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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 내륙 속의 비경지대, 단양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0211 향토기행 충북단양
http://san.chosun.com/wdata/html/news/200211/20021129000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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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 속의 비경지대, 단양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맛과 멋,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는 고장  

글·사진 이 향 지 시인 www.poemgate.com


 단양은 꼬불꼬불하다. 산이 많아 길이 그렇다. 산이 많아 강이 그렇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래서 더 신선하다. 산의 주름 한 구비씩 헤치고 들면 숨어있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강의 주름 한 구비씩 휘돌아들면 면면히 흘러온 역사가 되살아난다.
  경부∼영동∼중앙, 세 고속도로를 갈아타며 단양 찾아가노라니, 꼬불꼬불하던 단양이 허리를 펴면서 다가온다. 길이 허리를 편만큼 단양은 훨씬 가까워졌다. 길이 허리를 편만큼 단양사람들 살림살이도 허리 펴졌으면 좋겠다.
 북단양 나들목으로 들어서니 깔끔한 길이 맞이한다. 길 따라 고개 넘어 모퉁이 휘돌아 내려간다. 푸른 산은 어디 갔나. 푸른 산을 옆으로 밀며 회색 산이 일어선다. 시멘트산이 날개를 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던 대형 트럭들이 석회암 나르는 수培?갠湧潔駭? 단양은 전국시멘트 생산량의 30%를 담당하고 있다한다. 저 회색산들은 저 높직한 굴뚝들은 단양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산 많은 단양, 한쪽 어깨를 헐어내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진 것이 산뿐인데 가진 것이 강뿐인데 푸른 산만 고집하여서는 푸른 물만 고집하여서는 새끼들 키우며 살아갈 수가 없다. 단양사람 눈으로 단양사람 마음으로 한풀 접고 바라보아도 산의 희생이 눈물겹다.
 
 흐르는 물 속에 흐르지 않는 바위가 떠있다. 한 덩이가 아니라 세 덩어리다. 수면에 어리는 그림자와 함께 보면 더 아름답다. 흐르는 물 속에서 매무새나 가다듬고 또 가다듬느라 회색 뼈만 남았다. 도담삼봉! 단양팔경 우두머리다. 가운데 봉우리는 삼도봉이란 정자까지 받쳐들었다. 우처(右妻) 좌첩(左妾) 거느리고 호강을 한다. 구경온 남자들 부러워하며 건너다본다. 물안개 자욱한 아침이면 분홍 이불 젖히고 당기며 사랑싸움을 할까. 흐르는 강물에 일렁일렁 파도가 일까. 구경온 남자들 같이 온 여자를 삼봉 앞에 세우고 사진에 담기 바쁘다.
 나도 내려 가본다. 손님을 기다리며 쉬고 있는 유람선들이 가만가만 물결을 흔드는 쪽으로,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내려간다. 어디서 바라보면 바위섬 셋만을 오롯이 담을 수 있을까. 걸림돌을 치우며 장애물을 넘는 사람처럼 다가 가본다. 배를 묶어둔 선착장에도, 다리를 걷어올린 채 놀고 있는 선착장 옆에도 그런 공간은 남아있지 않다. 도담삼봉 주차장이 그냥 한적한 모래톱이었을 때, 강물을 덮고있는 선착장이 나룻배 한 두 척 매어두는 한적한 강변이었을 때, 그럴 때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배를 타자. 큰배는 손님 없어 뜨지 못한다니 작은 배라도 대절하여 갈망의 고삐를 풀자. 푸른 물결 가르며 상류로 간다. 어디까지 가는 가 얼마동횬犬?달리다오는가 묻지 않는다. 빙산의 일각을 등지는 사람처럼, 허공에 퍼지는 유행가 가락 속에 바위섬 세 덩이를 등지고 간다. 강 껍질을 가르며 달리던 배가 속도를 늦추며 강변을 가리킨다.  
 석문! 기이해라. 칠보산 해칠보의 달문 같구나. 거웃처럼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면, 그늘 짙은 산의 품을 만나겠구나. 배를 대자. 계단 길 한 가닥 내려오는 저 물가에 작은 배를 대고, 저 굵직한 돌기둥을 쓰다듬어보자. 내 희망, 말이 되어 입술을 벗어나기 전, 배는 다시 달린다. 속도를 더욱 높여 상류로 간다. 닫혀있던 육지가 좌우로 열리며 끝없는 강이 다가온다. 뒷걸음치며 달아난다. 신나는 질주는 오래지않아 끝난다. 배가 돈다. 배가 돌아 강물을 가르며 돌아온다. 조금 전 내가 일으킨 파도 위로 흔들리는 물결을 끌고 돌아온다. 세덩이 바위가 하나로 겹쳐 보일 때까지 둘레를 돈다. 시동을 끄고 섬이 되어 함께 흔들려본다.  
 아름다운 곳에 사람이 몰린다. 아름다운 곳일수록 목청이 높아지고 몸짓들도 신이 난다. 높은 소리로 노래할수록 높이 치솟는 분수. 언덕을 올라 정자에 닿고, 언덕을 넘어 내려가서 석문에 닿는다. 밖에서 들여다보던 돌구멍을 안에서 내다보는 맛. 돌구멍 안의 강물이 무지개 같고, 돌구멍 안의 마을이 무릉도원 같다.
 꿈 없는 밤이 갔다. 길이 문을 두드린다. 숙소를 등지고 나와 도담삼봉 스쳐간다. 성신양회 뒷문앞을 지나 상괴리 여천리 지나간다. 상시리 하시리 갈림길에서 어상천 표지판 따라간다. 더 깊은 곳, 변하지 않은 곳, 천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들을 찾아 떠났다. 시멘트 석산 스쳐갈 때 해가 떠올랐다. 아지랑이 같은 먼지 속에 코스모스가 피어있었다. 앙상하게 계단만 남은 석산이 떠오르는 햇살에 불그레 물이 들어 마야의 계단처럼 신비하게 보였다. 코스모스와 함께 보니 더욱 신비했다. 앙상한 코스모스 몇 그루가 거대하고 앙상한 석산을 생명의 보금자리로 떠올리고 있었다. 필요한 석재를 다 캐어낸 뒤엔 우리 같이 여린 것들이 돌아가서 살수 있게 복원해놓아요. 이렇게 이르는 것 같았다. 쿵쿵쿵 방아찧는 소리가 나고 뽀얗게 먼지가 날아오르는 굴뚝들을 건너다보며 나도 그렇게 말했다. 코스모스들 꽃빛이 더욱 붉어졌다. 고개를 끄떡였다. 언덕을 하나 넘어서니 더 높고 먼 산머리에서 해가 다시 나온다. 물억새 몇 포기 돋아있는 길섶에서 잉걸불 같은 태양과 다시 맞닥뜨렸다. 간절하면 보여주는구나. 절하고 담아간다. 길섶의 물억새들과 함께 또 한번 희망을 속삭여 준 솔미산.
광산들이 멀어지고 방아찧는 소리가 멀어지고 큰 트럭들이 길에서 사라져버린 뒤, 황금 들녘이 다가온다. 길은 언덕을 버리고 평지를 꼬불거린다. 고개 숙인 벼이삭마다 이슬을 머금었다. 손으로 훑어보면 메뚜기가 뛴다. 연곡리 삼거리에 오니 제천이 한 뼘도 안 된다. 신단양보다 제천이 가까워 연곡리 임현리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제천으로 가고싶어한다. 522번 지방도를 타고 넘어가면 제천은 지척이다.
 연곡리 버스정류장에서 김주희를 만났다. 올해 열 다섯 살, 단산중학교 2학년이다. 자동차소리를 듣고 버스가 온 줄 알고 뛰어내려왔다. 주희를 태우고 나도 학교로 간다. 티없이 자란 소녀와 아침 길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마을 이야기도 듣고 장래의 희망도 들으며 나도 나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이야기해준다. 아이들 앞에 서면 내 영혼은 해맑은 알몸이 된다. 잘 영근 수수밭 앞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 동안 주희는 차에 앉아 책을 읽는다. 태양은 좀 더 높이 떠오르고 햇살은 좀 더 밝게 퍼진다. 버스보다 조금 먼저 학교 앞에 내려주고 주희와 이별하였다.
 단산중학에서 조금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온다. 벼 말리는 노부부가 있다. 아스팔트 한쪽에 벼를 널고 가래질을 하신다. 무더기를 이루었던 나락들이 노면에 얇게 펼쳐진다. 오늘 하루 볕이 좋으면 비오기 전에 거둘 수도 있으시리라. 일러주시는 길을 따라 노은재를 넘어간다. 아무도 없는 길. 안개가 자욱하게 펼쳐져 있다.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천천히 천천히 안개의 바다를 저어간다. 만종리 들판은 안개가 자욱하여 집도 길도 아슴하다. 별방리로 들어서니 비로소 걷힌다. 별방삼거리는 제법 번화하다. 슈퍼도 있고 정육점도 있고 정비공장도 있다. 별방리에선 제천이 세 뼘쯤 된다. 59번국도가 지나간다. 길목 마을들은 이래서 좀 더 빨리 번창한다. 장발리 들판은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사지원리는 들머리가 길다. 고목 아래까지 갔다가 돌아선다.
