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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지], 詩的 地理志 / 금강산  

<詩的 地理志·금강산>  
바람과 새들의 길을 넘어, 너에게 나를 보낸다

                                                                                              이  향  지

 '해동 삼천리의 명산이 어데메요 / 백두산 나린 맥이 팔도에 펴있것다 / 도봉 삼각 둘러들어 왕도가 되야 있고 / 평안도 묘향산과 황해도 구월산과 / 전라도 덕유산과 무등산 월출산과 / 경상도 지리산과 태소백(太白,小白)도 명산이요 / 충청도 계룡산은 속니산 내룡이요 / 제주 한라산은 해즁(海中)의 스음(섬)이라 / 회양 철령 고든 맥이 관동으로 나려와서 / 천리 장산이 사방의(을) 막았스니 / 그중 금강산이 일국의 제일이라/…'
                               ―이상수(李象秀·1820-1882, 호는  오堂),「금강별곡」

 한반도의 모든 산이 다 그렇듯이, 금강산도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과 숨결을 같이해 왔다. 금강산 부근은 일찍이 맥의 땅이었고, 다음은 고구려, 다음은 신라, 고려 뒤엔 조선에 속했다. 통한의 식민지 시절엔 타민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지금은 분단된 국토의 북부에서 우리의 애환을 함께 겪고 있다.

 맑은 날 설악산에만 올라도 금강산은 보인다. 대청봉이나 귀때기청봉에서 북북서쪽을 보라. 동쪽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는 산줄기. 설악의 등뼈인 공룡능선 너머엔 신선봉과 마산이 있고, 그 너머엔 향로봉과 건봉산이 있다. 향로봉과 건봉산 줄기 너머에, 울룩불룩 스카이라인을 이룬 산이 바로 금강산이다.

    北望山皆骨   북쪽을 바라보니 산은 다 뼈뿐이고  
    東臨海不潮   동쪽을 굽어보니 바다엔 조수의 들고남이 없네
      ―신응시(辛應時·1532-1585, 호는 白麓)
 
 산 많은 우리 나라. 골골 마다 명산인데, 유독 금강산에만 '그리운―' '아름다운―'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금강산의 재료와 자태와, 자연 조건이 독특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신비감을 더하기 때문이다.

 '내가 본 바와 들은 바를 참고하면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은 순전히 돌봉우리·돌구렁·돌내[川]·돌폭포이다. 봉우리·묏부리·구렁·샘·못·폭포가 모두 돌이 맺혀서 된 것이다.  이 산의 딴 이름은 개골(皆骨)인 바, 이것은 한 치의 흙도 없는 까닭이다. 이에 만 길 산꼭대기와 백 길 못까지 온통 하나의 돌이니, 이것은 천하에 둘도 없는 것이다.' 이중환(李重煥·1690-1756, 호는 淸潭)은 택리지(擇理志)에서 이 같이 썼다. 천하제일 금강산!

 금강산의 뼈대를 이룬 바위들은 대부분 흑운모화강암(黑雲母花剛岩)과 반상화강암(斑狀花剛岩)이어서, 빛의 방향에 따라 눈처럼 희게도 보이고, 금색이나 은색으로도 보이고, 푸르거나 보랏빛으로도 보이고, 검게도 보인다. 정철(鄭 澈·1536-1593, 호는 松江)은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금강산 바위 빛과 그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를 이렇게 아울렀다.

    은 같은 무지개며 옥 같은 용의 꼬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때는 우레더니 와서보니 눈(雪)이로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바람이 밀고 오는 구름의 양과 흐르는 방향에 따라, 바위와 나무를 적시고 골짜기를 뛰어내리는 수량에 따라, 산비탈과 등성이를 물들이는 꽃과 잎새들의 빛깔과 표정에 따라, 뜨는 해와 지는 해, 달빛과 별빛의 함량에 따라, 그때 그 풍경과 하나가 되어버린 사람의 마음의 형상에 따라, 험상궂게도 부드럽게도 희게도 검게도 보이는 산빛! 금강산의 바위들! 이만부(李萬敷·1664-1732, 호는 息山)는 지행록(地行錄)에서 다음과 같이 그렸다.
 
