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文
바이칼을 담아왔다. 내륙의 바다! 시베리아의 진주!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며, 지표면 담수의 5분의 1을 수용할 만큼 거대한 수고(水庫)! 고대로부터 '신의 경배를 받는 큰물'이며, 미래로 이어질 '신의 바다' 바이칼! 내가 이 호수 앞에서 만난 것은 역사의 물결이었다. 귀를 기울여야 들리는 파도소리는, 내가 오기 전의 세계를 꿈꾸게 했다. 혹한과 혹서의 땅 시베리아가 이 호수로 인해 풍성한 숲을 거느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타이가(taiga)의 빛을 이 호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루가(luga)와 툰드라(tundra)의 빛, 그 무성한 초록빛을 보았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브리아티아의 수도 울란우데까지는 기차로 가고 왔는데, 고원국가 몽골의 산하를 함께 둘러보는 계기가 되었다. 몽골의 강, 테렐지도 톨도 셀렝게강으로 모여서 바이칼로 간다. 그 강줄기를 따라 몽골-브리아티아 국경을 넘었고, 그 강을 건너서 그 호반에 닿았다. 그곳은 생각보다 가까웠으며, 그곳 사람들은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이제 세계는 껍질뿐인 이념보다 실리를 쫓아 벽을 허물고 있다. 그 낯선 자연 속에서 내가 발견한 빛도 평화였다. 물결과 바람 속에 있었으나-!
***********************************本文
나는 몽골로부터 셀렝가강을 따라 그 호수에 닿았다. 바이칼! 그 푸른 진주를 만지기 전에 목마른 고원의 말을 먼저 들어야 했다. 하늘로부터 몽골의 대지로 내려서며, "저곳은 아직 겨울인가 보다" 했지만, 비행기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섭씨 35도를 웃도는 더위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중앙아시아 대륙의 더위는, 동북아 반도에서 우리가 경험한 더위와는 다르다. 광활한 고원의 햇빛과 대기는 수분을 빠르게 뺏어간다. 물기 없는 바람 속에서 뿌리뽑힌 나무처럼 시들시들해져서 미네랄워터 병을 끼고 다닌다. 나는 일찍부터 몽골이 보고 싶었다. 그것은 막연한 호기심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제 왔으니 우리 역사 속의 몽골과 접목 시켜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풀빛보다 흙빛이 더 진한 초원에서
내 할아버지의 몇 대조 할아버지는 과연 이곳으로부터 왔을까? 이 황량한 고원으로부터 말을 달려, 내게 닿았을까? 내 어머니의 몇 대조 어머니는 저 어둑한 겔 속에서, 마유주를 익히고 양고기를 요리하고 소젖 말젖 양젖을 짜며 살았을까? 조금전 말채찍을 휘두르며 테렐지 강을 건너간 소년은, 지금 내 앞에 우뚝 서있는 저 마상(馬上)의 여자는, 너무 먼 길을 달려오느라 내가 누구인가조차 잊어버린, 또 다른 내가 아닐까?
난생 처음 말을 타고 초원을 달려보았다. 난생 처음 탄 말이 낯설지가 않았다. 며칠만 머물면 자갈밭도 언덕길도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피에게 물어본다. 나는 이 황량한 대지를 등지고 '솔롱구스'를 찾아 떠났던 사람들의 딸인가. 가뭄과 기아를 피해 강줄기를 따라갔던, 솔롱구스의 딸.
몽골인들은 우리나라를 솔롱구스라 부른다. '솔롱구스'란 몽골말로 '무지개의 땅'이란 뜻이다. 여기 와보니 우리네 삶터는 과연 무지개의 땅이다. 원나라의 말발굽, 몽골군의 끈질긴 침략도, 솔롱구스를 차지하려는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몽골의 화폐 투구르를 장식하는 영웅 징기스칸. 그의 왕국 '칸'은 우리의 '한'국과 발음이 같다. 근원을 캐어보면 뜻도 같을 것이다. 징기스칸과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지배하던 '한국'은 한때 중국과 러시아까지 복속시켰다. 이 목마른 대지가 더 나은 땅을 찾아 사방으로 달리게 했을 것이다.
