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23(일) 11:01 (MSIE6.0) 220.78.29.105 1024x768
[이지엽], 동치미  


    깜깜한 밤, 아내 몰래 여자 하나 훔치러 간다.

    아내보다 더 새침하고 뒷맛이 깨끗한 여자

    동지섣달 햇볕 안 든 좁은 방, 추운 방에서

    아무 일 없이 아무 말 없이 머리만 빗는 여자

    입맞춤은 서늘하여 발끝까지 서늘은 하여.

                              - 이지엽, <동치미>


동지 섣달 추운 밤
그럴 수록 속은 뜨거워
불같은 뜨거움 다스릴 그 무언가가 절실히 그리워지는 밤...
문득 떠오르는 여자 얼굴
어머니가 담가주시던 동치미
맨 발로 나가 쌀쌀해진 고무신을 끌고
마당 귀퉁이에 묻어둔 항아리 뚜껑을 들추고
살얼음 살짝 덮인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
아삭아삭 구수한 여자도 한 덩이
노르스름 간이 밴 끝물고추도 한 개
넌출거리며 딸려 올라오는 쪽파도 한 뿌리....
어어 춥다 소리치며 부엌으로 들어가
박달나무 도마에 뽀얀 여자를 눕혀놓고
식칼로 푸욱 갈라서 납작납작 썰다 말고 한조각 먹고
두어 쪽 더 썰다말고 또 한쪽 먹고
어어 시원타 들고 들어와 소주도 한잔 쭈욱....
밤은 깊어가고 속은 서늘해오고... 별 좋은 밤 산등성이에 올라 알바람 잔뜩 마신듯
청량해오고....
아 그런 묘미를 베푸는
동치미...
자아 함께 들어보십시다...눈감고 쭈욱......들이키는 이 국물 맛
어둑한 독 속에서 서늘하게 익은 여자와 나누는 이 입맞춤.....

동지섣달 깊은 밤
동치미 떠다먹는 일을
구중심처의 여자를 보쌈하러 가는 것 처럼 두근거려보는 것...
이 시에는 컴컴하고 뜨거운 두근거림과
전통에 뿌리한 해학이 깃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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