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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 개관  

[9808 월간산]
*이 원고는 1998년 8월호 월간 산에 수록되었던 것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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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개방박두 특집 /  개관
'조화의 힘이 돌 하나에도 이렇게 크단 말인가'

이름 유래·지역 구분·지리·기후·생태

                                                                         이향지 시인

금강산에 가게 되었다.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아름다움을 전해들은 사람이면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산! 그리운 금강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두운 밤바다 거친 파도를 가르며 반세기의 항해 끝에 만나 보게 된 산! 가까운 길을 두고 먼 바다를 돌아, 울먹이며, 울먹이며, 다시 껴안게 된 산! 저녁에 배를 띄워 해 뜨는 아침까지, 동해를 건너올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금강산!
'내가 본 바와 들은 바를 참고하면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은 순전히 돌봉우리·돌구렁·돌내(川)·돌폭포다. 봉우리·묏부리·구렁·샘·못·폭포가 모두 돌이 맺혀서 된 것이다. 이 산의 딴 이름은 개골인 바, 이것은 한 치의 흙도 없는 까닭이다. 이에 만 길 산꼭대기와 백 길 못까지 온통 하나의 돌이니, 이것은 천하에 둘도 없는 것이다.'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에 있다. 천하 제일 금강산!
금강산의 뼈대를 이룬 바위들은 대부분 흑운모화강암과 반상화강암이어서, 빛의 방향에 따라 눈처럼 희게도 보이고, 금색이나 은색으로도 보이고, 푸르거나 보랏빛으로도 보이고, 검게도 보인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금강산 바위빛과 그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를 이렇게 그렸다. '은 같은 무지개며 옥 같은 용의 꼬리 / 섯돌며 뿜는 소리 십 리에 잦았으니 / 들을 때는 우뢰더니 와서 보니 눈(雪)이로다.'
은 같고, 옥 같고, 눈 같기도 한 바위빛과 물빛!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바람이 밀고 오는 구름의 양과 흐르는 방향에 따라, 바위와 나무를 적시고 골짜기를 뛰어내리는 수량에 따라, 산비탈과 등성이를 물들이는 꽃과 잎새들의 빛깔과 표정에 따라, 뜨는 해와 지는 해, 달빛과 별빛의 함량에 따라, 그 때 그 풍경과 하나가 되어버린 사람의 마음의 형상에 따라, 험상궂게도 부드럽게도 희게도 검게도 보이는 산빛! 금강산의 바위들! 식산 이만부는 지행록(地行錄)에서 다음과 같이 그렸다.
'꼿꼿하게 선 것, 비스듬히 누운 것, 세로 선 것, 가로지른 것, 둥근 것, 모난 것, 길쭉한 것, 얼굴을 맞대고 선 것, 울룩불룩하게 솟아오른 것, 한 무더기로 거대한 군락을 이룬 것, 아웅다웅 성이 나서 다투는 듯한 것, 굽어보는 것, 우러러보는 것, 반듯이 누워 되돌아보는 듯한 것, 뛰어오르며 공중으로 발길질하는 듯한 것, 엎드려서 하소연하는 듯한 것, 벌떡 일어나 말다툼하는 듯한 것, 춤추는 듯, 웃는 듯, 성난 듯한 것들이 모두 금강산 바위에 관한 것들이다.'
금강산 바위들에는 이처럼 만물의 형상과 빛깔이 깃들어 있다. 대지의 살을 훌훌 벗어버린 개골산 바위들은, 만물(萬物)이기도 하지만, 만물(卍物)이기도 하다. 1천만 년 전 지각을 뚫고 솟구치던 때의 뜨거운 포효를 그대로 간직한 채, 맨머리 맨몸 맨발로 삭발의 세월을 겪고 있는 곳. 꽃 피고, 잎 피고, 눈 내리고, 비 내리는 시간 속에서, 선 채로, 앉은 채로, 눕거나 엎드린 채로 영원을 건너고 있는 곳. 그곳이 산이며, 금강산이다.