이곳의 산등성이들은 흙과 바위가 드러나 있고, 나무들은 모두 강변에만 모여있다. 초록빛도, 그늘도, 차고 반짝이는 물도, 강변에만 있다. 사람도 말도 개도 자동차도 강으로 몰려와서 목을 축이거나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하거나 나처럼 누워있거나 물장구를 치면서 논다. 지금 저 강물 속에서 뭐라뭐라 떠들며 노는 발가숭이들은 우리 시골 강변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곳이 오고 싶었다. 뚜렷한 이유도 목적도 없이 '꼭 가봐야 될 곳'으로 치부해두고 있었다. 시베리아와 바이칼을 찾아가는 이유 역시 같다. 한민족은 세계 인종 분류에 의하면 몽고·퉁구스인종에 속하고, 우리가 쓰는 한국어는 알타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퉁구스족은 바이칼 주변에 많은 흔적을 남겼고, 알타이는 몽골과 러시아, 카자흐스탄 사이에 지금도 큰 줄기를 걸치고 있는 산맥 이름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피의 고향을 찾아온 것이 된다. 내가 쓰는 말의 고향을 찾아 나선 것이 된다.
몽골의 대지는 풀빛보다 흙빛이 더 강렬하다. 울란바토르는 평균 고도 1,350m나 되는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흙먼지 바람이 수시로 분다. 울란바토르에는 내가 보고 싶어하던 몽골은 없었다. 나는 몽골의 자연이 보고싶었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는 하루 낮의 여유가 있어서, 테렐지 휴양지로 왔다. 울란바토르로부터 75km 떨어져있는 이 휴양지는 우리의 국립공원 같은 곳인데, 강 이름과 지역이름 휴양지 이름을 겸하고 있다.
몽골고원에서 셀렝가강까지
테렐지강은 셀렝가강의 지류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흐르는 톨강 역시 셀렝가강의 물줄기다. 셀렝가강은 바이칼로 흘러드는 336개의 하천 중 가장 길고 수량이 많은 강인데, 몽골의 항가이산지에서 발원하여 바이칼 호수에 이르는 셀렝가강의 길이는 1,480km나 된다. 셀렝가강은 몽골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긴 강에 속한다. 바이칼 호수를 채우고 넘친 물은 앙가라강을 타고 북극해로 흘러나가는데, 앙가라강은 예니세이강(4,088km)의 지류이므로, 몽골의 항가이산지에서 발원한 셀렝가강의 물이 북극해에 이르는 길이까지 합하면 황하(5,464km)와 비슷한 길이가 된다. 그러나 그 긴 강이 발원하는 고원은 이처럼 뜨거운 햇빛 속에서 나처럼 목이 타고 입술이 턴다.
테렐지 강변에서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 테렐지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오보'라 부르는 돌무더기가 있다. 돌무더기 가운데는 막대가 하나 꽂혀있고, 헝겊조각들이 깃발처럼 나부낀다. '오보'란 기(旗)를 상징하며, 우리의 서낭당 같은 것이다. 길 가던 사람들은 차나 말을 세우고 돌무더기에 돌을 하나 올리고 동전을 던지고 주위를 돌면서 소원을 빈다. 브리아티아도 경치 좋고 쉼터가 될만한 곳에는 탁자와 의자와 정자를 만들어 놓았고,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헝겊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있었다. 나무가 흔한 곳에서는 나무에게, 돌이 흔한 곳에서는 돌에게, 저렇듯 돈을 던지고 절을 드리며 길에서의 안전과 행복을 빈다. 무척 오래되었을 저 관습들은 우리와 저들의 뿌리가 같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몽골의 공기는 메마르다. 습도가 8%밖에 되지 않는다. 비가 잘 내리지 않아 풀이 자라지 못한다. 몽골의 년 평균 강수량은 200∼220mm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평균 강수량 800∼1,000mm와 비교해보면 이곳이 얼마나 목마른지 알 수 있다. 풀들은 키가 작고 억세다. 조금이라도 초록빛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소와 말, 양들이 모여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초원을 내주고 그들의 젖과 고기를 먹으며 산다. 초원에는 이들의 양식이 되지 않은 풀들만 꽃을 피우고 있다. 도로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차힐다그(붓꽃) 군락도 이런 이유로 살아남았다. 독을 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초원! 자연의 비정과 작은 풀꽃들의 생존을 위한 지혜를 보게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낯익은 풀꽃들로 인하여 고향의 향기를 맡는다.
쇼롱수르가가 분다!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자이상 공원으로 올라왔는데, 쇼롱수르가가 분다. 새로운 손님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이던 노점상들이 갑자기 물건들을 접어들고 사라진다. 기념 뱃지를 팔던 사람, 그림엽서를 팔던 사람, 티셔츠와 냉차, 아이스크림을 팔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다. 회오리바람이 흙먼지를 불어 올리고, 눈 아래 있던 톨강과 울란바토르 시가지가 순식간에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모래와 쓰레기, 빈 패트병과 깡통들이 회오리바람을 따라 올라간다. 다른 쪽에서 날아온 것들이 우르르르 탕탕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린다. 이 바람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 일행 몇 사람만 소련군 동상이 서있는 정상으로 올라갔다. 눈이 아프고 목이 텁텁하고 숨쉬기가 어렵다. 이 '먼지바람'이 바로 '쇼롱수르가'다. 봄철마다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도 이 메마른 대륙으로부터 이런 쇼롱수르가를 타고 날아간 것이다.
