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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희망과 미래를 보았다  

0208 월간 산
향토기행/ 경상남도 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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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에서 희망과 미래를 보았다


자연과 인류의 유적들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유서 깊은 고장
글·사진 이 향 지 시인 www.poemgate.com

 진달래꽃을 보자고 달려가던 길. 벗꽃잎이나 흩날리며 돌아오던 길. 늪을 보자고 달려간다. 강을 보자고 달려간다.
 우포늪 잘 있는가. 그대를 너무 늦게 알아보았네. 머지 않은 통영에서 나고 자라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었는데, 곁에 있는 보물 창고를 못 알아보았네. 등잔 밑이 어두웠네. 도로 사정도 교통편도 형편없을 때였고, 너나없이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네만, 간절했으면 길이야 없었겠는가. 반 백년 무심이 원망이네.
 추풍령 넘을 때부터 무늬를 그리던 비, 칠곡 부근부터는 까맣게 길이 젖는다. 장마야 장마 와이퍼도 손을 젖는다. 공기조차 어두컴컴 무거워진다. 장마의 마중은 달갑지 않지만, 마음이 늪에 있으니 장마도 친구 삼으리.
 비오는 날의 늪, 비오는 날의 강은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이다. 錚?것들이 살까 어떻게 생겼을까. 산 많고 평야 적은 우리 땅에서 '늪'이란 그만큼 낯선 존재다. '늪'이란 단어는 두려우면서도 경험해보고 싶은 낯선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영원한 젖줄 낙동강. 그 강변의 평야. 대대로 엎드려 그 땅을 일궈온 사람들. 석양 무렵이면 문득 문득 그리워지던 사투리. 살아왔으며, 살고 있으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고향. 그 땅을 속속들이 느껴보리라.
 빗방울 굵어지기 전에 우포늪부터 보자. 창녕 나들목 나서자마자 우포늪으로 간다. 화왕산은 구름 속에 돌아앉았다. 진달래꽃을 보겠다고 저 산을 오를 때는 우포늪과 낙동강이 돌아앉았을까. 산은 높고 강은 낮으니 사람들은 낮은 강변에 들판을 이루고 살았다. 빗물을 타고 흘러온 모래들도 후미지고 낮은 곳을 먼저 돋우었다. 빗방울들도 움푹하고 낮은 곳을 먼저 채웠다. 쌓을 만큼 쌓고 나면 다른 곳을 어루만졌다. 스스로 진화해온 동식물들은 살만한 땅을 사람보다 먼저 알아보았다. 인간만이, 오직 인간만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콘크리트 밀림이 우후죽순처럼 일어서고 배기가스가 숨통을 조여오는 20세기말에야 늪과 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회룡 마을 들어서며 길을 물었다. 농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마을 속으로 들어왔다. 들판이 기름지니 심는 것마다 풍년이네. 노변에는 양파자루가 둑을 이루었고, 높직한 창고들 강철 들보마다 추수한 마늘들 첩첩이 엮여서 매달려있다. '쫑'이 빠진 마늘들은 뿌리만 따서 망사 자루 속으로 들어간다. 이앙기를 닦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땅도 사람도 쉬지 않으니, 창녕은 곳간마다 가득하구나.
 마을 사이를 통과한 길이 고개 하나를 넘어간다. 구불구불 앞서던 길이 주차장 앞에서 멈춘다. 자동차는 출입금지. 차는 두고 걸으시오. 말발굽 바리게이트가 침묵으로 지시한다. 가장 큰 다행은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비가 그쳐 준 것. 날씨는 흐리지만, 월드컵 성공 기념 공휴일. 아이들 데리고 소풍 온 사람들이 많다. 아이 어른 남자 여자…. 자갈길 옆에는 개망초꽃. 언덕에는 칡넝쿨. 볕 좋은 비탈에는 귀공자 같은 자귀나무꽃 만개하였다. 흙이 좋은 곳에는 밭이 있고, 밭보다 낮은 곳에는 논이 있다. 밭에는 고추 들깨 대파 호박 땅콩들이 자라지만, 이곳 전답들은 머지않아 농사를 그칠 것이라 한다. 우포늪 보전을 위해서 창녕군이 늪 주변의 농지들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늪은 어디 있는가. 이태리 포플러 몇 그루가 등줄기를 곧게 펴고 횡대를 이룬 뒤편에 있다. 멀리서 볼 땐 초록빛 가득한 초원이더니 가까이 와보니 늪이다. 넓어라. 이렇게 넓은데 늪 앞에서 늪을 찾다니. 눈앞의 늪을 표지판을 보고야 알아채다니. 둑 아래는 수로처럼 물이 고여있고 수면은 개구리밥과 마름이 덮었다. 수면 위의 것들은 모두가 초록빛이다. 이러니, 초원으로 보였을 수밖에. 오랜 가뭄으로 수위도 낮아지고 늪 속의 봇둑들도 말라있지만, 갈대들은 물 좋은 곳을 차지하여 꼿꼿하고 무성하다.
