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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번째 시집 '영혼과 가슴' 낸 김남조
열다섯번째 시집 '영혼과 가슴' 낸 김남조
"슬픔은 하룻밤 촛불 아닌 수십년 가슴에 새기는 것"
‘구원을 통해 사랑의 지평을 확장해온’ 원로 시인 김남조(金南祚)가 등단 반세기를 넘기고 열다섯 번째 시집 ‘영혼과 가슴’(새미刊)을 냈다. 25일 서울 효창동 자택 2층.
―첫시집 ‘목숨’이 나온 지 51년 만입니다.
“그렇지요. 그때가 1953년이네요. 작년엔 50주년 기념으로 시선집 ‘사랑초서와 촛불’을 냈고요.”
―이번처럼 등단 50년을 넘겨 신작 시집을 내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요?
“아닐걸요. 서정주 선생도 2000년 15번째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를 등단 반세기를 한참 넘겨 내셨잖아요.”
―이번 시집에서 한 편만 골라 읽으면서 자전 해설을 해주시겠습니까?
“음, ‘사막’이란 시를 보지요. ‘1 이리 심각한 사나이는 처음 본다/ 천지개벽 이래 하느님처럼 혼자 살아온 옹고집 독신남자/ 그 뻑신 남자의 기를 모랫바람에 스륵스륵 칼날 벼르며 스스로도 전율하다니// 2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고요를 이에 뵈옵느니/ 초월과 영원성/ 그 상류층 혈통의 맏형님을 이에 뵈옵느니// 순교 후에 또 순교하는 단두대와 이슬 내음의 기다림을 이에 뵈옵느니’(전문)
네바다 사막엘 가보니 수천 수만년의 고요가 그대로 있습디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산소와 양분은 태곳적 적멸입니다. 정온(靜穩)이지요.”
―정온요?
“이 세상에 처음으로 완성된 고요라는 뜻이에요.”
-네바다 사막엔 언제 다녀오셨습니까? 사막에 관한 시를 계속 쓰시겠습니까?
“5~6년 전에 갔다 와서 연작시를 쓰려고 사막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사 두었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쓸 게 아니다 싶네요.”
―독신남자를 시 안에 끌어들이신 이유는요?
“존재의 단독자로서 숙명과 유구한 기다림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시를 고르라면요?
“‘노을’을 볼까요. ‘봄 한철 사람 하나가 몹시 사랑스러웠음이 깊은 죄가 아니라면/ 여름과 가을, 가능하면 겨울에도 황홀한 어질머리 이대로 이대로/ 선주홍 염료알갱이들이 가룻발로 분해되어 온 하늘에 자욱하길 빌지니라// 불빛 돋우려 말고 으스름 밝음이나마 오래오래 불 혀이길 빌지니라’(전문).”
―참 안온하네요.
“내가 쓰는 시와 중견시인이나 신인의 몫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폭발적 역동성, 건강성, 열정 등으로 감탄을 자아낸다면, 나는 촛불 10개를 한꺼번에 켜지 않고, 촛불 하나씩 열 번을 켜는 시를 쓰겠습니다. 예전엔 나의 언어는 ‘불행히도’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제 나의 언어는 ‘다행히도’ 위험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말할 수 없는 피로에 싸여 있습니다. 그것을 어루만지고 위안해야죠.”
―엊그제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김선일씨를 생각합니다.
“슬픔이라는 것은 수십 년 가슴에 새기는 것이지 하룻 저녁 촛불 켜고 끝나고 밥 먹고 내일 또 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될 큰 방향과 명분 중에 일어난 아픈 상처입니다. 양심에도, 이 시대의 역사에도 큰 수치입니다.”
―선생님의 첫 시집이 피란지 부산에서 나왔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이 6·25입니다.
“그때 연합군이 안 들어왔으면 우리는 지금 거대한 노예집단이 돼 있을지도 몰라요. 젊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하겠지요.”
―선생님은 남들 다 하는 정치 얘기를 즐겨하진 않지만 그래도 원로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특별한 무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가요? 천도(遷都) 얘기도 그래요. 낙도에 병원 짓기, 결식 아동 먹이기, 홍수 대비 사방공사 같은 게 더 급한 게 아닌지요. 문화의 돌은 ‘거기에’ 있어야 이끼가 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의 진실에 순교하는 것입니다. 저도 목숨 걸고 시를 씁니다. 이 시대는 집단 행위가 너무 많아요. 단독자의 삶이 없어요. 사색하는 자의 모습, 고뇌하는 자의 모습, 자기와 자기의 양심이 대결하는 모습, 친구를 사랑할 때조차 스스로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집단 흥분은 가치가 없습니다.”
요즘도 월간 계간 문예지에 활발하게 시 발표를 하고 있는 김 시인은 “살수록 살아볼 만하다는 삶의 긍정이 생긴다”고 말했다. 영화도 자주 본다. 최근 용산 전자랜드에 가서 ‘트로이’와 ‘투모로우’를 봤는데, “고금의 훌륭한 남자를 보여준 영화였다”고 말했다.
김광일기자kikim@chosun.com
입력 : 2004.06.25 17:27 07' / 수정 : 2004.06.25 22:45 14'
<펌/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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