 다시 강을 만났다. 사지원리를 거쳐온 59번국도가 다리를 건너 향산리 쪽으로 건너간다. 나는 강을 건너지 않고 좌회전한다. 강을 거슬러 오른다. 강건너 도로들은 폭우에 부서졌다. 강 이쪽 도로들도 모서리가 부서진 곳이 많다. 튼튼한 시멘트 도로를 이렇게 망가뜨린 강물은 자갈밭 아래로 내려가서 숨죽이며 흐른다. 산그늘이 막아 마음껏 반짝이層?못한다. 저 길을 다 고치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사람과 기계와 시간이 필요할 것인가. 단양사람들은 큰 비 내릴 때마다 물난리를 겪으며 살았다. 남한강이 기침만 해도 집과 논밭을 잃어야 했다. 충주호를 만들면서 많은 지역이 수몰되었지만 하류의 고통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담아둘 곳이 마땅치 않은 상류의 물들은 질풍노도처럼 밀려와 길들을 삼키고 갔다. 군간나루터 사람들은 쓸쓸한 강변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낚시꾼 몇 사람이 쏘가리를 노리며 낚싯대를 펼치고 있다.
영춘으로 들어오니 도시에 온 것 같다. 길이 넓고 따뜻하다. 영춘은 조선시대 영춘현이 있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까지 단양과는 독립된 행정을 펼치던 곳이다. 영월과 이어주는 595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벽교를 건너간다. 북벽에서 영월까지는 두뼘이 채 안된다. 여름이면 영월 경계 오사리에서 출발한 레프팅 군상들이 영차영차 구호를 맞추며 강물을 가를 것이다. 그 보트들 지금은 모두 뭍에 올라와 있다.
북벽을 본다. 이정도의 절벽이야 어디에나 있다. 북벽이 명소가 된 것은 절벽을 싸고 도는 남한강 물길과 북벽 건너편의 자갈밭 덕분일 것이다. 돌이 긁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지녔다. 청명봉을 담으려고 자갈자갈 밟으며 올라간다. 상류로 올라간다. 북벽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올라갔다 되돌아 내려온다. 느긋하게 앉아서 저 절벽을 바라보면 시 한 수 얻지 못하랴. 오지로 부임한 관리가 넘을 수도 무너뜨릴 수도 없는 절벽을 앞에 두고 긴 날을 보내야 했을 때 느꼈을 답답함을 생각해본다. 볕은 좋고 돌은 속삭이고 물결은 반짝이지만 드넓은 돌밭에 배 한 척 없이 주저앉은 나그네.
올 때와는 다른 길로 영춘 시가지를 지나간다. 온달장군 축제 준비로 마을이 부산하다. 온달장군이 쌓았다는 석성은 북벽교 앞에서도 보인다. 단성면에 남아있는 적성과 비슷하다. 강쪽으로 내민 능선에 기와지붕의 부연처럼 모서리를 들어올리는 성곽. 그 성 아래를 지나쳐서 구인사로 들어간다. 구인사 두 번째다. 소백산 능선 종주를 마치고 신선봉 그늘로 내려섰을 때, 내려가도, 내려가도, 새로운 당우가 나타나는 거찰을 만났었다. 철쭉꽃이 흐드러져서 사람이 무척 많아서 다리는 아프고 길은 더뎠는데 구인사 경내로 들어서자 고소한 밥 냄새가 번져오는 것이었다.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는 시장끼. 식당 앞에서 서성거리며 들여다보았지만, 관광객은 사절이었다. 그날 그 밥을 못 먹은 서운함이 가슴속에 꼬물꼬물 남아있었다. 오늘은 그 밥을 꼭 한번 먹어보리라. 마침 점심공양시간이다. 장독대 앞에서 만난 보살의 도움으로 희망을 이루게 되었다. 신도들 틈에 줄을 서서 식판을 받았다. 밥과 국, 반찬 세 가지. 젓가락은 없다. 이 검소한 식사에 초대받은 행운. 딸네 집보다 아들네 집보다 절이 좋다는 신도들. 소백산 골짜기 하나를 온전히 차지한 불국에서, 감사와 평화로 충만한 얼굴들. 나는 신기하다. 구인사의 어떤 점이 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가. 대조사당까지 올라가 본다. 산비탈이 생긴 그대로 건물을 앉힌 지혜가 눈부시다. 이 당우들 가득한 골짜기의 가장 위쪽에는 적멸보궁이 있다. 신도들은 거기까지 수행 삼아 올라간다. 삭막한 들판에서 무지개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가득해져서 내려온다. 종교의 힘을 깨닫는다.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설교. 실천하는 종교. 구인사를 찾은 사람들은 거기서 빛을 보는 것 같다.
고드너미재는 좁고 가파르고 꼬불꼬불하다. 단양에서 가장 꼬불꼬불하다. 그래서 스릴이 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니 가곡면이다. 고목나무 한 그루 맞이한다. 보호수.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 마을 안에 큰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구심점을 삼는다. 그 나무에 약속을 걸고 뜻을 뭉치며 살아간다. 수수타작을 끝낸 뒤 둘러서서 한담을 나누는 촌로들의 표정처럼 나무의 표정이 당당하고 밝다. 대접받고 숭배 받으며 살아가는 생명의 표본을 보는 것 같다.
향산석탑은 마을 안에 있다. 향산사 법당이 있었을법한 터엔 민가들이 들어차 있다. 이 한적한 곳에 이만한 탑을 세우고 먼저간 이를 기리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에서 빛을 본 사람들이다. 나는 이 탑을 종교의 흔적으로서가 아니라, 이 마을의 역사로 다가가 본다. 그리고 현재로 본다. 그 현재는 과거로부터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온 현재이다. 이 탑은 언제나 현재 속에 서있었다.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낮은 울타리를 둘러놓았을 뿐인데,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 속에 있는데, 개구쟁이들도 술꾼도 건드리지 않고 아끼며 돌보아온 자랑. 마을 안에 오랜 자랑거리 하나만 있어도 떠난 사람들 고향을 기억하고 궁극에는 돌아온다. 황량한 들판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듯 감동이 번진다.
이제는 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자, 북쪽은 다 보았다. 강 따라 내려와서 상진대교를 다리 위를 오가며 상진리 시가지를 담아본다. 구 단양 마을 안으로 물이 차 오를 때, 사람들은 정든 집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이제 저 높직한 언덕 위에서 성난 강물이 밀려와도 걱정 없이 일터로 나가고 편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버린 뒤에야 얻는 것.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 단양 사람들은 그것을 이미 경험했다. 결단을 내릴 때까지의 고통은 힘들었겠지만,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일어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 기회를 잃고 멀리 떠돌며 실의에 빠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강이 있어서 좋은 만큼 호수가 생겨서 좋은 만큼 잃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리는 그분들의 옛 땅을 떠올리며 건너야한다.
 다리 건너 한참을 달려 월악산 그늘로 들어섰다. 산의 모습이 달라진다. 붕긋붕긋한 바위들이 갈맷빛 등성이들을 열고 솟았다. 사람들은 그런 봉우리마다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다. 동물이나 식물에서 따온 이름들이다. 제비봉 구담봉은 길에서도 보인다. 호수 건너 금수산도 길에서 보인다. 옥순봉은 배를 타고 호수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다. 강이 호수로 변하는 지점은 확실하지 않다. 흐르던 물소리 잦아들고 좁은 강폭이 펑퍼짐하게 넓어지는 곳. 그 지점은 흘러드는 수량에 따라 늘 변하기 때문이다. 고요하여라, 충주호! 금대봉에서 매봉산에서 오대산에서 고루포기산에서 소황병산에서 발왕산에서 백두대간을 끌고 정선∼영월∼단양을 적시며 흘러온 강줄기 이 호수까지 와서 쉰다. 이 호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정든 땅 이별하며 눈물을 빼게 하고 못 잊어 자꾸 돌아보게 하고 그러고 나서 얻은 호수. 배를 띄워 더 깊은 곳을 만나러 간다.
유람선을 타고 뭍을 바라보는 마음. 들썩거리는 음악 속에 흥겨워하며,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은 잠깐 사이에 초면임을 잊는다. 얼마나 오래 이 호수를 돌며 똑 같은 풍경을 설명해 온 것일까. 노들2호 기관사의 말은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것 같이 걸림이 없다. 그의 혀끝에 오르면 산상의 바위가 거북이로 둔갑하고, 길옆의 암봉이 제비가 되어 날아오른다. 묵묵히 선 바위에 신선의 옷을 입혔다 벗겼다한다. 단양 기생 두향을 물 안에서 불러 못 이룬 사랑을 되살리고, 물가의 초라한 무덤을 명소로 둔갑시킨다. 구담봉 뿌리를 훑으며 옥순봉으로 가는 길. 닫힌 듯 열리는 물길 안에서 배는 휘청, 바람은 씽씽, 사람들은 뱃전을 돌아다닌다. 말이 쉬면 노래가 흐른다. 배가 들썩거린다. 사람들 근심 걱정 잊고 흥겨워한다. 하늘이야 어두컴컴해지거나말거나 기념 사진을 찍는다. 그의 혀끝에서 옥순봉은 대숲이 된다. 대나무가 얼마나 오래 살면 저 바위만큼 굵어질 것인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돌려놓는 화술. 관광객들은 웃고 웃으며 1시간과 6,000원이 아깝지 않다.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났다. 천둥치고 번개 번쩍인다. 밤새 계속되는 비. 일요일 아침이 와도 그칠 줄을 모른다. 길은 남고 날은 흐리니 산란하지만, 가기로 한길은 가야한다.
