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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적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편견
*다음 글은 시인 이성복 선생의 강의 내용을 '김상윤씨가 정리한 것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가시의 집'에서 옮겨놓았습니다.
시적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편견
- 이성복 (시인, 계명대 교수)
1. 시란 무엇인가? (시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지금까지 노마드(유목민)식으로 떠돌아 왔다는 느낌. 한마디로 시의 갈피를 못 잡음. 그것은 시의 속성 자체가 정의할 수 없는 잡탕밥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에는 양끝이 있는데 한쪽 끝은 아름다움(추상적 개념), 다른 한 끝은 진실, 참, 실체, 실상, 실제이다(시는 하이브리드 구조). 그 양 끝이 가장 진하게 다가오는 가운데에서 시는 가장 행복하다.
1)시가 아름다움 쪽으로 치우쳐 있을 때 의미는 희박해지고 기호 표현의 질서로서 음악만이 남는다. 순수시, 절대시, 비대상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의미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시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밤 사냥’(로르카)에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그 때 그 때 다가오는 짐승들을 발견하고 처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다시 비유하자면 미술의 스크래치 기법을 연상하면 좋겠다. 바탕 도화지에 갖가지 색을 칠해놓고 그 위에 검은 색을 덧칠하는 스크래치 기법은 크레파스를 긁어내는 가운데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기막힌 형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신기하기 짝이 없다. 무엇이 나올지 모른 채 놀이/행위에 열중할 수 있다는 데 이 작업의 즐거움이 있다. 시간의 측면에서 이런 시는 현재에서 순간순간 미래로 나가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는 순수시로서 의미자체가 불가능해진 시이다. 시의 내용이 난해하여 의미를 다 알지 못하면서도 왜 좋은지를 모른 채 그냥 좋은 시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순수시가 다른 나라보다 드물다. 현대시 전통이 일천해서인지 모르겠다.
2)시가 진실 쪽으로 치우친 경우,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는/숨겨진 것들에서 시적 의미를 찾는다. 이러한 시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봄으로써 나와 남을 불편하게 한다. 왜 불편한가? 진실이니까. 이 경우 의미의 엑기스, 강도와 자력이 최고도를 이루는 시가 된다. 일상에서 기초하되 일상 속에서 은폐되고 가려진 것들을 벗기는 것. 이 때는 현재에서 미래로 나가는 시가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로 나가는 시가 된다. 축적된 과거에서 진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숨겨진 보물찾기와 같다. 보물은 있을 법한 곳에는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무덤 속에 있고 시인이란 존재는 그 무덤을 파헤치는 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창작되고 있는 시들이 대부분 이런 계열이다.
1)이 음악성을 갖는 ‘언어의 춤’이라는 측면에서 귀에 봉사한다면, 2)는 관찰을 통한 진실 파악, 그를 위한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눈에 봉사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시는 1)과 2)의 가운데서 나타난다.
2. 시적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편견
우리는 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손이 분명히 해보다 작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으므로 ‘해보다 손이 크다’라는 착각을 한다. 시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 중에 하나가 비유가 많으면 시적이라고 착각하는 경우이다. 영화 'LONG SHIP'에서 잃어버린 황금종을 찾아 3년을 헤매다가 마지막으로 종이 있다고 하는 하얀 섬에 도달했을 때, 결국 거기서 발견한 것은 그 '섬 전체가 종'이란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시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비유의 비유, 시 자체가 비유인 경우다. 김소월의 시에 무슨 비유가 있는가. 하지만 소월의 시는 한 편의 시 자체가 곧 비유이다. 씨리한 비유를 쓸 바엔 쓰지 말아야 한다. 현실 자체가 황금종이며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곧 예술가이다. 시적인 수필을 쓰지 마라.
