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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순천만 갈대밭 찾아온 흑두루미처럼 훨훨  

0212 향토기행 전남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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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갈대밭 찾아온 흑두루미처럼 훨훨

 
아름답고 때묻지 않은 풍경만큼이나 넉넉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다
글·사진 이 향 지 시인 www.poemgate.com

 순천엔 왜 가는가. 갈대밭 때문이다. 갈대는 흔하지만, 15만평이나 되는 갈대밭은 순천만 갈대밭 한 곳 뿐이다. 순천의 이름을 그대로 옮겨놓은 순천만도 궁금한 존재다. 어떤 바다이기에 그처럼 넓은 갈대밭이 조성될 수 있었나. 어떤 사람들이기에 그 넓은 갈대밭을 갈대밭으로만 남겨두고 보나. 갈수록 왕성하게 세력을 뻗어 바다를 잠식해 들어가는데, 살아라 살아라 마음놓고 살아라 돌보기만 하나.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대들에게서 월세나 전세를 받는 것도 아닌데, 그 아깝고 넓은 땅을 갈대들의 터전으로 양보하고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철새들에게 둥지를 틀고 살다 가게 한다. 새떼가 많아지면 사람이 기른 조개도 잡아먹고 사람이 잡을 고기도 잡아먹고, 추수 끝난 논에 흩어진 벼이삭도 남김없이 먹을 것인데, 먹이 값도 집 값도 한푼 받지 않고 오히려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고 있다.
 사람이 자연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가장 아름다운 환대는,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며 자연의 순리에 맡겨두는 일이다. 그것이 오히려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이익은 손쉽게 환산되어 눈에 얼른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손에 얼른 잡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참아야 하는 일이다. 그 땅은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었으니 그들의 것으로 돌려놓고 건드리지 않고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을 순천사람들은 힘을 모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순천만 갈대밭. 드디어 그 앞에 섰다. 뭍 생명을 끌어안고 살리는 바다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둑 위로 올라가서 갈대들을 내려다본다. 어느새 어두워져서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없어서 술렁거림마저도 없다. 초겨울 저녁 해는 안내를 끝낸 병사처럼 돌아서서 산을 넘어가 버렸다. 갈대들은 인사도 나누기 전에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내가 너무 늦게 왔다. 안내자 없이 둑길을 헤매느라 아까운 저녁 해를 30∼40분 동안이나 허비해 버린 것이다. 이 해안이 가장 아름다웠을 시간을, 이 갈대밭이 가장 빛났을 시간을, 길 찾기에 허비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태양은 좋은 안내자였다. 어떤 나침반보다 확실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내가 헤매는 동안 가장 아름답게 빛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둑을 올라 바다 앞에 서는 순간, 임무를 마친 병사처럼 산을 넘어가 버린 것이다. 태양은 넘어가 버렸지만 구름은 붉다. 저 붉은 여운에 의지하여 얼마동안은 더 머물 수 있겠다.
 어디까지가 길인가. 어디서 끝나는가. 둑을 따라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달려본다. 천천히 천천히 새들이 놀라지 않게. 그러나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한 무리의 새가 꾸럭꾸럭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날아간다. 갈대밭 위를 날아 좀더 깊은 바다 쪽으로 간다. 철새.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서남해안을 찾아오는 가창오리떼. 그런가 보다. 저 새들은 밤에 오히려 눈이 밝아진다. 낮 동안은 갈대 숲에서 쉬다가 어둠이 내리면 활동을 개시한다. 눈밝고 발톱 사나운 맹금들을 피해 어두운 하늘을 날게 되었으리라. 조그만 몸을 감추려고 무리지어 날며 거대한 새처럼 구름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추운 곳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향이 눈에 덮이면 따뜻한 남쪽 나라의 겨울을 찾아오는 것이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건만, 저 새들은 스스로를 지키며 살만한 땅을 찾아온 것이다.