 '꼿꼿하게 선 것, 비스듬히 누운 것, 세로 선 것, 가로지른 것, 둥근 것, 모난 것, 길쭉한 것, 얼굴을 맞대고 선 것, 울룩불룩하게 솟아오른 것, 한 무더기로 거대한 군락을 이룬 것, 아웅다웅 성이 나서 다투는 듯한 것, 굽어보는 것, 우러러보는 것, 반듯이 누워 되돌아보는 듯한 것, 뛰어오르며 공중으로 발길질하는 듯한 것, 엎드려서 하소연하는 듯한 것, 벌떡 일어나 말다툼하는 듯한 것, 춤추는 듯, 웃는 듯, 성난 듯한 것들이 모두 금강산 바위에 관한 것들이다.'  

 대지의 살을 훌훌 벗어버린 금강산 바위들에는 이처럼 만물의 형상과 빛깔이 깃들어 있다. 1천만년 전 지각을 뚫고 솟구치던 때의 뜨거운 포효를 그대로 간직한 채, 맨머리 맨몸 맨발로 삭발의 세월을 겪고 있는 곳. 꽃 피고, 잎 피고, 눈 내리고, 비 내리는 시간 속에서, 선 채로, 앉은 채로, 눕거나 엎드린 채로, 영원을 건너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금강산이다.

  雪立亭亭千萬峰   높고 높은 천만 봉이 눈처럼 흰빛으로 섰으니,
  海雲開出玉芙蓉   바다의 구름이 옥 같은 연꽃을 열어놓았네.
  神光蕩 滄溟闊   신령한 빛이 출렁거리니 창해(滄海)가 가깝고,
  淑氣  造化鍾   맑은 기운이 꿈틀꿈틀 조화가 모이도다.
  突兀岡巒臨鳥道   우뚝 높이 솟은 언덕과 봉우리는 새들의 길에 임하고,
  淸幽洞壑秘仙    맑고도 그윽한 골짜기는 신선의 자취를 감추었네.
  東遊便欲凌高頂   동쪽으로 노닐어 문득 그 높은 정상에 올라,
  俯仰鴻 一 胸   홍몽(鴻 )을 굽어보며 가슴 한번 시원히 씻어볼까.
     ―권근(權近·1352∼1409, 호는 陽村), 명황제에게 바친 응제시,「금강산」

'금강산은 장양현 동쪽 30리에 있다. 회양부를 167리에 거쳐 걸쳐 있다. 이 산의 이름은 다섯 가지가 있는데, 금강(金剛), 개골(皆骨), 열반(涅槃), 풍악(楓嶽), 기달(  )이며 백두산의 남쪽 줄기이다. …이 산은 대개 일만 이천 봉이라고 하는데 바위가 우뚝하게 뼈대처럼 서서 동쪽으로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삼나무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바라보자면 그림과 같다.' 동국여지승람 회양편 산천조에 있다. 그림 같은 금강산!

  草木微生禿首髮   풀과 나무가 조금 나서 벗겨진 머리에 터럭 같고,
  煙霞半捲袒肩衣   연기와 놀 반만 걷히니 어깨 드러낸 가사 같네.
  兀然皆骨獨孤潔   우뚝 높은 봉우리 뼈뿐인지 홀로 외롭고 깨끗하나니,
  應笑肉山都大肥   마땅히 육산들의 살찌고 크기만 한 것을 웃으리라.
        ―전치유(田致儒·고려 때의 문신, 호는 十口子), 「金剛山」