 늪의 끝은 어딘가. 눈길 닿는 곳마다 나지막한 산줄기들 두르고 있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비탈에서 비가 올 때마다 흘러내린 흙과 모래들이 늪의 바닥을 높여왔을 것이다. 우포늪 생성시기를 1억4천만년 전으로 본다하니, 그러고도 이처럼 새파란 청춘을 유지하고 있으니 자연보다 경이로운 존재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살리면서 자신도 살리는 우포늪. 호수처럼도 들판처럼도 보이는 늪.
 늪은 습지성 호수를 뜻한다. 습지란 언제나 물에 젖어있는 땅이다. 호수처럼 물이 고여있으나 수심이 얕고 물빛도 흐리다. 늪의 물은 퇴로를 차단 당해 고여있는 물이지만, 개구리밥·마름·부들·창포·갈대·올방개 같은 수생식물들이 뿌리내리고 정화작용을 해주기 때문에 썩지 않는다. 또 이런 식물들을 먹이로 하는 논우렁이들. 논우렁이 같은 것들을 먹이로 삼는 새들과 물고기들. 작은 물고기들을 먹이로 삼는 큰 물고기들 등이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는, 생존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다투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들의 터전은 이처럼 썩지 않는다. 이 굳건한 진리. 이 굳건한 먹이사슬의 가장 위쪽에는 인간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갈까? 길은 두 갈래. 하늘을 찌를 듯 일어선 버드나무 쪽으로 가면 우포늪 전망대에 이르고, 대대제방 쪽으로 가면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전망대는 문이 닫혀 오를 수가 없고, 전망대 주변은 나무가 울창하니 전망대라고 할 수도 없겠다. 대대제방 위에도 갈대가 우거져서 시야를 가린다. 관람객이 많으니 새들은 깊이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전망대 쪽으로 돌아가면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소로를 만날 수 있지만, 한가롭게 걷기에는 남은 해가 짧다. 안되겠다 건너편으로 돌아가서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
가던 길을 되짚어 창녕읍내로 들어왔다. 오리정 사거리에서 5번 국도를 따르다 대지면 쪽으로 들어섰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는 연둣빛 벼 포기들이 줄맞춰 자라고 있다. 산 그림자 누웠다 일어서는 곳마다 파릇파릇한 벼포기들이 뿌리를 내렸다. 길은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고, 어디선가 풀국새 소리 열린 창으로 흘러든다. 주매마을 표석은 내일을 기약하며 지나친다. 소목 쪽을 먼저보고 잘 곳을 정하려고 한다. 얼마 달리지 않아서 찾던 길목을 발견했다. 좁은 농로. 살아있는 장어처럼 구불거리는 농로. 한 쪽 바퀴만 헛 짚어도 논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은 길. 마주 오는 차가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작은 마을을 통과한다. 늪을 스치는 길옆에 차를 세웠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모습 더 많은 소리들을 담아보고 싶다. 좀 더 먼 곳까지 바라보고 싶다. 그러자면 저 쪽 둑 위로 건너가야 하는데, 길이 없다. 늪 쪽으로 내려가면 통할 것 같아서 내려왔는데, 단단해 보이던 흙이 물컹! 발을 잡는다. 빠진 발을 들어올리려니 물컹! 다른 쪽 발이 빠진다. 이런 게 늪이구나. 오랫동안 가물었다는데, 물이 가까우니 이렇게 물렁거리는구나. 밀려난 흙이 개구리밥을 출렁이게 하는 사이 내 몸은 건너편에 닿았다. 신발 바닥엔 물렁물렁한 진흙굽이 붙었다. 풀숲을 헤치며 문질러보지만, 늪의 흙은 악착같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노을이 아름다울 곳. 흐린 물위에 그림자를 눕히고 있는 저녁 산들이 그림 속 같다. 잿빛 왜가리가 꽥꽥거리며 소나무밭으로 날아간다. 잿빛 날개와 흐린 물결이 단짝처럼 어울린다. 물빛은 흐리지만, 물 속의 풀들은 초록빛이다. 산 그림자 깊은 쪽엔 쪽배가 한 척. 쪽배 위엔 사람 하나. 그물을 올리는가 이따금 삿대를 들어올린다. 평화! 삶의 소란도 생존의 각박함도 아득히 먼 곳! 이곳까지 오려고, 이런 것들을 만나려고 복닥이던 시간들이 평화를 회복한다.