금강·기달·풍악·개골·봉래…
한반도의 모든 산이 다 그렇듯이, 금강산도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과 숨결을 같이해 왔다. 금강산 부근은 일찍이 맥의 땅이었고, 다음은 고구려, 다음은 신라, 고려 뒤엔 조선에 속했다. 통한의 식민지 시절엔 타민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지금은 분단된 국토의 북부에서 우리의 애환을 함께 겪고 있다.
금강산 부근에는 이 산보다 높은 산이 없어서 멀리서도 보인다. 내륙쪽 관문인 단발령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마치 한 송이 꽃 같다고 한다. 주변의 낮은 산들이 잎새처럼 이 산을 감싸고, 내금강 분지에 우거진 바위 숲이 새하얀 꽃잎 다발을 이루어 한 송이 흰 꽃처럼 떠오르기 때문이라 한다. 산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접근이 쉽고, 산안의 풍경이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또 그 안에서 살았다.
금강산은 강원도 북부 동해안에 가깝게 솟아있다.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1,638.2m)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어있는 주능선은 백두대간이다. 주능선 분수령을 경계로, 동쪽은 고성군, 서쪽은 금강군이다. 금강산 서쪽은 본래 회양군(淮陽郡)에 속했다.
'금강산은 장양현 동쪽 30리에 있다. 회양부를 167리에 거쳐 걸쳐 있다. 이 산의 이름은 다섯 가지가 있는데, 금강(金剛), 개골(皆骨), 열반(涅槃), 풍악(楓嶽), 기달(  )이며 백두산의 남쪽 줄기이다. …이 산은 대개 일만 이천 봉이라고 하는데 바위가 우뚝하게 뼈대처럼 서서 동쪽으로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삼나무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바라보자면 그림과 같다.'(동국여지승람)
그림 같은 금강산! 금강산은 오래도록 다양한 계층의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에, 봉래, 개골, 금강, 풍악, 기달, 지달, 열반, 중향 등 세간과 문헌에 전하는 이름만 들어도 7∼8가지나 된다. 개골이란 이름은 신라 마의태자의 고사와 함께 삼국사기에 처음 나온다. 풍악이란 이름은 진표율사의 행적을 새긴 '관동풍악발연수(關東楓岳鉢淵藪)'란 석기(石記)의 내용과 함께 삼국유사에 처음 나온다. 발연수(鉢淵藪)란 외금강 바리소골에 그 터가 남아있는 발연사(鉢淵寺)의 다른 이름이다.
동환록(東 錄·조선조 철종 때 윤정기 지음)이란 책에서는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기달, 가을은 풍악, 겨울은 개골(春曰金剛 夏曰   秋曰楓嶽 冬曰皆骨)'이라 계절과 연관시켜 부른다 했고, 동국여지승람 회양편에서는 '첫째는 금강, 둘째는 개골, 셋째는 열반, 넷째는 풍악, 다섯째는 기달(一曰金剛 二曰皆骨 三曰涅槃 四曰楓嶽 五曰  )'이라 했다.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 성해응 지음)에서는 '이 산의 이름은 여섯 개가 있는데, 개골, 풍악, 열반, 지달, 금강, 중향(衆香)이 그것이다. 개골이라 하는 것은 이 산의 흰 바위 때문이며, 풍악은 이 산의 산물에 기인한 것이다. 열반, 지달, 금강, 중향은 모두 불가의 용어들이다'라고 했다.