 금강산은 일찍부터 다양한 계층의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에, 봉래, 개골, 금강, 풍악, 기달, 지달, 열반, 중향 등 세간과 문헌에 전하는 이름만 들어도 8∼9가지나 된다. 성해응(成海應·1760-1839, 호는 昌山)은 우리나라의 명산승수(名山勝水)를 기록한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금강산은 동해 가에 있다. 이 산의 이름에는 여섯 개가 있는데, 개골(皆骨), 풍악(楓嶽), 열반(涅槃), 지달(枳 ), 금강(金剛), 중향(衆香)이 그것이다, 개골이라고 하는 이름은 이 산의 돌이 흰 것을 들어 말한 것이며, 풍악이라는 이름은 이 산에서 나는 산물을 들어 말한 것이다. 열반, 지달, 금강, 중향은 모두 선가(禪家)의 용어들이다.'했고, 조선조 철종 때의 학자 윤정기(尹廷琦·1814-1879, 호는 舫山)는 동환록(東 錄)에서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기달, 가을은 풍악, 겨울은 개골(春曰金剛 夏曰   秋曰楓嶽 冬曰皆骨)'이라 계절과 연관시켜 부른다 했다.
 '개골(皆骨)'이란 이름은 신라 마의태자의 고사와 함께 삼국사기에 처음 나오고, '풍악(楓嶽)'이란 이름은 진표율사의 행적을 새긴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의 내용과 함께 삼국유사에 처음 나온다. '봉래(蓬萊)'는, 상악(霜岳), 선산(仙山)과 함께 신선사상과 관련된 이름이다. 봉래란 쑥(蓬)과 명아주풀(萊)을 가리키는데, 지금도 내금강 구성동 계곡 아래는 쑥밭, 즉 봉전(蓬田)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이중 '蓬萊山'은 도교의 신선사상에 연원을 둔 이름으로,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州山)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삼신산은 '늘 구름에 싸여 있으며, 물이나 새와 짐승이 모두 눈처럼 희고 관궐(官闕)은 모두 황금과 은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누구나 동경하는 산이다. 이 산의 동쪽 바다 속에는 신선이 살고 있으며, 산에는 신령스러운 불로초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들 중 삼신산은 지리산(방장산), 한라산(영주산), 금강산(봉래산)이다.
 '금강(金剛)'이란, '가장 견고한 무기'라는 뜻이며, 범어(梵語)로는 바쥬라(Vajra)라 한다. 제석천(帝釋天)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바로 이 금강이어서 어떤 것에 의하여도 깨어지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으므로 불경(佛經)의 금강견고(金剛堅固)·금강심(金剛心)이란 말도 이러한 뜻에서 생겨난 말이다. 단단하고 깨어지지 않는 굳은 마음, 즉 모든 번뇌를 깨트리는 보리심(菩提心)을 상징한다. '동쪽 바다 한 가운데 금강이란 산이 있다'는, 화엄경의 내용은 아무 것에도 깨트려지지 않는 금강심(金剛心), 즉 보리심(菩提心)을 상징하는 것이지, 우리나라의 금강산을 지칭한 것은 아니다.

    壯哉楓嶽山   장하구나 풍악산
    載然高屹屹   높이도 솟았구나
    幾經風與雨   몇 번이나 비바람 겪어왔던가
    脊梁長不屈   푸르른 네 등줄기 굽지 않았고
    幾經雪與霜   몇 번이나 눈과 서리를 겪어왔던가
    落落扶天立   우뚝한 그 기상 하늘을 이고 서있네
―휴정(休靜·1520-1604, 속명은 崔汝信, 호는 淸虛, 별호는 西山大師, 楓嶽山人), 「楓嶽山」

 '금강산의 지형은 약 1천만년 전인 신생대 제3기 이후에 진행된 경동성요곡운동(傾動性 曲運動)으로 형성된 경동지괴(傾動地塊)이다. 금강산의 뼈대를 이룬 흑운모화강암과 반상화강암은 겉보기에는 치밀한 것 같아도, 절리(節理)가 발달하기 쉽고 침식을 받기 쉽다. 금강산 주능선을 따라 남북으로 달리는 대단층선(大斷層線)의 동쪽은 수백m나 되는 급사면(急斜面)을 이루고, 절리방향에 따라 암주(岩柱) 암벽(岩壁) 암대(岩臺) 암봉(岩峰)들이 생겨서 그 모습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한국지지(韓國地志)」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암주 암벽 암대 암봉들의 집합처인 금강산! 동행산수기(東行山水記)를 남긴 이상수는 다음과 같이 찬탄했다. '조화의 힘이 돌 하나에도 이렇게 크단 말인가? 이것을 만들 때, 풀무는 누가 마련했고, 화로는 어디에다 걸었으며, 몇 달 몇 해나 걸려서 공사를 이루었는가?'

   松松栢栢岩岩廻   소나무소나무, 잣나무잣나무, 바위바위 돌아드니
   水水山山處處奇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이하다
                  ―김병연(金炳淵·1807-1863, 자는 蘭皐, 별명은 김삿갓)

 아무리 기이하고 빼어나다한들 바위만 있어서야 어찌 산이겠는가! 한반도의 중부에 해변에 위치한 금강산은 아한대식물과 온대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는 거대한 식물원이다. 자생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만도 940여종. 이중 꽃이 피어 열매로 번식하는 현화식물만도 880여종이다. 이처럼 풍부한 먹이사슬의 영향으로 금강산에는 새, 사슴, 다람쥐, 등 다양한 동물들도 깃들어 살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동식물 군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금강산 곳곳에 토양이 좋은 흙산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금강산은 대륙성기후와 해양성기후의 중간지대에 놓여있어서, 비와 눈이 많이 내린다. 금강산에 이름난 폭포와 담(潭), 연(淵)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봄 능선의 진달래, 가을 암벽을 장식하는 단풍, 줄기가 곧고 붉으레해서 눈 깊은 겨울에 더 돋보이는 미인송. 맛좋기로 유명한 잣송이들을 생산하는 잣나무 등은 금강산이 자랑하는 식물들이다.