적성비 앞에 서니 김이 빠진다. 이렇게 쉬운 곳을 너무 어렵게 찾아다녔다. 갈림곳 두서너곳에 안내판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 보물은 고생해서 찾아올수록 더욱 빛난다. 비는 오지만 비각이 있어서 다행이다. 녹슨 자물통 열 수 없으니 좁은 틈으로 들여다본다. 아담하고 야무진 비석이다. 위쪽이 떨어져나가긴 했지만 글자들은 선명하다. 단양최고의 보물이다. 신라 진흥왕은 왕 중의 맹수였나 보다. 맹수들은 경계 긋고 지키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진흥왕은 자기 대에 확보한 영토 경계에 영원히 닳지 않는 돌비들을 세워 영역 표시를 했다. 창녕척경비·북한산비·황초령비·마운령비. 4대 순수비 중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는 휴전선 이북에, 둘은 이남에 있다. 이 적성비로 인하여 이남에는 셋이 있는 셈이다. 이 비석 또한 고구려와 세력다툼을 벌이던 남한강변에서 신라 쪽을 향해 세운 척경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적성산성에 서서 중앙고속도로를 내려다본다.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 도로 아래는 호수가 보인다. 한쪽 귀퉁이에 불과하지만 저 무렵부터 충주호는 시작되는 것이다. 구 단양 사람들은 저 호반 마을을 이제는 그렇게 부른다. 물밑의 길들과 물밑으로 사라진 주춧돌들. 이 산을 내려가 그들 곁을 다시 서성거려야 겠다.
비오는 날은 동굴 구경. 길고 어두운 동굴구경은 사람 많은 휴일에 함께 하는 게 좋다. 단양은 동굴 부자다. 이름난 동굴이 네 개나 있다. 하나같이 아름답다. 고수동굴은 가장 규모가 크고 풍경도 다양하다. 종유석과 석순들이 빚어내는 세상. 5억 년전 시간을 만나기 위해 한 두 시간 비치는 일도 삶에 유익하다. 맹수의 송곳니 같은 석순과 종유석앞에서 사바나를 떠올린다. 야성보다 더 빛나는 자산은 없다. 이 동굴 안에는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1cm 자라는데 100이 걸린다니, 이 늙은 기념물들 앞에서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체인 것이다. 몇 천 번을 죽으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이 기념물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것인가.
죽령으로 가는 길은, 내게도 역사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내게도 추억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아침에 건너온 다리를 건너 아침에 왕복한 길을 되짚어 간다. 철로와 기차역. 그곳에도 나의 흔적은 있다. 나는 기적에 약하다. 기차를 놓치고 외톨이가 되어본 적이 있다. 나는 기차를 넘어 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내가 한적한 기차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이다. 단양에는 그런 곳이 세 곳이나 있다. 단양, 단성, 죽령. 비오는 날에도 망설이지 않고 나의 길을 갈 수 있게 힘을 주는 기차역. 5억 년 전 동굴들을 품고 있는 이 오래고 거대한 땅덩어리 위에서 백년도 안된 내가 길 잃지 않고 목표물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장소. 눈 여겨 보아둔 단성역으로 핸들을 꺾는다. 단성역. 객차는 하루에 3번 지나가지만, 화물차는 수시로 지나다닌다. 죽령을 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실은 화차들은 단성역에서 기관차를 하나 더 달고 가파른 비탈을 오른다. 내가 오르려는 죽령이 얼마나 가파르고 험준한 곳이었나를 알려주는 장소. 비오는 날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아 따끈한 커피한잔 끓여줄 줄 아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죽령으로 오르는 단양 쪽 길은 아주 좋아졌다. 중앙고속도로에 손님을 뺏겨 지나가는 차도 몇 대 안 된다. 오를수록 안개가 자욱하지만 오를수록 빗방울이 가늘어져서 좋다. 길옆 사과밭에서 빗맞는 사과들의 말을 듣는다. 낮은 덥고 밤은 춥다고. 그래서 내 사 은 달고 ekse나하다고. 그래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그러나 아직 덜 익었다고. 한창 단맛이 드는 중이라고. 익으면 먹으러 오겠다고. 어디선가 보면 너를 골라 사먹겠다고 나도 대답했다. 비오는 날 모델이 되어준 예쁜 사과들에게.
죽령 마루턱은 안개가 자욱하다. 마루턱을 넘어 풍기 쪽으로 내려가다 다시 올라왔다. 죽령휴게소는 손님 없어 문을 닫았지만, 백두대간 타는 사람은 많다. 소백산 능선종주도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토산품 파는 집은 있다. 산꾼들은 둘러앉아 라면을 끓이고, 안개는 걷힐 줄을 모른다.
용부원2리는 죽령 아래 첫 동네다. 나를 이 마을로 인도한 것은 버스정류장 때문이다. 단양군내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에 잇는 정류장. 이 정류장을 이렇게 예쁘게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좁지만, 끝까지 들어가면 차 돌릴 곳 있겠지. 그러나 아니었다. 남의 집 마당에서 시설물을 피하며 돌리느라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주인을 불렀다. 김옥분(74) 할머니는 불럭 한 장 깨트려도 좋다고 웃으며 허락했다. 옆집 아저씨가 나와서 무사히 탈출하게 도와주었다. 옆집 아저씨가 이 마을 이장님이었다. 한적한 동네에 불청객이 들어와서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왔다. 아이들은 밝고 어른들은 따뜻하다. 마을 안에서 가장 깨끗하고 튼튼한 건물은 노인회관이다. 가곡면의 거목처럼, 향산리의 석탑처럼, 용부원2리의 노인회관은 이 마을 사람들을 따뜻하게 단결시키는 구심점이 되고 있었다. 용부원2리에서 바라보는 죽령계곡은 깊고 아늑하다. 언젠가 다시 와서 회포를 풀리라. 안보일 때까지 손 흔들어주는 저 따뜻한 사람들.
사인암 구경하고 상선암 가는 길. 문경으로 가는 길. 도락산에서 내려온 산꾼들 상선암 차지하고 일어설 줄 모른다. 비가 와서 물이 불어 계곡은 마음껏 노래한다. 하얀 물보라 튀기며, 무지개를 만든다. 방곡도예촌 찾아간다는 것이 장정리로 들어왔다. 오지에서 만나는 학교. 비오는 일요일이라 텅 빈 운동장. 아이들은 없지만 학교는 깨끗하다. 분교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데 이 학교는 얼마나 다행인가. 이 마을 사람들은 이 학교를 구심점 삼아 향토 사랑을 일구고 있다.  
넷째 날 아침에야 비가 든다. 비 개인 하늘에 흰 구름이 뜬다. 맑고 맑게 헹궈서 하늘로 띄워 올린 구름. 그 가볍고 흰빛처럼 내 걸음도 가볍다. 이런 날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도담삼봉은 다홍빛 너울을 걸쳤다. 다홍이 분홍으로 분홍이 흰빛으로 변할 때까지 지켜보다 뜬다. 고수대교를 건너서 다리안으로 들어간다. 천동리 안으로 들어선다. 즐비한 민박집 간판들. 음식점들. 여름 시즌이 끝나서 모두 한적하다. 다리안 관광지도 텅 비었다. 매표소도 무사통과다. 소백산 유스호스텔 앞으로 가서 소백산 오르는 길 들여다본다. 산은 오르라 오르라 맑은 물을 보내는데, 다음을 기약하며 걸음을 돌린다.  
기촌리 앞 삼거리에서 노동리로 넘어간다. 오래된 국도보다 새로난 군도들이 넓고 깨끗하다. 산길 도로 만드는 기술도 갈수록 발전하는 것 같다. 노동리 거쳐서 강변으로 나와 절경에 풍덩 빠진다. 한 장의 거울로 변한 남한강. 흐름을 멈춘 수면 위에 건물들과 구름 그림자 담그고, 물새는 끼룩끼룩 울면서 난다. 비에 지쳐 떠났더라면 이 경치를 못 보았겠지. 어제 오후 구 단양에서 맞닥뜨렸던 불타는 노을에 감사한다. 그것은 지극한 만류의 손짓이었다.     충주호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오늘 보니 도담삼봉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예쁜 강물. 이렇게 맑은 호수. 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 호반 길을 달리리라. 비오는 거리에서 우울하던 마음을 활짝 말리며 가리라. 강을 건너 강을 건너 구단양을 거쳐서 하방리 중방리 거쳐간다. 호수 안으로 배를 몰아 구담봉 옥순봉 다시 보고 장회나루 등진다. 충주호반에 내 그림자 길게 떠있다. (본문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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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어떤 곳인가
충청북도 단양군(忠淸北道 丹陽郡)은 강원·충북·경북 3도가 만나는 요지에 위치하고있다. 북쪽은 강원도 영월군·동쪽은 소백산 능선을 경계로 경북 영주시·동남쪽은 경북 예천군·서남쪽은 경북 문경시·서쪽은 충북 제천시와 접하며, 군청 소재지는 단양읍 별곡리다.
'단양(丹陽)'은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가취한 말로,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란 뜻이다. 금굴·수양개 등의 선사유적으로 미루어 약 70만년 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였던 교통과 군사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현재의 단양은 조선시대의 단양군과 영춘현 지역이 합쳐진 것이다. 단양은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赤城)이었다. 신라 때는 내제군(奈提郡·지금의 제천)에 속했고, 고려 초에 단산현(丹山縣)으로 고쳤다.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원주에 속했고, 나중에는 충주에 속하기도 했다. 함단( 丹)이 난을 일으켰을 때, 고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막은 공을 칭송하여 감무를 두기도 했다. 충숙왕 5년(1318)에는 지단양군사(知丹陽郡事)가 되기도 했고, 조선 태종 13년(1413) 지금의 이름인 단양군이 되었다. 고종 32년(1895) 예에 따라 군이 되어 충주부 관할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춘을 병합하여 단양군이라 하였다. 영춘(永春) 지역은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旦縣)이었다. 신라 때는 자춘(子春)으로 고쳐 내성군(奈城郡)에 속했고, 고려 때 영춘으로 고쳐 원주에 속하게 했다. 조선 초 충청도로 옮겨 감무를 두었고, 태종 13년에는 현감을 두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단양군에 병합되었다. 역대의 군명은 적산(赤山)·적성(赤城)·단산(丹山) 등이다(동국여지승람·한국지명총람 참고).
