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7(금) 19:12
내금강 탐승기  

[시인 이향지의 내금강 탐승기]
묘길상의 미소 앞에서 발이 붙어 버렸다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18/2007071800456.html

온정령~내강리~표훈사~만폭동~묘길상~마하연~보덕암~표훈사~삼불암~ 장안사터 답사

(▲ 장전항에서 바라본 금강산 전경.)

사람들은 꿈을 꾼다. 꿈꾼다고 모두 이룰 순 없지만, 꿈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꿈은 스스로 숨 쉬고 스스로 자라기 때문이다. 내 꿈 중의 하나는 금강산이었다. 내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꿈도, 스스로 껍질을 열고 날아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내금강은 어떨까. 외금강과는 무엇이 다를까. 한 꿈을 이루고 나면 또 다른 꿈이 찾아와서 고개 너머 저쪽엔 무엇이 있는지 가보자고 한다. 호기심이 있기에 길이 있고, 호기심이 있기에 걸음이 뒤따른다.




나는 참 좋은 곳에서 아침을



서울을 출발하여 육로로 휴전선을 넘었다. 철조망과 철조망 사이를 뚫어서 만든 관광도로는 벽도 지붕도 없는 햇볕터널인데, 해안선 파도는 어쩌자고 지척에서 손짓을 한다.



온정리로 들어서자마자 신계사로 갔다. 폭격으로 터만 남아있던 자리에 번듯번듯한 절칸들이 새로 들어서고 있다. 집선봉 세존봉과 잘 어울리는 자리에 대웅보전이 앉았고 부속건물들도 각각 알아서 옛 자리들을 찾아 앉았다. 사람이 절을 짓고, 허물고, 다시 짓는 동그라미를 바라보면서, 나또한 커다란 동그라미 속임을 느낀다.



숙소는 해금강호텔이다. 금강산의 전모를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서 세상이 수묵빛으로 변할 때까지 산을 향해 있었다.  



찬란한 아침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해가 둥글어졌다. 얇은 바다안개를 두르고 나타난 태양. 적당히 눈부시고 적당히 그늘진 수면 속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산. 멀지만 선연히 바라보이는 비로봉과 금강산 능선. 오늘 나는 참 좋은 곳에서 아침을 시작하고 있구나.




온정령을 넘어 내금강으로




(▲ 금강대와 만폭동 입구 풍경. 사진 좌측에 있는 암봉이 금강대다. 바로 아래 자연석문인 금강문이 있다. 넓은 암반 언저리에는 봉래 양사원의 글씨와 사선이 놀았다는 바둑판이 있다.)


죽장 짚고 망혜 신고 몇 달 몇 년에 걸쳐 걸어가던 금강산을 버스를 타고 간다. 세상 참 쉽다. 쉬운 만큼 많은 것을 놓치면서 가는 길이다. 세상 참 쉽다 쉽다하면서도 버스는 그렁그렁 가쁜 소리를 낸다. 온정령 고갯길은 백여섯 구비. 가쁜 숨 다 토한 다음은 내금강으로 들어가게 된다. 울끈불끈 험준한 바위봉우리들 비틀비틀 가파른 고갯길. 한 구비 한 구비 돌아오를 때마다 버스는 용트림을 한다. 그런데 그 긴 행렬이 길가의 잎사귀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잘도 돌아, 돌아, 넘어간다.



세상은 녹음천지. 목란꽃(산목련) 향기 수줍게 피어오르고, 골짜기마다 봉우리마다 전설이 피어오른다. 해설사업에 열중하고 있는 북측 안내원은 곱기도 하거니와 목소리 또한 곱고도 또렷하여, 금강산 안팎 내력을 한 줄에 꿰어 들려준다. 낭랑한 목소리로 읊어주는 시 한 수 전설 한 줄마다에서 백팔번뇌가 달아나고, 속세에서 묻어온 때와 먼지도 말끔히 달아난다.




(▲ 금강산 이정표. 표훈사에서 묘길상까지의 노정.)