   乾坤旣開闢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나서야
   上下分於斯   이에 위와 아래가 나누어 졌네
   中間萬物形   그 중간에 만물의 형태 있지만
   一切難可名   일체의 이름을 붙이질 못해
   水位天地血   물이란 천지의 피가 되었고
   土成天地肉   흙이란 천지의 살이 되었네
   白骨所積處   흰 뼈가 쌓이고 쌓인 곳에는
   自成山     험하고 가파른 산이 절로 이루어졌으니
   特鍾淸淑氣   맑고 고운 기운이 모인 이 산을
   各之以皆骨   이름하여 '개골'이라 붙여놓았네
        ―이이(李珥·1536-1584, 자는 叔獻, 호는 栗谷)

 금강산은 남북으로 뻗어있는 주능선 분수령을 경계로, 바다 쪽인 동쪽을 외금강(外金剛), 내륙 쪽인 서쪽을 내금강(海金剛), 바다 쪽 경관을 한데 묶어 해금강(海金剛)이라 부른다. 조선조 말까지도 '內山' '外山'으로만 가름하여 불렀으나, 일제강점기에 금강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금강산의 구역들도 세분화되었다. 외금강 중에서도 채하봉 남쪽을 신금강(新金剛), 오봉산∼수정봉 능선의 동북쪽 절경을 별금강(別金剛)이라 불러, 신계천과 온정천 상류의 외금강과 구분했다. 현재 북한은 별금강, 신금강이라는 명칭을 일제의 잔재라 하여 쓰지 않고, 만폭동구역, 온정구역, 구룡연구역 등, 지역과 명소 위주로 더욱 세분화하여 부르고 있다. 금강산은 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내륙 쪽인 금강군은 분단 전에는 회양군 장양면에 속하던 지역이다.
 그러나 비로봉, 그 돌올한 산정에 서면, 구구한 이름들의 경계는 사라져버린다.  

 萬象을 / 굽어보기란―// 무릎이 / 오들오들 떨린다.// 白樺 /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정말 구름이 / 비가 된다.// 옷자락이 / 칩다.// (1937.9.)
  ―윤동주(尹東柱·1917-1945, 광명중학 5학년, 수학여행 때 쓴 시),「毘蘆峰」

 금강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특히 여름날씨, 그 중에서도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1,638.2m) 일대에서 펼쳐지는 구름과 바람의 장난은 애간장을 태울 정도로 변덕스럽다. 그러나 그 산을 찾은 자 그 산정을 밟지 않고는 진실로 그 산을 올랐다 못할 것이다. 1921년 여름 그의 부인과 함께 천지분간이 안될 정도로 깊은 구름을 뚫고 '금사다리은사다리'를 통해 비로봉에 올랐던 춘원 이광수도, 천지창조시의 혼돈 같은 바람과 구름이 걷히고, 눈 아래 잠시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습이 돋아날 때, 오름길에서의 신고(辛苦)를 말끔히 잊고, 아! 나는 보았다!는 희열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금강산 대자연과 풍운의 조화 앞에 한없이 겸손한 찬사를 바친다. '아아 아모리하여도 비로봉의 절경을 글로 그릴 수는 없습니다. 아마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을 것이외다. 몽상외엣 광경을 당하니 다만 경이와 탄미의 소리가 나올 뿐이라 내 붓은 아직 이것을 그릴 공부가 차지 못하였습니다.…'

   山上有山天出地  산 위에 산이 있으니 땅이 하늘에서 나오고
   水邊流水水中天  물가에 물이 흐르니 물 가운데 하늘이 있네
                 ―양사언(楊士彦·1517-1584, 호는 蓬萊), 「금강산」