신선사상에 근거한 봉래(蓬萊)란 이름은 금강산 주변 민초들이 더 사랑했던 것 같다. 또 서리가 내린 것처럼 희다고 해서 상악(霜岳), 신선사상의 여파로 보이는 선산(仙山)이란 이름도 기록에 얹혀 있다. 봉래란 쑥(蓬)과 명아주풀(萊)을 가리키는데, 지금도 내금강 구성동 계곡 아래는 쑥밭, 즉 봉전(蓬田)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봉래는 도교의 신선사상에 연원을 둔 말로, 중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산 이름이기도 하다. 방장산(方杖山) 영주산(瀛州山)과 함께 중국의 삼신산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방장산은 지리산, 영주산은 한라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삼신산은 '늘 구름에 싸여 있으며, 물이나 새와 짐승이 모두 눈처럼 희고 관궐(管闕)은 모두 황금과 은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누구나 동경하는 산이다. 이 산의 동쪽 바다 속에는 신선이 살고 있으며, 산에는 신령스러운 불로초가 있다'고 한다. 비록 실존하지는 않는 가공의 산이기는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금강산을 그 산으로 여기고 기대 살며 삶의 고단함을 잊었던 것 같다.
가장 넓게 통용되고 대표되는 금강이란 이름은 일연과 김부식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쓰던 고려 초 이후에 통용되기 시작한 이름으로 보인다. 13세기까지는 개골과 풍악으로 쓰이던 것이 14세기부터 금강과 겸용되기 시작했고, 봉래는 16세기에 양사언과 관련되어 쓰여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동쪽 바다 한가운데 금강이란 산이 있다'는 화엄경의 내용은 아무 것에도 깨트려지지 않는 금강심(金剛心), 즉 보리심(菩提心)을 상징하는 것이지, 우리나라의 금강산을 지칭한 것은 아니다.
한때 108개의 사찰이 있었을 정도로 금강산은 한국 불교의 중흥지였다. 풍악, 금강, 열반, 중향은 모두 불교의 영향을 받은 이름들이다. 불교의 폐단이 못마땅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기달(  ), 지달(枳 ) 등의 어려운 이름을 중국의 고사들에서 빌어와서 썼지만 문헌에만 남아 전할 뿐 금강의 단단함을 깨트리지는 못했다.
금강이란 '가장 견고한 무기'라는 뜻이며, 범어로는 바쥬라(Vajra)라 한다. 제석천(帝釋天)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바로 이 금강이어서 어떤 것에 의하여도 깨어지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으므로, 불경의 금강견고(金剛堅固)·금강심(金剛心)이란 말도 이러한 뜻에서 생겨난 말이다. 단단하고 깨어지지 않는 굳은 마음, 즉 모든 번뇌를 깨트리는 보리심을 상징한다. 또 금강을 가지고 있는 역사를 집금강(執金剛)이라 하는데, 금강산도 이러한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내금강·외금강·신금강·별금강·해금강
금강산의 길이와 넓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다. 그것은 어디서 어디까지를 금강산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동국여지승람 회양편에서는, '금강산은 장양현 동쪽 30리에 있다. 회양부를 167리에 걸쳐 있다'라고 나와 있다. 그 수치는 통천의 금수산에서 호룡봉 남쪽의 국사봉까지를 일컫는 것 같다. 더 멀리는 안변과 통천의 경계에 솟은 황룡산(1,267.8m)까지 보는 경우도 있으나 무리인 것 같다.  
금강산 주능선은 외무재령 남쪽 호룡봉(1,403m)에서 온정령 북쪽 오봉산(1,263.7m)까지로 보며, 그 길이는 도상거리 약 23km, 실제거리 약 30km다. 호룡봉∼외무재령∼백마봉∼차일봉∼내무재령∼월출봉∼비로봉∼옥녀봉∼상등봉∼온정령∼오봉산으로 이어진다. 주능선 분수령을 경계로, 동쪽은 외금강, 서쪽은 내금강 구역이다. 외금강 중에서도 호룡봉∼월출봉에 이르는 분수령의 동쪽 지역은 신금강이라 따로 부른다.