관음연봉에 가려져서 어두컴컴하던 숲길이 한 순간 허리를 펴며 뚜껑을 열어젖힌다. 비로소 하늘이 보이고 바다도 잠깐 보인다. 한 걸음 더 돌아 오르니 ‘온정령굴’이다. 터널 길이는 500미터라고 한다. 온정령 마루턱은 버스지붕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이 고개마루턱이 고성군과 금강군의 경계다. 여기서부터 외금강과 내금강이 동서로 갈린다. 여기서부터 온정령~상등봉~옥녀봉~비로봉~월출봉~일출봉~내무재령~차일봉~외무재령까지 되짚어가는 금강산능선이 금강산의 주능선인 백두대간이다. 이 고개마루턱이 바로 백두대간 온정령 정상이다. 남녘땅 지리산으로부터 진부령을 거쳐 왔다. 여기서부터 백두산 장군봉까지 이르는 산맥이 백두대간이다. 지도 위에 작은 점 하나 올려놓기도 쉬운 일 아니지만, 실제 하는 땅과 역사의 한 지점을 눈으로 확인하며 통과중인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꿈꾸던 내금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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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출렁다리와 금강대 전경. )


온정령굴을 나가니 비로소 내금강이다. 뿌연 먼지 구름이 반기며 달려온다. 울울창창하던 숲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울큰불큰 솟아있던 외금강의 묏부리들도 사라지고, 흙먼지 이는 비포장도로가 구불텅구불텅 마을을 찾아 내려가고 있다.

(▲ 만폭동계곡. 오랜 가뭄으로 물줄기가 가늘다.)

오랜 가뭄으로 모내기가 늦어져서 금강군 주민들은 이제야 모내기를 한다. 한창 더운 날에 흙먼지를 날리며 금강산 구경을 왔으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흙먼지 가라앉을 때까지 일손을 쉬고 있는 농부들. 써레질을 멈춘 채 무논 속에 서있는 소들. 들길 옆의 나란히 세워져있는 자전거들. 마을 안 유리창 속에서 깡충깡충 뛰어오르고 있는 아기의 웃음.

이 금단의 구역을 잠시 잠깐씩이라도 열어주어서 내금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해준 사람들. 그들의 터전에 단비가 촉촉이 내려주기를 빈다.  




표훈사 칠층석탑의 아름다움




(▲ 표훈사. 670년 표훈선사에 의해 창건. 금강산4대사찰 중 유일하게 표훈사만 전화를 입지 않았다. 반야보전 앞에 있는 7층탑은 중후하면서도 아름답다.)

내강리로 들어서며 금강산 향기를 다시 맡게 된다. 도로에서 머지않은 곳에 장연사터가 있다. 볕 좋은 빈터에 불그레한 탑이 하나 있는데, 장연사 3층 석탑이라 한다. 탑 뒤편 산봉우리는 삿갓봉이라 하는데, 방랑시인 김삿갓을 되새기게 한다.



금강산역 지나, 남천다리 삼거리 지나, 만천교 지나, 장안동 장안사터 지나, 표훈동 표훈사. 드디어, 쉴 틈 없이 달려온 버스가 섰다. 행장을 챙겨들고 표훈사로 들어선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능파루 현판이 반긴다. 굵은 나뭇그늘이 가리고 있어서 지척에 있는 절을 못 보았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금강산 4대사찰(신계사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중 유독 표훈사만 전화를 피한 이유를 알만하다. 반야보전과 칠층석탑은 수수하면서도 튼튼하다. 깊은 산속에 큰 절을 앉혀 부처와 절칸들을 보전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주어진 시간 안에 묘길상까지 다녀와야 한다. 서두르는 마음이 금강문을 놓쳤다. 좁은 계단 길 바로 옆에 널널한 암반이 펼쳐져있었다. 한 장 암반을 파며 흐르는 물줄기에 넋이 빠졌던 거다. 봉래 양사언이 물가에 새겨놓았다는 ‘만폭동(萬瀑洞)’ 글씨도,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 글씨도 다 놓쳤다. 네 신선이 놀았다는 바둑판 옆에 앉아보지도 못했다. 신발코 적시며 건너온 작은 징검돌들이 더 재미있었던 거다. 나는 계단을 싫어한다. 내려올 때도 그랬다. 그런데 무슨 조화 속인지 금강대 사진은 똑똑하게 찍어놓았다. 그 널널한 암반 언저리에 그것들은 모여 있다.



그러므로 금강산에서는 시간을 재촉하지 마라. 한 번에 다 가려고도 애쓰지 마라. 한 번에 한 가지만 제대로 담아 가라. 행여라도 남보다 금강산을 더 잘 안다고 우쭐거리지 마라. 물론 나에게 이르는 말이다. 책 속의 산과 실제 하는 산은 이처럼 다르다.