 소목에서의 하룻밤. 슬레이트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나는 저 소리가 무진장 그리웠다. 지난해 가을 아파트로 이사한 뒤로부터 나는 저 흔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 편하게 살자고 옮겨 앉은 공간이었는데, 편함 뒤에는 또 다른 고통이 있었다. 정든 공간과 공기, 내 빈 곳을 채우고 어루만져주던 사물과 생명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내 머리 위에는 우리만의 지붕이 있었고, 보슬비 소리에도 반응하던 나무들이 창 밖을 지켜주었다. 그것들로부터의 이주는 새로운 병을 불러왔고, 아직도 앓는 중이다. 오늘밤 소목에서 듣는 빗소리와 집 둘레 나무들이 걸러주는 공기는 커다란 위로요 치료제다. 나는 땅의 자식이다. 그것을 알게 하는 소리요 공기. 더 가까이 느끼려고 문밖으로 나간다.
새벽. 소목의 새벽. 왜가리소리로 열리는 새벽. 비는 그쳤지만 구름은 낮다. 젖은 길을 밟으며 새벽 늪으로 간다. 늪 쪽에서 꽤액 꽤액 소리가 난다. 어두컴컴한 늪에서 날아오르는 것들이 있다. 건너편 숲으로도 가고 휘휘 돌기도 한다. 왜가리다. 우아한 모습과는 달리 목소리는 고장난 기계처럼 꽥꽥거리는 왜가리.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혼자 웃는다. 나는 중랑천에서 왜가리를 자세히 본 적이 있다. 학인 줄 알았는데 왜가리였다. 왜가리 이름을 알려고 서울대공원 조류관을 헤매고 다닌 적도 있다. 그런데 목소리가 저렇게 걸걸한 줄은 몰랐다. 왜가리란 이름도 저 걸걸한 목소리 때문에 붙은 것 같다.
 왜가리 소리가 찢어놓는 새벽공기는 신선하다. 늪 쪽에서 번져온다. 안개 같기도 구름 같기도 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건너편 기슭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것은 물안개. 하늘로 오르고 싶은 물들은 저렇게 일찍부터 길을 떠난다. 물 속의 나무들은 꼼짝 않는다. 날아오를 것 날아오르고 떠날 것은 떠나라 나는 좀 더 쉬어야겠다. 그런 것 같다. 바람 없는 시간의 나무들은. 가로등이 빛나고, 개 짖는 소리도 섞였지만, 나무들은 선 채로 잠이 들었고, 나는 걷는다. 왜가리는 날면서 꽥꽥거린다. 건너편은 어떨까. 이제는 저쪽을 보아야겠다.
 하늘 한 쪽이 훤해 오는 것을 보고 목포늪 서쪽으로 왔다. 들머리는 좁았으나 늪 옆의 길은 제법 넓다. 천천히, 천천히, 소리를 죽여보지만 새들은 어느새 알고 날아오른다. 멧비둘기 같기도 하고 꿩 같기도 한 저것들은 이름이 무얼까? 날아오르는 것들을 바라보는 사이, 물 속의 나무그늘에도 줄지어 숨는 것들이 있다. 농병아리! 농병아리다! 왜가리는 너울너울 춤추듯 날고, 까치는 날개가 떨어져라 바삐 저어간다. 나는 아침의 평화를 깨트리는 침입자.
