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가리 섞인 돌 틈에서 춘란 촉이 눈 틀 때
지리산 왕시루봉을 걸어 오릅니다.
오르는 길은 오솔길
산 너머 넘어가도 긴 오솔길.
어디서 보아야 시루 같습니까
대답 없는 사람을 멀리 앞세우고
두툼한 솔가리 밟으며 오릅니다.
왜송 숲 다음은 홍송 숲
홍송 숲 다음은 잣솔 숲
솔숲에 일렁이는 바람 소리 사귀며
오솔길 한 가닥 앞세우고 오릅니다.
잣송 숲 너머엔 억새 밭
억새 밭 옆구리엔 잡목 숲
아플 일 없으니 아픔을 만들며, 저 산정까지
금빛 강이 내려다보이는 억새 언덕까지
잣나무 터널을 뚫고 오릅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눈이 두터워
멧새소리도 동네 어귀에서만 빙빙 도는 때
나 살던 곳, 돌아갈 길, 아득히 잊고
오솔길 한 가닥 끌고 오릅니다.
오르는 길은 힘들고 숨이 차지만
나는 내일 이 길로 갈색 나비를 날리며
내려올 겁니다, 겨울을 부려놓고
봄 한 짐 지고, 갈색 나비를 날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