 금강산에는 물과 바위와 수림이 어우러져서 펼치는 자연의 향연이 상존한다. 외금강의 대표적인 명소들로는 팔선녀와 나뭇꾼의 전설로 유명한 상팔담(上八潭), 상팔담 아래 있는 구룡폭포(九龍瀑布·높이 74m), 구룡폭포와 한쌍을 이룬 구룡연(九龍淵·깊이 13m), 세존봉   바위 절벽을 날아 내리는 비봉폭포, 날개 펼친 봉황을 보는 듯 하다는 무봉폭포, 집선봉 그늘의 선하골, 동석골. 발연사가 있던 바리소골 등이 신계천 상류에 있고, 금강산 탐승의 제1승으로 치는 만물상은 외금강 중에서도 온정천 상류에 있다.
 외금강 중에서도 채하봉 남쪽 기슭에는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 구룡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폭포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십이폭포(十二瀑布)가 있는데, 이 폭포는 아무 곳에서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폭포 남쪽에 있는 은선대(隱仙臺)나 불정대(佛頂臺)라는 암봉에 올라가야만 보인다.

 '一瀑이 잇으랴면 반다시 큰 바위 하나이 있서야하니 萬瀑이 잇스랴면 萬岩이 잇슬 것이외다. 一瀑이 떠러지매 반다시 한 소리가 나니 萬瀑이 떠러지면 萬聲이 날 것이외다.'
       ―이광수(李光洙·1892-?, 호는 春園), 「金剛山遊記」

 내금강의 자랑은 단연 만폭동(萬瀑洞)이다. 내금강의 관문인 내강리에서 만폭동으로 들어가는 길은 만천(萬川)을 거슬러 오르게 되어있는 데, 그 동쪽에는 금장암터가 있는 금장동, 명경대와 황류담 등을 품고 있는 백천동, 판상 절리를 이룬 자연석들이 다보탑, 무명중탑 등, 무수한 탑을 쌓아놓은 백탑동, 와폭이 아름다운 수렴동, 명부의 판관들로 상징되는 시왕봉(十王峰)이 버티고 있는 영원동, 망군대와 혈망봉, 수왕성 등으로 이어지는 송라동 등이 있고, 만천의 서쪽에는 장안사터, 표훈사, 정양사, 등이 있다. 금강산은 한때 108개의 사찰이 있었을 정도로 한국 불교의 중흥지였다. 6.25동란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금강산 곳곳에는 절터와 석탑, 부도, 마애불 등이 남아 옛 영화를 되새기고 있다.
  표훈사를 지나 '금강문'이라 부르는 좁다란 자연 석문을 끼어나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름하여 '蓬萊楓嶽元化洞天'. 봉래 양사언의 글씨는 금강대 아래 너럭바위에 남았으나 비바람에 깎여서 희미해졌다. 내금강에는 외금강처럼 규모가 큰 폭포는 없으나, 놀란 물길이 휘돌고 날아내리는 구비마다 아름다운 폭포와 담을 펼쳐놓았으니, 청룡담, 백룡담, 흑룡담, 벽파담, 분설담, 진주담, 구담, 선담, 화룡담 등이다. 외금강 구룡연 상류의 상팔담과 견주기 위해 내팔담(內八潭)이라 이름하였으나 실제로는 아홉이다. 하나가 더 있는 것은 외금강의 상팔담에 구룡연을 더 보태서 아홉을 채운 것과 같다. 물은 곧 '陰'이니 아홉 '九'자 '陽數'를 곁들임으로써, 천지음양의 조화를 꾀한 흔적들이다.
     
此是人間白玉京   이곳이 인간 세상의 백옥경 아닐런가
琉璃洞府衆香城   유리로 꾸민 골짜기 안에 중향성이 솟았구나
飛流萬瀑千峰雪   만폭은 날며 흐르고 천봉은 눈빛인데
長嘯一聲天地驚   긴 휘파람 한 소리에 하늘과 땅도 놀라는 듯
         ―유정(惟政·1544-1610, 호는 四溟堂), 「만폭동」
   