 갈 때까지 가보자. 늪을 끼고 천천히 달려보는 아침. 날씨가 좋아지기를, 일출을 볼 수 있기를, 하다못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의 빛이라도 내려주기를 빌며 동쪽 하늘을 바라보지만, 오늘 아침은 아니다. 안타까움에 떨며,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만큼의 밝기에 만족해야 한다. 안내인 없이 들어선 길. 두 개의 제방을 넘었다. 세 번째의 제방 앞에서 차를 돌린다. 물풀들이 모를 심은 듯 고개를 내민 곳이 쪽지벌인 것 같은데, 누구에게 물어보나 아무도 없다. 어디까지가 목포늪이고 어디까지가 우포늪인가. 바퀴 자극은 있지만 선뜻 들어서기엔 망서려 지는 곳. 저 소로를 따라가면 수수께끼가 풀릴까. 오늘 하루를 다 바쳐서 천천히 걸으며 늪의 소리, 늪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우포늪은 어디까지인가? 우포늪은 목포늪 사지포 쪽지벌 등 넷으로 나뉘어 있지만, 본래 하나였고, 현재의 대표명도 우포늪이다.
 우포늪은 언제 생겼을까? 약 1억4천만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설과 약 6,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전자는 우포늪 주변에서 1억2천만년 전에 살았던 공룡화석이 발견된 점 때문이고, 후자는 6,000여 년 전에 있었던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빙산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할 때 낙동강을 역류해 올라온 바닷물이 출구에 쌓인 모래 등으로 퇴로를 차단 당하면서 생겼다는 설이다. 내 생각엔 두 가지 설을 연계해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물은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는 물건이다. 물보다는 그릇이 먼저라는 진리를 생각해보면 대답은 간단해진다.
 우포늪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포늪의 수원이기도 한 화왕산은 화산이라 한다. 한 쪽에서 높은 산이 무리 지어 솟구칠 때, 다른 쪽은 낮아져서 함몰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함몰된 와지(窪地)는 수원(水源)이 빈약하여 호수처럼 많은 물을 담지는 못하였다. 약 6,000년 전에 있었다는 지구온난화현상으로 빙하기의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을 상승시킬 때, 낙동강 줄기를 거슬러 역류한 바닷물이 뭍 안의 와지(窪地)를 가득 채우고, 물과 함께 따라온 모래들로 입구에 자연 둑이 만들어졌다. 뭍 안에서 퇴로를 잃은 해수는 비가 내릴 때마다 흘러드는 물로 담수화 하면서 지금 같은 늪지로 변했다는 생각이다.
 우포늪 물은 어디서 흘러드는가? 우포늪의 수원은 토평천(土坪川)이다. 토평천의 수원은 화왕산∼관룡산∼열왕산∼왕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서(안)쪽 부분이다. 고암면 감리와 계상리 쪽 계곡이 토평천의 최상류로 시작 부분은 경사도 급하고 좁다. 토평천의 발원산은 창녕군과 청도군 경계에 있는 열왕산(662.5m)이며,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구는 유어면 성산리 쪽에 있다. 토평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구에는 20번 국도가 지나가며 '유어교'란 다리가 놓여있다. 열왕산에서 낙동강에 이르는 토평천 길이는 도상거리 28km에 불과하다. 사지포 쪽 지류도, 목포늪 쪽 지류도, 쪽지벌 쪽 지류도, 수원이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낙동강 쪽 출구는 낮으나 지질이 단단한 산들이 좌우를 막고 있고, 좁다. 또 낙동강 물길을 서쪽으로 휘어져 내리게 하는 모퉁이 부근이어서 토사가 끊임없이 쌓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 출구를 막지 않으면 낙동강에 홍수가 질 때마다 우포늪 쪽도 물난리를 겪게 된다. 지류들 수계마다 인공둑을 쌓은 이유는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우연과 필연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우포늪. 유명세를 타면서 늪 주변 주민들의 삶은 오히려 고달파졌다. 우포늪으로 인하여 개발을 제한 당하고, 고기나 고동도 마음대로 잡을 수 없고,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불편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뜰 앞의 보배를 지키는 파수꾼들처럼 불편을 참아낸다. 당장은 불편하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 우포늪 사람들이야말로 후손들을 위한 환경 지킴이들. 이분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우포늪은 너무 크다.
 창녕읍내의 유물들을 골고루 보고, 소문난 옥천계곡도 다시 보고, 관룡산 관룡사도 보고, 절 안의 보물들도 두루 돌아보고, 용선대 돌부처 향하여 삼배하고 내려와 낙동강으로 갔다. 낙동강에 걸쳐진 다리를 셋이나 보고, 그 중 둘은 건너갔다 오기도 하고, 강을 끼고 우강∼ 길곡을 돌아보기도 하고, 임해진을 건너뛰어 학포∼본포∼후포를 돌아, 청도천을 거슬러왔다. 주매마을 사지포늪으로 왔다. 어떤 비석을 보아도, 어떤 경치를 보아도, 무엇을 먹어도, 누구를 만나도, 내 마음은 우포늪에 끈이 잡혀 있었다.