시베리아 국제열차 안에선 컵라면이 인기
드디어 바이칼로 출발하는 시간이 왔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브리아티아의 수도 울란우데까지는 열차로 24시간쯤 걸린다. 16시간 걸리는 특급열차도 있지만,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이 국제열차는 침대차다. 한 칸에 4개의 침대가 있다. 출국수속도 입국수속도 세관검사도 모두 열차 안에서 한다. 이 열차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지선으로 중국의 베이징까지 운행한다. 우리의 경의선이 복원되면 베이징∼단둥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고, 신의주∼평양∼서울까지도 연결할 수 있는 선이다. 그때가 되면 바이칼이 있는 시베리아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유럽까지, 북극까지도 기차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열차 안에서는 컵라면이 가장 인기다. 열차 안에는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지만, 다른 음식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길에도 이 기차를 탔는데, 러시아인도 몽골인도, 자전거 하나씩만 들고 1년 동안 베이징∼티벳∼히말라야∼인도 트레킹을 나섰다는 네델란드 여자 디나와 캐롤라인도, 다른 서양인들도 모두 우리의 상표, '도시락라면'들을 준비해 있었다. 도시락라면! 바이칼에서 몽골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그것으로 25시간을 버텼다. 이 열차는 우리나라의 비둘기호처럼 역마다 서는데, 국경을 통과할 때는 몇 시간씩 서있기 때문에 승객들은 차와 함께 기다려야 한다. 다른 기관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기차가 서면 화장실 문이 잠기는데, 그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면 뜻하지 않은 곤경을 치를 수도 있다. 문이 자동으로 잠기고 물이 끊기기 때문이다. 베갯잇과 침대보 등은 받은 숫자만큼 꼭 돌려주고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상을 해야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실랑이는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몽골과 브리아티아 사이의 국경선은 두만강변의 중·러 국경선처럼 나직한 철책으로 구분되고 있다. 몽골쪽 국경역인 수하바토르에서 서너 시간, 국경선을 지나 브리아티아의 국경역 나우시키에서 서너 시간(돌아올 때는 무려 8시간), 그렇게 많이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밤이 가고 아침이 왔을 때, 그 복잡한 수속들과 그 긴 기다림들과 그 모든 불편들을 참아낸 끝에 아침햇살을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이 기차가 주는 기쁨을 발견했다. 그것은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이다.
바이칼의 나라 브리아티아
'어머니이신 태양'과 '아버지이신 달'과, 삼지창 모양의 불꽃을 함께 국기에 표시한 나라가 있다. 러시아연방 브리아티아가 바로 그 나라다. 태양을 남성의 상징으로 달을 여성의 상징으로 보는 세계인의 정서를 거부하고, 이 나라는 어머니를 태양으로 부른다. 삼지창 모양의 불꽃은 가장 위에 있으며, 초승달 모양의 달은 가장 아래쪽에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둥근 태양이 있다. 가장 아래쪽에서 해와 불꽃을 받쳐들고 있는 달은 초승달 모양이다. 그것은 달이 아니라 바이칼 인지도 모른다. 바이칼 속에 떠 있는 둥근 태양, 그 태양이 가장 둥글고 이글거리는 순간을 포착하여 국기에 새긴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어머니와 태양을 하나로 보는 등식은 모계 사회의 유산일 것이다. 바이칼 주변이 유목민의 땅이었음을 알게 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몽골의 국기에도 해와 달, 불꽃 모양이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브리아티아의 원주민인 브리야트족이 몽골종족이고, 이 나라가 1958년까지 브리야트 몽골 자치공화국이었음을 상기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브리아티아의 국민은 절반 가량이 브리야트족이다. 그들은 우리와 너무나 닮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돌아온 사람들'이라 했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처럼 말했다. 바이칼이 그들과 우리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한마디로 부인하고 냉소에 붙일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민간 의식이 우리와 너무나 닮았던 때문이다. 