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그윽하고 깊디 깊어, 빽빽한 숲에 깊고 넓은 골[谷], 누른 고니[鵠]도 그 꼭대기를 못지나가네. 깎아지른 듯 우뚝 솟은 바위들, 굽어보니 아찔한 산그늘엔, 서리와 이슬이 뽀얗게 젖어있네. 알락 표범, 감장 잣나비 번갈아 나와 울부짖고, 나[飛]는 새 감돌아 날제 털깃이 너울너울, 밑없는 굴(窟)속에 천둥소리 우르르, 수풀을 뒤흔들며 날개치는 바람신[風神] 돌부리가 내달아 옷을 갈퀴질하고, 비낀 가지[枝]가 길을 막아 맞찌르네.
나 혼자 적막히 우뚝 서니, 마치 말없는 기초(祁招) 시의 안화(安和) 함인 듯. 멀어서 못 찾아 갈네, 이 산속 동·서를 분간 못해 기진맥진하던 차에, 나는 듯 벼랑에 쏟아지던 샘물이, 폐부(肺腑)에 싸늘히 맛이 다[甘]네. 손에 움키니 싸늘한 얼음, 쇠한 얼굴을 비추니 거울이라. 게서 쉬며 그 소리 들으니, 옥 패물을 쨍그렁 울리는 듯, 부싯돌을 쳐 차[茶]를 달이려하니, 육우(陸羽)의 차 맛 아는 것 시들하구나. 부러워라, 반곡(盤谷·골짜기 이름)에 놀만한데, 한유(韓愈)의 그 글은 나의 길잡이[指南]로세. 도통(道通)을 천년만에 이었으니, 그 시내 이름이 염계( 溪)로세. 산중에 짝이 없을망정 모시고 섬길 스승(맑은 물을 말함) 있네. 한 말씀 듣고 도를 깨달아, 이욕(利慾)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고자, 마음 근원을 해맑게 열어, 오직 태극(太極)에만이 함영(涵泳)하오리.
잠깐 동안 금그은 듯이 만남 곧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될 수 있으리. 어찌하여 당(唐) 우(虞)의 유허(遺墟)에 엉킨 풀, 차디찬 연기되고, 우리 도(道)가 남방[南宋]으로 가단 말고, 어찌하여 물이 고여 있기만 하여 비를 안 주고, 삭방(朔方·북녘)의 눈과 월령(越嶺)의 독한 장기( 氣)가 섞여 진창이 됐는고. 그러나, 남은 그 여파(餘波)로 천하를 다슬릴만하여, 노재(魯齋·許馨의 호)가 홀로 가는 말[馬]을 달렸네. 그 물결의 혜택을 온 천하에 두루하지 않은 데가 없으니, 참상(參商)을 어찌 한하리. 후생이 두렵다 했거니, 푸른 빛이 남(濫)에서 나오누나. 다행히 그 도가 해·달 같이 걸렸으니, 내가 그 빛에 의지하여 만족하네. <세상의> 권세를 잊고 안으로 <도>를 즐기어, 날마다 남쪽 처마 밑에 휘파람 불며 기대있네. 성가시게 날 부르기에 눈썹을 들어 바라보기도 하나, 어허 내 처음 마음 그지 없거니, 일생을 두고 여기 머물러 있으려네. 《동문선(東文選)·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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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로((李仁老·1152∼1220)는 고려 무신 집정기 때의 문인이다.
*산중사(山中辭)의 사(辭)는 시(詩)도 아니요, 산문(散文)도 아니면서 운문(韻文)이다. 말하자면 시와 병려문(騈儷文)의 중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부(賦)와 비슷하나, 사(辭)가 음절(音節)과 정서(情緖를 위주로 한데 대하여, 부(賦)는 서술(敍述)을 위주로 한 점이 다르다.
*이인로의 산중사는 옛 사람들의 산관(山觀)을 엿볼 수 있다. 산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난 자리, 부귀와 공명과 권세로부터 물러난 사람이 은거하는 곳으로 여겼던 것이다. 비유의 전거들도 오로지 중국 쪽에 의지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사를 쓴 장소가 정확히 어느 산중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인로], 산중사(山中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