 사지포늪은 더 많은 버드나무를 두르고 있다. 사지포늪 주변은 가장 많이 메워진 것 같다. 늪 안에는 버드나무과 식물들이 동글동글 잎을 피웠다. 우포늪은 둑 하나를 가로질러 나뉘어 있다. 두 늪 사이의 둑은 높직해서 바라보기가 좋다. 둑 아래는 수로가 있고, 부들과 창포 마름이 뜨고 갈대 그늘에는 노랑어리연꽃이 수줍은 향기를 열었다. 수로 안쪽은 들판 같다. 동글동글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초목이 아닌 수목들이다. 압록강이나 두만강 충적지에서도, 몽골 국경과 시베리아의 습지에서도 저런 나무들을 보았다. 저런 나무들이 뿌리내리고 저처럼 왕성하게 번식할 수 있는 것은 물보다는 흙이 많아졌다는 증거다. 보전을 위해 애쓰지 않았다면 벌써 논으로 개간되었을 부분이다. 귀하다 지켜낸 사람들의 사랑과 노력, 그분들의 땀방울들.
 둑 위를 지나가는 전봇대. 전깃줄에는 제비가 줄지어 앉았다. 머리를 같은 쪽으로 향하고 나란히 앉아서 지지배배거리는 제비. 귀하다 제비 참으로 오랫만이다. 고개를 젖혀서 바라보는 사이 멍석딸기 두 알을 잡혀주는 손. 우포늪이 좋아서 잘 나가던 직장도 그만두고 창녕으로 이사온 배한봉 시인이다. 나는 오늘 백수의 점심을 얻어먹었고, 꼬셔서 우포늪으로 되돌아 왔다. 비장의 포인트를 모두 토해놓아라 나의 부탁은 그것이다.  
 그는 앞장을 선다. 소나무숲으로 들어간다. 수풀 속 패랭이꽃이 눈이 부시다. 많고 많은 것들 속에서 다른 빛깔 다른 모습을 지닌 하나는 아무리 작아도 눈부시다. 패랭이꽃 능선을 지나서 비탈을 내려간다. 산줄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부분까지 눈에 들어온다. 같은 평면 위에서 건너다보는 풍경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늪은 호수와 다를 바 없는 물그릇이니 아래서 올려다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위치와 높이를 달리하면서 새로운 각도를 창출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저 멀리 반짝이는 것은 목포늪이다. 목포늪은 담수량이 많아 호수와도 같다. 목포늪 물빛은 멀리서 보아도 알아볼 수 있다. 어젯밤 나는 저 호수 옆에서 잤다. 오늘 아침 나는 저 호수 옆길을 달렸다. 이제 나는 이 둑을 내려가 다시 저리로 갈 것이다.
 아침에 다녀간 길로 다시 들어간다. 비가 와서 갈대가 우거져서 갈대들이 너무 젖어있어서 들어가지 못한 길로 걸어 들어간다. 절반도 건너기 전에 몇 시간 소낙비 속을 걸어온 것처럼 신발과 옷이 젖었다. 빗방울도 굵어진다. 하늘과 땅의 합창. 가지 마라, 가지 마라, 붙드는 것 같다. 무엇이 보이길레, 무엇을 숨겨두었길레, 가로막으면 더 보고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 처음 젖을 때가 망서려졌지 다 젖고 나니 두려울 게 없다. 소의 목덜미, 소의 얼굴, 소의 콧등쯤 되는 곳에 오래된 무덤 하나가 있다. 비는 오는데, 안개 속의 무덤은 으스스한데, 무덤 옆 자귀나무 꽃은 납량영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후둑후둑 빗방울 떨구는 나뭇가지를 젖히니, 아! 안개와 갈대와 둘러선 산줄기와 물빛. 모서리와 평면. 그것들을 내려다보는 각도. 이 모든 것들이 한 몸처럼 어울려서 빚어내는 하나의 풍경!  
 우포늪! 너의 얼굴은 도대체 몇 개냐? 천이냐? 만이냐? 지금 나에게 보여주는 이 부드러움은 도대체 무슨 뜻이냐? 너에게 홀리면 멀쩡한 청년이 처자식 거느린 가장이 잘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네 옆으로 이사를 온다지. 오매불망 너만을 쓰게 된다지. 너만을 노래하게 된다지.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야 고개를 저어보지만 뼛속까지 번지는 전율은 어찌할 수가 없다. 지금 내 선 곳이 저 바닥보다 몇 자쯤 높지만 실은 한없이 낮은 곳에 있다.
