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목) 19:58 (MSIE5.5) 220.78.28.142 1024x768
[전북 부안], 산 들 바다가 다투어 빚어내는 풍광에 취하여  

0210 월간산 향토기행
전라북도 부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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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들 바다가 다투어 빚어내는 풍광에 취하여


볼거리 먹을거리 풍성하니 인심 또한 넉넉하네

 글·사진 이 향 지 시인 www.poemgate.com

 바다로 가는 날은 바퀴들도 파도를 탄다. 출렁출렁 흔들리며 바람을 가른다. 몸도 마음도 어느새 파도 위에 있다. 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언젠가는 돌아가서 하나가 되어야 할 바다. 그 바다가 가까워지자, 메마른 공기에 쪼그라들었던 허파꽈리들이 촉촉하게 부력을 회복한다. 그러나, 드러내어 내색할 수 없는 날들도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숱한 산이 무너졌다. 다리와 길이 숱하게 끊겼다. 산사람이 차에 탄 채 흙에 묻히거나 집과 함께 물결에 휩쓸려갔다. 익어가던 벼들이 흙더미 속에 묻히고, 정들인 가축들이 한꺼번에 죽었다. 빈손으로 목숨만 건진 사람들은 오래 고립된 채, 축축하고 배고픈 날들을 보내고 있다. 태풍 루사! 그녀가 할퀴고 간 상처로 인해 온 나라가 술렁이고 울음바다처럼 들끓고 獵쨉? 남은 자들은 사라진 자들을 찾아서 헤매고, 일어설 수 있는 자들은 드러누운 자들을 일으켜 세우려고 달려가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 대열에 없다. 아무리 슬퍼도 모두가 함께 넋 놓고 같은 곳만 바라보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같이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안은 어떨까. 마음속으로 순서를 잡아놓고 오래 기다린 곳인데, 반가운 마음을 풀어놓기도 전에 해무(海霧)가 시야를 가린다. 너무 두터운 안개 앞에서는 반가움도 휘청거린다. 너무 많은 빗물이 한꺼번에 흘러들어 바다도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밍밍한 안개라도 계속 피워 올려서 엷어지는 소금기를 되살리려는 안간힘이다.  
 부안은 다행히 큰 피해는 없는 것 같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농작물들이 쓰러지고, 부두에 묶어둔 배들이 뒤집히거나 많이 부서졌다. 그러나, 부안 사람들은 스스로 수습하고 갈무리하느라 애쓰고 있다. 다른 지방들의 너무 큰 피해와 절망을 전해들으며, 이쯤이야 우리 힘으로 스스로 수습해야지 하는 눈치다. 이 묵묵한 견딤이야말로 드물게 아름다운 고장을 지키고 가꿔온 저력이 아닐까.
부안읍에서 점심 겸 아침을 먹고 김제 가는 길로 들어섰다. 부안군의 북쪽 귀퉁이에서부터 휘돌아 내려가려는 것이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태인 나들목으로 나와 동진강 하구를 건넜다. 어느 때는 석양에 맞춰와서, 갯벌이 밑둥까지 드러나는 썰물 때에 맞춰 지나게 되어서, 광활한 뻘밭에 번들거리는 노을을, 기막힌 노을을 바라본 적도 있다. 직방으로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는 느끼지 못한 감흥이 내 짧은 역사의 뿌리를 흔들던 날이었다. 오늘은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도, 김제로 통하는 길목으로 들어서니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계화도 간척지는 과연 넓다. 변산이나 낙조대 등산을 위해 들렀을 때는 이貪沮?다녀갈 여유가 없었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직선 도로를 달리며, 우리나라도 지도가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드넓은 들판은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농로도 반듯반듯하다. 농로마다 농부들 나와서 큰 비 지나간 뒤의 벼들을 돌보고 있다. 벽해를 막아 논을 일군 사람들. 짠물이 빠지고 벼가 자랄 때까지의 기다림은 길었겠지만, 그 기다림마저도 이미 옛날 일이 되었다. 이제 이곳은 해마다 풍년을 구가하는 평야로 바뀌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내가 지나는 이 길이 창파에 흔들리던 바다 가운데였다고 생각하니, 내가 몰고 달리는 차가 작은 발동선 같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은 인간들에게 정복당한 만큼의 대가를 되돌려 받으려고 요동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에게 당하지 않으려고 더 높이 더 멀리까지 제방을 쌓는다. 바다와 인간과의 동상이몽 또한 바다가 승리할 때까지 계속되겠지만, 풍요를 구가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도 쉽사리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계화도에 도착하니 가슴에 휘감기던 바람이 잔다. 배를 타지 않으면 닿을 수 없던 섬이었으나 육지가 된지 오래인 섬. 조류지의 갈대들도 민물 향기를 풍긴다. 계화도 제2 제방도로를 따라 돈지갑문 쪽으로 가는 길.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조류지에서 무리 지어 날아오르는 왜가리들의 춤이 현란하다. 안개는 짙지만, 사진을 좀 더 잘 찍어볼까 하고 워워 소리내어 날려보지만, 새들은 벌써 알아채었다. 내겐 아무런 무기도 없다는 것을. 잠깐 날아오르다 다시 앉아버린 뒤 유유히 낚시질에만 골몰하고 있다. 전신에 휘감기는 부자유를 느낄 때마다 새가 되었으면 희망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새들도 필요 이상 먼 곳을 비행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부터 터무니없는 선망을 버렸다. 새들 역시 사람처럼 살만한 땅을 골라 배를 채우고 새끼를 쳐서 대를 이어간다. 생명 가진 것들에게 부과된 이 절대절명의 소명을 새들을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만이 오직 인간인 나만이 새로운 공기를 찾아 욕망을 단련시킨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가지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뿌리를 자를 줄 아는 단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돈지갑문 아래는 낡은 다리가 있다. 흙과 돌이 뒤섞인 돌무더기에 올라 물 빠진 갯벌을 내려다본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태양빛도 시름시름 앓는다. 뻘밭에 들얹힌 배들은 물이 들어오면 날쌘 제비처럼 바다가운데로 날아갈 것이다. 이 갯벌을 따라 내려가면 백합이 많이 난다고 했다. 내가 점심 겸 아침으로 먹은 계화회관의 백합죽도 이 뻘밭에서 잡은 것이라 했다. 조개를 기르거나 잡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에게 개발은 달갑지 않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파도를 헤치고 가로막아서 더 넓은 땅을 얻으려한다.  
새만금 방조제 쭉 뻗은 도로를 달리고있으면 활주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해창 언덕에서 바라보면 콘크리트 수평선이 고군산열도까지 이어져 있다. 그러나 길 끝까지 달려 와보면 그 섬들은 뛰노는 창파 저쪽에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이 간척사업도 완성되리라 한다. 이 넓고 높직한 둑을 막음으로써 1억 2천만 평의 새 땅이 생기리라 한다. 기존의 강과 수로들을 살리고, 새로운 늪지를 만들어주고, 새로 항구도 만들어 주고, 그러고도 28,300㏊의 토지를 새로 얻으리라 한다. 수치에 어두운 내 귀에도 어머어마한 규모로 다가온다. 평생 노력해도 100평의 땅도 소유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1억 2천만 평에서 거두는 쌀의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철새들이 추수 후의 들판을 찾아 날아올 것인가. 그들의 군무는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최후의 무기인 양식을 넉넉히 거둘 수 있는 국가는 분명 힘이 있다. 이 일을 계획하고 추진해온 사람들은 거기서 더 큰 명분을 찾을 것이다. 완공 후 생기는 토지는 희망자들에게 분양되리라 한다. 그러나 개인이 농사짓기에는 너무 넓은 땅이다. 이제는 벼농사도 큰 회사들이 도맡아 짓게 되리라. 논 몇 마지기와 소 한 마리에 의지하여 식구끼리 농사지어 자식 기르던 시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개발로 인하여 바다는 본래의 얼굴을 잃을 것이다. 환경을 지키려는 이들은 이 점을 염려하고 있지만, 이 일을 맡은 농업기반공사는 오히려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약속하고 있다. 서로의 꿈이 한곳만을 바라볼 수 없을 때, 세상은 소란스러워 진다. 입장이 허락되는 도로의 끝 지점에 차를 세우고 높직한 둑 위로 올라가 본다.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길이 안개 짙은 바다를 요지부동으로 가로막고 있다. 변산반도의 산들은 먼 섬처럼 떠있고, 나는 돌아갈 길을 눈길로 더듬어가다 자주 놓친다. 저 파도 위에서 벼가 자랄 날들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희망적이건 비관적이건 새만금 방조제는 오늘도 바다를 가르며 뻗어간다. 바다 가운데 인간들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처럼.  