 만폭동은 내금강의 안방같은 곳이면서 수미동, 비로봉, 내무재령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만폭동 법기봉 절벽 천연 동굴에 잇대어 지은 보덕암은 금강산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아름답고, 비로봉 남쪽의 중향성은 주상절리를 이룬 바위들이 창날처럼 도열해 있는 것이 성곽을 펼쳐놓은 것 같아서, 외금강 만물상보다 더 빼어나다. 중향성(衆香城)은 동해 가운데에서 부처의 설법을 듣는 담무갈 보살에 비유된다. 금강산이 일만 이천 봉이라는 것도 담무갈 보살과 관련된 숫자라 한다. 이외에도 금강산 아래 동해안에는 해금강, 해만물상, 총석정, 금란굴, 동정호, 천아포, 시중호, 삼일포, 영랑호, 감호 등 관동의 명소들이 즐비하다. 금강산은 그 언저리까지 도처에 기경(奇境)이다. 또,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물길 가운데 놓여있는 웅덩이마다 제 각각 한가지 이상씩의 사연들을, 전설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금강산이다.

   有眼只許膽丘     눈 있어도 고작해야 언덕이나 보고,
   有脚不得過門     발 있어도 숫제 문턱을 못 넘지마는,
   平生幸我有兩耳    평생에 나는 다행히 두 귀가 있어,
   勝地曾聞有異說    승지(勝地)의 이설(異說)을 일찍 들었네.
   金剛山高鎭東溟    금강산이 동해 가에 높이 자리 잡은 건,
   巨靈欲補坤維缺    거령(巨靈)이 땅의 결함을 기우려는 것.
   靈 神跡富恢奇    거기는 영종(靈 ) 신적(神跡)이 하도 많아서,
   更僕未窮談者舌    무궁한 이야기를 사람이 번갈아 들어도 이루 다 할 수 없네.
   行窮林麓始見山    가다가 숲 끝에서 문득 보이는 산,
   群巒 素 如雪    희디흰 봉우리가 문득 눈 같이 흰데,
   爾時俗子發深省    그때에 속자(俗者)들이 깊은 반성을 발해,
   斷髮從思棄覇     머리 깎고 속세를 버릴 생각한다고〔斷髮嶺〕.  
   俄登拜岾覩眞容    이윽고 절재〔拜岾〕에 올라 진용(眞容)을 보고,
   敬禮毘盧頭角熱   비로봉(毘盧峰)에 경례하니 머리 뿔이 뜨겁네.
   ―강희맹(姜希孟·1424-1483, 조선 초기의 문신, 호는 私淑齋), 「送 一菴 歸 金剛山」

 금강산 부근에는 금강산보다 높은 산이 없어서, 멀리서도 보인다. 내륙 쪽 관문인 단발령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마치 한 송이 꽃 같다고 한다. 주변의 낮은 산들이 잎새처럼 이 산을 감싸고, 내금강 분지에 우거진 바위 숲이 새하얀 꽃잎 다발을 이루어 한 송이 부용처럼 떠올리기 때문이다.

 '동쪽을 향해 금강산을 바라보니, 눈길 머무는 곳마다 구슬 같은 은 같은 눈 같은 얼음알 같은 봉우리가 층층이 쌓이고 겹겹이 치솟아 하늘에 닿은 듯 하고, 그 하늘의 저쪽에는 더 바라 볼 동천(東天)이 없다.' 이만부는, 「金剛山記」에서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을 이같이 그렸다.

 또, 산이 그다지 높지 않고, 산 안에 절이 많아, 산 안에 머물면서 구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그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다. '원래 산이나 물은 제 스스로가 신령스러울 수가 없다. 사람이 보고 느낌으로서 비로소 그 아름다운 풍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고종 때의 문신 이상수가 '동행산수기(東行山水記)'에서 밝힌 말처럼 금강산의 아름다움도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말과 글과 그림과 노래를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원컨데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고싶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는 옛 중국인의 시구는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100년 전 조랑말을 타고 이 산을 다녀갔다. 그녀는 "대협곡은 너무도 황홀하여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이다"했고, 1926년에 이 산을 다녀간 스페인의 구스타프 국왕은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엿새 중 하루는 금강산만을 만드는데 보내셨을 것이다'고 예찬했다.
 최남선(崔南善·1890-1957, 호는 六堂)은「金剛禮讚」에서 '산도 많고 명산도 많습니다. 그러나 금강산처럼 온갖 조건이 구비하고 또 인류의 희기(希期)할 줄 모르는 데까지를 미리 배포하야 가진 경승은 과연 세계에 둘도 없는데, 이 하나밖에 없는 조화의 기적이 조선에 있게 된 것은 생각하면 아슬아슬한 우리의 행복인 동시에 알뜰살뜰한 천(天)의 은총입니다.'고도 극찬하기도 했다.