외금강 만물상과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오봉산을 지나 북쪽으로, 선창산∼금수봉∼사령∼널막령∼추지령∼망마바우산∼깃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동쪽 지역은 통천군이다. 통천의 산들도 바위와 계곡이 아름답고 해안에 빼어난 명소들이 많아서, 광역 금강산에 속한다. 오봉산 동쪽의 천불동계곡 부근과 선창산(1,224m)과 동쪽의 선창계곡, 금수봉(1,113m) 동쪽의 웅추곡을 따로 묶어 별금강이라 하고, 고성의 남강 하구와 통천의 총석정·시중호 일대의 바닷가 절경들을 해금강이라 한다.
금강산 주능선은 백두대간의 배꼽이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이어지는 분수령 마루금. 그 백두대간의 배꼽 부위에 금강산 비로봉이 솟아있다. 백두대간이란 우리 고유의 산경개념이 규정해 놓은 산맥 이름으로, 지리산 천왕봉(1,915m)에서 백두산 장군봉(2,750m)까지 작은 계곡 하나도 건너지 않고 분수령 마루금만을 타고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국토의 약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줄기(山係)와 물줄기(水係)를 더불어 생각하는 산줄기 지도를 갖고 있었다. 그 지도의 이름은 '산경표(山經表)'라는 것이다. 산경표란 백두산을 정점으로 삼은 족보식 문자 지도로, 영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인 신경준(1712-1781)에 의해 체계를 갖추었다.
산경표의 내용은 국토의 등뼈를 이룬 하나의 대간(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나의 정간(장백정간)과 13개의 정맥(청남정맥, 한북정맥, 호남정맥, 낙동정맥 등)으로 가름해 놓은 것이다. 산경표는 개화기의 침략자인 일제가 지질학적 구조에 기초를 두고 만든 산맥(태백산맥, 광주산맥, 노령산맥 등)들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총 길이는 도상거리 약 1,572km, 실제거리는 약 2,110km. 우리 이수로 환산하면 약 5,275리에 달한다. 백두산∼대연지봉∼소백산∼허항령∼북포태산∼아무산∼대각봉∼희사봉∼후치령∼백암산∼마대산∼노란봉∼모도봉∼용풍산∼추애산을 거친 백두대간은 추가령열곡에서 그 줄기가 끊어지듯 풀썩 주저앉았다가 다시 고도를 높이며 남진하는데, 풍류산∼철령∼추지령∼널막령∼사령∼선창산∼온정령을 거쳐서 금강산 주능선으로 올라선다.  
금강산 주능선을 거친 백두대간은    호룡봉∼국사봉∼무산∼삼재령∼진부령∼신선봉∼미시령∼설악산∼한계령∼점봉산∼구룡령∼대관령∼고루포기산∼두타산∼댓재∼태백산∼도래기재∼선달산∼소백산∼황장산∼조령산∼희양산∼속리산∼삼도봉∼육십령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과 인제군 서화면을 연결하던 삼재령(현재 군사분계선에 해당)을 경계로 백두대간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 삼재령∼백두산을 잇는 북한쪽 백두대간은 도상거리 약 910km, 실제거리 1,210km이며, 삼재령∼지리산을 잇는 남한쪽 백두대간은 도상거리 약 662km, 실제거리 약 900km로, 북한쪽이 남한쪽보다 도상거리 약 248km, 실제거리 약 310km 정도 더 길다.