 바람이 이는 곳까지 왔다. 새들이 사라진 하늘에 별이 돋는다. 둑 위의 갈대들이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또 한 무리의 새떼가 달의 뒤쪽에서 나와 바다위로 날아간다. 바닷물이 천천히 밀고 들어온다. 갈대들 발치에서 물이 빛난다. 어둠 속에서 갈대들이 좀 더 몸을 크게 흔든다. 휘청 누웠다 일어서는 것들도 있다. 길은 더욱 나빠지고, 나는 돌아가서 따뜻한 것을 먹고 싶다.
 갈대들을 남기고 마을로 간다. 갈대밭 가까이에서 쉬고 싶은 소원이 이루어졌다. 밥을 먹고 포구로 나가본다. 별이 유난히 많이 뜨는 밤. 가느다란 초승달이 한쪽 눈으로 웃는 밤. 만조를 이룬 포구에선 닻돌에 묶어놓은 배들이 출렁거린다. 갈대들은 허리까지 잠기는 물 속에서 플래시 불빛에 꿈틀 놀란다. 내 꿈은 그들 속으로 길을 내며 들어간다. 손바닥이 쓸리도록 손을 잡는다.    
 화포는 순천만의 동쪽 기슭에 있다. 화포의 아침은 활기가 넘친다. 좁다란 선착장에 배가 들어온다. 갯벌 안에 둘러친 갯장에서 고기를 걷어서 돌아온다. 갯장은 듬장이라고도 하고 게가 든다고 게장이라고도 하고 그냥 발이라고도 하는데, 대나무 막대를 울타리처럼 둘러서 꽂고 그 안에 그물을 놓아 밀물 때 물결을 좇아 들어온 고기를 썰물 때 나가서 털어오는 것이다. 그 그물은 장어 통발처럼 들어갈 수는 있어도 다시 나올 수는 없는 구조로 되어있을 것이다. 새벽에 물을 보러 나갔던 배들은 이마에 불을 달았다.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이마에 랜턴을 붙이는 것처럼 순천만의 어선들도 돛대에 불을 하나씩 달고 나갔다 온다. 듬장에서 털어 온 고기에는 뻘이 많이 묻었다. 그래서 큰 바구니 같은 데 담아 바닷물에 흔들어 뻘을 씻어낸다. 뱃전에 엎드려서 흔들흔들 뻘을 씻어내는 모습은 익숙하고 활기차다. 그러면서도 조용하다. 모두들 말없이 자기가 할 일을 한다. 뻘을 씻은 고기는 배 위나 선착장에 둘러앉아 선별작업을 한다. 종류가 같은 고기끼리 같은 그릇에 담긴다. 툭툭 던져지는 것은 주로 게들이다. 일찍 다녀와서 작업이 끝난 어부는 삿대로 배를 밀어 물위에 띄운다. 그사이 바다가 밀고 들어온다. 일을 끝낸 사람들은 새벽의 수확물을 자동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간다.
 화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모퉁이 하나 돌아서면 우명이다. 우명에는 선착장이 없다. 우명 사람들은 배는 바다 가운데 두고 스치로폴 덴마를 밀고 온다. 물이 얕아지면 그것마저 바다에 묶어두고 물속을 걸어서 온다. 허리에 잠겼던 물이 허벅지로, 무릎으로, 종아리로, 발목으로 수위를 낮출 때까지, 물 속을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손에는 무거운 바구니를 들었다. 두 사람이 마주 들고 오는 바구니 속에는 갖가지 고기가 들어있다. 젖은 고기는 무겁다. 죽어서 차곡차곡 포개진 잔고기들은 더욱 무겁다. 그러나, 그들은 늘 하던 대로 바구니를 나누어 들고 물을 걸어서 뭍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들이 큰 배에서 작은 배로 옮겨 탈 때 해가 떠올랐다. 그들이 바구니를 마주 들고 물 속을 걸을 때 해는 한껏 빛나고 붉었다. 후광. 우명의 어부들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후광을 둘렀다.  
