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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 김수영/孔子의 生活難
*이 글은 필자이신 황현산 선생님의 허락을 현대시다락방에서 옮겨둡니다. 귀한 원고를 주신 황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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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 영 /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
황 현 산
우리 출판/문학계의 무작스러움을 증거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는 1981년에 발간되어 여전히 쇄를 거듭하고 있는 『金洙映 全集』을 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 제1권인 시편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김수영의 작품으로 판명되는 모든 시를 발표/제작연대순으로 늘어 놓은 이 전집에서는 김수영의 손으로 발간된 유일한 시집인 『달나라의 장난』이 사라지고 없다. 물론 이 시집을 구성하는 40편의 시들은 전집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지만, 이 시집을 거기서 재구성해낼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느끼거나 짐작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한 시인이 자신의 시편들 가운데 어떤 작품을 골라 어떤 방식으로 배열하였는가를 아는 일은 그의 시 몇 편을 이해하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사일구 이전까지의 시를 담은 『달나라의 장난』에는 그것이 출판되던 무렵 김수영 자신이 자신의 모습으로 내세우고 싶어했던 김수영이 들어 있으며, 이 김수영은 그의 사후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편집된 『거대한 뿌리』의 김수영이나 『사랑의 변주곡』의 그것과 여러 면에서 같지 않다. 이 김수영은 그 자체로서도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다른 김수영들을 이해하는 길에 있어서도 좋은 안내역이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 전집이 제시하는 텍스트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텍스트들이 김수영의 원고를 다시 살린 것인지, 최초의 발표지면에 의지한 것인지, 다른 참고 자료가 있었는지, 그 정서법이나 띄어쓰기는 어떻게 교열하였는지, 등등에 관해 한 구절 반 마디의 설명이 없다. 전집의 편집자들에게는 정본을 만든다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전집의 공적을 말해야 한다면, 김수영의 전작품을 연대순으로 통독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 시인 그 자신이 버려 두었던 「孔子의 生活難」 같은 시를 다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김수영이 쓴 난해시의 한 예가 되어 자주 거론되어온 「孔子의 生活難」은 비교적 짧은 시이다.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作亂을 한다
나는 發散한 形象을 求하였으나
그것은 作戰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伊太利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事物과 事物의 生理와
事物의 數量과 限度와
事物의 愚昧와 事物의 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1)
이 시의 첫행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에 관해 한 젊은 비평가가 이렇게 쓰고 있다 :
일반적으로 '열매'란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꽃은 열매가 열린 다음에, 열매의 위쪽에서 피어난다. 꽃은 피어 바깥으로 확산하는 것이고 열매는 맺혀 안으로 뭉쳐지는 것이다. 따라서 꽃이 열매의 위쪽에 피어나는 것은 맺힌 것이 터져 밖으로 확산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시인의 구하는 것이다.2)
명민한 분석이다. 나는 이것을 신세대의 발상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는 꽃을 자주 또는 오랫동안 살펴볼 기회가 없었던 세대에게만 가능한 생각이라는 뜻이다. 이 젊은 비평가가 말하는 것처럼 열매는 일반적으로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상부"에 꽃을 달고 열린다. 호박의 암꽃을 살펴 보거나, 장미나 해당화를 한 번 뒤집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과도 가지도 오이도 토마토도 마찬가지이다. 꽃이 진 다음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진 다음에야 열매가 겉에 드러나고 본격적으로 자라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상부에 꽃을 달고 있는 열매는 아직 어린 열매이며, 아름다움과 실질이, 유희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시절의 열매일 뿐이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어린 시절의 줄넘기 장난 또는 <作亂>은 무슨 스포츠이거나 체조이기 이전에 생명의 자연스런 "발산"이다. 이 첫 연은 문학사조로 치자면 아마 로망주의에 해당하리라.