 비오는 날은 저녁이 빨리 찾아든다. 창녕읍내로 돌아와서 하룻밤을 묶었다. 밤중에 여관을 옮기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개구리 소리 벗삼아 누린 새벽잠은 달았다. 비를 뚫고 갈 수 있는 곳. 낙동강뿐이다. 어제도 그제도 달리던 길을 되짚어 간다. 강에는 위로. 강에는 희망, 강에는 추억이 있다. 이 강을 끝까지 거슬러 오르면 은대봉에 닿지. 은대봉 옆에는 금대봉이 있고, 은대봉 아래는 황지가 있지. 황지에는 언제나 새 물이 솟는다. 솟구치고 솟구쳐서 낙동강을 이루는 물. 흐르고 흘러와서 내 눈을 적시고, 어린 내가 물장구치며 놀던 남해바다에 닿는다.  
 흐르고 흘러서 나도 닿는다. 묻고 물어서 만나는 선사시대의 고인돌. 거대한 돌덩이 앞에 서 내가 오기 전의 세상과 내가 떠난 뒤의 세상을 연결해본다. 누가 묻혔는가 누가 파헤쳤는가 어떤 보물이 나왔는가, 있는 곳 지명이 유리냐 강리냐, 보다, 왜 여기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산아래 밭들은 기름지다. 깨꽃이 피고 고구마줄기가 힘차게 뻗어간다.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오랜 뒤에 살아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짐이 무겁다. 땅은 한철만 돌보지 않아도 개망초꽃이 우거진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한시도 쉴 수가 없다. 비오는 아침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면사무소 직원께 감사드린다.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영산면 호국공원에는 오래된 돌다리가 있다. 만년교. 천년도 되기 전에 담쟁이넝쿨이 우거져서 덮었다. 어떤 곳에 있으나 비석은 외롭다. 노천의 기념비들은 생자들을 훈계하기 위한 것이다. 우거진 수풀 흐르는 물 그 모든 것보다 길을 가르쳐준 아낙네 그 넉넉한 웃음이 보배롭다.

 창녕의 모든 것이 내 안에서 꿈틀거릴 때쯤 빗줄기가 든다. 비가 개었으니 달려갈 곳 우포늪이다. 돌아온 지 닷새만에 다시 창녕으로 간다. 다시 가는 길은 한결 가깝다. 늪으로 가는 길도 낯설지 않다.  
 가시연꽃이 보고 싶어요. 아직 어린데요 꽃필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래도 보고 싶어요 어떤 곳에서 사는지. 잎사귀나 나왔나 모르겠네. 민박집 안주인이 삿대를 든다. 바닥을 밟지 말고 여기를 밟아요. 배는 작고 몹시 흔들린다. 일어서서 중심을 잡기에는 너무 작은 배. 아니 너무 무거운 나. 이 쪽배는 앞도 뒤도 구별이 안되지만 힘은 장사다. 대나무 삿대로 뭍을 밀자 무거운 나를 가뿐히 물위로 들어올린다.
 중심이 잡힐 때까지 기우뚱거렸지만 그건 배 탓이 아니라 내가 중심을 못 잡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닷새 전에도 배를 타고 들어갔던 늪이다. 그동안 내린 비로 물이 불어서 뱃바닥이 늪 바닥에 쓸리지는 않는다. 물이 좋아 물 속에서 사는 나무들도 잎사귀는 물 밖으로 내놓고 있다. 배를 밀고 가자 수면을 가득히 덮고 있던 개구리밥에 주름살이 생긴다. 그게 정말 우습다. 말밤이라 부르는 마름은 줄기가 길다. 부평초처럼 떠있는 것 같지만 뿌리 한쪽은 늘 땅 속에 박혀있는 것이다. 잎자루 아래는 공기주머니 같은 것이 붙어있는데 만져보니 말랑말랑하다. 이것이 밤(栗)처럼 단단하게 익는다 한다. 삶으면 밤 맛이 난단다. 우포늪 사람들에겐 이 늪이 뜨락이자 텃밭이다. 가시연꽃은 좀더 먼 곳에 있다.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 개구리밥과 말밤들이 드물어지는 곳에 연한 가지빛 잎사귀들이 수면을 덮고 있다. 어린잎은 쥐의 얼굴 같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쥐머구'라 한다. 조금 자란 것은 내 손바닥만한데 어느새 가시가 창궐하였다. 만지려니 꼭꼭 찌른다. 이 잎사귀가 다 자라면 지름이 1m가 넘는다고 한다. 가장 큰 것은 2m에 육박한다니 대단한 물풀이다. 가시연꽃 꽃구경은 아주 어렵다고 한다. 꽃송이가 잎을 뚫고 솟아오를 때 비가 많이 오게되면 물 속에서 썩어버린다는 것이다.