 대대포구의 아침은 화포나 우명 쪽보다 조금 늦다. 나루곶이 산자락에 가려 해가 조금 늦게 뜨기 때문이다. 화포와 우명의 일출을 보고 달려오니 물안개가 곰실곰실 피어오른다. 좁다란 수로를 사이에 두고 갈대들은 둑을 만들었다. 물안개 속에서 밤을 보낸 갈대들은 허리가 꼿꼿하고 한결 싱싱하다. 나루곶이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해를 마주하고 보면 갈대꽃이 광섬유처럼 빛난다. 해가 높이 오를수록 물안개는 점점 엷어지고, 갈대둑은 모습이 선명해진다. 햇살이 퍼질수록 갈대들은 빛나는 개성을 버리고, 무리 속으로 들어가 빛깔과 키를 맞춘다. 대대포구의 배들은 조금 늦게 움직인다. 통통통 소리를 내며 수로를 빠져나간다. 잔잔하던 수로에 물결이 일고, 갈대들은 밭을 이루며 햇볕 속에 펼쳐진다.  
 흑두루미는 가까이 오지 않는다. 둑에서 멀리 떨어져서 논다. 망원경으로 보면 날개를 터는 놈, 가다가 돌아서는 놈, 다른 새를 잡으러 다니는 놈, 사람이 하는 짓을 그대로 한다. 수면 위에서 몸을 곧추세우며 날개를 털 때보면 그들이 과연 큰 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순천만 새들에게도 구역이 있는지 다른 새들은 흑두루미 곁으로 가지 않는다. 작은 새들은 조금 더 가까이에서 논다. 고기를 잡는지 아이를 보는 중인지 알 수 없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가 즐겁고 한가롭게 노는 것 같다.
 둑 안쪽은 논이다. 순천평야. 이 논들도 아주 옛날에는 갈대밭이었을 것이다. 육지에서 흘러온 흙이나 모래들이 퇴적해 가는 속도만큼 사람들도 바다를 먹어 들어간다. 아니다 아니다하면서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갈대밭은 조금 더 깊은 바다로 밀려나고, 논과 집들도 좀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어제 저녁에 보던 새들이 한차례 머리 위를 선회하고 멀어져 간 뒤 하늘은 그지없이 맑고 조용해졌다. 칠성초들은 갈대밭 언저리에서 서성댄다. 어느 사진가의 사진과 대조해보면 광활하도록 붉은 빛은 이제 찾을 수 없다.  
 낙안읍성은 조그마한 성이다. 화살을 날리고 칼을 쓰던 때의 성곽이 반듯하게 남아서 마을을 감싸고 있다. 성안에는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이 오손도손 모여있다. 오래된 빛은 이 성 안에 다 모여 있었다. 어느 집에선 지붕을 타고 올라간 박덩이가 내려올 날을 기다리고, 어느 집에선 초가지붕을 인다. 사다리가 놓이고, 이엉이 올라가고, 아래쪽부터 차례로 이엉을 두르고, 용마름이 올라가고, 용마름을 묶고, 가장자리를 다듬고, 지붕에서 사람이 내려오고 사다리를 치우고 나면 내년 이맘때까지 일년은 따뜻하고 비 샐 일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객사를 보고 동헌을 보고 누각을 보고 거목들을 보며, 동문에서 서문까지, 서문에서 동문까지, 한바퀴 돌아 나왔다. 동문 쪽 성곽 위로 오르니 지붕들이 모두 눈 아래 있다. 금전산은 돌산. 이마가 희고 빛난다. 나무들은 얼기설기 단풍이 들었다. 머지않아 잎새를 떨굴 모양새다.
 예전에는 그토록 소중하던 성곽이 이제는 유적에 속한다. 수도와 전기가 들어온다지만 옛집을 그대로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대단하지 않은가. 노르스름한 지붕 아래서 빨래가 말라가고, 흰둥이와 누렁이는 낮잠에 빠져있다. 저 낮고 노르스름한 지붕들이 향수를 일깨우고, 잊어버린 옛날을 떠올린다. 내 몸이 어느 날 문득 이곳에 있게 된 게 아님을 더욱 알게 된다.