브리아티아인들의 샤머니즘은 우리의 샤머니즘과 흡사했다. 나의 관심은 이곳 자연에 있지만, 그들로 인하여 문득문득 고향을 느꼈다. 브리야트족에는 시인이 많다. 브리아트우넨 신문의 주필 아르덴씨도, 장관 한 분도, 뉴모닝 맴버들과의 간담회에서 만난 저널리스트도 몇 분도 교사이자 작곡가인 라리사도 시인이었다. 그들은 드러내놓고 표현은 않았지만,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시련과 정서를 감지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브리야트족의 땅으로 눈을 돌린 것은 17세기 중엽, 이 나라에 많은 금과 모피 때문이었다. 브리아티아는 이밖의 지하자원도 풍부해서 텅스텐·몰리브덴·니켈·알루미늄·철·망간·등의 금속과 석탄·흑연·운모·석회암 등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이 나라의 옥은 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러시아 옥(玉)의 유일한 산지다. 브리아티아 정부 당국은 우리 경제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광산들을 개발하는 사람과 50:50으로 이익을 분배하겠다고 했다. 풍부한 목재를 좋은 조건으로 수출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타이가(taiga) 수림대에 가장 많은 수종은 이곳 사람들이 사스나라 부르는 홍송이다. 이 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키가 크지만, 목질은 약하다고 한다. 이 사실은 추운 곳의 나무들은 목질도 강인할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상반되는 것인데, 강한 바람과 깊은 눈, 기온이 급강하하는 겨울과 급상승하는 여름을 드나들며 살아 남아야하는 나무로서는 당연한 대처였을 것이다. 강한 바람 앞에서는 유연하지 않으면 부러지고 만다. 이곳 나무들은 스스로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몸을 흔든다. 미끈한 전신을 드러내놓고 잎은 성글게 달고 가지는 짧게 뻗어 눈이 내려도 쌓여서 가지가 부러지는 일이 없게 한다. 그리고 빽빽하게 모여서 산다. 이국의 자연이 보여주는 말없는 가르침 속에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소유하고 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시차(時差)가 11시간이나 된다. 바이칼의 절반과 그 동쪽을 차지하는 브리아티아는 러시아연방 자치 공화국이지만, 러시아와 동일한 화폐를 쓰고, 러시아 비자를 받아야 갈 수 있는, 러시아의 한 지역이다. 인구는 110만 정도지만 국토는 351,300㎢에 이를 만큼 광활하다. 그러므로 이곳의 시간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풍부한 일조량은, 조그만 반도에서 오손도손 겪어온 우리네 자연과는 그 진폭이 다르다. 무엇보다 큰 고통은 혹한의 땅으로 알고 있던 시베리아가 아스팔트가 녹아서 흐느적거릴 만큼 뜨겁다는 것을 몰랐기에 방한복만 잔뜩 준비해온 내 차림이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에는 좋지만, 낮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덥다.
바이칼, 이 오래된 바다 앞에서
일출을 보려면 이르쿠츠크, 일몰을 보려면 브리아티아로 가라! 이르쿠츠크 쪽은 일찍부터 관광지로 개발되어 다녀온 사람이 많다. 모스크바와 연결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이르쿠츠크에 먼저 닿는다. 항공편도 그쪽이 수월하다. 나는 그 반대편인 동쪽으로 가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나는 인간의 발길이 덜 닿은 쪽 자연을 만나고 싶다.
울란우데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야 바이칼로 왔다. 셀렝가강변길을 따라서 그 하류까지 와서 나룻배를 탔다. 강 이쪽은 니크리스커에, 강 저쪽은 트레스커버라는데, 키릴 문자로만 씌어진 이정표는 바로 앞에 있어도 읽을 수가 없다. 차와 사람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는 바지선 같은 것으로, 작은 배가 밧줄을 매어 예인한다.
셀렝가강 하류는 물빛이 흐리다. 강 하류엔 넓은 충적지가 있다. 강을 건너면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길 왼쪽으로 펼쳐지는 호반 마을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곳곳에 나무 울타리를 쳐두었지만, 갇혀있는 것은 동물들이 아니라 채소들이다. 채소는 가두어 기르고 가축들은 놓아기른다. 타이가 수림 사이로 펼쳐지는 넓고 곧은길은 이 땅이 얼마나 넓은 지를 깨우쳐 준다. 엔할룩크 휴양지마을 깔끔한 모텔에 짐을 두고 호반으로 나갔다.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서 나무문을 열고 사스나 방풍림을 지나니 바다가 보인다.