변하지 않은 곳은 어디일까? 대항리 고개를 넘어서니 비로소 과거가 보인다. 산이다. 추억이 서린 산자락들. 내변산 외변산을 가름하는 산줄기에 늦여름 석양이 얹힌다. 바다안개는 온종일 걷힐 줄 모르지만, 두터운 안개 속에서도 태양은 제 길을 가고, 산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변산해수욕장 앞까지 왔다. 모래밭이 건너다 보이는 횟집에 앉아 칠산 앞바다에서 잡았다는 꽃게탕을 끓인다. 이른 아침부터 달려와서 받는 저녁이 달다.
아침이 다시 와도 바다를 덮은 안개는 벗겨질 줄 모른다. 먼 곳을 바라보지 마라, 길은 네 발아래 있다. 바다안개는 내게 이렇게 이르는 것 같다. 안개는 짙어도 길은 멈출 수 없으니, 가방을 챙겨들고 내려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잔 곳이 대항리패총 부근이다. 패총은 내가 잔 모텔 아래 쪽 바닷가에 있었다. 밤에도 자주 그쪽을 바라보았으니, 패총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나를 이끌어 내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패총 앞에 왔으나 패총은 없다. 파밭 귀퉁이에 안내판만 덩그렇게 서있다. 패총은 파밭이 되었다. 대파 모종을 옮겨심기 위해 검은 비닐을 덮고 있는 중이다. 패총이 있던 자리에서 오래 서성인다. 조개껍질 부스러기들이 희끗희끗 흙에 섞여 있을 뿐. 패총터는 있어도 패총은 없다.
나는 향토기행을 진행하면서 패총이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이란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릴 때 조개껍질만 따로 버리지는 않는다. 요즘처럼 분리수거를 하던 때도 아닌데,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조개껍질만 한곳에 모아서 버렸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백령도 진촌리 패총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조수가 밀어다 붙인 흔적일 것이다. 대항리 패총은 두께가 60cm, 넓이는 사방 10m내외였다니, 더욱 그렇게 믿게 된다. 이번 여름처럼 큰바람이 불 때, 물결에 떠다니던 굴껍질들이 육지로 떠밀려와서 쌓인 것이다. 이번처럼 많은 비가 내려서 육수(陸水) 유입이 갑자기 많아지면 연안의 해수(海水)는 염도(鹽度)가 낮아져서 갯벌에 사는 조개나 굴들은 한꺼번에 폐사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죽은 굴이나 조개껍질들이 부유하다가 파도에 밀려 육지로 올라오게 되고, 그 위에 흙이 쌓여 새로운 지층을 이루게 된 것이다. 조개무지에서 발견되었다는 토기 파편들도 운반하던 선박의 파선이나 큰물이 졌을 때 육지에서 떠내려 간 것들이 조개껍질들과 함께 실려와 묻힌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학자들도 나처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항리의 아침은 파밭 이랑 만드는 사람들로 활기차다. 어제 오후 의복리를 지날 때는 대파 추수하는 이들을 만났었는데, 오늘은 모종하는 이들을 만난 것이다. 한 쪽에서는 뽑아서 팔러가고, 다른 쪽에서는 내년 봄을 기약하며 새 이랑을 만들고 있다. 기후와 토양을 고려하여 심는 때와 추수하는 때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잘살게 된 것은, 저처럼 지혜롭고 부지런한 농부들이 허리 굽혀 땅을 일구며 향토를 지켜준 덕분이다.
격포까지 왔으나 안개가 너무 짙어 내륙으로 후퇴한다. 부안읍으로 들어가서 민간신앙의 흔적들을 먼저 보려는 것이다. 격포는 서쪽으로 열려있어서 석양에 보는 편이 낫기도하다. 격포에서 고사포로 넘어오는 해안도로는 아름답다. 바다 옆길을 달리니 바퀴들도 즐거워한다.  
구암리지석묘는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나와 잡초를 뽑고 있다. 내 고장 자랑거리를 지키고 가꾸려는 사람들의 노력. 향토에 오면 그 끈끈한 뿌리들을 만나게 된다.
부안읍내 당산들은 개발에 밀려 본래의 자리를 떠난 것이 많다. 도로 옆에, 마을 가운데, 학교 운동장에, 보호막 없이 열려있다. 그러나, 개구쟁이들도 건드리지 않는다. 아이들도 아는 것이다. 멀뚱하게 서있는 솟대나 장승들이 자신의 뿌리라는 것을. 신석정 시인의 고택에서는 한참을 머문다. 측백나무 울타리 안. 아무도 살지 않는 초가집 안에서 "어머니, 촛불을 켜지 마세요" 소리 들린다. 시인은 가도 시는 남아 사람을 사로잡는다.
 변산으로 다시 나왔다. 안개는 조금 엷어졌지만 바다는 만조를 이루고 있다. 변산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내변산으로 들어간다. 남여치에 오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위도 면장을 지내신 고관석 선생이시다. 나는 몇 년 전 그분을 따라 낙조대에 올랐다. 높직한 산머리에 앉아 칠산 앞바다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았다. 너무 붉고 황홀하여 벙어리가 되었었다. 해가 져도 한참동안 하늘이 붉었다. 그날의 그 구름, 그 무늬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월명암에서 자고 일어나 맞닥드린 아침 운해는 미치게 아름다웠다. 신비. 바다와 산과 섬들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풍경을 보았다. 그분을 따라 변산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이번처럼 큰 비가 내린 후여서 선녀탕은 맑은 물을 가득히 담고있었다. 직소폭포는 우렁차게 물줄기를 뿜어 내리고 있었다. 실상사터에서는 복원을 위한 망치소리 톱소리 경쾌하였다. 그날의 그 더위와 한사코 그늘을 골라 걷던 나의 나약함과, 함께 왔던 사람들과, 같이 먹었던 음식들과, 시작부터 끝까지 나누었던 덕담들과 농담 끝에 와르르 웃던 웃음들을 기억한다. 내게 변산의 아름다움을 구석구석 보여주시고 그분은 이제 없다. 이번에야말로 느긋하게 한잔 기울이며 부안 이야기를 들으리라 기대했지만, 돌아가셨다 한다. 그분은 변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셨다. 월명암 낙조대 오르는 길을 보며, 직소폭포 오르는 길을 보며, 중계교를 건너며 부안댐을 둘러보며, 그분을 되살린다. 명복을 빈다.
 개암사 찾아가는 길. 구암리 지석묘에서 갔더라면 지척인데, 변산까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느라 먼길을 한바퀴 더 도는 셈이다. 고선생을 따라 갔을 땐 지척이더니 혼자 찾아가는 길은 이렇게 멀다. 이제쯤은 다 왔겠지 속도를 늦추는데 주류성 안내판이 보인다. 쌍둥이네닭집 앞에 차를 두고 걸어서 올라가 본다. 고추를 달랑달랑 내놓은 아기가 할머니 부르며 쫓아오다 돌아간다. 10분쯤 걸어가니 노폭이 넓어진다. 산비탈에 돌을 쌓아 복원한 흔적이 보인다. 길가에도 석성을 복원하다 두었다. 길 양쪽에 벌통을 벌여놓아 벌들이 잉잉거린다. 사진을 찍어보지만 태양은 크게 도와주지 않는다. 오늘 내가 본 주류성은 우금산성의 일부분이다. 주류성은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하던 복신장군 등이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는 곳이다. 학계에서는 이곳 우금산성을 주류성과 겹쳐보는 모양이다. 이제는 개암사로가서 우금바위를 올려다보아야 겠다.
개암사(開岩寺)! 바위가 열리는 절! 이름이 마음에 든다. 부도 앞 공터에 차를 두고 작은 개울을 건너간다. 말끔한 석축이 가로막는다. 삼배하고 법당을 올려다본다. 법당 뒤편 우금바위 올려다본다. 태양은 뜨겁지만 안개가 아른아른 베일을 드리웠다. 산과 절과 부처는 참 잘 어울리는 존재들이다. 절 안의 중생만 다른 꿈을 꾼다. 바다로 갈 꿈을.
바다 앞으로 돌아오니 중생들의 난장이 벌어져있다. 넘실거리던 물결은 멀리 물러나고 드넓은 모래밭이 드러났는데, 여름 지난 바닷 속으로 소녀들은 한사코 들어간다. 옷을 입은 채 들어가서 서로 물을 뿌린다. 남자는 여자를 안아서 던지고, 소녀들은 남선생을 함께 들어서 던진다. 모두가 젖는다. 거듭되는 비명에 파도가 들썩인다. 젖은 자도 웃고 적신 자도 웃는다. 뭍에서 온 소녀들이 전신으로 바다를 만나고 있는 사이, 나는 채석강 쪽으로 간다. 채석강 절벽은 예전보다 빛이 덜하다. 며칠째 계속되는 안개 탓이리라. 바위에 앉거나 서서 바다를 보거나, 한눈 팔다 미끄러져서 깔깔 웃거나, 바다를 등지고 서서 사진을 찍거나,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즐겁다. 구름 속에서 이따금 얼굴은 내미는 해는 숨바꼭질 좋아하는 아이의 얼굴을 닮았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만은 근심걱정 버리고 모든 이가 넉넉한 표정들이다.