성밖에는 고인돌이 있고, 감나무엔 다닥다닥 감이 익었다. 콩이며 찐쌀이며 호박이며 엿기름이며 참기름 들기름이며, 밭에서 길렀거나 나무에서 얻었거나 산에서 얻은 것들을 파는 난전도 있다. 빛 바랜 비취파라솔 아래 할머니들이 그것들을 들고 나온 것이다. 파는 이도 여자. 사는 이도 여자. 목화를 기르고 베를 짜고 날마다 보리방아를 찧고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양잿물에 빨래를 삶던 옛날은 그리 먼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나 빨리 잊고 빨리 버렸는가. 낙안읍성에 와서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옛사람들은 시신을 돌 아래 두고 싶어했다. 맹수가 많아서였을까. 주검조차 그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푸설푸설한 흙보다는 무겁고 두터운 너럭바위 아래서 마지막 잠을 자려고 했다. 그러나 그 꿈은 몇 천년 되지도 않아 파헤쳐지고 옮겨졌다. 이미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관을 보호하고있던 덮개 돌들만 이 넓은 호반으로 옮겨놓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할 줄 알게 되었다. 주암호도 그렇다. 비가 올 때만 물이 풍부하고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가뭄으로 목이 타던 폐단을, 있을 때 모아서 아껴두었다가 두고두고 이용하는 호수를 만들 줄 알게 된 것이다. 고인돌 아래 묻히고자했던 선사시대 사람들은 거대한 호수가 자신들의 무덤자리까지 물에 잠기게 할 줄은 꿈도 꾸지 못했을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주암호반 고인돌 공원은 그야말로 공원이다. 호반의 공원. 넓고 시원하다. 잔디밭 안의 고인돌들은 잘 배치한 정원석 같다. 어디에서도 무덤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하고, 노인들은 느릿느릿 걸으며 볕을 즐긴다. 호수는 모든 이를 반기듯 반짝인다. 나는 느긋하게 머물며 풍경을 즐기고 싶다.  
 송광사는 오래 전부터 와보고 싶던 절이었으나 기대했던 분위기는 아니다.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절 마당 한바퀴 휘돌아 나올 뿐인데, 주차료 1,000원에 입장료 2,300원이다. 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아이를 모델로 사진을 찍으려면 돈부터 달라고 한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절로 들어가며 그들 생각이 났다. 당우들이 너무 많아 여백이 없는데,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뚝닥거린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에 시달려서일까, 일주문밖 사천왕들은 아주 근엄하다. 조그만 계곡을 두 번 건너 나무로 깎은 진짜 사천왕 앞에 서니 그제사 마음이 풀리고 여유가 조금 생긴다. 좁다란 통로에 포개놓은 거대한 구유 때문이다. 구유가 이렇게 크고 우람하려면 이 구유가 된 나무는 얼마나 늙고 우람했을 것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곰은 쓸개를 남기듯, 이 나무는 죽어서 송광사에 구유를 남겼다. 이 구유에 밥을 담았는지 국을 담았는지 소죽을 담았는지 알 수 없으나 이야말로 부처님의 모습 아닌가. 사람들은 신기한 물건처럼 만져보고 쓰다듬어보고 송광사와 구유를 겹쳐지니고 간다. 그러나 절이 중생들의 구유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은 멀리 가버린 것 같다.