바다! 이렇게 넓은 물을 바다라고 부르지 않고 무어라고 부를까. 갯비린내만 없을 뿐,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둥그스럼한 수평선, 건너편 육지의 멀고 희미한 윤곽, 흔하게 볼 수 있는 갈매기 떼, 발아래 펼쳐진 모래밭, 수평선에 떠있는 배 등은 망망대해를 연상시킨다. 바이칼이란 이름은 투르크족이 명명한 이름, '바이큘'이 변한 것이라 한다. '바이'는 '신의 경배를 받는' 혹은 '높은 곳에 있는'이란 뜻이고 '큘'은 '큰물'이란 뜻이라 하나, 내가 느끼기에는 그냥 '바다'다. 투르크족의 언어는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군에 속하므로, 바이칼이란 곧 내가 느낀 '바다', 우리의 말의 바다,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브리아티아'가 곧 '바이칼'이이라 한다. 바이칼=바다=브리아티아. 나는 내가 와있는 곳이 내 몸의 핏줄, 내 말의 핏줄과도 무관하지 않은 바다 앞임을 실감한다. 투르크 혹은 퉁구스, 돌궐이라고도 불리던 종족들, 한때 그들이 차지하고 기대 살던 바다는 이렇게 청청하다.
새로운 파도가 달려온다. 새로운 모래들을 적시고 간다. 바이칼! 바다! 이 호수의 끝은 어딘가. 이 바다 앞에 서면 인간인 나는 한 알갱이 모래알보다 작고 연약한 존재. 이 바다의 파도소리는 은은한 자장가 같다. 저녁을 먹고 일몰을 보고 나서, 나는 깊이 잠들었다. 그리고 사흘 뒤 로베스닉크 휴양지에서 똑 같은 잠을 잤다. 내가 태어나서 걸어온 길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는 길고 깊은 잠 속에서 나는 이런 말을 적어두었다.
"바이칼의 신은 나에게 관대했다. 길 안의 구름을 모두 거두어 주었다. 그리고, 두 번의 황홀을 경험했다. 내가 이 호반에서 처음 본 일몰, 그것은 분명 황홀이란 단어로 바꾸어도 좋을만한 것이다. 시끌벅적 요란한 황홀이 아니라, 공기처럼 심금에 스미는 은은한 황홀이었다. 하루 중 가장 붉고 크고 둥글어져서 바다와 구름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순식간에 쑥쑥 떨어져버리는 우리 땅 서해의 일몰과는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이곳 일몰은 너무나 늦은 시간에 너무나 느리게 진행되었다. 너무나 먼 곳에서 천천히, 천천히, 뒷걸음치며, 아주 조그마해진 뒤에야 얇다란 구름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천천히 발견하게 되는 진실의 얼굴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의 대상에서 눈 떼지 않는 사랑 같은 것이었다. 그처럼 느리고 서두르지 않는 일몰은 수많은 강줄기와 넓은 습지를 거느린 시베리아 이 젖은 평원이 아니면, 바이칼 이 바닷가가 아니면, 구경할 수 없을 특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오랫동안 눈감지 않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둥글 수 있는 사랑! 그 막연한 소망, 형상으로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어떤 존재의 얼굴을 대면한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시베리아를 꿈꾸었는데, 이곳에 이런 일몰이 기다릴 줄은 몰랐다.
6월의 시베리아는 낮이 길고 밤이 짧다. 내가 머무는 위치에 따라 해가 지는 시간도 다르다. 엔할룩크에서는 밤 9시경에, 로베스닉크 쪽에서는 밤 10시경에 일몰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계가 고장난 것 아닌가했지만, 내 시계는 멀쩡했다. 이 호반에서는 밤 12시가 되어도 어둡지 않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어느 틈에 새로운 태양이 환하게 떠올라서 대지를 달구고 있다."
바이칼, 오래고 깊은 불가사의에 대하여
우리가 몸 붙이고 사는 유라시아 대륙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베레스트·▲8,848m)과 가장 깊은 호수(바이칼·▼1,637m)가 함께 존재한다. 약 2억5천만년 전, 유럽판과 아시아판이 충돌하여 한 덩어리 대륙으로 결합할 때, 고고성처럼 하늘로 밀어 올려진 땅이 히말라야산맥이라 한다. 그렇다면 바이칼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 일대의 산맥들을 하늘 속으로 밀어 올린 육괴와, 지구의 중심을 지탱하려는 두 극점 사이에서 애처롭게 찢긴 깊고도 좁다란 골짜기가 아닐까. 그리하여, 비가 내릴 때마다 주변의 강들이 모두 그 깊숙한 와지(窪地)를 향해 흘러들고, 지표면(地表面) 담수의 5분의 1을 수용할 만큼 거대한 호수가 되었고, 그 호수를 채우고 남은 물은 더 낮은 쪽 강줄기를 역류시키며, 북극해까지 이어진다.