해식동굴 앞까지 걸어왔으나, 출입금지 금줄을 두르고 있다. 혼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들어가야 한다. 입구 쪽으로 가는데, 청년 셋을 만났다. 그들 따라 나도 안으로 들어간다. 동굴 안은 축축하고 어둡다. 기온이 뚝 떨어진다. 해식동굴. 바다가 바닷물이 바닷바람이 파놓은 동굴. 활짝 열어두고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바다도 때때로 혼자 숨고 싶은 곳이 필요한 모양이다. 벽 틈에 초를 세우고 무엇을 빌다갔을까. 이런 곳까지 들어와 무엇을 빌었을까. 인간이 머물던 자리가 눈에 거슬린다. 미끄러운 암반을 건너며 손잡아준 사람들. 하서면 청호리에서 농사짓는 강성길(32)씨와 태풍에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려 서울에서 달려왔다는 대학 후배들이다. 그들과 함께 채석강을 되짚어 와서 산낙지와 소주로 뒤풀이를 한다. 태양은 어느새 바다 넘을 준비를 하고, 나는 모항에서 자고 싶다.
모항은 저녁이다. 아직은 희미한 여명이 남았다. 그러나 잘 곳이 마땅치 않다. 바다 앞에서 잠시 흔들리다 아홉고개를 넘어간다. 아홉고개 위에는 실내포장마차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 집에서 푸근히 쉬며 백합죽을 먹는다. 부안에 와서 탈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힘을 나는 죽에서 얻고 있는 것이다. 내소사 입구까지 들어가서 잘까. 아니다. 운호리에 깨끗한 모텔이 있다. 모항에서 모텔까지 가는 도로는 어둡지만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세 번째의 날이 밝았다. 어젯밤 오던 길로 되짚어 간다. 어두워서 보지 못한 작당마을로 들어간다. 방조제 안에 가지런히 대어놓은 어선들. 목선이 드물다. 요즘은 모두들 일제 FRP 배들을 쓴다. YAMAHA 상표가 선명하다. 네모난 목선에 비해 속도도 훨씬 빠르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곰소만을 가르는 작은 배들이 모두 이런 종류였던 것이다. 대하 양식장에선 모터소리 경쾌하다. 뽀얀 물보라가 원을 그린다. 해태 그물을 손질하는 노인은 일손을 늦추지 않는다. 어선을 돌보러 나온 사람들은 밀물을 기다린다. 얼마후면 바다로 들어갈 막대기들은 삼각뿔 모양으로 모여서있다. 노인이 꿰맨 그물들은 저 막대기들에 의지하여 청정하고 맛좋은 김을 길러낼 것이다.
내소사는 참 아름다운 절이다. '來蘇寺'란 소정방과 관계된 절이 아니라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다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란 뜻이라 한다. 내소사의 건물 배치는 자연을 거스르거나 배반하지 않아서 좋다. 돌담을 돌아들어야 뜰이 보이는 게 좋다. 포근한 햇살과 늙은 나무가 좋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물어주시는 스님의 합장이 좋다. 사천왕문은 중생들이 드나드는 통로와는 상관없는 쪽에 자리잡고 있다. 모든 것이 산과 중생을 포근히 맞이하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내가 이 절에 처음 온 것은 장호 선생님을 따라서였다. 관음봉엔 올라가지 못했으나 세봉엔 올랐었다. 청련암 들러 직소폭포가 마주 보이는 능선까지 갔었다. 이 깨끗한 도량과 훤칠한 산을 만나게 해주시고, 열반에 드셨다. 좋아하시던 절에서 삼가 명복을 빌며 삼배 올린다.
곰소항은 삶이 있는 곳이다. 햇살은 어느새 뜨겁게 달아올랐다. 뻘밭에 들 얹힌 어선들은 모처럼 만난 뙤약볕에 젖은 몸을 말린다. 어느 쪽에서는 염전을 개조하여 대하를 기르고, 어느 쪽에서는 소금 굽기를 고집하며 태풍에 부서진 소금창고를 고친다. 어느 쪽에서는 소금을 팔고, 어느 쪽에서는 그 소금으로 담근 젓갈을 판다. 이제는 염전도 기계화되어 모터로 바닷물을 끌어들인다. 수차 밟는 남자를 보리라던 기대는 사라졌지만, 모처럼 펄펄 뛰는 삶의 향기를 맡는다. 곰소만. 모든 것이 살아있고 모든 사람들이 활기 차다. 길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횟집 골목도 그렇다. 곰소만 이 좁다란 내해에 의지하여 살아온 사람들이 무릇 얼마인가. 살고 살아갈 사람들은 또 얼마일 것인가. 바다와 뻘밭의 고마움을 새삼 느낀다.
줄포 쪽을 포기하고 바드재 쪽으로 올라간다. 우동리 어귀에서 길을 물었다. 반계선생 서당은 산 속에 있으니 포기해야겠다. 나락 익는 옆에서 다홍고추가 마른다. 호박도 누런 등을 뒤척인다. 바드재를 올려다보니 어찌 올라갈까 싶다. 그러나 올라야지. 우동 저수지 옆에는 선계폭포가 있으나, 오늘은 길에만 치중하리라. 힘을 모아 올라선 정상.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곰소만과 우동리의 풍경을 카메라에 잘라 담는다. 반대편에는 의상봉이 있다. 진공청소기처럼 내 마음을 빨아들이는 산.
 산 좋아하는 사람은 오르던 길로는 내려가지 않는 법이다. 조금 내려가니 비포장도로가 가로막는다. 지도에는 비포장도로가 길게 나와 있는데 100m 정도만 가면 길이 좋다는 주민의 말을 믿은 게 탈이었다. 바드재 북쪽 골짜기엔 댐 공사가 한창이다. 내가 내려가는 도로는 물에 잠길 부분이다. 손질을 하지 않아서 거친 돌이 흩어져 있다. 돌아서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나무숲이 길을 가리면 내려서서 둘러보고 곡예하듯 내려간다. 조난을 당해도 휴대폰도 터지지 않을 골짜기를 여자 혼자 승용차를 몰고.
모르면 용감하다했다. 몰라서 뚫어낸 길이 있다. 바드재 아랫길을 다 내려와서 공사장 앞을 지난다. 공사장 입구는 거석마을 쪽에 있었다. 오토바이 타고 가는 할아버지를 만나 자세한 사정을 듣는다. 등성이너머 마을들이 물이 모자라서 거기 주려고 양수댐을 만드는 중이라고. 내가 내려온 길 왼쪽으로 터널을 만드는 중이라고. 앞으로는 그리로 다니면 된다고. 인사하고 헤어져서 아스팔트 도로를 만났다. 참깨 터는 여자. 무엇보다도 사람이 반갑다. 이 산중에서는 현금이 귀할 것이다. 검은 깨와 흰 깨를 두 됫박씩 팔아주었다. 오는 겨울은 내내 이 참깨 향기로 내가 머무는 공간이 고소하리라 꿈꾸며.
부안읍으로 다시 들어가서 햇볕에 드러난 읍내 표정을 담는다. 또 한번 바다로 가는 길을 탄다. 안개가 점점 벗겨지면서 아름다움을 더하는 바다. 청호저수지를 찾아가다 서당마을에서 돌아선다. 해가 지기 전에 솔섬과 모항을 한번 더 보려는 것이다. 해창 언덕은 이미 익숙하다. 대항리 언덕도 낯설지 않다. 사흘 동안 경치를 찾아 헤맨 눈이다. 고사포에서 해안도로로 통하는 길목도 놓치지 않았다. 칠산 앞바다에 빛이 쏟아져 내린다. 빛의 터널이 되고 있는 구름층이 석양의 신비를 더한다. 나는 이 경치를 보려고 부안의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다. 기다림 헛되지 않아 이 경치를 다시 본다. 적벽강은 바다쪽으로 긴 젓꼭지를 내밀고 있다. 이곳의 해신은 여신이라 했다. 적벽강 한 켠 수성당에 그녀의 사당이 있다. 해 진 다음 그 길로 들어섰다가 길이 나빠 혼이 나기도 했지만, 매끄럽게 통과한 길보다는 고생한 길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상록 해수욕장의 황혼을 담고 나서, 솔섬 앞으로 왔다.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차려놓고 최후의 순간을 기다린다. 이글이글 타는 해는 보기 어려운 날인데, 언제 올지 몰라도 그때에 맞추려고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담아 가면 된다. 무채색으로 변하는 바다 앞에서 나는 그저 묵묵히 오늘의 빛을 받아들인다.