또 ‘체험을 많이 하면 좋은 시를 쓸 것이다, 감정이 풍부하면 더 좋은 시를 쓸 것이다’ 라는 편견이 있다. 시의 3요소는 작가, 대상, 언어인데 시가 시를 쓰는 사람 아래 있다는 착각을 갖는다. 말하자면 시인의 체험과 감정에 의해 좋은 시가 탄생한다는 것. 착각이다. 그러면 대상이 우위인가? 대나무를 바라보다 병이 났다는 왕양명의 '格物致知' 일화도 있지만 대상에 대한 치밀한 탐구가 곧 좋은 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시는 절대적으로 말에 있다. 말라르메도 시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말’이라고 했다. 말에는 온갖 현실의 오물이 묻어있다. 그러므로 말을 제대로 따라가면 현실은 저절로 드러난다. 말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말은 내시경이다. 이를 통해 ‘緣起’를 따라 간다. 말을 통한 발견이 필요하다. 시에서 웅변은 가장 저급한 것이다. 눌변이 좋다. 시에서는 말이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곧 말장난이다. 그러나 많이 드러난 말장난은 안 좋다. 말장난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말장난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 시보다는 시작 노트가 더 좋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시는 시작 노트 쓰듯이 써야 한다. 시를 쓴다는 의식 아래 시를 쓰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좋은 시를 쓸 수가 없다. 녹차는 첫물을 걸러 내고난 뒤 두 번째가 가장 맛있다. 이는 모든 운동의 원리가 된다. 골프는 ‘힘 빼는데 3년’이라고 한다. 테니스도 어깨와 손목에 힘을 빼야 원샷을 할 수 있다.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말이 움직이는 게 더 자연스럽다. 시를 쓰려고 하지 말고 시작노트 쓰듯이 써야 한다. 실제로 김종삼 시인의 <시작노트>라는 시는 그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가장 아름답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사물을 묘사할 때는 명함판 사진을 그리려 하지 말고 스냅사진을 그리도록 해야 한다. 스냅 사진이야 말로 한 순간 속에 '영원'이 들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명함판으로 봐서야 무슨 애틋한 느낌이 들겠나. 명함판 사진은 공적인 차원의 사회적 가면이다. 명함판이 가장 비시적이다. 로댕은 손의 표정을 기막히게 표현해내는 조각가인데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가 그런 작업을 한 것은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만 손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외국 명문 극단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연습을 하는 것은 손으로, 몸짓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다.
그런 차원에서 글을 쓸 때 문어로 쓰지 말고 구어를 써라. 밥해놓고 3일 지난 게 문어다. 구어 속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언어의 생생한 리듬이 있다. (베토벤의 일화; ‘내가 돈이 어디 있나, 이 사람아~ (♩♬♩)’ 이 가락이 유명한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시 쓸 때 말을 혀로 굴려볼 필요가 있다. ‘얼굴’이라는 말보다는 ‘상판떼기’가 훨씬 실감나지 않는가. 비어, 속어, 사투리, 은어는 시어의 보고이며, 구어는 곧 활어이다.
자신이 지금 시를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라. 피아노 소리는 피아니스트의 어깨를 보면 알 수 있다. 완전히 풀려야 한다. 힘을 빼려고 하면 더 힘이 들어간다. 잡생각을 지우려면 다른 걸 채워야 한다. ‘마음을 비웠다’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비우려면 채워야 한다. 자신에게 말하듯이, 사랑하는 이에게 하듯이, 기도하듯이 말을 하라. 결국 머리가 몸을 뻣뻣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들은 모든 예술에 통한다. 예술에 통하는 것은 곧 스포츠에 통한다. 곧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시를 살필 때 좋은 시인가 왜 좋은 시가 아닌가 가늠할 수 있는 10가지 원칙
1)프랑스 고전극의 원칙 ① 시간의 단일성
② 장소의 단일성
③ 사건의 단일성
(위 세 가지를 3단일의 법칙이라 함. 여기에서 벗어나는 나머지는 곁가지, 다 제거해야 한다.)
④ 適格(문학적 에티켓 : 왕은 왕답게, 종은 종답게 신분에 마땅하게 서술돼야 함)
⑤ ‘그럼직함’의 개념(개연성)
2)프로이트 꿈 작업 원리 ⑥ 응축(condensation, 은유/꿈속에서 욕망하는 여자의 눈썹은 누나 것, 입술은 엄마 것으로 나타난다.)
⑦ 이동(환유/누나가 잘 쓰는 모자가 누나를 대리한다.)
⑧ 구체적 형상화(철학적인 꿈은 결코 없다. 오직 구체성만 있을 뿐.)
⑨ 2차적 가공(시야게)
⑩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의미이든 아름다움이든 뭔가가 그 속에 담겨 있어야 함.)
시에서 꿈의 공식을 빼면 곧 고전극 원칙이다. 고전극 원칙이 왜 필요한가. 시의 광기는 꿈 작업을 통해 나타난다. 시에서는 이 광기가 먼저 나간다. 이를 통제하는 것이 고전극 원칙이다. 곧 이성적 힘이다.
4. 글쓰기에 대한 비유들
1) 시는 자동차 안테나 뽑는 일이다. 안테나 꼭지점은 미리 만들어져 있다. 이것을 잡고 1단, 2단, 3단으로 뽑는 것이 아니다. 원샷으로 뽑아내야 한다.