바이칼은 별명이 시베리아의 진주다. 물빛은 블루사파이어 같고, 모습은 초승달 같다. 이 호수 둘레엔 해발 3,000m 가까운 산들이 산맥을 이루어 둘러 서있다. 서쪽이나 북쪽 더 깊은 곳 더 높은 산이 있는 쪽으로 가면 더 푸를 것이다. 바이칼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흐르는 길다란 호수다. 그 모양은 초승달처럼 갸름하지만, 그 길이는 636km, 평균 너비는 48km, 수면의 표고는 463m, 가장 깊은 곳 수심은 1,637m나 되며, 호수 둘레는 2,080km, 그 면적은 3 1,500㎢에 이른다. 함북 온성에서 전남 해남에 이르는 우리 한반도의 길이 1,070km와 넓이 22만㎢과 비교해보면 이 호수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호수바닥에 쌓인 퇴적층의 두께가 6,000m에 이른다고 하니, 또 하나의 히말라야가 동시베리아 남쪽에 수장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호반의 산들은 빙산의 일각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호수 표면으로부터 2,000m 이상 솟구쳐, 울창한 타이가(냉한대침엽수림)를 길러낸 이 산들은, 아스팔트가 녹아서 흐느적거릴 만큼 뜨거운 날에도, 하얀 스노캡을 쓰고 있다.
엔할룩크 휴양지에서 울란우데로 돌아가서 뉴모닝맴버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다시 바이칼로 왔다. 지난번에는 셀렝가강 하류로부터 엔할룩크에 이르는 가반스크 지역을 오가며 그 호반을 보았다. 이번에는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울란우데∼그레야진스크∼투르카∼고랴진스크 사나토리∼막시미카∼우스티바르구진∼바르구진에 이르는 긴 지역을 둘러볼 것이다.
울란우데에서 그레야진스크에 이르는 길은 도시의 도로를 벗어나기 무섭게 무성한 숲 속으로 이어진다. 울란우데에서 두룬다이에브(큰 마을이란 뜻) 사이에는 만드리크라 부르는 큰 고개가 있다. 한계령이나 대관령에 비하면 낮은 고개지만, 평원에 익숙해진 눈에는 무척 높다. 바르구진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에서 만난 시골 아이들은 모습은 꾀죄죄했으나, 건강하고 당당하고 밝았다. 이 길에서는 자동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로 가기 위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자동차를 기다리는 것이다. 뙤약볕 속에 서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을 들어보는 그 모습들은 참 안쓰러웠다. 두룬다이에브는 가장 목가적인 마을이다. 도로변에는 넓은 농지가 있고 많은 말과 소떼들을 방목하고 있다. 소와 말은 저희끼리 돌아다니며 풀을 뜯다가 저녁이 되면 집을 찾아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양떼들은 꼭 인도를 해야한다니, 그건 아마 양의 머리통이 소나 말의 그것에 비해서 작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마을 부근 도로변의 농지들은 경작을 하지 않고 노는 곳이 많은데 그런 곳마다 야생화들이 천국을 만난 듯 피어있다. 이유는 같은 땅에 거듭 농사를 짓지 않고 한 해씩 걸러가며 농사를 짓기 때문. 저 넓은 땅 저 노는 땅의 몇 퍼센트라도 우리나라에 붙일 수 있다면. 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넓은 땅이다.
투르카강 하구에는 나무 그루터기들이 남아있는 낮은 땅이 있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물에 잠길 것 같은 땅이다. 이처럼 상습 침수지역에 생긴 초원을 루가(luga)라 한다. 용어는 생소하지만, 이곳 식물들이 적응하고 살아남는 법을 두루 만나고 있는 중이다. 투르카에는 주유소도 있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북바위가 있어서 그 호반에서 오래 쉬며 밥을 지어먹었다.
투르카에서 얼마가지 않아 고랴진스크 사나토리가 있다. 바이칼은 아직도 지각이 움직이고 여러 곳에서 온천수가 분출되는데, 이곳 사나토리(온천)도 그중 하나다. 우리는 오는 길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곳 온천수는 노인질환에 특히 좋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휴양을 겸해 머물고 있었다. 나도 모래시계가 다섯 번 흘러내릴 동안 그 물속에 있어 보았는데 비누를 쓰지 않아도 미끈거렸다. 우스운 것은 20루블씩이나 받고 조그만 모래시계가 세 번 흐를 때까지만, 그것도 심장 아래만 담그고 있으라는 의사(?)의 지시였다. 의아한 나는 그 명령을 어기고 목까지 담그고 머리도 헹구고 얼굴도 적셨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더니, 한참 후에야 자꾸 잠이 오는 것이었다. 그제사 모래시계 두 번 흐를 만큼의 시간을 더 머문 벌인 줄을 알았다. 우리가 그 이상한 약탕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우리 통역 둑배마(23)가 대중탕이 있는 것을 모르고 노인 환자들 치료실로 안내한 덕분.