아홉고개 드라이브엔 이골이 났다. 휘청휘청 올라가는 재미가 있다. 비틀비틀 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재미의 정점에서 차 한잔을 나누는 사이, 바다는 어느새 새로운 물을 담는다. 마동 삼거리에서 고사포 쪽을 질러가는 길을 탄다. 말재를 넘을 무렵엔 세 번째의 밤이 나래를 편다. 별이 뜨고 달이 부푼다. 짙은 안개를 뚫고 나와 보는 별빛이 향기롭다.
 부안은 내게 알 듯 모를 듯한 곳이었다. 아주 모르지도, 다 알지도 못하는 상태. 신비의 베일 한 자락을 경계에 깔아둔 상태. 자연도 사람도 그럴 때의 만남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신선한 법이다. 이번에도 그 신비의 베일 마지막 한 자락만은 들추지 않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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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어떤 곳인가
전라북도 부안군(全羅北道 扶安郡)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독차지 할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산·들·바다가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풍광도 아름답지만, 거기서 생산되는 산물 또한 다양하고 넉넉하다.
전라북도 서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부안군은, 북쪽은 바다를 경계로 군산시와 접하고, 북동쪽은 동진강 하구를 경계로 김제시와 접하고, 동쪽은 정읍시와 접하며, 남쪽은 곰소만을 사이에 두고 고창군과 접하고, 서쪽은 위도와 상왕등도·하왕등도 등을 따라 서해까지 뻗어있다.
부안군의 지형은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반도이며, 동진강 하구에서부터 줄포면 우포리까지 이르는 해안선의 길이만 99km나 된다. 굴곡 심한 해안선 곳곳마다 이름난 해수욕장과 절경을 품고 있어서, 관광지로도 이름이 높다.  
부안은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속했다한다. 마한 54국 중 지반국(支半國)이 부안땅에 있었다한다. 현재의 부안 지역은 백제시대의 개화현(皆火縣)과 흔량매현(欣良買縣) 두 현(縣)이 위치하던 지역이 합쳐진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인 경덕왕 16년(757)에는 개화현을 부령(扶寧), 혹은 계발현(戒發縣)으로 고쳐 고부군(古阜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흔량매현 역시 희안(喜安)이라 고쳐, 역시 고부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때는 부령현에 감무를 두고, 보안현(保安縣)으로 이름을 고친 희안까지 겸임케 했다. 조선 제3대 태종 14년(1414)에는 보안현을 부령현에 병합하였다. 같은 해에 다시 둘로 갈랐다, 또다시 병합한 뒤, 부령·보안 두 현의 이름을 한자씩 취하여 부안현(扶安縣)으로 고쳤다. 조선 제26대 고종 32년(1423)년 예에 따라 군(郡)이 되었고, 그 이름을 현재까지 이어 쓰고 있다. 역대의 군명은 개화·부령·계발·보안·낭주·흔량매·희안 등이다.
 2002년 9월 현재의 부안군 행정구역은 1읍(邑·부안), 12개면(面·주산, 동진, 행안, 계화, 보안, 변산, 진서, 백산, 상서, 하서, 줄포, 위도), 98개리(里)로 구성되어 있다.
부안군의 총면적은 492.81㎢로, 전국토의 0.5%, 전라북도 면적의 6.1%를 점하고 있다. 이중 임야는 20,469㏊로 41.5%이며, 농지는 20,488㏊(밭 5,768㏊로 11.7%, 14,720㏊로 30%)로 41.7%에 달한다. 부안군의 인구는 77,620명(1999년 현재)이며 이 중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은 45.7%에 달한다. 주요기반산업은 농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어업과 제조업, 관광업으로 인한 수익도 무시할 수 없다.
 암봉이 아름답고 폭포가 많은 변산(의상봉·508.6m), 내소사·개암사 등의 명찰, 채석강·적벽강 등의 빼어난 자연경관, 변산·고사포·격포·상록·모항 등의 해수욕장, 소금과 젓갈 등으로 유명한 곰소만 등을 품고 있고,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사계절 내내 등산객과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고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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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채석강(彩石江)·적벽강(赤壁江)
○채석강(彩石江):변산반도 최서단에 위치하고 있는 명승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닷물과 해풍의 침식으로 이루어진 층암절벽이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높이 솟아있고 절벽 아래는 칠산(七山)바다 물결이 넘실거린다. 썰물 때면 널찍한 암반이 드러나서 격포항과 격포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바닷바람 마시며 앉았거나 걷기에 좋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명소 중의 명소다. 하루에 두 번씩 찾아오는 썰물 때를 잘 맞춰 가면 더욱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채석강 위의 봉우리는 달기봉(닭이봉)이다.
채석강 일대는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다. '동국여지승람' 부안현 편 성지 조에 '격포진(格浦鎭)·변산 서쪽 기슭 대해(大海) 가에 있다. 조수(潮水)가 차면 호수를 이루고 썰물 때는 갯바닥이 된다. 인조 때에 처음으로 진(鎭)을 설치하고 별장(別將)을 두었는데, 숙종 4년 성을 쌓은 후 감영에 속하게 하고 제방을 쌓고 물을 막았는데, 헌종 9년에 폐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변산반도를 수호하는 요충지이기도 했다. 지방기념물 제28호. (변산면 격포리 해안)
○적벽강(赤壁江):채석강에서 북쪽으로 1km정도 거리에 붉은 암벽이 바다를 향해 돌출되어 있는데, 송(宋)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놀았던 적벽강처럼 풍치가 빼어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격포해수욕장 뒤편의 죽막마을을 경계로 채석강과 나뉘어진다. 천연기념물 제123호인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고사포∼격포를 연결하는 해안도로에 '수성당'이란 팻말이 서있는데, 그 팻말을 끼고 바다쪽으로 내려가면 만날 수 있다. '적벽강모텔' 부근이다. 수성당으로 넘어가는 길은 비포장이므로 주의해서 진입해야 한다. 지방기념물 제29호. (변산면 격포리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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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곰소만
전라북도 고창군과 부안군의 사이의 안바다를 곰소만(灣)이라 한다.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점점 낮아지자 그 대안으로 일제가 제방을 축조하여 만들었다. 이 지역에서 수탈한 각종 농산물과군수물자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곰소에는 드넓은 염전이 있어 소금생산지로도 유명하지만, 현재는 남선염전 한 곳만 남았다. 이 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과 근해에서 잡아오는 싱싱한 어패류를 재료로 각종 젓갈을 만들어 파는 대규모 젓갈단지가 조성돼 있어서, 주말이면 건어물과 젓갈 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염전을 개조해서 만든 대하양식장과 싱싱한 활어회를 먹을 수 있는 횟집과 식당들도 성업중이다. (진서면 진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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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계화도 간척지 평야 전망대
바다를 막아 드넓은 옥토를 만들었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 국내 기술진에 의하여 이루어진 대규모 간척공사로 3,968ha라는 광할한 옥토를 얻은 것이다. 간척지 한 가운데 있는 조봉산(鳥峰山)은 예전에는 조그마한 섬이었던 곳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을 새겨 세운 '계화도농업종합개발사업준공기념탑'이 우뚝 서있고, 야트막한 언덕 정상에는 전망대 구실을 하는 계화정(界火亭)이 있다. 계화정에 올라보면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어느 쪽이 바다인지 육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40여리나 되는 긴 방조제는 인간의 힘이 무한함을 느끼게 한다. 이 평야에서 생산되는 계화미 또한 질 좋고 맛 좋기로 소문났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새만금 간척사업이 완성되면, 이 평야 또한 바다보다는 육지에 가까워 질 것이다.(계화면 궁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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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새만금 간척지 제방
군산에서 부안까지, 바다를 육지로 바꾸는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중이다.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를 뭍 속의 수로로 바꾸는 작업. 개발면적은 40,100㏊에 달하며, 그중 28,300㏊는 토지로 조성하고, 11,800㏊는 담수호로 조성하여 환경친화적인 간척사업이 되도록 하리라 한다. 이 방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총연장 33km에 달하는 4조의 제방을 쌓고, 656m에 달하는 배수갑문을 2개소에 만들리라 한다. 전라북도 군산시·김제시·부안군 해안의 지도를 바꾸는 이 방대한 사업을 위해 3조 489억원의 자금이 들리라 한다. 1911년에 시작된 이 공사는 현재 26km의 제방이 완성된 상태. 착공일로부터 20년이 지난 2011년에 완공되리라 한다.