2) 시는 딱지치기. 딱지를 뒤집으려면 작은 빈틈에 발을 갖다대고 순간적으로 쳐서 넘겨야 한다. 사물의 빈틈을 보는 것. 발견의 시학이 여기에 있다.
3) 남자화장실에서 보는 (소변 볼 때 오줌이 튀지 않도록) ‘한 발걸음만 더 가깝게’라는 표어. 대상을 최대한 몸에 가깝게 붙여야 한다.
4) 연 날리기. 연을 날리려면 우선 힘껏 달려야 한다. 나중에 바람을 받고 난 뒤부터는 천천히 풀어준다. 하늘에서 나선을 그리며 휘돌아 내려올 때의 곡선, 이것이 곧 시이다.
5) 다섯 개로 하는 공기놀이. 많으면 안 된다. 세 개 이상은 곤란. 우주 비밀은 4원소로 다 풀 수 있다. 한의학의 사상의학도 마찬가지. 공깃돌을 올리면서 동시에 집는 것. 시의 방법이다.
6) 첫걸음은 도취이고 광기이나 두 걸음은 방정식. 벽돌 쌓듯이 튼튼하게 쌓아야 한다. 하지만 보편적인 공식이 아니다. 시의 공식은 어렵다. 각자 체험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7) 시는 소를 몰고 가는 일. 처음엔 소를 이끄나 나중엔 소가 스스로 간다. 머리가 하는 일은 위험할 때만 개입한다. 몰고 가려고 하면 곤란.
8) 여치집 만들기. 시는 밀대궁을 붙여나가는 일. 1층에서 20층까지 바로 못 간다. 밑에서 넓게, 위로 좁혀가면서 마침내 매듭을 짓는다. 이 공간에 여치가 산다. 시의 순도는 75%에서 85%까지. 집을 지으면 스스로 시가 온다.
9) 화투점이다. 잘 제켜져야 한다. 말이 말을 불러와야 하고 우리가 할 일은 말이 튈 때 잡아줄 뿐.
10) 대상을 볼 때 계란을 쥐듯 강하게 쥐어서는 안 된다. 항상 멀리 보고 서야 한다. 최초에만 대상이 필요하고 나머지는 시가 스스로 쓰도록. 논 갈 때 멀리 미루나무를 봐야 고르게 갈 수 있다. 천 끊을 때도 마찬가지. 수영할 때 뜨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뜰 수 없다.
11) 시가 잘 갔을 때는 안전벨트의 '찰칵'하는 소리와 같은 느낌이 있다. 깊은 물에 돌을 던졌을 때 돌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와야 한다. 연애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12) 시는 징검다리를 이용해 강을 건너는 일. 징검다리 식으로 멀어서도 가깝게도 아니게 가장 알맞게 언어를 놓을 것. 바둑돌도 빽빽하게 놓아서는, 그렇다고 위험하게 듬성듬성 놓아서는 이길 수 없다.
13) 축구에서 골은 골키퍼와 골대 사이에 넣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해 민감해져야 한다.
14) 테니스공을 앞에 놓아야 힘이 실린다. 기다려서는 안 된다. 언어를 앞세우고 말장난을 해야 한다. 단, 의미 있는 말장난.
15) 물고기를 잡을 때 장난칠 준비를 해야 잘 잡힌다. 너무 엄숙하고 주눅 들어서는 곤란. 머리에 의탁하지 말고 장난할 준비를 할 것.
16) 버찌사기. ‘아저씨가 퍼 주세요.’ 몸한테 맡기고, 혹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기.
질문 시간
- 우리가 쓰려는 시는 모두 머리 속에 다 들어 있다. 붙여나가는 방법에 시가 있다. 두 가닥, 세 가닥 꼬아서 매듭을 짓는다.
- 시는 당신과의 우연한 조우. 자기가 쓰고 나서 뭔 말을 쓰려고 했는지 모를 때, 내가 모르는 것이 나올 경우 행복함.
- 시가 하이브리드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인생이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
- 사소한 것부터 시가 출발해서 큰 것으로 더러운 것에서 깨끗한 것으로 가야 남는 장사가 된다. 총알구멍, 바늘구멍. 좁은데서 출발해서 넓은 데로 나가야 한다.
- 춤을 위해 토슈즈를 신느라 다 뭉그러진 발레리나의 발가락. 그 고통 가운데서도 그걸 하는 것. 그것이 시다. 시는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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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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