로베스닉크 휴양지에서의 질문
지도를 보면서 북쪽으로 진로를 잡으면서 목적지로 선택한 곳은 막시미카라는 곳이다. 그러나 그 야영장은 아직 시즌이 아니어서 닫혀있다. 막시미카 해안은 궁륭처럼 둥글다. 물빛이 누렇게 변해있는데, 웬 흙탕물? 하고 다시 보니 송화가루가 떨어져서 누렇게 변한 것이다. 이곳 소나무들은 물가까지 몰려 내려와서 날씬한 하반신을 드러내고 햇볕을 쬔다. 백계 러시아 여자들은 미끈한 미인들이 많은데, 이곳 소나무들은 그 여자들을 연상시킨다.
막시미카에서 되돌아서서 로베스닉크로 왔다. 깊숙한 호반에 동시베리아 국립공학대학 휴양지가 있다. 모텔도 깔끔하다. 하루 세끼의 식사와 사우나 등을 곁들여서 외국인은 미국 돈 50달러를 자기네 국민은 자기네 돈 600루블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건너편 육지가 훨씬 가깝다. 이곳은 바르구진만의 입구여서 스베아토이노스 반도가 호수 안으로 불쑥 튀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곳 호반은 궁륭처럼 둥글게 파인 곳이어서, 물결은 잔잔하고 수심은 얕다. 호수 둘레를 빽빽하게 둘러선 소나무 숲은 육지로부터의 바람을 막아준다. 모래와 자갈과 돌멩이들과 모래 속의 나뭇잎과 뿌리째 뽑혀 돌밭에 드러누워 있는 큰 나무등걸과 스베아토이노스 반도의 산머리를 감아 오르는 물안개와 사스나 숲을 불태우며 지는 석양을 고루 볼 수 있는 곳이다. 자전거처럼 발로 젖는 보트를 타고 그 물결 위를 돌아 다녀보았다. 쉰다는 말, 휴양이란 말의 뜻을 되새길 여유가 생겼다. 먼 이국 그것도 생경한 시베리아에서, 휴식 없이 달려온 생애의 나날들을 돌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과연 브리아티아 사람들의 말처럼 바이칼로부터 왔는가. 내가 쓰는 말이나, 글, 도구와 생각들은 과연 이 '바다'의 핏줄 이 '바다'의 땅에 기원을 두고 있는가. 세계의 표면은 울퉁불퉁하다. 그 울퉁불퉁함을 부드럽게 만드는 존재는 물이다. 인류의 역사 또한 물가에서 시작되었다. 물이 있으면, 영하 50도의 혹한 속에서도 생명은 살아남아 봄을 기다릴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살아남은 자연의 한 부분인가.
이곳 자연은 생경하면서도 아늑하게 안아들이는 깊이가 있다. 광활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칼라콜지크(매발톱꽃)·얌야(민들레)·자르키(금잔화)·막크(두메양귀비)·바굴리닉크(진달래)·이리스(붓꽃)…. 그 모든 풀꽃들을 무성케 하는 여름 햇살과 그 풀꽃들 머리에 베치르(바람)가 닿지 않게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벌치(자작나무)와 사스나(소나무)숲! 이름만 다를 뿐, 너무나 낯익은 식물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러시아 문화의 모태와 배경을 짐작하게 된다. 문학, 음악, 발레, 민속춤, 그림…, 그들의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사고의 깊이는 거칠면서도 섬세하고 진폭이 큰 환경과 시간 속에서 나온 것 같다.