이 간척사업으로 인해 우리국토는 1억2천만평의 토지를 더 얻게 될 것이며, 10억톤의 물을 더 저장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만경강·동진강 하구 유역을 수해상습지역으로부터 해방시캬줄 것이며, 연인원 1,339만명의 고용증대를 가져올 것이며, 육운개선 및 종합관광권 형성에 이바지하리라 한다.
변산면 대항리 30번 국도 옆 언덕에 '새만금전시관(063-584-6822)'이 마련되어 있고, 쭉 뻗은 제방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고, 높직한 제방 위에 올라 바닷바람을 마실 수도 있다. 개펄이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반대가 극심하지만, 트럭들은 쉬지 않고 흙과 돌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입장료는 무료. (변산면 대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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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부안의 당산들
서문안·동문안·남문안·쌍조석·돌모산당산·수성당
부안에는 유난히 민간신앙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내륙과 해안을 가리지 않고 당산이 있었으며, 복잡한 도심 속에서도 그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당산은 마을 사람 모두가 공동으로 받드는 수호신을 모신 신성한 장소였다. 마을의 안녕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염원을 빌던 장소였다. 부안의 당산들에는 화강석을 막대처럼 다듬어 높이 세우고, 그 위에 새를 얹은 모양이 많다. 이 새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다. 돌로 깎아 앉힌 새는 떨어지고 돌기둥만 멀쑥하게 남아있는 곳도 많지만,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을 접할 수 있는 유물들이다.
가장 많은 것이 남아있는 곳은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서문안당산(중요민속자료 제18호)이다. 신간석 2기와 석장생 2기가 있다. 부안군청 부근 도로변으로 옮겨놓았으므로 지나는 길에 쉽게 눈에 뜨인다. 서외리에는 또 하나의 유물이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는 '서외리당간(지방유형문화재 제59호)'이 그것인데, 화강석으로 만든 석당간(石幢竿·깃발을 달아두는 장대)과 당간지주(幢竿支柱·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가 모두 남아 있는 드문 예에 속한다. 방형 기단 위에 지주를 세우고 여러 조각의 화강암 석재를 연결하여 당간을 조성하였다.
동문안당산(중요민속자료 제19호)은 부안읍 동중리에 있었다. 신간석 1기, 석장생 2기가 남아있다. 석장생 2기는 도로변에 옮겨놓아 쉽게 눈에 뜨인다.
남문안 당산(지방민속자료 제18호)은 부안 읍성의 남문인 취원문루 안에 세워진 당산으로, 다른 당산들과는 달리, 원추형 기둥만 남아있다. 장승도 거느리지 않고, 4마리의 거북이가 양각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마을의 지형이 행주형(行舟形·배가 물에 떠있는 모양)이어서 약한 곳을 보충해 주는 비보적 기능을 강조한 짐대(돛대)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계화간척지 평야 옆 궁안리 대벌부락 마을 안에는 쌍조석당산(지방민속자료 제17호)이 있다. 이 마을은 계화도 간척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어업을 주로 하던 어촌이었다. 어촌에서 모시는 당산신은 대부분 여성인데, 이 마을 주당산신도 할머니당산이다. 이 당산은 부안지역에 있는 다른 당산들과는 달리 두 마리의 오리를 앉힌 쌍조석(雙鳥石) 당간을 세운 점이 다르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 마을 사람들이 합동으로 제사를 드린 후에 무명베 한 필을 동장과 시주자가 한 가닥씩을 잡고 잡아 당겨 찢는 행사를 한다.
부안읍 내요리에는 돌모산당산(지방민속자료 제19호)이 있다. 석조형 신간의 당산1기가 남아있다. 변산면 격포리 죽막 해안에는 수성당(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이 있다. 수성당은 칠산바다(변산반도 앞의 서해바다를 일컬음)를 수호한다는 '계양할미'를 모시는 해신당이다. 칠산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적벽강 여울골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설에 의하면 계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나막신을 신고 칠산바다를 거닐면서 수심을 재어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도록 해 준다고 하며, 딸 여덟을 낳아 각 도에 시집 보내고 자신은 막내딸을 데리고 수성당에 살면서 칠산바다를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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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구암리 지석묘군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다. 고인돌 또는 돌멘이라고도 하는데, 경기도를 중심으로 그 이북은 주로 북방식(北方式)으로 탁자형이고, 그 이남은 남방식(南方式)인 바둑판형이 주류를 이룬다. 부안에는 여러 곳에 지석묘가 있는데, 구암리지석묘군이 가장  규모도 크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구암리지석묘는 모두 13기가 무리 지어 있고, 모두 바둑판형이다. 굄돌(支石) 위에 얹어놓은 상석(上石)은 0.5m 내외로 얇고,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중 가장 큰 것은 길이가 6.4m나 된다. 구암리지석묘들이 특별한 것은 남방식지석묘에서는 개석 아래 굄돌은 잘 드러나지 않고, 굄돌의 숫자도 4개를 고이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 지석묘 중에는 8개의 굄돌을 고인 것도 있다.
변산∼부안 간 30번 국도변과, 변산∼상서·감교 간 705번 지방도로변 등에 안내판이 갖춰져 있으므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적 제103호. (하서면 석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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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내소사(來蘇寺)
변산반도 능가산(楞伽山) 남쪽 세봉(細峰·360m)과 관음봉(觀音峰·424.5m)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중턱에는 천년 고찰 내소사(來蘇寺)가 있다.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다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원력을 실어, 백제 무왕 34년(633)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하였다하며,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다. 대소래사(大蘇來寺)와 소소래사(小蘇來寺)로 나뉘었다가, 소소래사에 새로 절을 짓고 내소사(來蘇寺)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보물 제291호인 대웅보전·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보물 제277호인 법화경 절본 사본·보물 제1268호인 영산회 괘불탱화·지방유형문화재 제124호인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125호인 설선당과 요사·고려 말엽 정지상(鄭之祥)이 시를 지어 썼다는 현판 등을 간직하고 있다. 관음봉·세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진서면 석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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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개암사(開岩寺)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 묘련왕사(妙蓮王師)가 변한의 궁전을 사찰로  삼으며 묘암사(妙岩寺)라 하였고, 나중에 개암사로 고쳤다한다. 고려 숙종 때 원감국사(圓鑑國師)는 황금전을 비롯하여 청련각·청허루·팔상전 등 30여 동의 건물을 중수하여 창건이래 가장 큰 사세를 이루었다. 절 앞뜰에 묘련왕지(妙蓮王址) 넉 자를 새긴 비석이 서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을 인 대웅전(보물 제292호)은 임진왜란 후인 조선 제15대 인조 14년(1658)에 계호선사(戒浩禪師)가 중건하였다하며, 다포식(多包式: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올리는 형식) 건물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아름답다. 좌우에 당간지주를 세웠고, 앞에는 돌층계가 있다. 보물 제1269호인 괘불탱화·동종·석조지장보살상·16나한상 등의 보물도 보존되어 있다. 절 뒤편에는 우금바위가 솟아 있어서 풍치 또한 빼어나다. 우금바위 아래는 원효대사가 수행하며 야단법석을 펼쳤다는 원효굴이 있다. 우금산성과 연결하는 등산로도 개척되어 있다.(상서면 감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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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산성(禹金山城)
개암사 뒤편 산봉우리 위에 솟아있는 큰 바위를 우금바위라 하는데, 이 바위의 동쪽과 북쪽으로 거의 직각을 이루며 돌로 쌓은 석성이다. 삼한(三韓) 때 변한(卞韓)의 왕이 진한과 마한의 우(禹), 진(陳) 두 장군을 시켜 성을 쌓고 이곳에 와 있었는데, 변한의 왕이 죽고 부장 마연이 뒤를 이어 살다가 마한에게 망했다하여 마연성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 부안현 편에 '우금성(禹金城)·우금암(禹金巖) 기슭에 있다. 둘레가 10리인데, 묘향사가 그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중요한 성곽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의 이름은, 이 성의 표적이 되는 우금바위를 '울금바우·우금암(遇金岩)·우진암(禹陳岩)'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울금바우산성·우금산성·우진산성·마연성·주류성(周留城)'등 여러 가지다. 우금암의 앞자리에 놓이는 한자도 '禹' 또는 '遇'로 표기되어 있어 어느 것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성곽 안에서 발견된 유물들로 미루어 백제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요긴하게 쓰였던 성곽임을 알 수 있다.
이 성곽은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주변 산봉우리와 산아래 산골짜기를 함께 감싸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3,960m, 높이는 3m 안팎으로 인근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북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북장대(北將臺)가 있고, 남쪽에는 남장대(南將臺)가 있다. 성의 내부에는 묘암사(妙岩寺) 터와 많은 건물 터들이 남아 있다.