   泰山在後天無北  큰산이 뒤를 받치니 북쪽 하늘이 사라지고
   大海當前地盡東  큰 바다가 앞을 가리니 동쪽 땅이 다하였구나
   橋下東西南北路  다리 아래론 사방으로 뚫린 길이요
   杖頭一萬二千峯  지팡이 위에는 일만 이천 봉일세
       ―김병연(金炳淵·1807-1863, 자는 蘭皐, 별명은 김삿갓)

 이밖에도 수많은 문사와 화가들이 저마다 금강산을 예찬했으니, 금강산이 우리의 근세 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다. 이곡, 안축, 권근, 남효온, 이황, 이이, 김병연, 휴정, 유정, 양사언, 정철, 등 역대의 내노라하는 문사들이 금강산을 소재로 남긴 시가가 무릇 기하이며, 유산기문학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유람기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또 금강별곡, 금강완상록 등, 한글로 씌어진 가사(歌辭)들은, 필자 미상의 꼬리표를 달고 수많은 필사본을 탄생시키기도 했고, 금강산 골골 마다 서려있는 전설들은 구비문학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림들도 부지기수다. 겸재 정선, 김홍도, 김응환 등, 화가들이 남긴 그림들, 금강산에 남아 있는 불교 유물들, 민요, 동요, 가곡, 등…. 단일 자연물에 대해 금강산만큼 많은 글과 그림이 탄생한 예는 동서고금에 없었다.

  穿石披雲一履輕   구름 헤치며 돌길 밟는 이 걸음 가벼워라
  金剛秀色正秋淸   때마침 가을이라 금강산이 돋보이네
       ―유태좌(柳台佐·1763-1837, 호는 鶴棲), 「萬物草路中」

 그러나, 금강산은 아직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저쪽에 있다. 가까운 육로를 모두 닫아두고 바닷길이 열려도, 극히 제한된 구역을 둘러올 수 있을 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우리의 현실도 어렵다. 한쪽은 달러를 벌고 한쪽은 구경을 하러 가는 한민족의 처지도 우습고 씁쓸하다. 그러나 우리는 가야한다. 가자! 길이 있다면 가서 걸어보아야 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왜 그토록 금강산에 미쳤는가? 가공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숨소리 발소리 심장과 귀에 담으며, 비바람구름안개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풍경과 희열은 비록 멀다할지라도, 금강산! 금강산은 이제 단순한 관광의 대상이 아니라, 한반도의 허리를 조이고 있는 철조망을 걷어낼 희망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금강산! 바람과 새들의 길을 넘어, 너에게 나를 보낸다!

※참고문헌:『신증동국여지승람영인본(명문당)』,『택리지(擇理志·이중환著·이익성譯·을유문화사)』,『동국명산기(성해응著·서울대 규장각 도서)』,『동문선(東文選·고전국역총서)』,『지봉유설(芝峰類設·이수광저·남만성역,을유문화사)』,『지행록(地行錄·이만부著·이창섭譯,목란문화사)』,『율곡선생의 금강산 시(정항교역해,이화문화출판사)』,『송강·노계·고산의 시가문학(박성희著·현암사)』,『한국도서해제(韓國圖書解題·경인문화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정신문화연구원)』,『세계백과대사전(학원사)』,『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이동주지음·시공사)』,『한국현대수필집 자료총서(태학사)』,『조선 중기의 유산기 문학(이혜순·정하영·호승희·김경미共著·집문당)』,『삼국사기(三國史記·이재호譯·광신출판사)』,『삼국유사(三國遺史·이재호譯·광신출판사)』,『한국지지(韓國地志·건설부,국립지리원)』,『북한의 관광자원(한국관광공사)』,『금강산관광 개발전략(한국관광공사)』,『북한지지요람(통일부)』,『지질학개론(정창희著·박영사)』,『코레아Ⅰ,Ⅱ(H·라우텐자흐著·김종규,강경원,손명철共譯·민음사)』,『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사벨라 버드 비숍著, 이인화옮김·도서출판 살림)』,『윤동주평전(송우혜지음·세계사)』,『윤동주전집(오상출판)』,『금강산문학자료선집(노규호역·국학자료원)』,『금강산 한시집(리용준역·한국문화사)』,『월간山(조선일보사)』,『금강산은 부른다(이향지·조선일보 단행본팀共著·조선일보사)』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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