바이칼! 지금 내 눈앞에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이 호수는 5월까지는 얼음에 덮여있다. 가장 추운 때의 얼음 두께는 20m 가깝다고 한다. 2차 대전 때 스탈린이 이 두꺼운 얼음을 믿고 얼음 위에 이 호수를 횡단하는 철로를 깔았는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얼음이 깨어지는 바람에 대규모 병력과 장비들이 수장되었다고 한다. 그 격동의 세월은 냉전시대의 종식이라는 훈풍 속에 있다. 전쟁은 가고 평화가 왔다. 이 훈풍이 오래 계속되기를 빈다. 나는 이 호면에 유빙이 떠돈다는 4월과 5월이 보고 싶다. 자작나무 잎새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보고 싶다. 모든 산줄기가 눈 속에 묻히고, 이 호수의 물이 두꺼운 얼음 속에서 봄을 꿈꾸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바르구진 강을 건너서 바르구진으로
로베스닉크를 떠나서 바르구진으로 가는 길은 타이가와 루가를 번갈아 만나는 길이다. 바르구진강은 수량이 풍부하고 주변에 많은 습지를 거느리고 있다. 이곳 강들은 모두 물매가 완만하기 때문에 유속도 느리다. 그래서 조금만 깊은 굴곡을 만나도 호수처럼 고인다. 그런 호반을 푸르게 덮고 풀빛은, 도시에서 느끼던 빈곤의 인상을 씻어준다. 이곳 도로는 넓지만, 도시 외곽은 모두 비포장이다. 그러나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아서 문을 열고 달린다. 달리면서 마시는 천연의 바람이 에어콘인 셈이다. 천연 에어콘을 틀어놓고 니코라이 라스토르구에브의 류배를 부르며, 봉고차를 몰고 우리를 안내하는 기사는 백계 러시아인 세르게이(38)다. 그의 아들 뒤마(11)가 우리와 내내 바이칼 길을 함께 다닌다. 이곳 학교들은 벌써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영하 50도에 육박하는 혹한을 견디려면 기름끼를 많이 축적해야하는데, 그 비만이 여름 더위를 더 못 견디게 하는 요인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50세를 큰 생일로 친다. 일찍 늙고 일찍 사망하기 때문이다. 셀렝가강변과 바이칼 호반에는 썸머하우스들이 많다. 겨울에는 도시에서 살고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해서 물가로 와서 산다고 한다.
우스티바르구진에 오니 또 하나의 강이 가로막는다. 바르구진강이다. 바르구진도 강이름, 산맥이름, 만의 이름, 마을 이름을 겸하고 있다. 바르구진 강 나루터도 셀렝게강 나루터처럼 차와 사람을 건네주는 카페리(?)가 있다. 바르구진만은 바이칼 호안에서도 가장 넓은 만이다. 강과 호수가 만나는 곳인데도 물결은 잔잔하고, 빛난다. 마을 사람들은 조용하면서도 활기에 차있다. 선착장에는 많은 배가 묶여있다. 이곳 사람들도 생활력이 강한 것 같다. 강과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고, 해바라기씨를 파는 아가씨들도 있다. 우리도 강을 건널 때마다 해바라기씨를 산다. 한 컵에 5루블 하는데, 기다림에 익숙해지려면 이런 것이라도 까먹고 퉤퉤 뱉으면서 다녀야 한다. 나룻배에서 만난 아이들은 밝고 예쁘다. 그들의 까만 피부는 이곳 햇볕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알게 한다. 멍텅구리 나룻배에 실려 처음 보는 아이들과 눈짓 손짓으로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뒤에는 이 뜨거운 날에도 스노캡을 쓰고 있는 스베이토이노스 산줄기가 있다.
바르구진강에서 바르구진 마을까지는 울창한 타이가 속을 달리는 길이다. 그 깊은 숲을 뚫고 한참을 가니 아주 넓고 평화로운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은 1920년 러시아혁명 때 큰 전쟁을 치렀다는 혁명사적지다. 이곳에는 레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동상은 지금도 마을 복판에 서있다. 그러나 이 마을의 길에서, 강변에서, 목조건물들에서, 이정표에서, 사스나 숲에서, 주민들의 집안에서, 아이들에게서, 내가 만난 것은 '평화'의 얼굴이다. 나는 몽골의 고원 그 목마른 대지로부터, 동시베리아의 이 외진 마을까지 왔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사람의 향기를 찾아온 것이다. 고생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동행들이 함께 한 덕분이다. 이제 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반환점에 서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내 피와 말의 뿌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으나, 그런 쪽으로는 내 밑천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나는 이 먼 시베리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우리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 그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한 나라에서, 때묻지 묻지 않은 자연과, 닮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류의 미래를 열어갈 아이들의 전송을 받으며 돌아서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1828-1910)의 '전쟁과 평화'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긴 술회를 요약하려한다. "역사의 바다의 표면은 잔잔해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인류는 시간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갖가지 집단은, 항상 합치기도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국가의 형성과 붕괴, 민족의 이동 등의 원인이 준비되고 있었다."
--------------------------------<월간중앙> 2000년 8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