2002년 현재의 단양군 행정구역은 2읍(邑·단양·매포), 6개면(面·어상천·영춘·가곡·대강·단성·적성), 148개 행정리(里)와 395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양군의 총면적은 780.07㎢. 이중 83.7%가 산악지역이며, 경지면적은 78㎢로 11.2%에 불과하다. 집단취락 및 도시지역만 일부의 분지와 구릉으로 형성되었을 뿐 대부분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험준한 산세를 가르며 남한강 상류 23.7km가 단양의 중심을 흘러내린다.   소백산 국립공원과 월악산 국립공원을 아우르는 지역이어서 물과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다. 그만큼 일교차가 심한 내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은 9.9℃, 평균최고기온은 16.6℃, 평균최저기온은 4.0℃이며, 연간 총 강수량은 1,203㎜이다. 인구는 2002년 9월 현재 37,802명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중앙고속도로가 단양의 남북을 고속으로 이어주며, 중앙선 철도가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영주·제천·영월·충주·문경 등지로 통하는 국도가 완비되어 있어 교통 또한 편리하다. 주요기반산업은 관광업·시멘트 제조업·농업 순이다.
 전국 시멘트 생산의 30%를 감당하고있으며, 단양육쪽마늘·송이버섯·죽령사과 등이 특산물이다. 소백산국립공원·월악산 국립공원·충주호 유람·단양팔경 등의 명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 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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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이야기/충주호(忠州湖)
물은 생명이다. 물은 자원이다. 물은 경쟁력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눈을 적절히 갈무리함으로써, 홍수도 예방하고 생활용수와 산업용수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에는 천연호수가 몇 개 안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백두산 천지(天池)다. 한라산의 백록담, 경기도 포천 명성산의 산정호수(山頂湖水) 등이 산상(山上)에 있는 천연호(天然湖)들이지만, 위에서 열거한 용도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평지에 있는 천연호수로는 경남 창녕에 있는 우포늪·북한 량강도 삼지연군에 있는 삼지연(三池淵)·함경남도 정평군에 있는 광포(廣浦) 등이 대표적인 예다. 바닷가, 특히 북한의 안변에서 남한의 강릉에 이르는 동해안에는 이름난 천연호들이 몇 개 있지만, 대부분 물결에 밀려온 모래가 둑을 쌓아 만들어진 석호(潟湖)들이다. 관동팔경에 해당하는 동정호·시중호·삼일포·영랑호·감호 등은 휴전선 이북에 있고, 속초의 영랑호·강릉에 있는 경포대 등은 이남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내륙에 위치한 호수들은 대부분 인공호(人工湖)들이다. 산이 많고 물매가 급한 우리나라 지형은 비가 와도 물을 오래 가둘 수가 없었다. 반대로 적은 비용으로 커다란 인공호를 만들기에는 좋은 지형이다. 두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는 좁은 수로 한군데만 단단히 막으면 저수량이 풍부한 담수호가 생기는 것이다. 단양에서 충주에 이르는 남한강 줄기 막아 만든 충주호도 이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인공호다. 충주댐은 충주시 종민동과 중원군 동량면 조동리 사이의 남한강 물길을 막아 만들었다. 높이 97.5m. 제방길이 464m로 국내 최대규모의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총저수량은 27억 5천만 톤이고, 댐으로의 연평균 유입 수량은 44억 8200만 톤이며 만수위 때의 수면 면적은 97㎢로 우리나라 최대의 담수호를 이룬다. 1980년에 착공하여 1985년에 완공되었다. 충주댐 건설로 1시 3군 13면 114동리의 66.48㎢가 수몰되었으며, 수몰 이주민은 4만 9627명이었다. 이들을 위해 곳곳에 이주단지가 건설되었으며, 단양신도시 또한 이렇게해서 건설된 도시이다. 충주댐 건설로 13억톤의 생활용수·12억톤의 관개용수·8억톤의 공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으며, 40만㎾의 전력을 얻게 되었다. 충주댐의 홍수조절량은 6억톤이다.
충주호에는 단양 장회나루와 충주 살미나루를 연결하는 관광선이 수시로 왕복하고 있다. 단양 쪽 구담봉 옥순봉만 둘러오는 유람선도 있다. 배를 타고 둘러보는 호반에는 갖가지 전설을 간직한 봉우리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어, 충주호 상류에 위치한 단양군은 각광 받는 관광지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호는 압록강 수계에 건설된 수풍댐(水豊湖)과 운봉호(雲峰湖)지만 물도 전기도 중국과 나눈다. 가장 많은 인공호는 한강 수계에 있다. 북한강 수계 상류엔 북한의 금강산댐과 그에 대응해 쌓은 평화의 댐이 있고, 파로호·소양호·청평호·팔당호 등이 있고, 충주호를 지나온 남한강 물길과 합류한 양수리 바로 아래는 팔당호가 있다. 남한강 수계 최 상류에 있는 인공호는 골지천 상류에 있는 광동호다.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만나 조양강을 이루는 송천 상류에는 수하호가 있다. 광동호·수하호 두 호수는 남한강 수계에서 최 상류에 위치한 인공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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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단양팔경(丹陽八景)
단양 관내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 여덟 곳을 일컫는데, 도담삼봉·석문·구담봉·옥순봉·사인암·상선암·중선암·하선암으로, 물 속이나 물가의 암봉(岩峰)이나 암반(岩盤)들이다. ○도담삼봉(島潭三峯)
도담리 서쪽 남한강 물 속에 솟아있는 자그마한 암봉(岩峰) 셋을 말한다. 모두 짙은 회색의 돌로서 주름이 잡혀있어서 아름답다. 남쪽 봉우리는 꼭대기에 작은 돌이 머리를 들고, 가운데 봉우리를 향하여 교태를 부리는 모양이므로 첩봉(妾峯)이라 하고, 북쪽 봉우리는 단정히 앉아있으므로 처봉(妻峯)이라 하고, 높이 6m에 달하는 가운데 봉우리는 장군봉 또는 남편봉이라 부른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이 별곡리에 은거할 때, 삼봉이라 명하여 자기 호로 삼았다한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우복 정경세(遇伏 鄭經世)·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모당 홍이상(慕堂 洪履祥)·농암 김창협(農岩 金昌協)·송간 황응규(松間 黃應奎) 등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가운데 봉우리 위에 있는 정자 이름은 능영정(凌瀛亭)이다. 요즘은 삼도정이라 고쳐 부른다.

○석문(石門)
 도담삼봉 상류에 있는 천연 석문으로, '석문뚱'이라고도 부른다. 도담삼봉에서 북쪽으로 200m 정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왼쪽 강변에 궁륭 모양의 석주가 나타나는데, 석주 위에는 길고 큰돌이 가로놓여 있어서 홍예교처럼 보인다.
도담삼봉 주차장에서 음악분수 앞을 지나, 팔각정이 있는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서, 정자 오른쪽 길을 따라 200m 정도 숲길을 내려가면 짙은 수림 속에 있다. 석문 구멍을 통해 내다보는 남한강과 건너편 마을(도담리)이 피안처럼 아름답다.

○구담봉(龜潭峰)
충주호 물속에 돌거북 한 마리를 이고 있는 기암절벽을 구봉(龜峯)이라하고, 거북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강물을 구담(龜潭)이라 하여, 한 쌍을 이루어 지어준 이름이 구담봉이다. 조선 선조 때 성암 이지번이 토실(土室)에서 수도하면서 흙으로 길게 밧줄을 만들어 구담봉과 맞은편에 있는 오로봉에 걸쳐 매고 그 줄에다 가마를 달아매어 탄 후, 요즘 삭도처럼 밧줄을 잡아당겨 구담 위를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 한다.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면 구담봉 아래를 지나 옥순봉 쪽으로 가게 되는데, 36번 국도에서도 보이고, 장회나루 선착장에서도 보인다.

○옥순봉(玉筍峰)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치솟아, 절개 있는 선비를 연상케 하는 봉우리다. 바위 면에 '丹邱洞門(단구동문)'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퇴계 이황의 글씨다. 옥순봉은 원래 청풍군에 속해 있었는데, 단양 관기 두향이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선생에게 단양군으로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치 않으므로, 석벽에 네 글자를 암각하여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한다. 옥순봉은 배를 타고 충주호 안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단양∼제천을 연결하는 옥순대교가 완성되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인암(舍人岩)                                                                      대강면 사인암리 남조천 가에 거대한 돛폭 모양의 암석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데, 고려말 역동 우탁 선생이 사인 벼슬 재직시 이곳에서 청유하였다는 사연에 따라,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 임재광이 그의 벼슬명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역동 우탁 선생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고 운선구곡이라 칭송 받는 남조천의 아름다움도 더불어 음미할 수 있다.