그러나 삶은 언제까지나 그렇게만 영위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자연스런 발산은 유용성에 대한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억압된다. 시인은 삶을 유희로는 살 수 없는 어떤 나이에, 또는 어떤 지경에 - 즉 "생활난"에 - 이르러 있다. 그의 시는 무시할 수 없는 삶의 실제 속에서 저 포기할 수 없는 유희의 발산을 <조직>해 내야 한다. 가난 속에서 끝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실질과 유희를 어떤 시적 "형상"으로 통합하려는 이 인위적 조직 행위가 곧 "작전"이다. 그러나 이 작전은 장난과는 다른 것이어서 생명의 자연스런 발산에 항상 이르는 것은 아니다. 작전은 "어려웁다". 이 작전의 단계를 필경 주지주의적 모더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연은 문맥이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국수 ― 伊太利語로는 마카로니라고 / 먹기 쉬운 것은..."에서의 "라고"가 문제이다. 이 <라고>는 <날씨는 추워도 봄이라고 꽃이 핀다> 같은 말에서의 <라고>와 같은 뜻, 즉 <그래도 ...이기 때문에>의 뜻으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伊太利語로는 그래도 마카로니이기 때문에 / 먹기 쉬운 것은...>이라고 말해 보아도 불편함이 남는다. 어쩌면 이 <라고> 다음에 어떤 구절, 이를테면 <그렇게 말해야> 같은 말이 있었는데, 시인이 스스로 생략했거나 인쇄 과정에서 누락된 것이 아닐까 :
국수 ― 伊太利語로는 마카로니라고 [그렇게 말해야]
먹기 쉬운 것은 나의 叛亂性 [때문]일까
아무튼 하는 수 없이 밥 대신 먹어야 하는 국수를 마카로니라고 생각한다거나 불러본다는 것은 비루하고 곤궁한 일상에 발산의 형식을 얻어 주려는 시도에 속한다. 이 시도는 한편으로 국수를 그저 한 번 마카로니라고 불러보는 作亂에 가난한 제 처지를 자위하려는 作戰의 의도성을 부여하며, 또 한편으로는 이 호도책에 불과한 作戰의 저변에 作亂의 무위성을 여전히 깔아놓는 것이기에, 두루치기적 발상이며, 게릴라적? 叛亂的 사고에 속한다. 언어의 차원에서도 作亂의 <亂>과 作戰의 <戰>이 합해져 <叛亂>을 형성한다. 사조로 치자면 전위적 모더니즘에 해당할까. 그런데 金洙暎은 왜 문맥을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을까. 그는 무언가를 부끄러워 했던 것이 틀림없다.3) 그는 자신의 <반란성>에 자신이 없다.
이 부끄러움 때문에 김수영은 "동무"에게 고백하는 어조로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고 말한다. 김현은 이 대목에 관해 한 절의 설명을 남겼다 :
그가 "바로 본다"고 표현하고 있는 동작은 (...) 바로 위에 나오는 "나의 叛亂性"이라는 어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바로 본다는 것은 대상을 사람들이 그 대상에 부여한 의미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그 나름으로 본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도식적이며 관습적인 대상인식이 아니다. 그건 의미에서 그것은 상식에 대한 반란을 뜻한다. 그의 叛亂性은 비습관적이며, 비상투적인 그의 대상인식을 지칭하는 어휘이다. 그것은 때때로 作亂이라는 어휘로 대치되기도 한다. 그는 作亂이라는 어휘를 선택할 때 그것은 손作亂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意識作亂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의 의식 작란에서 그의 시의 破格性이 생겨난다.4)
김현의 이 의견은 김수영의 <반란성>에 관해서 좋은 설명이 되며, 그의 전작품을 이해하는 길에도 하나의 열쇠가 된다. 그러나 예의 "바로 보마"에 관해서는 옳은 설명이 아니다. 김현은 "바로 보마" 앞에 "동무여"라는 호격이 있고 "이제"라는 부사가 있음을 잊고 있다. 동무를 부른다는 것은 더 이상 저 혼자만 잘난 체할 수 없어 세상의 시선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함축한다. <이제>는 벌써 불가능해진 것만 같은 <작란>과 이미 확신을 갖기 어려운 <반란성>에 대해 재고해야 할 때가 왔음을 말한다. 김현은 이 시의 문맥보다는 자신의 문맥을, 또는 김수영의 전작품의 문맥을 더 중하게 여겼던 것 같다.
한 철학자도 이 시를 해설했다.