  화포로 간다. 화포의 석양을 보러간다. 지금쯤 다시 간조가 되어 드넓은 뻘밭이 드러났을 것이다. 석양의 갯벌 그 번들거리는 뻘밭을 보는 것이 절구경보다 백 배 나으리라. 벌교를 거쳐 화포로 오니 생각했던 대로다. 출렁이던 바다는 만 밖으로 몰려나갔다. 뻘밭 가운데 조그맣게 웅크린 수면에 배 몇 척이 떠있고, 사람들은 갯장에 나가 발을 고치고, 자기들 뻘밭에서 꼬막을 캔다. 뻘밭에는 널빤지를 밀고 나간 자죽들이 길게 나있다. 육지에 밭두렁 논두렁이 있듯이 뻘밭에도 무수한 금이 그였다. 꼬막밭을 구분하는 울타리다. 그 울타리 재료는 대나무막대다. 순천지방 대나무들은 바다에서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잇는 것이다. 아침에 배들이 모여있던 선착장도 뻘밭 가운데 드러났다. 배들은 좁은 수로에 이마와 옆구리를 맞대고 모여있다. 간조 때 바다로 나가려면 저 수로를 따라가야 한다. 거대한 뱀장어처럼 꿈틀거리는 수로를 따라 가면 몇 개의 섬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반대쪽은 어떨까 와온의 석양을 보러 가는 길에 대대에 들렀다. 갈대는 대대동에 가장 많기 때문이다. 새들은 여전히 물 위에서 바쁘고, 날아도 멀리 날지 않는다. 낮에 나는 새들은 마을 가까이로 오지 않고 바다 위를 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배가 한 척 눈부신 후광을 두르고 있다. 이제 우리도 저 배가 가는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와온으로 가는 길. 또 한차례 헤맨다. 지름길로 간다는 것이 하수종말처리장 앞까지 내려와 버린 것이다. 억새들이 우거진 수로를 따라 합수지점까지 가본다.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들을 걸러서 바다로 보내는 기계소리 우렁차다. 억새들은 둑 위에서 야윈 꽃을 털고 있다. 홀씨를 만들어 날려보낸 씨앗들은 살만한 땅을 찾아 날갯짓을 바삐하고 있을 것이다. 식물도 날개를 단다는 것. 날개를 달아서 살만한 땅으로 날아간다는 것. 이 둑방에 와서 다시 느낀다. 사람들이 쓰고 버린 물빛은 검고 악취가 나지만, 태양은 이런 곳에서 더욱 크고 빛난다. 해가 산머리를 넘어가기 전에 시내에서 숙소를 찾아야겠다.
 와온의 아침은 조용하면서도 싱그럽다. 공기가 그렇고 풍경이 그렇다. 바다는 또다시 멀리 달아나서 드넓은 갯벌을 드러내었다. 후미진 갯벌에 발을 치고 게를 잡고 꼬막을 기르며 늙은 남자는 바위덩이 엉성한 제방에 앉아 대나무를 가른다. 뭐에 쓰실 거예요? 고추나무 붙들어주는데 쓸 겁니다. 바다에서 소임을 다한 막대들은 뭍으로 올라와서 고추 이랑 지지목이 된다. 땅이 기른 것들을 바다에 세우고, 바다에서 쓸모 없이 된 것들을 거두어 땅의 나무를 세우는데 쓰고 있는 것이다. 저 근검, 저 지혜야말로 오늘날의 부흥을 이끌어낸 어버이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회용그릇들이 판치는 도시에서 왔다.
 칠성초가 있다. 일곱 빛깔로 몸이 바뀐다고 칠성초라고. 오염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는 풀. 대대동에서도 풀이 죽어 와온 해안까지 밀려왔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수로주변에 가늘가늘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바다가 들어도 잠깐 들었다 나가는, 너무 짜지도, 너무 밍밍하지도 않은 중간지대 모래톱에 뿌리를 내리고 여름한철을 보내고, 가을이와서 옴몸을 붉히며 익었다. 온몸이 붉디붉은 열매로 익어 아침햇살을 들이킨다. 해 뜰 무렵이면 건물 그림자가 갯벌 쪽으로 누워 오소소 떨기도하지만, 그럴 때마다 잎새를 더욱 단단하게 무장했다. 그들을 만나려고 수로를 따라 내려간 발자국. 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칠성초와 함께 물 속에 잠길 것이다.
 갯벌체험장은 순천만해수랜드 뒤쪽에 있다.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물렁물렁한 뻘밭이 기다린다. 통나무를 엮어 길을 만들어두었다. 바다를 향해 뻗어 가는 다리. 그러나 물이 목까지 차 오르는 목사리 때여서 사다리도 통나무길도 물에 불어 미끌미끌하다. 호미나 갈쿠리 같은 연장 하나도 없이 이 길을 끝까지 따라간들 꼬막 한 마리 캐지 못할 것이다. 바다만 보면 갯벌만 보면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어떠한 뻘보다 내가 무겁다는 걸 안다. 뻘밭 위에 서서 우명과 화포를 바라보니 어느새 나도 순천만 여기저기에 발자국을 찍고 다녔음을 알게된다. 이제 이 아침에 이곳을 떠나면 언제 돌아올 것인가. 돌아보며, 돌아보며, 멀어져 간다.