늪 가운데로 가로지르는 작은 부표들은 그물을 매달고 있다. 한 쪽을 들어올리니 논고동이 붙어있다. 흐린 날은 숨을 쉬러 위쪽으로 올라온단다. 목포늪 바닥까지 내려가 무릎걸음을 치면서 우렁이 잡는 아주머니를 보았는데, 이렇게 높이 올라온 날은 잡기도 훨씬 쉽겠다. 그러나 수면 가까이 올라온 논고동들은 물새들이 날아와서 냉큼 물고 가기도 한다.
 늪 가운데 푸른 섬이 있다. 저 섬에 닿고 싶다. 물풀들이 사라지는 중심까지 배를 밀고 갔다. 파도가 일어서 두려웠지만, 흔들리는 부표 틈새에 뿌리내린 잡초를 보았다. 오리둥지도 보았다. 알은 왜가리가 훔쳐 가버렸지만 마른풀을 엮어서 만든 둥지 안은 따뜻하다. 떠날 때 떠나지 않고 우포늪에 눌러앉는 철새들이 많다. 어처구니없는 맷돌에 묶여 수난을 겪기도 하지만, 우포늪은 철새들에게 새로운 고향이 되고 있다.
 배를 밀어 뭍으로 되돌아오는 길. 올방개 줄기에 앉았다 날았다를 되풀이 잠자리떼. 날자, 날자, 소리치지만 조금 전 앉았던 줄기로 되돌아온다. 모든 것이 살고 있다. 우포늪 하나에 기대어. 제 힘만큼만 날고 제 힘만큼만 먹으며, 모두가 내일로 가고 있다.
 자연이여! 때가 되면 불을 뿜고, 때가 되면 물을 담는다. 때가 되면 얼음이 얼고, 때가 되면 얼음이 녹는다. 때때로 역류하여 바다가 뭍으로 올라오기도 하지만, 순리를 거스른 물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제 자리로 돌아간다.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걷고, 스스로 누울 때를 안다. 자연이여! 이 거대한 순리 안에서 인간인 나는 잠시 돋았다 사라지는 새싹과 같다. 인간인 나는 1억 4천만년 전에는 없던 생물이다. 늙었으나 한없이 젊은,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는 우포늪 이 경이로운 기념물 앞에서 작고 작은 나는 끝없이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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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어떤 곳인가?
경상남도 창녕군(慶尙南道 昌寧郡)은 경상남도의 북단 중앙에 위치하며, 북쪽은 대구광역시 달성군·경북 고령군과 접하고, 동쪽은 산악을 경계로 경북 청도군·경남 밀양시에 접하며, 서남쪽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합천군·의령군과 접하고, 남쪽은 함안군·창원시와 접하고 있다.
창녕군은 낙동강 중류에 위치한 곡창지대로써, 지석묘 등 청동기시대 유적과 각종 유물들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일찍부터 부족국가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삼한시대의 불사국(不斯國), 불사국에서 발전한 '빛벌가야(比火伽倻)'가 바로 이 지역에 있었다. '빛벌가야'는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부채살의 꼭지와도 같은 교통의 요충지를 점하고 있었다. 신라 진흥왕은 재위 16년째가 되던 555년, 빛벌가야 병합에 나서게 되었고, 진흥왕 순수비 중의 하나인 '척경비'가 창녕지방에, 그것도 가장 먼저 세워진 이유는, 빛벌가야가 그만큼 요지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도 그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북 내륙과 경남 해안을 잇는 구마고속도로가 창녕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각 지역으로 통하는 국도들이 거미줄처럼 완비되어 있다.