만폭팔담과 옛 사람의 묘사


(▲ 만폭팔담의 이모저모. )


만폭동은 금강대에서 시작된다.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물길을 거스르다보면 비취빛 물을 담고 있는 못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흐르는 물에 번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옛 사람들은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였다. 더 수려하고 더 유별난 곳일수록 더 잊혀 지지 않을 이름들을 갖고 있다. 금강대에서 마하연 백운대 합수지점까지를 만폭동이라 하는데, 만폭동 계곡에는 유명한 팔담(八潭)이 있다. 이 여덟 개의 못들은 제 이름에 걸 맞는 폭포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큰 바위나 나무에 가려져 있어서 옆에 있어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 진주담 옆길로 올라가는 관광객들과 불자들.)


만폭팔담 중 가장 아래쪽에 있는 백룡담와 흑룡담은 제3출렁다리 부근에 있고, 비파담 벽파담은 조금 더 위쪽에 있고, 분설담은 보덕암으로 오르는 제4출렁다리 옆에 있고, 진주담은 언덕길 한 번 더 올라가면 되는 제2휴식터 옆에 구담과 연이어있다. 더 상류의 것들은 물어볼 곳이 없어 맑고 푸른 담이 보일 때마다 사진에 담는다.


(▲ 보덕암의 이모저모. ① 보덕암. 고구려 초기에 지었다고하며, 현재의 건물은 1675년 다시 지었다. 법기봉 분설담 등의 만폭동 경관과 잘 어울리는 목조건축물이다. ② 보덕암과 법기봉. ③ 법기봉에 있는’법기보살’ 각자 (법기보살은 관음보살의 별명). ④ 보덕암 지붕. ⑤ 보덕암으로 연결하는 제4 출렁다리와 분설담.)


이것인가 저것인가 알 수 없을 때는 이곡(李穀 ; 1298~1351) 선생의 ‘동유기(東遊記)’에서처럼 묘사하는 편이 낫다. ‘보덕굴 앞에 이르면 나는 여울[飛湍]이 돌에 얽혀와서 벼랑의 허공에 부딪치니 날으는 물방울은 눈처럼 흰 것이 급격하게 뿜어서 맑은 날의 낮도 어두워지려 한다. 돌바닥은 물이 깊어서 푸른 쪽빛과 같다(‘분설담’ 부분=필자주). 또 두어 걸음 가면 성난 폭포가 깎아지른 듯한 언덕을 날아 내려온다. 작은 것은 구슬을 뿜고 큰 것은 눈을 흩날려 섞여 내리는 것이 이루 다 세일 수 없는데 주연(珠淵=진주담)이라한다. 또 돌이 하나 있으니 형상이 못 가운데에 엎드린 것 같아, 귀담(龜潭=구담. *구담 바닥 거북은 거북 모양의 웅덩이;필자주)이라고 한다. 또 한 못이 있는데 깊이를 헤아릴 길이 없으니 화룡담(火龍潭)이라하고, 그 위에는 봉우리가 있는데 사자암이라 한다.’ 그러므로 옛글의 묘사가 제 빛을 발하려면, 골골마다 우레 소리 산을 울리고 폭포마다 맑고 물 콸콸 튀겨 올리고 폭포 아래 못들도 차고 넘치는 소리를 낼 수 있게, 큰 비 몇 차례 내려야할 것 같다.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18/2007071800456_4.html

모나리자의 미소와 묘길상의 미소

(▲ ①묘길상. 높이 15미터, 너비 9.4미터 되는 한국 최대의 마애불로 고려시대 나옹이 새겼다고 한다. 본명은 아미타여래상. ‘妙吉祥’ 각자는 18세기 윤사국이 새겼다고 한다. 묘길상은 문수보살의 별명. ② 묘길상 석등. ③ 묘길상 각자. ④ 소광담 통나무 다리 위에서 활짝 웃고 있는 혜애스님(87세). 60년 전 금강산 신계사에서 삭발하신 인연으로 복원중인 신계사에 머물고 계신다.)


드디어 웃는다. 왕모래 술술 흘러내리는 비탈길 비실비실 올라서서 웃는다. 발은 단 위에 있고, 눈만 웃는다. 연둣빛 반투명 나뭇잎으로 하반신은 가리고 머리부터 가슴까지만 보여주며 웃는다. 보는 듯 안보는 듯 다 보고 있는 묘길상의 미소. 소리 내어 웃는 웃음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미소 앞에서 발이 붙어버렸다.