금강산 비로봉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도상거리 약 701km, 실제거리 약 935km 걸어오면 만나게 된다. 따라서 백두산 장군봉까지는 도상거리 약 871km, 실제거리는 약 1,175km 남아 있게 되므로, 금강산이 백두대간의 배꼽 부위에 솟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바위 모습도 동과 서가 다르다
금강산은 주능선인 백두대간 분수령을 경계로 동쪽은 가파르고, 서쪽은 비교적 완만하다. 그것은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는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대부분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강원도 지형의 특색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금강산은 약 1천만 년 전인 신생대 제3기 이후에 진행된 경동성 요곡운동(傾動性  曲運動)으로 형성된 경동지괴라는 것이다. 경동성 요곡운동이란, 지각에 작용되는 횡압력이나 장력으로 말미암아 암층이 끊어진 면 곧, 단층면을 경계로 하여 지층이 서로 상하좌우로 어그러지는 현상이다. 깊숙한 지하에 존재하던 암반층이 단층으로 인하여 온 땅덩어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니, 이 결과 한쪽 땅덩어리는 창날같은 암봉이 되어 천장부지로 솟아오르고, 반대쪽은 그 흙까지 뒤집어쓰고 풀썩 주저앉아 두터운 흙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금강산의 뼈대를 이룬 바위들은 편마암이 좁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을 뿐, 흑운모화강암과 반상화강암이 대부분이다. 흑운모화강암과 반상화강암은 겉보기에는 치밀한 것 같아도, 절리가 발달하기 쉽고 침식받기 쉽다고 한다. 금강산 주능선을 따라 남북으로 달리는 대단층선(大斷層線)의 동쪽은 수백m나 되는 급사면을 이루고, 절리방향에 따라 암주(岩柱)·암벽·암대(岩臺)·암봉들이 생겨서 그 모습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이것은 한국지지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나 금강산의 지형은 좀더 복잡해서 골짜기 풍경마다, 등성이마다 그 생김새가 다르다. 암골 지역은 암골 지역끼리, 흙산은 흙산끼리 대각선으로 머리를 맞대고 펼쳐져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대각선으로 대치하고 있는 암골층도 동쪽과 서쪽의 특징이 전혀 다르다. 이 '다름', 다양한 면모 때문에 금강산이 더욱 유명해진 것이다.  
금강산은 주능선 동쪽은 수백 길 높이의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어서 옥류동계곡의 비룡폭포, 비봉폭포, 채하봉 남쪽의 십이폭포 같은 거대한 폭포가 생겨날 수 있었다. 이처럼, 비로봉 남쪽 월출봉 부근에서 비로봉∼옥녀봉∼상등봉∼온정령∼오봉산으로 뻗어가는 분수령의 동쪽은 창날같은 암봉들이 키를 다투듯 줄지어 솟아있지만, 그 서쪽은 흙산이 평원을 이루고 있다. 이 평원은 비로고대(毘盧高帶)라 부르는데, 추위에도 잘 견디고 건조기에도 잘 버틸 수 있는 눈향나무, 눈잣나무, 눈측백 같은 상록침엽관목들이 빽빽하게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다.
바로 그 등성이의 정점이 비로봉에서, 영랑봉∼능허봉으로 이어지는 서쪽 능선과, 비로봉에서 상등봉으로 이어지는 북릉의 물을 모두 실어서 흐르는 구성동계곡 주변의 흙들은 특히 기름져서 온갖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금강산 주릉의 서쪽 지형이 모두 다 완만한 건 아니다. 외무재령 북쪽의 백마봉에서 월출봉에 이르는 주능선의 좌우에서는 비로봉 북쪽과는 정반대의 풍경이 벌어진다. 비로봉∼영랑봉∼능허봉으로 이어지는 서릉의 남쪽에 펼쳐진, 만폭동, 백탑동, 영원동에는 무수한 암봉과 기이한 바위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조화의 힘이 돌 하나에도 이렇게 크단 말인가? 이것을 만들 때, 풀무는 누가 마련했고, 화로는 어디에다 걸었으며, 몇 달 몇 해나 걸려서 공사를 이루었는가?' 이상수는 동행산수기(東行山水記)에서 이렇게 썼을 정도다.