 상사호 호반도로를 한 바퀴 돌아오려고 한다. 상사호의 남쪽과 서쪽 호반을 돌아가서 선암사를 보고, 북쪽과 동쪽 호반을 거쳐 순천만으로 돌아올 것이다. 어제 오후 화포를 보러 가지 않았더라면,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바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행은 명승지 순례가 아니다. 나는 순천의 포인트를 순천만으로 잡았고, 그곳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어서, 이렇게 한번 더 가던 길로 가고있는 것이다. 낙안읍성으로 가는 길에서 갈라져 상사호 옆으로 올라왔다. 길은 호수보다 높고, 호수는 저수량이 적어 언저리 산들이 빨간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상사호 남쪽 호반을 따라 선암사로 가는 길은 고개를 넘어설 때마다 절경이 드러나서 갈망을 적시기 좋은 길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 않으면 죄가 되리니. 이쪽에 있으면 저쪽이 궁금해지는 생리를 숨긴다면 이 또한 죄가 되리니. 경치가 빼어난 곳마다 차를 세우고 건너편 산과 길과 호수에 어리는 그림자를 사진에 담는 것은 나 혼자 보고 즐기려는 것이 아니니, 좁은 노견에서 비상라이트를 깜박이는 차를, 무거운 돌을 싣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는 저 트럭도 이해해 주리라.
 선암사가 가까워지자 마을이 가깝고 오밀조밀해진다. 명찰은 명산에 깃드는 법이니 그 그늘에 마을이 융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활엽수 잎새들 시들어 떨어진 뒤 산자락은 휑하니 비어 가는데, 빨갛게 익은 감은 눈에 띄는 열매다. 어느 집은 이미 따서 추녀에 주렁주렁 매달았고, 어느 집은 오늘 마침 따는 중이다. 아파트로 옮기기 전에는 우리 집에도 감나무가 있었다. 감을 보니 갑자기 집 생각이 난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감 따는 사람은 둘이다. 바구니와 장대를 들고 나무 위로 올라간 이는 장년이 된 아들이고, 나무 아래서 막대기를 들고 낮은 가지에 붙은 감을 따는 이는 79세의 노모다. 할머니 감 따세요. 예. 이 할머니 감 따던 막대를 내려놓고 익은 감을 쥐어준다. 잡솨 봐요 달아요. 처음 보는 불청객에게 감 한 봉지를 들려주고 할머니는 다시 대나무막대를 든다. 수확한 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온 사람들. 몸에 배인 친절과 사랑에 절하며 감을 받는다.
 선암사에는 볼거리가 세 가지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쌍둥이 삼층석탑과, 정수원 안 깊숙한 불당에 모셔놓은 철불, 동부도 서부도를 비롯한 부도밭이다. 그럼 승선교는 그만 못하단 말씀이세요? 거기 비하면 그렇지요. 조계산 주봉을 뒤에 우뚝 세우고, 육조고사(六朝古寺)는 낡아간다. '朝'는 '組'와 같은 뜻이니, 선종 6대조 혜능선사를 기리는 절이다. 신라시대의 탑은 모서리가 떨어지고, 돌담은 담장이가 휘감았다. 오래된 돌길을 밟고 부도밭으로 통하는 길은 나무들이 가지를 내려뜨려 보물은 아무에게나 문을 여는 법이 아님을 알게 한다. 정수원 앞에 이르면 낡은 대문이 맞이한다. 열린 문 안에는 잔디 깔린 뜰이 있다. 뜰은 넓고 조용하다. 이 뜰에서 보면 조계산이 한결 가깝고 다정하다. 오래된 부엌을 지나, 작은 불당 앞까지 나를 안내한 학승은 합장하고 멀어져갔다. 부처는 안에 계신다. 금도 구리도 아니다. 쇠를 달구어 몸을 지어드렸건만 미소가 소박하면서도 청청하다. 삼배하고 사진을 찍으니 다시 웃으신다. 당신의 그 소박하고 썩지 않는 미소를 중생들의 세상으로 전함을 용서하소서.