○상선암(上仙岩)                              
월악산 도락산 황정산 물줄기가 단양천을 이루어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도중에 널찍하고 두툼한 암반을 펼쳐놓았다.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명하였다하며, 그는 이곳에 소박한 초가 정자를 짓고 '신선과 놀던 학은 간 곳이 없고/학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이 와 닿는/그런 곳이 바로 상선암일세' 시를 지어 읊으며 욕심 없는 인생을 즐겼다 한다. 하류에 있는 중선암과 함께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단양∼문경을 잇는 59번 국도변에 있다. 도락산 들머리 옆이다.(단성면 가산리)  
○중선암(中仙岩)
조선 효종조 문신인 곡운 김수증이 명명한 곳으로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작은 폭포가 두가닥 흘러내려 '쌍룡폭'이라고도 칭하며, 흰색의 큰 바위 둘은 '옥염대' '명경대'라 불리어 온다. 옥염대 암벽에는「사군강산 삼선수석」이라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다. 조선 숙종 43년 관찰사 윤헌주가 특서한 것이며, 사군이라 함은 단양·영춘·제천·청풍을 말한다. 59번 국도변 '도락산장' 입구로 들어가면 된다.(단성면 가산리)  
○하선암(下仙岩)                                                                       단성군 대잠리 단양천 물길 안에 벌여 있는 마당 바위 일대를 일컫는다. 물이 말고 그늘이 좋아 찾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암반 위에 덩그렇게 얹혀 있는 둥글고 큰 바위는 미륵 같이 생겼다고 '불암'이라 부른다. 조선 성종조 임재광 선생이 신선이 노닐던 바위라 하여 '선암'이라 명명하였는데, 상류에 있는 상선암 중선암과 구별하기 위하여 하선암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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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단양의 동굴들  
5억년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천연 동굴들, 종유석과 석순들의 요람  
고수동굴·천동동굴·노동동굴·온달동굴
○고수동굴(古藪洞窟)
고수동굴은 아름답다. 길고 깊고 장엄하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종유석과 석순의 빛깔이 붉고 밝고 맑아진다. 태고의 신비가 숨쉬고 있는 곳.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1300m나 되는 자연동굴이다.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동굴 안은 사계절 섭씨 15℃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그야말로 종유석과 석순들의 요람인셈이다. 관람에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자연동굴이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노동동굴(蘆洞洞窟)
생성연대가 약 5억년으로 추정되며 주굴 600m 전반이 40-50도의 급경사를 이루는 동양최대의 수직동굴이다. 지하 200m 지점에서 빙하기시대의 변화를 입증해 주는 강자갈과 모래가 발견되고, 불곰뼈 화석이 출토되었다.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262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천동동굴(泉洞洞窟)
천동동굴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하수의 유입량도 적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수도 소량이어서 종유석이나 석순의 성장도 무척 느리다. 따라서 다른 동굴에서는 보기 힘든 '포도상구상체'와 '꽃쟁반'들을 볼 수 있다. 생성연대는 약 4억5천만년 전. 길이 470m의 천연 석회암동굴이다. 지방기념물 제19호. 입구가 협소하여 20여m를 기어 들어가야 하지만, 덜 여문 듯한 석주와 쏟아질 듯이 박힌 어린 종유석들은 진기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온달동굴(溫達洞窟)
영춘면 백자리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 기슭에 있으며, 본래 남굴이라 불렀다. 약 4억 5천만년 전부터 생성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온달동굴은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760m나 되는 석회암 천연동굴이다. 천연기념물 제261호. 온달동굴의 특징은 석회암층 담백색 종유석과 석순이 잘 발달되어 내부의 비경이 웅장하며, 지표수가 유입되어 수심 1m 정도의 물이 동굴 내부를 항상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도 2차 생성물이 자라고 있으며 물고기가 서식하는데, 윤년 윤달에는 물이 말라 노래기, 지네, 거미 등 생물이 서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25 사변 때는 인근의 주민들이 피난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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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북벽(北壁)
 소백산 지맥 한 가닥이 남한강에 꼬리를 담군다. 그 끝이 거대한 악어의 꼬리처럼 당당하고 힘차다. 가까이 가보면 검은 절벽이 물을 딛고 일어서 있다. 등성이엔 나무들이 성글게 돋았다. 영춘면 상리 느티마을 건너편에 있다. 영춘 태수 이보상(李普祥)이 물가 바위벽에 '北壁' 두 글자를 크게 새기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는 수십 길. 가장 높은 봉우리를 '청명봉'이라 한다. 매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하여 '응암'이라고도 부른다. 예전엔 양반들이 작은 배를 띄우고 풍월을 읊었으나, 요즘은 젊은 군상들이 영월경계 오사리에서부터 강물을 따라 흘러가며 래프팅을 즐긴다. 영춘면 상리 느티마을 표석에서 마을 안 길로 들어가면 있다. 다리옆 삼거리 '북벽가든' 뒤편에서도 보인다.(영춘면 상리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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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죽령·죽령폭포·죽령산신당
 죽령(竹嶺)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경계가 되는 고개 이름이다. 죽령재·대재라고도 부른다.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에 길을 열었다한다. 죽령에 길이 생긴지 올해로 1,844년째가 되는 셈이다. 소백산 연화봉과 도솔봉 사이의 안부에 해당되는 죽령 마루턱은 해발 689m.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뻗어 가는 백두대간이 죽령에 이르러 한차례 허리를 펴고 곧게 서는 형국이다. 죽령에서 단양 쪽으로 흐르는 계곡은 죽령천(竹嶺川) 혹은 북천(北川)이라 부른다. 죽령천 상단에는 죽령폭포가 있다. 오름길 옆에 매표소가 있어서 들머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죽령 아래 용부원리에는 "더자구야" "다자구야" 암호를 보내어 도적을 물리치게 했다는 '다자구할머니'를 모신 '죽령산신당'이 있다. 내리막길 30리·오르막길 30리. 아흔 아홉 구비의 험하고 힘든 고개였으나, 중앙고속도로가 죽령 아래 왕복 2차선 '죽령터널'을 개통한 이후 한적한 옛길이 되고 말았다. 길이 한적한 만큼 넘나드는 차도 드물어 옛 생각 더듬으며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단양 쪽 도로는 정비가 잘되어 있으므로 마루턱까지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오거나, 풍기까지 내려가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 죽령 휴게소는 관광객 감소로 문을 닫았지만, 매점은 하나 있다. 국립공원측에서 마련해둔 화장실 등은 깨끗하다. 오르내리는 5번 국도 옆에는 사과밭이 심심찮게 있다. 죽령 아래 첫 동네 용부원2리로 들어가면 때묻지 않은 오지의 인심을 만날 수 있다.(대강면 용부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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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다리안산
 다리안산이란 다리안에 있는 산이다. 천동리 다리를 건너야 만날 수 있는 산. 바로 소백산이다. 1950년까지만해도, 단양 땅에서 소백산을 오르려면 '다리안다리'라는 구름다리를 지나가야 했다고 한다. '교내교(橋內橋)·계구교(戒懼橋)·융탁교(戎濯橋)·운제교(雲梯橋)' 등으로 불린 구름다리였는데, 30개나 되는 층계를 올라가서 박달나무줄기에 다래넝쿨을 묶어서 만든 다리를 건너야 했다. 사람은 겨우 건너지만 큰 소는 건너지 못하고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다리안과 밖을 죽음과 구분하여 연계시켰고, 이 다리를 건너 다리안산으로 들어가려면 마음을 맑게 가다듬고 하중을 줄여야했다. 이 다리를 건너서 다리안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관습의 다리', '약속의 다리'를 건너는 행위와 같았다. 속세의 인연과 일과 가진 것은 속세에 두고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신성한 산이란 뜻이다.