그러나 등성이 하나를 넘어 신금강으로 들어서면, 만경골 외무재령, 호룡봉 일대는 소나무, 잣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등이 빽빽하게 우거진 두툼한 흙산이 전개된다. 한쪽이 일어서면 한쪽이 기울 수밖에 없는 사람살이의 단면까지 금강산의 자연은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접두사 '금강-'이 붙을 정도로 독특한 식생
금강산엔 비와 눈이 많이 내린다. 서쪽인 내륙보다 바다가 있는 동쪽이 강수량이 더 많고, 겨울에도 더 따뜻하다. 금강산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내륙에 속하는 말휘리쪽이 1,140.2mm, 바다쪽인 장전리는 1,600.2mm로, 한반도의 평균 강수량인 500∼1,000mm를 훨씬 웃돈다.
내륙쪽인 말휘리의 연평균 기온은 7.7℃, 바닷가인 장전리의 연평균 기온은 11.3℃이다. 겨울의 정점인 1월의 평균 기온은 말휘리가 -6.4℃, 장전리는 -1.7℃로, 바다쪽이 5℃ 이상 따뜻하다. 그 이유는 서쪽에서 병풍 구실을 하는 백두대간이 차가운 북서풍을 차단하여, 푄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금강산 일대의 연평균 풍속은 초속 2.1m, 첫 서리는 대개 10월5일경에 내리며, 이듬해 5월13일경에 마지막 서리가 내린다.
금강산 동쪽 사면에는 봄마다 '금강내기' 또는 '내기바람'이라 부르는 특이한 바람이 분다. 덥고 메마르고 초속 40m에 이르는 강풍으로, 서북 산간지방에서 바다쪽으로 불어내리며, 이것 역시 푄 현상의 영향이라고 한다. 금강내기 바람 끝에서 눈이 비가 되어 내리면 금강산에는 꽃이 핀다. 금강산 등성이를 꽃보랏빛 융단처럼 뒤덮는 진달래꽃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황홀하다.
금강산 부근은 연중 강수량이 한반도의 평균 강수량을 훨씬 웃돌 정도로 눈과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축축한 공기와 좋은 흙이 만들어졌다. 또, 혹한이 없는 겨울 덕분에 금강산 일대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하고, 풍성한 먹이사슬의 영향으로 동물도 많이 서식한다.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채집된 동식물들도 많아서 '금강-'을 앞에 붙인 꽃이나 나비들도 많다. 금강초롱, 금강국수나무, 금강봄맞이꽃, 금강인가목, 금강제비꽃, 금강애기나리….
금강초롱은 경기도 명지산 이북의 깊은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금강초롱이라 부른다. 8∼9월에 초롱 모양의 꽃이 긴 줄기 끝에서 핀다. 꽃색은 보라빛과 흰빛 두 가지가 있다. 내금강 묘길상 부근에 특히 많다고 한다.  
금강국수나무는 천연기념물로, 금강산에서만 야생하는 희귀식물이다. 북한의 5대 특산 중의 하나인 이 나무는 바위 벼랑 틈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아래쪽으로 늘어뜨리고 자란다. 잎은 타원형의 단엽이며, 키가 50∼90cm까지 자라는 낙엽활엽관목이다. 매년 7월경에 가지 끝에 붉은 색이 도는 흰 꽃이 피고, 8월이면 열매가 익는다 한다. 내금강의 보덕굴 부근과 외금강 옥류동의 비사문 근처의 벼랑 틈에서 많이 자란다.
또, 금강산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금강인가목은 조팝나무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7월에 꽃이 핀다. 숲속의 바위 옆에서 나고 관상가치가 높다. 은방울과에 속하는 금강애기나리, 앵초과 식물인 금강봄맞이, 제비꽃과에 속하는 금강제비꽃 등이 금강산과 관련된 이름을 갖고 있고,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만리화도 금강산에서 자란다.    
금강산 일대에는 일찍부터 잣나무가 많았고 그 맛도 일품이라 한다. 가을이면 '풍악'의 바위와 계류를 붉게 물들이는 단풍나무를 필두로, 벚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의 활엽수들, 산비탈과 골짜기를 사계절 푸르게 떠올리는 소나무, 전나무 등의 침엽상록수들, 고산 평원 비로고대를 뒤덮고 있는 눈측백, 눈향나무, 눈잣나무 같은 상록침엽관목들과 들쭉나무와 만병초들 등 70∼80종의 식물이 뒤섞여서 사는 혼합림을 이룬 곳이 금강산이다.