 선암사를 나오니 해가 정수리에 올랐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천수답 논두렁으로 올라가서 산을 크게 담는다. 너무 밝은 시간에는 산도 안개를 만들어서 눈앞의 것들만 선명하다. 이럴 때 나무들은 뿌리까지 빛을 빨아들이고, 땅위의 물방울들도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렇게 모든 사물들이 빛나는 태양 아래서 큰 숨을 쉬는 동안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상사호 반대쪽 도로를 달린다. 상사호는 물이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아름답다. 규모가 너무 큰 호수보다 아담한 호수가 아기자기한 풍경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아젤리아 호텔 부근에는 섬이 있다. 내륙 속의 산봉우리가 인공호수 안으로 들어가서 섬이 된 것이다. 그들과 함께 그들을 둘러싸고, 호수도 조름조름 낮잠에 빠져있다. 호반 곳곳에 쉼터가 있어 그때마다 차를 세우고 물을 내려다본다. 등나무 햇줄기가 처마를 만들어 눈부신 햇살을 가려준다. 호수 건너편 산자락들은 희미한 윤곽을 드러낸 채 하나로 겹쳐있다. 아침에 지나온 길을 건너다보는 사이, 풍경이 눈에 익는다.
이제 순천의 자연은 거의 다 보았다. 그러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다. 신성리에 있는 순천왜성이다. 순천왜성은 정유재란 때 고니시 유까나가(小西行長)의 군대가 성을 쌓고 주둔하던 곳이다. 광양만에 접한 산봉우리 하나를 전라도 침략 거점확보를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성 둘레엔 해자를 파서 섬처럼 만들고, 예교라 불리는 부교를 놓아 건너다녔다니, 우리 땅의 지형을 속속들이 연구하고 노략질한 흔적인 것이다. 남해안 800리에 걸쳐 26곳에 이런 왜성이 있었다니, 얼마나 기막히고 부끄러운 현장인가. 이제 그 왜성들은 거의 없어지고 온전한 형태로 남은 곳은 순천왜성 뿐이라 한다. 우리 정부는 1997년 이런 왜성들을 사적에서 제외하였다. 그러나, 치욕도 역사에 속한다. 오히려 드러내놓고 후세들에게 바른 역사를 알게 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진실이다. 다음을 위해 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작은 자랑을 위해 큰 부끄러움을 감춘다면 치욕은 되풀이 될 것이다.
순천 왜성. 어렵사리 찾아들었다. 오솔길로 올라가니 석성이 가로막는다. 왼쪽으로 모서리를 돌아서면 길은 ㄱ자로 꺾인다. 오른쪽 모서리로 돌아서면 왼쪽으로 꺾인다. 그들은 소총을 쓰고 우리는 화살과 칼을 쓰던 전쟁이었다. 저 모서리 뒤편에 몸을 숨기고 이편 모서리를 향해 총알 한방 날리면, 우리 병사들은 백발 백중 넘어졌을 것이다. 명량대첩으로 기세가 꺾인 뒤,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인해 왜군들이 황급히 물러날 때까지, 왜구들은 이 높직한 산 위에 올라 순천만과 여수만을 한 손안에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위로 올라서니 바람이 달려온다. 이 바람엔 400년의 피비린내가 섞여있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갯벌은 광양만이다. 광양만은 순천만과 달리 공장이 많고 시끄럽다. 기계소리가 들썩거린다. 개발개발 이익을 위해 세상은 달려가고 있다. 성 위에는 넓은 공터가 황토를 드러내고, 깡마른 소나무들이 허리가 휘어져서 돋아있다. 일본인의 상투같은 대(臺)가 하나 광양만을 내려다본다. 왜성대(倭城臺). 대위로 올라가니 깡마른 소나무들이 허리를 굽힌다. 해는 다시 기울고 돌아갈 길은 멀리서 가로등을 밝히며 온다.