 단양과 영주 사이에 우뚝 솟은 소백산. 지금도 산아래 사람들은 그 큰 품을 우러르며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는다. 천동리에서 천동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1,439.5m)에 닿고, 백자골을 거슬러 오르면 연화봉(1,394.3m)에 닿는다. 현재 소백산 들머리는 '다리안산 국민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국민관광지 계곡 건너편에는 두 다리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형상의 '다리안폭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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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신라적성비(新羅赤城碑)·적성산성(赤城山城)
○신라적성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성재산 적성(赤城) 내에 있는 고비(古碑). 국보 제198호. 신라 진흥왕 6년(545)∼11년(550)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높이 93cm·상폭 107cm·하폭 53cm·두께 25cm의 아담한 화강석 비석이다. 1978년 1월 6일 단국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 조사되었다. 곱고 판판한 면에 비문을 새겼는데, 얕게 음각하였으나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있었으므로 비면(碑面)이 깨끗하고 자획이 생생하다. 22행으로 새겨진 비문은 430자로 추산되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84자뿐이며, 판독이 가능한 상태다. 글체는 예서풍(隸書風)이 있는 해서(楷書)로 서예연구에도 귀중한 재료가 되고 있다. 해독 가능한 비문의 내용은 진흥왕이 이사부 등 10인의 고관에게 하교하여 신라의 척경 사업을 돕고, 목숨까지 바쳐 충성을 다한 적성인(赤城人) 야이차(也 次)의 공훈을 표창하고, 장차 야이차와 같이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 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일종의 전승기념비요, 국가정책 포고문 같은 것이다. 진흥왕 때 세운 4대 순수관경비(북한산비·창녕척경비·황초령비·마운령비)들과 다른 점이다. 판독가능한 비문의 내용으로 창녕진흥왕 순수비보다 10년 일찍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어, 국내최고의 금석문으로 대접받고 있다. 중부고속도로 단양휴게소 뒤편 성재산 기슭 적성산성 안에 있다.(단성면 하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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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적성(丹陽赤城)                                                                    단성면 하방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석축산성. 사적 제265호. 둘레 923m 면적 26,816평. 성곽의 길이는 923m이나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동쪽 내외 협축한 부분의 안쪽벽 높이 2∼3m, 폭1m의 석축이 일부 남아 있다. 삼국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성터 안에 남아있는 신라적성비와 함께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신라와 고구려의 다툼과 세력 변동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단양휴게소 뒤편으로 나가면, 야트막한 능선에 한옥의 부연처럼 남아있는 성곽 일부가 보인다. 구단양 단성면사무소 뒤편 성재산 기슭에 있다.(단성군 하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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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향산 석탑(香山石塔)
신라 눌지왕 19년(435) 묵호자(墨胡子)라는 도사가 향을 구하러 들어왔다가 부처님의 계시를 얻어 향산사(香山寺)를 짓고 수도하였는데, 열반 후 그의 제자들이 이 탑을 세우고 그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절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이 탑만 남았다. 일제시대인 1935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완전 해체되고 사리를 도난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완전 해체 탑을 이곳 주민들이 합심해서 다시 세운 것이다. 탑의 규모는 높이4.4m 기단 폭은 1.8m이며, 기단부 중대석 각면에는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여 두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상층기단 중대석의 각면에도 우주와 탱화를 모각하여 갑석은 두 장씩 판석으로 되어 있다. 또한 탑신부의 실신과 옥개석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옥개석은 각층 4단이며 추녀는 수평을 이루고 있다. 이 석탑은 조각수법이 단정하며 소박하다. 비례 균형이 잘 정제된 신라하대의 전형적인 석탑 모양이다. 현재의 향산리 지명도, 이 절로 인하여 생기게 되었다. 단양∼영월을 연결하는 59번 국도변에서 머지 않은 마을 안에 있다. 보물 제405호. (가곡면 향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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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온달산성(溫達山城)
영춘면 하리(下里)와 백자리(栢子里) 경계에 있는 성산(城山·427m)에 있는 석성. 성산은 온달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은 고구려 장수 온달장군이 쌓았다고 하며, 둘레 1,523자, 높이 11자이며, 성 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고, 성 아래는 남굴(南窟)이 있어서 더욱 유명하다. 남굴은 지금의 온달동굴이다. 온달산성·온달동굴 등은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의 무용담이 이 지방에 전해 오면서 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온달산성의 축성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산성이 있는 성산은 영춘현(永春縣·영춘의 조선시대 행정구역명)의 진산(鎭山)이었다. 남한강이 굽어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한 이 산은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다툼이 치열하던 지역이고, 소백산과 죽령을 넘어온 신라군의 한강 도하를 막기 위한 전초기지였다. 《삼국사기》 온달전(溫達傳) 내용에 의하면 '고구려 양원왕이 즉위하매 온달이 출정하여 신라군과 아단성(阿旦城) 밑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하는데,  영춘의 고구려 때 이름이 을아단현이었으니, 온달은 영춘지역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영춘현편 '고적'조에 '성산고성(城山古城):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1천 5백 23척이고, 높이가 11척이고 안에 우물이 하나 있다. 지금은 반쯤 무너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이 통일 된 뒤에는 쓸모 없이 방치되어 있었던 듯 하다. 남아있는 성곽의 길이는 682m, 성안의 면적은 7,972평. 내외 협축의 석축을 한 소규모 산성이지만,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지의 돌출부 등은 우리나라 고대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안에서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다. 신단양에서 고수대교를 건너 595번 지방도로 타고 영월 방면으로 가다가, 영춘교에서 우회전하여 온달국민관광지 표지판 따르면 된다. (지금은 고수리 쪽 도로가 태풍 라사가 몰고온 폭우에 유실되어 통행이 불가하므로, 보수공사 완공시까지는 도담삼봉 북쪽 성신양회 후문 쪽으로 우회하여 4번군도를 타야한다. 온달관광지 내에 진입로가 있으므로, 남굴(南窟·온달동굴)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사적 제264호. (영춘면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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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구인사(救仁寺)
대한불교 천태종(天台宗)의 총 본산으로, 전국 각지에 140개소의 말사(末寺)를 거느린 대가람이다. 1945년(佛紀 2489년) 음력 5월 5일 상월 원각대조사(上月 圓覺大祖師)가 현재의 위치에 창건하였고, 1966년(佛紀 2510년) 8월 30일 천태종(天台宗)을 접목 재건(再建)했다. 천태종은 중국 수나라의 지자선사(智者大師)가 594년(佛紀1038년) 법화삼대부(法華三大部)를 완성하여 창립한 종파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숙종 2년(1097년) 의천 대각국사(義天 大覺國師)에 의해서였다. 구인사는 애국불교·생활불교·대중불교를 지향한다. 신도 수는 155만명, 상주 승려 300명. 연건평 6,700평. 50동의 당우(堂宇)들이 소백산 신선봉 기슭 경내를 꽉 채우고 있다.(영춘면 백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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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방곡도예(傍谷陶藝)
 방곡 도예촌은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예가들의 집성촌이다. 가스가마 전기가마가 유행되고 있지만, 방곡도예촌 도예가들은 아직도 흙가마에 장작을 때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방곡리 일대는 조선초기인 약 600여년 전부터 서민들이 주로 쓰던 사기와 옹기를 만들던 곳으로, 사토와 나무만을 사용하여 만드는 독특한 방법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매끄럽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거칠고 투박한 점이 오히려 전통의 맛을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1997년 2670평 부지에 도예촌이 조성하여 종합도예센터로 자리잡았다. 국내 최초로 개발한 녹자와 식물성 유약으로 만든 무공해 자기 생산을 자랑하는 방곡도요(043-422-1510)·분청 바탕에 용문, 당초문 등 살아있는 듯한 섬세한 조각이 일품인 부곡도요(043-422-1552)·오천년 신비에 쌓인 분청의 비밀을 옛모습 그대로 재현하려 애쓰는산당요(043-422-4750)·투박함과자연스로움으로 승부를 거는 오지가마(043-422-7069)·흙과 화력, 작가정신 삼위일체가 빚어내는 분청자기의 산실 단곡도예(043-422-7581)·은은하고 소박한 모양과 차의 쓰고 떫은 맛을 제거해주는 다기(茶器) 생산이 자랑인 죽연도요(043-422-4439)·현운요·감월도요·조평도요·옹기나라 등 12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사기와 옹기를 사고 팔던 옹기장이 서던 '옛점', '구점', '웃점터', 일반 생필품 구입과 교환을 하던 '저자거리' 등 옛 사람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지명과 장소들이 남아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대강면 방곡리) **방곡도예불가마사진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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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산물/단양마늘·죽령사과
단양마늘·육쪽마늘 사과 송이버섯 민물고기
단양마늘은 한지형 6쪽 마늘로 맛과 향이 독특하고 석회암 지대의 황토밭에서 재배되어 맵고 단단하며 저장성이 강하다. 마늘은 알리신 성분을 함유한 건강식품이다. 항암제·강장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화촉진·진통·해독작용·신경통·피로회복·각기·정력증강·변비 미용·거담·진해·혈액순환·성인병 예방 등에도 효능이 있다. 단양의 마늘 재배면적은 200ha 내외. 매년 하지 전후에 수확한다. 그러므로 7월 중순 이후와 5월에 유통되는 마늘은 단양마늘이 아니라고 한다.
○죽령사과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죽령기슭의 산간고랭지에서 생산되어 당도가 높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무공해 환경에서 재배하여 농약을 적게 뿌린다. 주품종은 '후지'로 재배면적은 170 ha 내외. 네델란드·싱가폴 등지로 수출된다. 매년 10월말에 사과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밖에 산간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추·수박·대추·약초·토종꿀·산채취나물·느타리버섯·영지버섯 등도 질이 좋고 맛이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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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손맛
○장다리식당 마늘솥밥·자연송이회(단양읍 별곡리)
 단양 맛은 산 맛이다. 그리고 강 맛이다. 단양을 대표할만한 음식들은 대개 산에서 채취하거나 강에서 잡거나 땅에서 길러낸 것들이다. 단양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단양 땅 특산물을 재료로 만든 향토음식들을 먹어보아야 한다. 재료가 좋고, 정성까지 깃들이면 맛은 저절로 우러나게 마련이다. 단양의 특산물은 석회질 흙에서 재배한 육쪽 마늘이다. 단양읍 별곡리 시외버스 터미널 건너편 골목 안에 있는 장다리식당(043-423-6660)은, 마늘로 재료로 다채로운 요리를 개발하였다. 단양특산물인 육쪽 마늘과 백미·흑미·찹쌀·좁쌀·밤·대추·은행·콩·팥·고구마 등 15가지의 열매를 두어 작은 돌솥에 1인분씩 지어내는 '온달장군마늘솥밥'은 그중 대표적인 것이다. 한마디로 용약하자면 '마늘돌솥밥'이다. 마늘은 생것으로 먹을 땐 눈물이 나게 맵지만 가열하면 달콤해진다. 마늘솥밥 역시 달콤하고 구수한데, 그 단맛은 설탕처럼 속보이는 단맛이 아니라 복합적인 단맛이다. 거북하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맛난 단맛. 그야말로 천연 그대로의 열매들이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묘한 단맛이다. 지금까지 나는, 마늘로 장아찌를 담그거나, 풋마늘을 나물로 쓰거나, 마늘쫑으로 장아찌를 담그거나, 구이나 무침이나 국을 끓일 때 김치를 담글 때  다져서 양념으로만 써왔는데, 마늘로 밥을 짓다니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단양 한우를 정갈하게 요리해 내온 육회도 일품이다. 마늘채와 배(梨)채가 넉넉히 들었다.  15개나 되는 반찬 그릇 중 가장 큰 칠절판은 칸마다 마늘 요리로 채워져 있다. 마늘쫑 장아찌·마늘샐러드·마늘고추무침·마늘을 껍질 째 찹쌀가루 입혀 튀겨낸 마늘 튀김·간장에 담근 마늘장아찌, 그리고 중심에는 마늘로 마탕을 만들어 담았다. 하하, 단양에 오니 마늘이 밥상을 지배하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포식한다.