본래 온 자리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도 삼라만상을 주유하고 있는 미소.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가 금강산 안에 있었다. 몇 차례 끌질로 이목구비를 만들고 몇 차례 끌질로 얇은 옷을 입히고 몇 차례 끌질로 해 달 별 바람을 다 끌어안고 있는 미소. 세상에서 가장 그윽하고 가장 간결한 미소를 나는 만나고 있다. 계절과 시간을 넘어 영원히 살아있을 미소. 한 장 단단하고 거친 바위를 열어 영원히 살아있을 미소를 탄생시킨 조공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드디어 뜰로 올라 두 손을 모았다. 미소에 이끌려 슬하로 갔다. 천천히 천천히 얼굴을 들어올렸다. 실눈을 뜨고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의 시간이 멈추어버렸다. 손가락 발가락 한 군데 닮은 데 없는 나 자신을 둘러보았다.




비로봉에도 가고 싶다



묘길상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이허대가 있고,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면 비로봉골로 들어가게 된다. 이 길이 만폭동에서 비로봉 올라가는 정통 코스다. 길이 점점 가팔라져서 허공에 걸쳐놓은 사다리처럼 되면 허리가 저절로 구부러지고 다리가 후둘거려서 짐승처럼 엉금엉검 네 발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더라도 기쁘게, 기쁘게, 은사다리금사다리 타고 비로봉 오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못 간다. 아쉽지만, 오늘 다 걷고 나면 내일 걸을 길이 섭섭하지 않겠나.




(▲ [좌]소광담 옆길로 내려가고 있는 성지순례자들. [우] 마하연 삼거리에 있는 마하연 중수비.)


소광담은 깊지는 않지만 넓은 못을 여럿 거느리고 있어서 그림자 눕히면서 걷기 좋다. 묘길상에서 가장 오래 머뭇거렸던 불자들과 줄 서서 내려가는 길. 혜애스님과는 소매를 자주 스치며 걷게 된다. 젊으실 때 금강산 신계사에서 삭발하신 인연으로 복원한 신계사에 머물고 계신다. 나는 혜애스님의 여든일곱 미소 속에서 묘길상의 미소를 보았다. 내려가는 길 내내 그 미소 속에 있었다.



마하연터에서 바라보는 연화대는 만물상과 모습과 빛깔이 비슷하다. 층층나무꽃 만발한 옆길로 가면 칠성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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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위의 꽃 , 보덕암



보덕암은 절벽 위의 꽃이다. 꽃 중에서도 주홍빛 바위로 빚은 금잔화다. 아름답지만 높아서 아무나 함부로 꺾을 수가 없다. 꼭 그 자리가 아니면 피지 않겠다고 하는 고매하고도 고집스런 꽃이다. 꼭 그 자리가 아니면 다시 심을 수도 없는 단 한 송이다. 깃드는 새는 바뀌어도 저 꽃은 수수천년을 간다.



비바람에 단청은 바래고 구리기둥은 빛이 죽었지만, 오백년 세월에도 중심 단단히 잡고 기왓장 한 장 문짝 한 장 흐트러짐 없다. 통풍을 위해 열어놓은 듯한 문짝 틈으로 저 암자를 거쳐 갔을 학승들의 훈기가 골짜기를 에워싼다. 혼신을 바쳐 이룩한 예술품들은 시간과 승속을 가리지 않고 경배를 받는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 좁은 마당으로 들어서니 그 터가 참으로 기기묘묘 밝고 아늑하다. 물가에 있어도 물이 피하겠고 바위 속에 있어도 어둠이 저절로 물러나겠다. 해와 달과 별과 바람이 피운 꽃이다. 굵은 쇠사슬을 풀면 파랑새 한 마리 포르르 날아오를 것 같다.


삼불암과 울소의 전설을 남기고




(▲ [좌] 삼불암. 높이 8미터 너비 9미터 바위에 미륵불·석가모니불·아미타불 3불을 새긴 14세기(고려시대) 조각품이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기여서 표정이 우울하다. 나옹선사의 솜씨라 한다. [우] 백화암부도. 17~18세기에 세워진 것들로 견실하고 당당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서산대비가 가장 우뚝하다.)


표훈사를 한 번 더 둘러보고 삼불암교를 건넜다. 텐트 아래 점심은 조촐하면서도 입맛에 맞는다. 곰취쌈과 초계탕으로 긴 갈증을 풀었다. 점심자리에서 장안사터까지는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백화암부도와 삼불암을 보고 금강산 전체가 하나의 불국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삼불암에서 한 참 떠밀려 내려가 있는 울소[鳴淵]는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의 사연을 담고 있다. 진실로 영원하고 위대한 예술품은 자연이다. 나는 이제 돌아가지만 다시 올 것이다.



산행 중 앞모습과 옆모습 뒷모습을 빌려주신 일행들께 감사드린다.



글.그림 /  이향지 시인 www.poemg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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