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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인 시인, 19년만에 신작시집 출간
<연합뉴스/인터뷰>
19년만에 신작 시집 김사인씨
http://www.yonhapnews.co.kr/news/20060425/072500000020060425094101K2.html
19년만에 신작 시집 김사인씨
19년만에 두 번째 신작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발표한 김사인 시인./창비 제공/문화/ 2006.4.25 (서울=연합뉴스)
"시는 크고 요란한 것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섬김"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몸이 있으나 몸을 부려둘 공간이 없다 그들에게는/소비할 공간이 없다 먹고 죽을 공간도 없다 그러니/어떻게 발을 두나 머리를 두나 먹을 입과 담아둘 위장과 배설할 항문을 어디에 두나 똥은/또 어디에 내려놓나"('노숙 2' 중).
김사인(50) 시인의 신작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에는 지상의 온갖 가련하고 핍박받는 것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제 가슴을 쥐어뜯는 자의 애달픈 마음이 가득하다. 시인의 눈길은 "비명에 간 없는 집 종손이여/마른 쑥대여"('마른 쑥대에 부쳐' 중)의 '마른 쑥대'처럼 메마르고 힘없고 가난한 것들에 온통 가닿아 있다.
그래서 시인은 노숙자를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애태운다. '몸을 부려둘 공간'을 몰수당한 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시인은 "똥은 또 어디에나 내려놓나"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 걱정들은 시인의 '마음속 가장 여린 곳'(心琴)에서 울려나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다가 어느 때에 이르면 격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시인은 "바람 불고/키 낮은 풀들 바르르 떠는데/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우주의 저녁 한 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풍경의 깊이' 중)며 우주적 화음으로서 '떨림'을 노래한다.
그는 작고한 시인 이성선의 시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별을 보며' 중)를 자신의 시속에 인용한 뒤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중)라고 감상을 덧붙여 놓기도 한다. 여기서 '떨림'은 삶과 예술의 궁극에 이르기 위한 아름다운 운동성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간조가 아직도 닷새나 남았는데/땡겨먹은 외상값은 쌓여만 간다/(중략)/잠이 깬 정씨가 바다 쪽으로 부스스 괴타리를 푼다/힘없이 오줌이 옆으로 날린다"('여수' 중)는 시에도 '떨림'은 있다. 시인은 바람에 사선으로 흩날리는 가난한 늙은 노동자의 '오줌발'에도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 이후 19년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 김 시인은 "1990년대초 '노동해방문학'지 사건으로 수배 중일 때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잃어버린 이후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운동권 시인'으로서 1970-80년대를 헤쳐왔다. 6월 항쟁이 일어난 해 첫 시집을 내놓은 뒤 오랜 기간 시적 발언을 멈춘 것은 이후 전개된 '혁명'과 '이념'의 쇠퇴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그는 "첫 시집을 내기까지 7-8년간 '아름다운 것'과 '옳은 것'을 놓고 이미 내적으로 고통을 겼었다"고 말했다. 문학청년시절 서정주와 김춘수를 통해쌓은 시적 교양을 1970년대 김수영과 신동엽의 참여시, 민중시와 융화시키지 못해 겪은 고통이었다.
"시에서 멀어졌던 1990년대에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문학의 한 고비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1970-80년대 민중문학과 노동문학의 강박에서 벗어났으니까요. 그러면서 시는 크고 요란한 제스처가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섬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첫 시집을 내기까지 시쓰는 일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으나 이제 얼마간 자유로워졌다"면서 "2000년대 들어 그동안 메모해 놓았던 것들을 정리해 발표하기 시작했다"고 작품활동을 재개한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작이 자랑은 아니지만 어떤 시들은 10년이나 15년간 매만지다가 간신히 시꼴을 갖춰 이번 시집에 넣었다"고 덧붙였다.
"스타킹 속에 든 그 새끼발가락을 우연히 보게 된 순간, 나는 술이 번쩍 깼다. 눈 내리깐 채 몸의 제일 후미진 구석에 엎드려 있는 그것은 백만년 인류사를 배경으로 갖는 것이어서, 애잔하다거나 안쓰럽다거나 하는 따위의 감상적 형용으로는 감히 어리댈 수 없었다"('새끼발가락과 마주치다' 중).
한때 이념의 세계를 고공비행했던 시인의 눈길은 이제 인간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꼼지락거리는 새끼발가락으로 내려앉아 있다.
시인은 "자유로워져서 이런 시도 쓴다"면서 "시나 예술이 세상과 사물에 대해 할 수 있는 노릇은 구체적인 것을 정성껏 모시고 대속(代贖)하는 것"이라고 시인관을 밝혔다. 그러면서 "성경에 있는 '하느님 보기에 좋았더라'는 말처럼 사람들의 갈채보다 풀과 돌들도 수긍할 수 있는 시여야 한다"며 "내 시에서 어설픈 허세나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스스로를 낮췄다.
그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마이너스 공간에서 반(反)물질을 소비하며 그들은 있다/아닌 공간의 그들을 인 공간에서 보면/없다, 떼먹은 공간을 변제하고 그들은 없어야 한다/그러므로 그들의 현재는 오직 게워냄에 있다 제 안을 밖으로/뒤집는 데 있다/(중략)/우리는 그들의 내장 위에 붙어 있다/우리는 그들이 게워낸 공간 안에 다시 게워져 있다/우리는 그들의 항문을 지나 그 다음에 있다"('노숙 2' 중).
공간과 시간을 몰수당한 노숙자의 헐벗은 내부에 세계의 진실이 있다고 말하는 이 시는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의 음성 그대로이다. 시인은 대속을 통한 영혼의 정화, 내부로부터의 혁명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김 시인은 "문학적으로 창비나 자실(자유실천문인협의회ㆍ작가회의 전신) 등에서 활동했지만 사납고 거칠게 시를 다뤄본 적은 없다"면서 "문학에 대해 이쪽이다 저쪽이다 하는 이념적 구분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시인은 2000년 봄부터 노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불교방송 심야 라디오프로 '살며 생각하며'(오후11시-새벽1시)를 진행하고 있다.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건강이 나빠져 2년간 중단했다가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80-90세된 노인이나 시각장애인 청취자들과 대화하면서 삶에 대해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chuuki
ckch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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