운좋게 송이철에 왔으니, 마늘솥밥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송이회 한 접시를 먹었다. 얄팍얄팍 썰어서 접시바닥을 덮었지만 단양이니까 30,000원에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단양은 산이 많고 산이 높고 깨끗해서 자연송이를 많이 채취한다. 운좋게 송이철에 맞춰와서 모처럼 별미를 먹는다. 참기름에 소금을 섞은 유장에 찍어먹는다. 양념한 쇠고기를 넣어 송이버섯 전골을 끓여먹거나, 얄팍하게 썰어서 참기름에 앞뒤로 지져먹거나 했었는데, 날것으로 먹어보니 향기가 더욱 뛰어나다. 재료가 싱싱하니 어떻게 먹어도 향기롭다. 길목손맛 덕분에 송이 한 접시 혼자 먹어보았다. 두고 온 사람들이 눈에 어른거린다.(마늘솥밥정식 1인분 10000원. 송이회 한 접시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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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벽가든 된장찌개백반(영춘면 상리)
이른 아침부터 도담삼봉∼어상천면∼군간나루를 지나 영춘으로 들어왔다. 북벽을 찾아 올라가는데 '북벽가든(043-423-7141)'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가니 '북벽'은 이 댁 식탁옆 대형 유리창 건너에 병풍처럼 벌여서있다. 빛을 등지고 있는 시간이어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활짝 열어서 보여주지 않고 아른아른 가려놓고 보여준다. 저 긴 절벽을 훔쳐보며 느긋하게 한잔 먹어보고 싶지만, 때는 아침 오늘 하루 달려야 할 길이 200km 가깝다. 그리고, 눈치를 보니 내가 개시 손님이다. 아침 개시에 혼자 온 손님이 반가울 리 없다. 주방에선 손님 받을 준비가 덜 되었단다. 이래서 혼자 취재 나서면 아침은 아예 건너뛰며 다녔다. 그런데 주인장이 앉으시란다. 쏘가리회나 숭어회나  빠가사리 매운탕을 먹을 것도 아닌데, 들어온 손님을 나가시게 할 수는 없다고. 한적한 시골에서 여기 아니면 어디서 아침을 자시겠냐고. 감사해라. 산골 인심이 역시 후하군요. 그러면 된장찌개나 한 그릇 먹게 해주세요. 이렇게 되어 오늘은 아침은 굶지 않게 되었다. 어제 지어둔 밥이라 미안해했지만 보온밥통 속에 있던 것이라 따끈따끈하다. 살얼음이 살짝 낀 고사리나물이며 연한 콩나물 무침이며 짭짜름한 된장찌개며 누룽지가 살짝 덮인 쌀밥이며가 숟가락 젓가락에 실려 꿀떡꿀떡 넘어간다. 10시 넘어 먹는 아침이라 뚝딱 소리도 없이 끝났다. 커피까지 한잔 얻어 먹었다. 다음에 오면 2kg 짜리 쏘가리회를 먹어주겠다고, 그때는 부엌까지 따라 들어가 쏘가리 쓸개를 소주에 담궈 챙기겠노라 약속까지 떵떵 하면서.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고기들에게 너희는 내 덕분에 오늘 아침 살았다. 농담까지 남기고 왔다. 배부르니 구경가야지 북벽을 찾아 나섰다.(된장찌게 백반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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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식당 묵밥과 흑돼지편육(신단양 2단지)
신단양 2단지에 있는 오학식당(043-422-3313)은 도토리묵밥을 맛깔스럽게 지어내는 집이다. 넓고 깊은 대접에 도토리묵을 두툼하게 채 썰어 담고, 신맛이 살짝 돌게 익은 배추김치를 잘게 썰어 참기름에 무쳐서 얹고, 돈육 다짐을 갖은 양념하여 볶아서 듬뿍 얹고, 들기름에 구운 김을 채 썰어서 고명으로 얹고, 고춧가루 깨소금도 솔솔 뿌리고, 고소한 참기름 넉넉히 두르고, 구수하게 끓인 진국 육수를 잠길랑 말랑 부어 낸다. 김치와 김은 차갑고, 국물과 고기는 뜨겁다. 그날그날 끓여서 쓰는 도토리묵은 야들야들하다. 한 그릇 안에서 냉(冷)과 온(溫)이 체온을 나눈다. 입맛대로 얹어라고 양념장은 따로 내왔다. 도토리묵 잔치국수! 국수도 같기도 하고 묵무침 같기도 한데 여기다 밥 한 공기를 부어 비벼먹는다. 우리 나라 여인네들 텃밭에서 일하다 돌아와 찬장에 남아있는 묵이며 김치에 밥 말아먹다가 개발한 요리 같다. 도토리묵이 연해서 채가 굵은 탓에, 얌전하게 먹을 수는 없지만, 추울 때 먹어도 더울 때 먹어도 궁합이 척척 맞는 맛이다. 한 그릇 먹고 나니
흑돼지 편육도 구수하고 부드럽다. 새우젓과 보리고추장, 단양마늘을 얄팍하게 썰어 곁들여 낸다. 모든 것이 토종이다. 모양이 그렇고 맛도 그렇고 만들고 날라다주는 사람도 그렇다. 단양 땅 토종 재료들을 이용하여 직접 만든 향토음식들이다. 투박하고 소박하고 거짓 없는 손맛을 느낀다. 신단양 1단지에서 고개를 넘어 2단지로 들어서서 속도를 늦추며 내려가면 도로 우측에 베니스장모텔이 있는데, 모텔 우측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도토리묵밥 5000원, 흑돼지편육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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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알차게 돌아보는 코스 가이드
 단양을 제대로 보려면 3박4일은 잡아야 한다. 단양의 볼거리들은 대부분 강이나 호수, 계곡 등의 물 안이나 물가에 있다. 단양에서 가장 큰물인 남한강은 동북쪽 영월경계에서부터 서남쪽 충주경계까지 동서로 가르며 흐른다. 단양은 이래서 다리가 많다. 단양 구경을 잘 하려면 강과 계곡에 걸쳐진 다리들을 무수히 건너다녀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두 번은 유람선을 타야한다. 단양의 명소들은 동서남북 골고루, 방사형으로 흩어져 있으므로, 그 중심이 되는 신단양에 숙소를 정하고 '중심∼북∼북동∼중심∼동∼동남∼중심∼남동∼남∼서남∼서'의 순서로 둘러보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다. 권장코스와 참고사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는 서울 쪽에서 다녀왔으므로, 다른 지역에서는 이 내용을 기준으로 삼으면 도움이 되실 것이다.  
○제1일(도담삼봉∼동굴지구 구경):서울 쪽에서 경부∼영동∼중앙고속도로를 갈아타며 북단양나들목으로 나옴∼삼거리에서 좌회전 '매포' 표지판 따름∼두번째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도담삼봉/단양' 표지판 따름∼도담삼봉 구경(입장 및 주차 무료. 대형유람선은 인원이 적으면 움직이지 않으므로 소형보트를 이용해야함. 7분에 2만원. 배를 타도 멀리가지 않으므로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음.)∼석문 구경(도담삼봉 상류 200m 지점에 있음. 팔각정 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 있음. 왕복 20∼30분 소요.)∼신단양 도전리 도착 숙소를 정함(우후에 도착했다면 여기까지가 하루 일정임. 동굴지구 구경은 다음 날로 순연.)∼고수대교 건너가서 '동굴지구' 구경(고수동굴∼천동동굴 구경∼다리안관광지 둘러보고 내려오다 '기촌삼거리'에서 '노동동굴' 표지판 따를 것. 천동리∼노동리 간 산길 도로는 무공해 도로임. 노운재를 넘어서 내려가면 노동동굴 입구임. 구경 후에는 좌회전하여 남한강변으로 나올 것. 노동리∼고수대교간 도로는 폭이 좁으므로 주의 진행할 것. 고수대교 직전에서 강변도로가 끝나고  고수동굴 입구 대형주차장으로 합류하게 됨)∼고수대교 건너 신단양으로 돌아옴.(고수대교 건너오자마자 만나는 사거리 부근에 고속버스터미널·여관·식당·시장·관공서·은행 등이 밀집해있으므로 이 부근에 묵는 것이 좋음.)∼석식 후 1박. ※이화파크텔(043-422-8200/8201·대중목욕탕을 겸하고 있어서 숙박객에겐 사우나무료. 1박 30000원).
○제2일(시멘트공장∼군간나루∼태쟁이묘∼북벽∼온달동굴·온달산성∼구인사∼향산석탑 구경)
숙소출발∼도담삼봉 일출 구경∼천마표시멘트 후문 앞에서 '구인사'안내  따름(태풍 라사 때 고수리쪽 도로가 유실되어 복구될 때까지 우회하는 것임)∼시멘트 채취로 앙상해진 석산 보며 언덕을 오르면 솔미산 일출을 보게됨. 대형트럭이 수시로 지나다니므로 주의 진행할 것.)∼삼거리 나오면 '어상천' 표지판 따름∼다시 삼거리 만나면 '연곡리' 표지판 따름(구인사로 바로 가는 것보다 어상천면 깊숙한 곳에 있는 오지마을을 돌아보는 것도 유익한 여행이 될 것이므로)∼연곡리∼임현리∼만종리∼별방리∼사지원리(사지원리 삼거리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온달장군의 무덤으로 알려진 '태쟁이묘' 있음.)∼사지원리 삼거리로 되돌아오면 '단양'표지판 따르다, 삼거리 만나면 좌회전하여 '영춘' 표지판 따를 것.∼영춘면 소재지∼북벽(영춘면 소재지로 들어서면 길이 두 갈래 있으므로 직진해서 다리를 건널 것. 다리 건너자마자 길 우측에 '북벽가든'있음.)∼북벽(북벽가든에서 조금 더 가면 '느티마을'표석이 나옴. 표석 끼고 마을로 들어가면 강면으로 통할 수 있음. 강 건너편 산줄기가 '북벽'이므로, 목표가 뚜렷한 도로사정은 갈수록 나빠지므로 주의진행 할 것.)∼영춘면 소재지 통과∼'구인사/온달관광지'표지판 따름∼온달관광지(온달산성·온달동굴) 구경∼구인사 구경(구인사 경내에는 신도가 아니면 차량 통과를 거부하므로 경내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야함. 구인사 당우들은 경사가 급한 산비탈을 따라 자리잡고 있으므로 두 시간 이상 잡을 것. 대조사전 적멸보궁은 사진촬영을 금하므로 필요하면 미리 허가를 받을 것.)∼구인사 입구 삼거리에서 '가곡면'쪽으로 좌회전 '가곡면'표지판 따름∼고드너미재를 넘어 향산리로 들어옴∼삼거리에서 우회전 '향산석탑' 안내판 따름(삼거리 건너편에 단양단위농협직판장 있으므로 물어볼 것)∼향산석탑 구경∼덕천리∼여천리 거쳐 신단양으로 돌아옴. 2박.