이 성은 백제가 멸망 후 부여풍(扶余豊)을 받들어 백제 부흥운동을 벌이던 복신장군 등이 군이, 663년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주류성(周留城)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방기념물 제20호. (상서면 감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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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진서리 도요지·유천리 도요지·사산리 와요지
피를 머금은 듯 붉은 황토는 청자를 만들기 좋은 흙이다. 부안군 관내에도 고려시대부터 청자를 굽던 가마터가 여러 곳 있다. 유천리 도요지·진서리 도요지·사산리 와요지 등이다.  
유천리 도요지(사적 제69호)는 우리나라 청자 제작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12∼13세기에 걸쳐 순청자와 상감청자를 만들던 곳이다. 전남 강진 지방에 있는 도요지와 함께 대표적인 청자가마터로 인정받고 있다. 넓은 구릉 주위로 40여 군데의 청자가마터가 발견되었으며, 순청자·상감청자·철화청자·동화청자·백자·상감백자 등의 뛰어난 작품들과 다양한 가마용구 등이 출토된 바 있다. 특히 고려백자·상감백자 조각이 함께 출토되어 청자가마에서 백자도 구웠음을 알 수 있다.(보안면 유천리)
진서리 도요지(사적 제70호)는 진서리 곰소만 연안에 있다. 고려시대이던 11∼14세기에 걸쳐 청자·철화청자·녹청자·상감청자를 제작하던 곳으로 유천리도요지와 함께 부안 지방의 대표적인 청자 생산지였다. 진서리 청자가마터는 연동마을·신작마을·구작마을 주위의 구릉에 35개소가 있으며, 해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점이 특징이다. (진서면 진서리)
사산리 와요지(지방기념물 제40호)는 기와를 굽던 가마터다. 이곳은 가마를 설치하기 쉬운 경사진 구릉과, 양질의 점토, 산이 가까워 땔감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이 와요지 일대에서 수습된 기와의 등면에는 문양이 없으며, 두께가 비교적 얇다. 가는 모래가 섞인 점토를 사용하였고, 안쪽 면에는 제작시 굵은 마포를 대고 성형했던 흔적이 있다. 이러한 기와의 형태로 보아 고려 중기의 와요지로 보인다. (주산면 사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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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대항리 패총(大項里 貝塚)
패총은 조개무덤, 조개무지라고도 한다. 수렵·어로·채집에 의하여 생계를 유지해온 선사시대의 인류가 식료로서 채집한 조개를 먹은 뒤 버린 껍데기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안에는 조개껍질 외에도 동물이나 물고기 뼈, 토기·석기·골각기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항리 패총에서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의 패총임을 알 수 있다. 1967년에 발견되었으며, 범위는 남북 약 14m, 동서 약 10m로 넓이는 3,484㎡에 달한다. 당시 여기에서는 돌을 두드려 쳐서 만든 타제석기(打製石器) 5점과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이 채집되었는데, 석기는 반암(斑岩)으로 만들어졌고, 토기는 운모(雲母: 화강암에 많은 광물질로 유리나 자기를 만드는데 쓰임)가 비교적 많이 섞인 고운 사질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현재 이곳은 경작지로 변하여 바닷가에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있다. 지방기념물 제50호. (변산면 대항리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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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신석정 고택·시비(詩碑)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면……//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면……//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면……//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시, '임께서 부르시면' 전문.
 부안은 시인 신석정(辛夕汀·1907-1974, 본명 錫正)의 고향이다. 1924년 조선일보에 습작시 '기우는 해' 발표 후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0년 시문학에 '선물'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농촌에 살면서 도연명, 타고르 등의 영향을 받아 목가적인 자연귀의의 정신을 노래해 김상용과 더불어 전원파로 불린다. 김기림이 '목가시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후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시들을 발표, 김영랑과 같은 변모를 보이기도 했다. 6·25사변 후 전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만년을 보냈으며, '촛불'(39), '슬픈 목가'(47), '빙하'(56), '산의 서곡'(67), '대바람소리'(70) 등의 시집을 남겼다. 부안읍 선은리에 그의 고택이 보존되어 있고, 변산면 대항리 해창 언덕에 시비(詩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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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해수욕장들/변산·고사포·격포·상록·모항·위도
변산반도 국립공원 관내 해안에는 이름난 해수욕장들이 많다. 물목이 얕고 모래가 곱고 파도가 거칠지 않고, 주변 경관도 아름다워 찾는 이들이 많다. 부안읍내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해안선을 돌다보면 곳곳에서 해수욕장 간판을 보게 된다. 변산해수욕장·고사포해수욕장·격포해수욕장·상록해수욕장·모항해수욕장 들인데, 이들 해수욕장은 언저리에는 이름난 명승지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어느 때 가나 특별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변산해수욕장은 1933년 개장되어 매년 평균 피서객이 50만명을 넘을 정도로 각광받는 해수욕장이다. 수온이 체온에 알맞고 수심의 차가 심하지 않고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으며 파도가 거세지 않아 위험 요소가 거의 없는 장점 때문이다. 주변에 명승지가 많아 해마다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변산면 운산리 소재 고사포해수욕장은 변산 해수욕장과는 약 4km정도 떨어져 있다. 구사포해수욕장 역시 곱고 넓은 백사장과 완만한 경사, 맑은 물, 한없이 이어지는 바닷가의 소나무들이 자랑거리다. ○변산면 격포리에는 격포 해수욕장이 있다. 채석강과 적벽강 등 명승지를 끼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 대성황을 이룬다. 주변에는 후박나무군락, 수성당, 적벽강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변산면 도청리에 있는 상록해수욕장은 1988년 7월 10일에 개장하여 공무원 연금관리공단에서 관장하고 있다. 당초 공무원들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해수욕장으로 개발하여 여름철이면 공무원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으나 지금은 일반인 이용객들도 늘어가고 있다. 해수욕장 일대가 전문 휴양업시설로서 주차장, 방가로, 음식점, 테니스장, 수영장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있어서 여느 해수욕장보다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다만, 해수욕장 운영기간이 여름 한철이라는 흠이 있다. 주변에는 수락폭포와 격포항, 채석강 등 관광명소가 있다. ○변산면 도청리 모항에 위치하고 있는 모항해수욕장은 변산반도 국립공원 산악경관과 서해의 해양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수려한 자연경관지에 위치하고 있다. 아담한 백사장과 아름드리 소나무밭이 인상적이다. 가족단위 휴양지로 적합하다. 주변에 천연기념물인 호랑가시나무군락, 환상의 드라이브코스, 갯바위낚시터가 있어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다. ○격포에서 배를 타고 위도로 가면 위도·깊은금·논금 해수욕장들이 있다.
부안의 해수욕장들은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횟집과 식당, 모텔·민박집들이 성업 중이므로, 잘 곳과 먹을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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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손맛
○계화회관 백합죽·백합탕·백합구이(부안읍 동중리)
 부안을 대표할만한 음식은 어패류를 재료로 한 '죽(粥)'이다. 변산반도 갯벌에서 채취한 백합과 바지락으로 끓여내는 백합죽·바지락죽·대하죽 등인데, 부안읍과 곰소만 쪽에서는 백합죽을, 변산면 일대에서는 바지락죽을 메뉴로 내 건 음식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백합죽의 원조격인 계화회관(063-584-3075)은 부안읍내에 있다. 계화도 갯벌에서 채취한 백합과 계화도 간척지평야에서 생산한 쌀을 주원료로 하고, 부안 김과 깨소금을 고명으로 얹어낸다. 살아있는 백합으로 즉석에서 끓여내기 때문에 맛과 향이 뛰어나고, 숙취와 원기회복에도 좋다. 나는 부안 언저리를 지날 때마다 일부러 들러서 계화회관의 백합죽을 먹곤 했다. 이번에도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했기에 부안읍에 들어서자마자 계화회관부터 들렀다. 부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1분도 안 걸리는 골목 안에 있다. 우체국 옆길로 들어서서 100m 거리에 있으므로 쉽게 눈에 뜨인다.  