 내가 사흘동안 순천에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손대지 않은 자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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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어떤 곳인가
 전라남도(全羅南道) 순천시(順天市)는 서남해안의 진주라 할만하다. 전남 5시 17군 중 가장 넓은 땅을 보유하고 있고, 바다와 갯벌, 산과 호수, 다양한 형태의 자연과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쪽은 곡성군·구례군과 접하고, 동쪽은 광양시, 서쪽은 화순군, 서남쪽은 보성군과 접하며, 남쪽은 순천만을 통하여 바다와 접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감평군( 平郡)이었다. ' '은 '沙' 또는 '武'라고도 하므로, 사평(沙平) 또는 무평(武平)이라고도 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는 승평군(昇平郡)이라 고쳤고, 고려 태조 23년(940)에는 승주(昇州)라 하였다, 성종 2년(1036)에는 승평군으로 강격(降格)되었다, 충선왕 1년(1309)에 승주목(昇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그 다음 해 (1310)에 순천부(順天府)로 강격되었다. '순천'이란 이름은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는 순천도호부(順天都護府)가 되고, 고종 32년(1895)에는 순천군(順天郡)이 되었다. 1949년 8월에는 도사면 9개 리와 해룡면 일부(왕지, 조례, 연향)를 편입하여 순천시(順天市)로 승격하고, 그 외 지역은 승주군(昇州郡)으로 삼았었는데, 1995년 1월 1일 승주군을 다시 통합하여, 도농(都農) 복합형태의 새로운 순천시가 발족되었다. 역대의 명칭은 감평·승평·승주·평양(平陽)·승화(昇化) 등이다.
 2002년 11월 현재의 순천시 행정구역은 1읍(邑·승주), 10개 면(面·주암, 송광, 외서, 낙안, 상사, 별량, 해룡, 서, 황전, 월등), 12개 동(洞·삼산, 매곡, 향, 조곡, 덕연, 풍덕, 남제, 도전, 장천, 중앙, 도사, 왕조)으로 구성되어 있다.
순천시의 총면적은 907.25㎢. 전라남도 면적의 7.57%를 차지하여, 5시 17군 중 가장 넓은 땅을 관할하고 있다. 이중 산림은 630.49㎢로 총면적의 7.5%, 농지는 59.18㎢로 총면적의 6.5%이며, 인구는 271,734명(20002년 1월 1일 현재)이다. 주민의 46%가 1차 산업(농업·수산업)에, 6%는 2차 산업에, 48%는 3차 산업에 종사하여, 도농 복합형태의 구성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기후는 최남단 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의 영향을 고루 받는다. 겨울철에는 비교적 따뜻한 편이며, 여름철에는 자주 태풍권내에 든다. 연평균기온은 13.9℃, 1월 평균기온 1.1℃, 8월 평균기온은 27.1℃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308㎜로 알려져 있으나, 2001년의 경우 연 중 최고인 8월 강우량이 610㎜, 연중 최저인 1월엔 5.5㎜에 그친 적도 있다. 겨울철에는 따뜻하고, 중부지방에 비해 15일 정도 해동이 이른 지역이어서, 고등원예채소 재배에 알맞다.
 순천시의 자연은 다양하다. 산과 바다, 호수와 평야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 물산이 넉넉하고 풍경 또한 빼어나다. 3개의 대학과 3개의 전문대학, 전라선과 경전선 2개 노선의 철로가 통과하고, 7만여 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대도시지만,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천연 그대로의 자연이 보존되어 있다. 특히 15만평에 달하는 순천만 갈대밭은 전국 최대 규모다. 흑두루미를 비롯한 140여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순천만 갯벌과 주암호·상사호 두 개의 다목적댐, 송광사·선암사 등의 유서 깊은 사찰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있는 낙안읍성·낙안민속마을 등 빼어난 관광자원을 품고 있다. 자랑할만한 특산물로는 순천단감·낙안배·주암고추·월등복숭아·순천미나리·순천쌀 등의 농산물과, 낙안사삼주 등이 있다. 철도와 고속도로, 국도 등이 고루 갖춰져 있고, 항만과 공항이 가까워 교통 또한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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