○제3일(단양향교∼적성비∼수양개선사유적지∼죽령폭포∼죽령옛길∼사인암∼방곡도요∼상선암∼중선암∼하선암∼충주호유람)
숙소출발∼신단양 2단지 거쳐 상진대교 건넘(신단양 삼거리에서 상진대교를 건너려면 다리 직전 삼거리에서 1차선을 타고 다리 아래쪽으로 P턴을 해서 올라가야 상진대교를 탈 수 있음)∼'충주/풍기' 표지판 따라 5번 국도 타고 가다 '북하삼거리'에서 '충주'쪽으로 우회전∼구단양 삼거리(단양유스호스텔 앞)에서 우회전하자마자 좌회전하여 단성면 사무소쪽으로 내려가면 '단양향교' 있음.∼적성비·적성산성 구경(단양향교 지나쳐서 150m 정도 내려가면 '농협'지소가 나옴. 농협 건물 우측 골목으로 올라가서 산밑에서 멈추면 '적성비 500m' 팻말있음. 골목이 좁고 경사와 굴곡이 심하므로 주의 진행할 것. 적성비를 찾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단양휴게소에 내려 주차장에 차를 두고, 동쪽 쪽문으로 나가서 산을 오르면 된다. '적성비 400m' 팻말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적성산성'과 '적성비' 볼 수 있음.)∼수양개 유적지 구경(농협지소앞까지 되짚어 내려와서 우회전해서 남한강을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5번군도를 타고 '수양개선사유적지 표지판 따름.)∼죽령 옛길 드라이브(구단양으로 되짚어 나와 '북하삼거리'에서 우회전 5번국도 갈아타고 '풍기·영주'표지판 따라 죽령 마루턱까지 드라이브. 중앙고속도로가 생기면서 한적하고 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쾌적함. 죽령으로 오르는 도로 우측에 죽령폭포 매표소 있으므로 원할 때는 입장할 것. 왕복 약 1시간 소요. 국사당도 가까우므로 물어서 구경할 것.)∼사인암 구경(죽령 마루에서 차를 돌려 장림삼거리까지 내려와 '사인암'안내판 따르면 됨.)∼방곡도요 구경(사인암에서 괴평리 삼거리까지 되돌아나와 1번군도 만난 지점에서 우회전 '방곡도예촌' 표지판 따름.)∼상선암 구경(방곡도예촌 입구 삼거리에서 '단양' 쪽으로 우회전. 59번 국도 타고 계곡길을 내려오면 우측에 넓은 반석이 있고 무지개모양의 다리가 걸쳐져 있음. 도락산 등산로 입구가 가까움.)∼중선암 구경(상선암에서 200∼300m 하류에 '도락산장' 간판이 서있는데 입간판 옆길로 들어가면 있음. 상선암 하선암은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므로 통행료 1,300원 부과함)∼하선암 구경(중선암에서 2km 정도 하류로 내려오면 도로 왼쪽에 하선암 안내판 있음.)∼장회나루(하선암 구경후 진행방향으로 2km 정도 내려오면 상방리 '우화삼거리' 나옴. '충주·장회나루' 표지판 따라 36번 국도로 갈아타고 15분 정도 달리면 장회나루 나타남.)∼구담봉·옥순봉 비경 찾아, 충주호 유람선 관광(장회나루에는 선착장이 두 군데 있다. 단양 가까운 쪽이 충주호 유람선, 먼 쪽이 구담·옥순 유람선 선착장이다. 구담 옥순 유람선은 호반가까운 곳에 넓은 주차장 있으므로 차를 갖고 내려갈 수 있음. 충주호 유람선 약 2시간 소요. 구담·옥순 유람선 약 1시간 소요. 요금 6000원.)∼중부고속도로 타려면 북하삼거리까지 되짚어와서 단양IC로 진입하고, 3번국도를 타려면 '충주·수안보온천' 표지판 따라 충주까지 나온 뒤 이정표 따르면 된다. 장회나루∼충주간 36번 국도는 충주호를 보면서 운전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상은 필자가 3박4일을 둘러보고 권장하는 코스다. 필자는 하루를 더 묵었다. 이유는 사진 촬영을 위해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10월 4일 오전 분당을 출발하여, 오후 3시경 도담삼봉에 도착했고, 10월 7일 정오 경 장회나루를 떠나 오후 4시경 분당에 도착했다. 내려갈 때는 '분당∼판교나들목∼서울요금소∼경부고속도로∼신갈분기점∼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북단양나들목(서울-북단양, 도로비 6400원)' 코스를, 돌아올 때는 '장회나루∼충주호반도로 드라이브∼충주시내통과∼3번국도∼분당' 코스를 택했다. 장회나루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충주호를 구경하는 것은 좋았지만, 충주에서 3번국도를 갈아타기 위해 한바퀴 헛돌았다. 이유는 표지판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도중에 공사 미비구간이 있어서 길이 갑자기 좁아지는 불편을 겪었다. 따라서 중앙고속도로 쪽 보다 길이 길고 더 많은 기름을 태웠다. ※3박4일간, 총 주행거리는 647km였다.
※떠나기 전에 : 단양을 자세히 알려면 1:50,000 국립지리원 지형도 '제천·영월·예미·덕산·단양·영주' 6매가 필요하다. ※1:100,000 '전국도로 관광상세도' 한 권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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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승용차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경부고속도로 신갈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 갈아타고, 만종(남원주)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갈아타고, '북단양나들목'으로 나와 단양 표지판 따른다.
부산 방면에서는 경부고속도로 금호(서대구)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갈아타고 '단양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경남 마산 방면에서는 구마고속도로 금호(서대구)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갈아타고 '단양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전남 광주 방면에서는 88고속도로 타고 오다, 금호(서대구)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갈아타고, '단양나들목'으로 나와 단양 표지판 따르면 된다. 강원도 강릉 방면에서는 영동고속도로 만종(남원주)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갈아타고 '단양나들목'으로 나오거나, 영동고속도로 장평나들목으로 나와 평창∼영월∼단양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이용. 동해·삼척 방면에서는 동해∼삼척∼태백∼상동∼영춘∼단양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이용한다.  
대전 방면에서는 대전나들목 이용 경부고속도로 타고 오다 남이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 갈아타고 증평나들목으로 나와, 37번 국도 이용. 서대전 방면에서는 서대전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 타고 오다, 회덕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 타고, 증평나들목 나와 37번 국도 이용 충주∼단양으로 진입.  
경북 포항 방면에서는 강구∼영덕∼청송∼안동 거쳐, 서안동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 타고 오다 단양나들목으로 나오거나, 포항∼기계∼죽장∼도평∼청송∼안동 거쳐 서안동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 타고오면 된다.

○버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단양행 고속버스 이용(1일 12회, 2시간30분 소요)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제천행 고속버스(1일 25회, 2시간30분 소요)타고 와서 단양 시내버스 연결 이용.
대전·청주(직행버스 1일 25회, 3시간30분소요)
안동·영주(직행버스 1일 44 회, 2시간소요)

○열 차
서울 ; 청량리 → 단양 (중앙선 1일 11회 , 2시간30분∼-3시간 소요)
부산 ; 동대구 → 안동 → 단양 (중앙선 1일 11회, 5시간30 분 소요)
대전 ; 청주 → 제천 (경부선.·충북선 1일 5회, 2시간소요)

○항 공
서울·제주·부산 공항에서 청주·원주·예천 공항으로 와서, 열차나 직행버스 이용 단양으로 들어온다.

○수 운
충주 살미나루와 단양 장회나루를 오가는 충주호유람선이 수시로 운행되고 있다. 2시간 소요.

○단양 시내버스
단양군내 각 관광지로 연결하는 시내버스 수시로 있음. 자세한 시간표는 단양군 홈페이지 문화관광 교통편 참고.
 
○단양 택시
*단양군 개인택시 지부(043-423-2382) *단양 택시(043-421-2601) *도성 택시(043-421-2789)
*단양팔경택시(043-422-2288) *제일동굴택시(043-244-6666)

○유람선
*충주호유람선(043-423-8616) ; 단양선착장↔충주선착장(100분 소요. 요금 대인 13,000원, 소인 6,500원)
*장회유람선(043-422-1188) ; 선착장↔구담봉·옥순봉(60분 소요. 대인 6,000원, 소인 3,000원)
*도담삼봉 유람선(043-422-5593) ; 선착장∼석문∼단양(60분 소요. 대인 5,000원, 소인 2,500원)
*소형보트 ; 도담 삼봉 석문 코스(7분 운행 20,000원)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043-420-3544/3593)
※단양군 홈페이지 http://danyang.chungbu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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