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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선생 타계  

시조시인 김상옥 씨 별세



부인 세상 뜨자 식음전폐, 장례식 이틀 만에 숨져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4.10.31 23:12 52'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金相沃) 씨가 31일 오후6시 20분께 서울 안암동 고려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경남 통영 출신인 고인은 1938년 동인지 ’맥’에 ’모래알’ 등을 발표하고 ’문장’지에 ’봉선화’를 추천받았으며,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되면서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동향의 예술가인 청마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등과 가까웠던 그는 일제시대에항일운동에 가담했다가 몇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경남여고 등에서 교원생활을 했으며 그림, 서예, 전각 등에 뛰어나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그는 시조집 ’초적’(1947) ’목석의 노래’(1956) ’삼행시’(1973) ’묵을 갈면서’(1979), 산문집 ’시와 도자’(1976)를 통해 민족의 얼이 깃든 문화유산, 영원한 생명에 관한 탐구정신을 보여줬다. 고인은 지난 26일 부인 김정자(金貞子) 여사가 먼저세상을 뜨자 식음을 전폐했으며 부인의 장례식이 끝난 지 이틀 만에 이승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딸 훈정(58)·훈아(55)씨와 아들 홍우(53.서울지법 부장판사)씨 등2녀 1남, 사위 김성익(58) 인하대 초빙교수 등이 있다. 서울삼성병원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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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중앙일보>

시조시인 김상옥씨 별세



혼 불어넣은 언어로 '우리 것' 노래

'찬서리 눈보래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이제 막 백학(白鶴) 한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시조 '백자부'의 일부)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선생이 31일 별세했다. 84세.

'백자부'에서 소나무의 절개와 백학 한쌍의 정겨움을 노래하던 시인은 시처럼 아름답게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달 26일 부인 김정자씨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냈다. 낙상한 뒤 합병증으로 폐렴을 앓은 부인이 입원 3주 만에 운명을 달리한 것이었다. 고인은 부인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인 30일 외손자와 함께 경기도 광주시의 부인 묘소를 찾아갔다가 집에 돌아온 직후 쓰러졌다.

고인은 전통의 사물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언어적 혼을 불어넣은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표적 작품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봉선화'를 비롯해 '백자부' '사향' '옥적''다보탑' 등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생전에 고인에 대해 "모든 사물을 볼 때마다 거기 살다가 죽어간 옛 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넋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우리 시인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눈을 가진 선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수자 시조 시인은 "극도로 절제된 시어로 시조의 맛을 살리고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해오셨다"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언어 조탁을 해온 고인의 모습은 모든 시조시인의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고인은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낙엽'으로 등단했다. 56년에는 통영문인협회를 만들어 김춘수.유치환.유치진.박경리 선생 등과 함께 창작 활동을 했고, 59년부터는 경남여고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82년 제1회 중앙시조대상에서 '자물쇠' 등으로 대상을 받았고 이후 한동안 이 대회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작품집으로 '초적' '고원의 곡' '이단의 시' '먹을 갈다가' 등이 있고 95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홍우씨 등 1남2녀와 사위인 김성익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3일 오전이다.

이상언 기자  

2004.11.01 18:48 입력 / 2004.11.01 18: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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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동아일보)

시인 김상옥씨 아내따라 하늘로…老시인의 순애보


‘백자부(白磁賦)’ ‘옥적’ ‘다보탑’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艸丁 金相沃·사진)씨가 31일 오후 6시반경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유족들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26일 부인 김정자(金貞子)씨가 세상을 떠난 후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이제부터 음식을 먹지 않겠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는 30일 부인의 빈소에 다녀온 뒤 쓰러져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고인의 둘째딸 훈아(薰阿·54)씨는 “두 분이 워낙 금실이 좋으셨던 데다 15년 전 아버지께서 넘어져 거동이 불편해 진 뒤로는 어머니에게 더욱 의존해 사셨기 때문에 상심이 컸을 것”이라고 전했다.


1920년 경남 충무(현 통영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8년 ‘맥’ 동인으로 활동하며 ‘모래알’ ‘다방’ 등을 발표했다. 39년 시조 ‘봉선화’가 ‘문장’의 추천을 받았고 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돼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마산여고 부산여고 경남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56년 통영문협을 설립했다. 시집으로 ‘초적’ ‘고원의 곡’ ‘이단의 시’ ‘먹을 갈다’ 등이 있으며 노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했다.


권영민(權寧珉·국문과) 서울대 교수는 “김상옥의 시조는 문화재 등을 소재로 하여 민족 고유의 미와 전통적 정서를 형상화했다”며 “광복 후에는 고아하고 세련된 시어로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했다”고 평가했다.


유족으로 아들 홍우(弘羽·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씨와 딸 훈정(薰庭) 훈아씨, 사위 김성익(金聲翊·전 대통령비서관)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0(1일 오후부터 6912)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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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조선일보)

아내 따라 5일만에 세상 버린 시인의 비가



“당신 없는 삶은 감당 못할 고통입니다”
부인 김정자씨 잃은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씨
식음 전폐…死別 5일만에 끝내 아내 곁으로

최승현기자vaidale@chosun.com

입력 : 2004.10.31 23:55 52' / 수정 : 2004.11.01 06:03 12'




▲ 생전의 김상옥 시인과 부인 김정자씨.

‘조춘’, ‘옥적’, ‘백자부’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 (金相沃)씨가 60여년간 해로한 부인이 5일 전 갑자기 사망하자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한 끝에 31일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고인은 지난 30일 오후 2시쯤 함께 살고 있던 딸 훈아(54)씨의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 구급대를 통해 고려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지난 26일 사망한 부인 김정자(金貞子)씨의 경기도 광주시 묘소를 다녀온 직후였다. 하루가 지나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던 고인은 결국 31일 오후 6시30분 유명을 달리했다. 10여년 전 허리관절을 다쳐 몸이 다소 불편했던 고인은 심장이 조금 약했을 뿐 특별한 지병을 앓고 있지는 않았다. 유족들은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두 분이었는데, 아버님께서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사별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훈아씨에 따르면, 고인이 부인의 사망소식을 접한 것은 28일. 자식들이 아버지가 받을 충격을 고려해 어머님 사망 소식을 3일이나 늦게 전한 것이었다. 부인 김씨는 한 달여 전 허리를 다친 뒤 폐렴까지 겹쳐 끝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 김 시인은 직후부터 “내가 먼저 가야되는데 그 사람 기도는 들어주고 내 기도는 왜 안 들어주는 것인가?”, “이 시간부터 밥을 안 먹고 그 사람을 따라갈 것이다” 등의 말을 하며 괴로워했다.

6녀1남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낙엽’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초적’, ‘이단의 시’, ‘석류꽃’, ‘근작시초’, ‘가을열쇠’ 등의 시집을 냈고, 노산문학상(1976), 중앙시조대상(1982), 보관문화훈장(1995)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고문도 역임했다.

초정은 “가람과 노산을 뛰어넘어 한국시조사의 한 획을 그은 시조시인”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특히 “시·서·화에 능한 우리 시대의 삼절(三絶)”이라는 존경을 받아왔다.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한때 중·고교 교사로 일했고, 서울로 올라와 인사동 골동품점인 ‘아자방’을 경영할 정도로 백자의 감식과 수집, 그리고 전각실력에서 뛰어난 품격을 보였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홍우(51)씨, 딸 훈정(58), 훈아(54)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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