계화회관의 주메뉴들은 모든 것이 즉석이다. 백합탕·백합구이·백합회·백합찜·백합파전 등인데, 맛도 좋거니와 양도 푸짐하다. 계화회관의 백합죽은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다. 불린 쌀을 끓는 물에 넣어 끓이다가, 갓 깐 백합을 다져서 넣고, 다 익은 다음 참기름을 두르고, 구운 김과 깨소금을 고명으로 얹어 낸다. 백합의 맛과 향을 식탁까지 전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당근이나 양파 등을 넣어서 끓여내는 죽들은 그만큼 참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 간결한 요리법은 그만큼 신선한 재료를 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백합을 하나씩 쿠킹호일에 싸서 물을 두르지 않은 솥 안에서 잠깐 익혀내는 '백합구이'는 일종의 숙회(熟 )다. 조개가 머금고 있는 물만으로 단시간 가열한 요리여서 육질도 연하고 구수하다. 한 장 씩 벗길 때마다 입을 탁탁 벌리는 조개요리는 먹는 재미도 좋거니와 바다의 맛을 만끽하기엔 그만이다. 끓는 국물을 떠먹고 싶으면 '백합탕'을 택한다. 조개가 머금고 있는 물기와 소금기만으로도 충분히 간이 되기 때문에, 이 또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백합' 하나로 향토의 맛을 되살린 이화자(59) 여사는 계화도 태생이다. 그녀는 언제 보아도 무덤덤하다. 누구를 특별히 반기거나 덜 반기거나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끓여내는 백합죽 또한 언제 누가 먹어도 그 맛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백합은 부안의 특산품으로 조선시대부터 임금님께 진상했다한다. 부안군은 백합죽을 향토전통음식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백합은 한자로 '白蛤'이라 쓴다. 다른 지방에서는 '대합(大蛤)'이라 부르는 조개다. '문합(文蛤)·화합(花蛤)·백합(白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안 지방에서는 백합이라 부른다. 그것은 '개조개'라 부르는 큰 조개와 대합을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부안 지방의 백합은 뻘이 부드러운 개펄에서 채취한 것이다. 강 하구 부근 육수(陸水·민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나 사질토가 많은 간석지 등에서 잘 자란다. 만조 때 수심이 5∼6m 내외가 되는 개펄에 그물을 둘러치고 양식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백합 양식에 나선 것은 1967년부터로 알려져 있다. 부안의 백합들은 돈지갑문 부근의 갯벌과 곰소만 등에서만 생산되고 있는데, 새만금 간척사업 등으로 양질의 개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백합 생산양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백합죽 7,000원, 백합탕·백합구이 20,000원)

○바다구경 횟집·식당 꽃게탕 (변산면 해수욕장)
 부안은 반도다. 한 곳에 숙소를 잡고 오락가락하며 구경하기보단 바닷길 따라 가다가 경치 좋은 곳에서 자고, 맛있어 보이는 곳에서 먹는 편이 자유롭고 편하다. 계화도∼돈지갑문∼해창∼새만금 방조제 등을 둘러 변산으로 들어왔다. 대항리 언덕 모텔에 석양이 아름다운 방을 얻어두고, 변산해수욕장으로 내려왔다. 어느 집에서 저녁을 먹을까? 주차장에 차를 두고 둘러보다가, 수족관 안 고기들이 유난히 활기차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붉은 다라 속에선 멍게와 해삼이 꼬물거리고, 소라는 무거운 집을 지고 한사코 기어오른다. 동죽들은 물을 찍찍 뿌리다가 툭 치면 바닥으로 자지러진다.
 '바다구경 횟집·식당(063-581-2995)'. 상호는 보지 않고 꽃게 두 마리를 골랐다.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꽃게란다. 꼭 이놈들이어야 한다고 바뀌면 안 된다고 지켜 서서 잡아놓고, 꽃게탕이 익을 동안 해삼 한 접시 먹는다. 친구도 동행도 없이 왔으니, 내가 고른 꽃게처럼 활기차고 싹싹한 안주인 하영희(42)씨와, 마실 온 이웃 아주머니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술도 없이 먹는다. 꽃게탕은 금방 될 줄 알았더니, 먼저 온 손님 순서를 지키느라 소나무 저쪽 모래밭이 컴컴해져서야 상에 올라온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살아서 헤엄치던 것들이, 바다로 돌려보내 달라고 수족관 유리를 북북 긁어대던 것들이 빨갛게 익어서 솥 속에 다리를 뻗치고 있다. 된장을 엷게 풀어 끓인 국물에도 달디단 육즙을 나눠놓았다. 방패처럼 지고 다니던 뚜껑은 토막 나서 한 쪽은 드러눕고 한쪽은 뒤집어 졌다. 붉은 고추와 대파가 부끄러운 곳을 가렸다. 팽이버섯 몇 오라기 잘린 부분들을 휘감고 있다. 슬픈 식욕이여. 나는 너희를 먹는다. 죽지 않겠다고 반항하던 것들의 살이 더 달다는 걸 느낀다. 저항을 버린 집게발을 어금니로 부순다. 갑골 속에 숨어있던 단물이 입안으로 흘러든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나는 이 맛을 그리워했다. 무릇 껍질이 지나치게 딱딱한 것들은 살이 달고 연한 법이다. 오늘 하루 천리 길을 달려와서, 잊었던 맛에 함몰된다. 몬도가네의 저녁. (꽃게탕 20,000원, 30,000원)

○아홉고개 광주횟집 우럭구이(변산면 도청리)  
모항은 아름다운 곳이다. 아홉고개라거나 아홉구비라거나 쌍계재라거나 부르는 이름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모항해수욕장에서 마동삼거리로 넘어가는 아홉고개 마루턱에는 10여 군데의 횟집들이 싱싱한 활어들과 곰소만 경치를 함께 팔고 있다. 말하자면 실내 포장마차들인 셈인데, 회도 뜨고 죽도 끓이고 조개도 굽고 새우나 고기도 구워낸다. 여름도 지나고, 일요일도 아니어서 손님이 뜸한 저녁. 끝머리에 자리잡고있는 광주집(011-9175-2317)은 김순의씨 혼자다. 바지락죽 한 그릇 먹읍시다했더니 곰소에서는 바지락죽을 안 끓이고 백합죽만 끓인단다. 바지락죽보다야 백합죽이 낫지. 먹은 것을 또 먹기로 하고, 오늘은 죽만 먹네 했더니, 미역국과 밥 한 공기를 같이 내왔다. 너무 많아 어찌 먹나하던 죽을 거의 다 먹는다. 시장이 도둑이다. 연한 열무를 길이대로 손질해서 담근 김치가 양푼 같은 대접에 담아낸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게 한 것이다. 미역국과 밥은 남겼다 내일 먹을라네. 운호리로 넘어와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아침을 먹으러 올라왔다. 아침부터 죽이다. 부안 온 이래로 죽만 먹는다. 짬짬이 밥도 먹었는데 밥 먹은 기억은 어디로 날아가고, 죽 먹은 기억만 난다. 죽만 먹고 어찌사나 볼락이라도 한 마리 구워야지. 그래서 우럭 한 마리를 굽게 되었다. 수족관에서 훌렁훌렁 돌아다니던 놈이 어느새 비늘 떨구고 꽃소금을 뒤집어쓰고 석쇠 위에 올라있다. 나 어릴 때 어머니는 볼락 구이를 자주 해주셨다. 장작불로 밥을 지은 뒤에 이글이글 불씨를 머금은 잉걸불을 다독거려 펄펄 뛰는 볼락을 구웠던 것이다. 고기가 크고 살이 깊으니 그때의 맛은 나지 않는다. 개스불에 석쇠를 얹고 석쇠 위에 쿠킹호일을 깔고 구워낸 우럭 구이. 캠핑족의 식사 같다. 소금만으로도 깊은 간이 스미지 못하므로 갈피갈피 손질해서 양념장을 끼얹은 재치를 칭찬한다.  