사물 자체에 또는 道에 이르렀을 때, 삶은 그 현장성을 잃는다.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죽을 것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을 것이다 ―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공자의 말이고, 김수영이 택한 삶의 여정이기도 하다. 완성된 시쓰기를 희구하는 김수영은 공자의 생활난이 자기의 것이 되리라는 예감과 그로 인한 공자에의 동지 의식을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자는 그의 <동무>인 것이다. 또는 이 시인은 시쓰기의 완성과 공자의 求道를 한자리에 놓는다고도 할 수 있다. 참된 시, 그 <발산하는 형상>은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씌어지지 않았고, 그것이 씌어졌을 때, 시인은 죽을 것이다. 시쓰기를 위한 습작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5)
역시 명민한 분석이다. 그러나 시적 <작전>에 속하는 김수영의 말을 너무 진지하게 산문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김수영은 보기는 <바로> 보겠다고 하면서도 실상 그 말은 <삐딱>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바로 보마"의 <마>가 수상쩍다. 그것은 <어디 한 번 네 식으로>의 뜻을 함축한다.
시인이 바로 보겠다고 말하는 "事物"은 말할 것도 없이 <事實> 또는 <現實>을 제유법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국수를 오직 국수로 보기, 열매로부터 그 꽃의 추억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기, 이것이 앞의 작란이나 작전과는 대비되는 <바로 보기>이다. 우선 사물의 요지부동한 "생리"를, 그리고 "사물의 수량과 한도"를, 즉 모든 종류의 꿈과 희망에 대한 사물의 인색함을, 그리고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즉 사물의 무자비함과 냉혹함을 그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물론 사실주의적 태도가 있는데, 이런 종류의 사실주의는 오직 죽음에 이를 뿐이다. 사실이 곧 죽음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실이 진정한 사실이라면 그것은 꽃과 열매와 그 관계를 한데 어우른 전체여야 할 것이다. 사실 속에는 <발산>이 있다. 그러나 시인이 현실을 직시하고 정시하려 하는데 그 현실이 각박할 때, 거기에 상상력의 공간이 두텁게 마련되기는 쉽지 않다. 가난에 쪼들린 그가 곤궁한 현실로부터 <발산>을 조직해낼 수 있는 수단은 국수를 마까로니라고 불러보는 것과 같은 졸렬한 작전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 이 구절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朝聞道夕死可矣)"는 공자의 말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시인의 죽음은 진리를 깨친 자의 그런 행복한 죽음이 아니다. 가난은 종종 <도통>한 사람을 만들어내어 현실은 다 그런 것이라고 말하게 한다. 시인은 공자도 아닌 처지에 갑자기 도통하여 <발산>의 열망을 잃을 것이 두려우며, 상부에 꽃을 단 어린 호박에서 갑자기 늙은 호박으로 변해버릴 것이 두렵다. 현실로부터 그 현실을 넘어설 "발산한 형상"의 발견을 포기한다는 것, 그러기에 현실에 더 이상 시비를 걸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이 시에서의 <바로 보기>는 동무들과 똑같이,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사실을 바라보기이지만, 김수영은 그의 문학적 생애 내내 이 바로 보기를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삐딱한> 방식으로 실천했다. 그는 반란의 길로 더욱 멀리 나아갔으며, 사물의 냉혹함으로부터 가장 효과적인 발산의 말들을 끌어내었다. 그는 도통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반란군으로 죽었다.
1) 『金洙暎 全集 1 詩』, 民音社, 1981, p. 15
2) 장은수, 「간지러운 육체에서 인공의 육체까지」, 『현대시』, 97년 6월호, p. 40.
3) 김수영의 이 부끄러움은 『달나라의 장난』에 이 시를 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이 시집의 <後記>에서 「거리」나 「꽃」 같은 작품의 텍스트가 일실된 것을 한탄하면서도 이 「孔子의 生活難」에 관해서는 아에 언급하지 않았다. 혹자는 이 시집의 「奢侈」 같은 시에서는 이보다 더한 치부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치」의 치부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지만, 한 지식인의 자기모멸에의 성격을 지니는 이 <국수-마카로니>의 치부는 극히 개인적이다.
4) 김현, 「자유와 꿈」, 『金洙映詩選?거대한 뿌리』의 서문, 민음사, 1974.
5) 김상환, 「스으라의 점묘화」, 『철학연구』, 30 (1992년 봄호), pp. 378-379. 한자 노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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