이처럼 풍성한 먹이사슬의 영향으로 금강산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68종의 짐승류, 200여 종의 조류(오색딱따구리, 크낙새, 칼새, 뜸부기, 휘파람새, 박새 등은 산속에 있고, 동고비, 농병아리, 호반새, 흰뺨검둥오리, 물까마귀들은 바닷가에 있다), 9종의 파충류, 10종의 양서류, 30종의 어류가 금강산에 기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곤충들 중 '금강-'이 앞에 붙은 나비들이 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다. '금강산귤빛부전나비(날개 표면은 흑갈색이고 앞날개 가운데 방의 뒤쪽에 커다란 등황색 무늬가 있고, 뒷날개 안선두리모는 흑색이고, 청람색 가루비늘이 있다. 날개 뒷면은 녹색이 약간 섞인 황색이고, 은빛의 반달 모양의 무늬줄이 있고, 각 무늬의 바깥쪽에는 등색 무늬가 있다. 앞날개 길이는 수컷이 20mm, 암컷은 22mm 가량이며, 우리나라 중국 몽고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와 '금강산녹색부전나비'도 그 날개빛과 이름이 이채롭다. 또, '금강산잎벌' 등이 금강산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
금강산은 우리 민족이 자손 대대로 아끼며 물려주어야 할 빼어난 관광자원이지만, 금강산 일대에 묻혀 있는 광물 자원으로, 중석, 수은, 금이 매장되어 있기도 하다. 온정령 남쪽의 상등봉 부근과 내금강 구성동 일대, 관음연봉, 오봉산 일대, 천불동계곡과 선창계곡 등에는 많은 양의 중석이 매장되어 있어서 일제 강점기에는 그것들을 캐어서 2차 대전에 필요한 군수물자로 썼다. 1910년 한일합방을 강행한 일제는 1937년 말부터 금강산 개발이란 명목으로 금강산에 매장된 중석(텅스텐)을 채굴했던 것이다.
우리 언론들이 '금강산의 승경보존―이권배의 개굴(開掘)에 맡기지 마라(1937년 12월 28일자 조선일보 사설)'며 반대하고, 식물학자 도봉섭, 역사학자 이병기 등이 반대하는 글을 발표하고 했으나, 일본의 야망을 꺾지는 못했다. 재벌 미쓰이와 미쓰비시까지 참여하여 금강산 일대를 파헤치기 시작했던 것이다(월간山 93년 9월호 참조).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배하여 물러가던 1945년 무렵에는 상등봉 일대에 10개가 넘는 갱구가 뚫려 있었다 한다. 당시 중석 1kg이 일본 돈으로 2,000원을 호가할 정도여서 금강산 일대에는 한탕주의에 들뜬 도벌꾼들까지 들끓었다고 한다.
중석 광맥은 차돌 속에 박혀 있어서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지는 않고는 캘 수 없다고 하는데, 도벌은 주로 도망치기 좋은 밤을 틈타서 이루어졌다. 밤마다 펑펑 터지는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에 산은 얼마나 놀라고 바위들은 얼마나 흔들렸을까?
또 20개도 넘는 폭포를 간직하고 있고, 산비탈의 흙이 두터워서 수림이 울창한 구성동계곡에는 수은광산이 있었고, 고성군 양진리 용계리 부근에는 금광이 있었다.
바닷가, 고성과 통천 일대에는 감(통천의 고종감)과 사과가 맛이 있고, 깨, 박하, 담배, 고추 등의 농산물도 재배하며, 연안수산업도 활발하여 어패류와 미역, 다시마 등도 많이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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