 너희를 보러 왔구나. 젊은 날들을 국토방위에 바쳐야하는 이 땅의 아들들에게 나는 오늘 빈 인사나 가득히 전하고 돌아가게 되었다.
칠절봉이 건너다 보이는 길모퉁이에서 내 후회는 잠시 쉰다. 칠절봉이 거대한 흰 새처럼 시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길옆에는 등산화가 빠질 만큼의 눈이 남아있다. 칠절봉 정상으로 오르는 대간 능선에도 하얀 눈이 덮고 있다. 바다 쪽은 허공이다. 마을은 봄눈에 덮인 산자락들과 허공처럼 멀고 깊어 보이는 바다 사이에 있다. 흔들리며 흔들리며 향로봉에 닿은 시간은 오전 8시경.


    눈 위에 비 내리는 날
    향로봉 초병의 경례를 받는다
    남풍에 묻어온 봄비 속에서
    나는 빗방울처럼 빈손이구나
    눈 깊고 바람찬 산머리로 찾아오면서
    내 가슴엔 금강산만 가득 들어 있었구나
    너희가 그토록 그리워했을 마을에서, 아들들아
    나는 너희를 잊고 있었구나
       
       ―졸시, 「초병의 경례를 받으며」


향로봉 정상은 백두대간에서 600m쯤 비켜 앉아 있다. 매봉산에서 향로봉을 지나 건봉산쪽으로 뻗어 가는 능선을 향로봉산맥이라 하지만 우리 고유의 산경개념에서는 한참 비켜 앉은 이름이다. 이 땅의 산줄기들이 본래의 이름을 되찾을 날은 언제 올 것인가?
향로봉쪽에서 고성재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과 삼재령∼무산쪽으로 휘어 도는 대간 줄기를 가늠해보면서 내 마음은 떨리고 벅차서 등산화가 눈 속으로 빠지는 줄도 몰랐다. 하늘도 참지 못하고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옷과 배낭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금강산(金剛山·1,638.2)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저 멀리 흐린 하늘 아래 웅거하고 있는 산. 잿빛 실루엣에 불과하지만, 나는 좀더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금강산을 보려고 목을 길게 뽑았다. 먼먼 수평선에 떠있는 거대한 배 같기도 하고 지평선 끝에 옆으로 서 있는 거대한 일각수 같이도 보이는 산. 동해 쪽으로 살짝 비켜 앉은 집선봉이 일각수의 뿔처럼도 거대한 배의 굴뚝 같이도 보여서 또 다른 명칭을 부여할 여백이 내 머릿속엔 없다. 그나마도 저 배는, 저 거대한 일각수는, 서서히 짙어오는 구름 속으로 머리를 디밀며 사라지려고 한다.
무산(巫山·1,319.7m)은 금강산 줄기가 내륙으로 파고드는 지점에 둥드렸이 솟아있다. 무수한 무명봉들이 가리고 있어서 봉우리 끝만 보이지만, 그 위치와 생김새로 짐작할 수 있다. 무산은 금강산보다 좀 더 가깝다. 이제 나는 지도 위에서나마 저 산들을 차례로 찾아갈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직접 가볼 수도 있겠지. 좀더 생생한 현장의 숨소리를 전할 수도 있겠지. 그날이 오면―.  
65명의 일행이 모두 도착한 것은 한참 후. 보슬비는 굵어져서 기념 산제를 지내는 사이에 모두 젖었다. 줄지어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건너다보는 금강산에도 비가 내리는지 산 빛이 점점 검어진다. 삼재령쪽으로 휘어 도는 산줄기도 뿌옇게 젖는다. 젖은 땅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돼지머리도 젖는다. 죽어서도 웃고있는 돼지의 입과 귀와 콧구멍에 꽂아둔 지폐들도 젖고, 팥고물이 덮고 있는 시루떡도 젖는다. 시루떡 위에 걸쳐놓은 마른 북어도 젖고, 막걸리를 따루고 절하는 사람의 눈시울도 젖는다. 어떠한 해학 어떠한 덕담 어떠한 기쁨의 몸짓도, 모두의 마음을 큰 강줄기처럼 가르고 있는 허탈감을 덮을 수는 없을 모양이다.
비 내리는 금강산 비 내리는 무산 뒤에도, 여기서는 안 보이는 마을이 있고 사람이 살고 그 마을 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와 풍속을 지닌 동포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많이 들어서 너무나 쉽게 흘려버린 진실의 내용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외진 산머리에서 국토 방위에 젊음을 바치고 있는 우리의 아들들을 돌아본다. 우리를 안내하느라  함께 비를 맞고 있는 중대장과 병사들…. 어떤 익명의 손길이 무슨 이유로 우리 민족을 이 깊은 분단의 구렁텅이로 끌어 들였는가? 남북한이 반세기를 대치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젊음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가?
나는 식민지에 태어나서 분단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내가 세 살 때 해방이 되었지만, 나는 해방의 기쁨이 어떤 건지도 몰랐고, 내가 여덟살 때 6.25가 났지만, 고향이나 가족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산을 몰랐더라면, 일본 땅 중국 땅을 빙빙 돌아가서 백두산을 만나고 오지 않았더라면, 뒤늦게나마 대간과 정맥을 비롯한 우리 땅의 산줄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분단의 비극을 내 생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했으리라. 잡다한 고뇌와 잡다한 세상사에 일희일비하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으리라. 지금 내 머리를 적시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에는 묘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이 빗방울 하나 하나가 투명한 환약처럼 내 눈을 뜨게 한다. 내 눈에는 이제 산 뒤의 산이 보인다. 나는 돌아가서 저 산들 뒤에 가려진 무수한 산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작은 개울 하나도 건너지 않고 백두산에 이르는 길을 그려 보일 것이다.  
돌아가는 길은 좀 더 질척거리고, 내 마음은 오를 때보다 더 많이 흔들린다. 진부령이 가까워 오자 비는 그치고, 두툼한 구름이 흐르고 있는 하늘 저쪽에, 정겨운 설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월간산, 1998.6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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