우럭은 우리말로 '조피볼락'이다. 양볼락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우리나라 서해에 많이 서식한다. 횟감으로 인기가 높지만, 매운탕이나 구이로도 좋은 생선이다. 바다 옆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도 생선구이를 먹어보았다. (대합죽 7,000원, 우럭 구이 10,000원)

○곰소항 심해수산횟집 전어회(진서면 진서리)
 초가을에 부안에 오면 전어회를 먹어 보라. 여름 지난 '전어(錢魚)'는 살이 오르고, 그 많은 잔뼈들도 억센 기운을 누그러뜨린다. 전어는 3월부터 9월까지는 먼바다에서 살다가, 수온이 하강하기 시작하는 9∼10월이 되면, 내만(內灣)이나 강 하구의 기수역(汽水域)까지 올라온다. 이무렵의 붕어가 가장 맛이 있다. 부안은 곰소만과 동진강 하구 등을 끼고 있어서 싱싱한 전어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비브리오 패혈증이 무서운 사람은 수온이 좀 더 떨어지는 10월 초순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지만, 건강한 사람은 한 여름이 아니라면 먹어볼 만하다. 격포항이나 곰소항 모항 등지의 활어횟집단지에는 전어회를 메뉴로 내건 집이 많다. 나는 곰소항 바다 쪽에 즐비한 횟집들 속에서 살아서 헤엄치는 전어들을 발견했다. '심해수산횟집(063-581-7288)' 햇볕을 흔들고 잇는 은빛 비늘들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1kg에 2만원이라고. 길목손맛을 위해서 한 접시만 청했다. 상추잎을 베개삼아 올라온 전어회. 무침으로 먹어도 좋겠지만, 나는 그냥 먹는다. 한 젓가락 먹으니 고향 생각이 난다. 통영에서도 전어는 잡힌다. 추석 무렵이면 개울어귀에서 전어 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바닷물이 민물을 밀고 올라오면 전어들도 따라서 개울로 올라와서 수면을 뚫고 튀어오르는 것이었다. 달빛에 번쩍이는 비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온몸으로 물결을 치는 소리는 경쾌했다. 나는 오늘 훤한 대낮에 곰소항 심해횟집에 앉아, 젓가락에 걸려 올라오는 추억을 씹고 있는 것이다. 함께 나온 동죽탕은 늦더위에 지친 속을 풀어준다. (전어회, 1kg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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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알차게 돌아보는 코스 가이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가에 따라 길은 달라진다. 활어·건어물·젓갈 등에 관심이 있다면 '줄포나들목'으로 나가서 곰소만 쪽으로 먼저 가는 게 좋다. 필자는 부안의 모든 것을 두루 보기 위해 '부안나들목'으로 드나들었다. 필자가 다녀온 3박 4일 코스를 소개한다.
○제1일:분당발(8:50)∼서서울톨게이트 통과(9:35)∼서해안고속도로∼부안나들목 통과(12:55). ※(주행거리 257km. 3시간 20분 소요. 통행료 9,400원)∼부안읍내 계화회관에서 점심∼계화도간척지행(부안읍 버스터미널 쪽에서 23번국도 타고 김제 쪽으로 가다가 14번지방도(군도)로 갈아타면 됨)∼계화도평야를 가로질러 계화도 도착∼계화제2방조제도로 타고 '조류지'구경(새와 갈대를 함께 볼 수 있는 곳)∼705번지방도로 타고, 돈지갑문 도착(뻘밭과 수로구경)∼하서면 관내로 들어서서 양지마을, 복용마을 구경∼30번 국도로 갈아타고 해창 쪽으로 진입∼해창선착장 구경∼새만금사업기념관∼새만금방조제 규경∼대항리 도착(전망 좋은 모텔에 방을 잡아놓고 변산해수욕장 행∼칠산바다 석양 보며 식사∼모텔로 돌아와 휴식(20:00). ※변산비치장모텔(063-583-2544∼5. 바다가 보이는 방이 좋음. 바로 아래 대항리해수욕장이 있고, 대항리패총터도 구경할 수 있음. 1박 30,000원.) 숙박(18:30).
○제2일:비치장모텔 출발(8:00)∼대항리패총 구경(파밭을 변해버려 안내판만 덩그런….)∼격포 채석강 입구 도착(만조와 안개로 인해 후퇴, 부안읍으로 들어감)∼격포∼고사포 해수욕장을 연결하는 해안도로 드라이브∼변산삼거리에서 736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남여치(월명암·낙조대·쌍선봉 등산로 입구임. 여기서 조금 더 진행하면 직소폭포·실상사터 등을 오르는 등산로 입구 있음) 넘음∼중계터널·중계교 거치며 부안댐 구경(댐 수문은 해창삼거리에서 변산온천 쪽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음)∼상서면 도착 구암리 지석묘 구경∼705번 지방도로 타고 주류성(우금산성)·개암사 구경∼23번 국도 타고 부안읍내 도착(서문안당산∼서외리당간자주∼동문안∼남문안당산∼신석정고택 돌아봄)∼청호지부근 서당마을 둘러서 채석강으로 되돌아옴∼격포해수욕장·채석강·해식동굴 구경·30번 국도 타고 상록해수욕장∼모항해수욕장∼쌍계재(아홉고개)∼운호리 운호장모텔(063-582-5290·내소사 입구 못미처 도로변에 있음. 깨끗하고 조용하고 전망도 좋으므로 추천함. 1박 30,000원.) 숙박(21:00).
○제3일:운호장모텔 출발(7:00)∼30번국도 타고 작당마을 구경(진입로가 넓고 볼거리 많은 어촌)∼쌍계재에서 식사 후 되돌아 내려와, '내소사' 행∼곰소만으로 가며 진서리 도요지·대하양식장 등 구경∼곰소항·곰소 남선염전 등 둘러봄∼신복리 삼거리에서 바디재 쪽으로 죄회전하여 우동리로 들어감(반계선생 유적지는 산속에 있으므로 1시간 정도 소요)∼우동저수지(저수지 건너편에 선계폭포 있음)∼바디재 정상에서 곰소만·의상봉 등 조망. 바디재 북쪽 골짜기는 현재 댐 공사중이므로 접근이 어려우나, 비포장도로 3km정도 내려가면 거석마을 나옴. 현재 터널공사 중이므로 완공되면 터널로 다닐 수 있음.)∼비포장도로 통과하여 거석마을∼736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해창∼격포∼상록∼모항을 한바퀴 더 순례하고 마동 삼거리에서 736번 지방도로 타고 말재를 넘음∼마포리삼거리에서 30번국도 타고 변산온천행∼변산온천리조텔(063-582-5390. 1박 45,000원. 숙박객은 온천 무료.) 숙박(20:30).
○제4일:변산온천 출발(6:30)∼해창∼조봉산(계화면 궁안리 소재) 전망대 들러 서해안 고속도로로 상경. 부안IC∼서서울 톨게이트 도로비 9,400원. ※총 주행거리 880km.  

※떠나기 전에: 부안군을 자세히 알려면 1:50,000 국립지리원 지형도 '군산·익산·무괴·위도·부안·정읍' 6매가 필요하다. ※1:100,000 '전국관광상세도' 한 권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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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
○승용차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서서울 톨게이트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부안나들목'으로 나와 30번 국도 갈아타고 부안읍으로 들어간다. 곰소만이나 내소사 쪽을 먼저 보고싶을 경우, '줄포나들목'으로 나와 23번 국도∼30번 국도 갈아타고 이정표 따르면 된다. 해남·강진·목포 쪽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북상하다 '줄포나들목'이나, '부안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호남고속도로 연결하는 편이 용이한 대전·전주 등지에서는 '태인나들목'으로 나오면 되고, 부산·마산 등지에서는 남해고속도로 타고 오다, 순천에서 호남고속도로 갈아타고 북상하다 '태인나들목'으로 나와 30번 국도 갈아타고 '부안' 표지판 따른다. 곰소만이나 내소사쪽을 먼저 들르고 싶을 경우 '정읍나들목'으로 나와 29번 국도 갈아타고 표지판 따르면 된다. 전남 광주 지역에서는 호남고속도로 연결해서 타고 북상하다 '태인 나들목'으로 나와 '부안' 표지판 따른다. 경주·대구·함양·남원 지역에서는 88올림픽고속도로 타고 오다 '고서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 갈아타고 위와 같이 한다. 강릉·원주 쪽에서는 영동고속도로 타고 오다 '호법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 갈아타고,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 갈아타고, 위와 같이 하면 된다.
○열 차
호남선 김제역이나 정읍역에 내려 부안행 직행버스 연결 이용한다.
※서울역∼김제역, 3시간 20분 소요.
※ 김제공용버스터미널∼부안(1일 129회 운행)
※ 정읍공용버스터미널∼부안(1일 30회 운행)

○고속버스
 ※서울→부안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부안(6:50부터∼19:30까지, 40∼50분 간격으로 운행. 소요시간  3시간 30분. 운임 12,200원)
*동서울터미널∼부안(4시간 소요)
※부안→서울
*부안고속버스터미널(부안읍 봉덕리 소재. 063-584-2098)에서 7:00부터 19:30까지 14회 운행. 소요시간 3시간 20분. 운임 12,200원.
※전주→부안
전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1일 15회 운행.
※고속버스 승차권 예약 및 운행정보 안내(http://www.easyticket.co.kr)

○항공
※군산 공항에 내려  부안행 버스 이용한다. 부안∼군산 50분 소요
※대한항공 예약 및 운행정보 안내 (http://www.koreanair.co.kr)
※아시아나항공 예약 및 운행정보 안내 (http://www.asiana.co.kr)

○부안군 주요 지역 시외버스 안내전화
*부안터미널 063-584-2098 , *격포정류장 063-582-8740
*줄포정류장 063-582-0008 , *곰소정류장 063-582-7129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224, 580-4449)
※부안군 홈페이지 http://www.buan.jeonbu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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