신라 때의 이름은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比斯伐)이었다. 제26대 진흥왕 16(555)년에 하주(下州)를 설치하였다가 동왕 21(560)년 혁파했고, 제35대 경덕왕 16(757)년 화왕군(火王郡)으로 고쳤다. 고려 태조 23(940)년에 지금의 이름인 창녕군(昌寧郡)으로 고치고, 제8대 현종9(1018)년에는 계성군과 함께 밀성(현 밀양)의 속현이 되기도 하고, 조선 인조 9(1631)년에는 영산현에 합쳐지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인조 15(1637)년 창녕현으로 복구되어 지금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1950년 6.25사변 때는 치열한 공방전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하였으나, 1977년 구마고속도로 개통 등으로, 산·늪·강·평야 등에 파묻혀 있던 자연과 인류의 유적들이 갈수록 빛을 더하고 있다.
역대의 군명은 비자화(比自火)·비사벌(比斯伐)·화왕(火王)·하주(下州)·창산(昌山)·하성(夏城)·하산(夏山) 등이며, 진산은 화왕산(火王山)이다.(동국여지승람·한국지명총람, 참고)
2002년 7월 현재의 행정구역은 2개 읍(邑 : 창녕·남지), 12개 면(面 : 고암·성산·대합·이방·유어·대지·계성·영산·장마·도천·길곡·부곡), 286개 리(里)로 이루어져 있다.  
창녕군의 총면적은 533.06㎢. 이중 산림 비율은 290.39㎢로 53.5%, 농경지비율은 15,575㏊로 29%. 경남도 면적의 5.1%를 점하고 있다. 년 평균 강수량은 1,235.5mm이며, 수해가 잦은 지역이다. 년 중 최고 기온은 36.5℃까지 오르고, 최저 기온은 -11.6℃까지 내려간 적이 있으며, 평균 기온은 13.4℃, 첫 서리는 11월 초순에 내린다. 주요 기반 산업은 농업이며, 인구는 73,019(2001년 12월 31일 현재)명이다.
 화왕산 군립공원·청동기시대∼가야시대∼신라∼고려∼조선에 이르는 각종 유물·우포늪·부곡온천·낙동강 등을 끼고 있고,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추고 있어서 관광지로도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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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우포늪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습지다. 생성시기는 1억 4천만년 전이었다 하며, 대합면 주매리, 이방면 장재리·옥천리, 유어면 대대리·세진리에 걸쳐있다. 그 규모는 60만 평에 달한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넓었으나 자연적으로 쌓이는 토사와 인공매립 등에 의해 농경지로 변한 곳이 많다. 우포늪·목포늪·사지포늪·쪽지벌 등으로 나뉘어 있지만, 본래는 하나였다. 현재의 대표 명칭도 우포늪이다.
우포늪은 수생 생물들의 보고다. 갈대·부들·창포·줄·마름·붕어마름·올방개·벗풀·자라풀·생이가래·가시연꽃·노랑어리연꽃 등의 수생식물과, 각시붕어·피라미·꼬치동자개·가물치·붕어·기름종개·돌마자·누치 같은 물고기, 왜가리·논병아리·흰뺨검둥오리 같은 조류, 논우렁이 등이 무리 지어 살고 있다. 동식물들은 자신이 살만한 땅을 인간보다 먼저 알아채는 것 같다. 우포늪이 좋아서 텃새가 되어버린 철새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인류가 최후까지 지키며 간직해야할 희망의 보루. 우포늪은 바로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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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상세 안내
○우포늪 : '창녕나들목' 나서자마자 우회전하여 [20]·[24]국도 '합천·의령 방면' 갈아타고, '우포늪' 표지판 화살표 방향 따르면 된다. 창녕나들목에서 유어면 회룡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회룡마을로 들어서서 고갯길을 하나 넘으면 '우포늪' 입구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10분쯤 걸어가면 늪 앞에 닿는다. 전망대쪽(버드나무 서있는 쪽)으로 좌회전하면 길이도 길고 물풀들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갈대 우거진 둑 위로 오르게 된다. 둑밖에는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창녕나들목∼회룡마을 입구, 약 8km. 회룡마을 입구∼우포늪 약3km.) 대충 보는 데만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소로를 따라 늪 사이로 들어갈 경우, 방향을 잃을 우려가 있으므로 무작정 깊이 들어가지는 마시기 바란다.  
○사지포를 보려면 이방면 주매마을과 소목 쪽으로 가야한다. 창녕으로 되돌아와서, 오리정사거리에서 5번 국도 타고 '대구·현풍' 표지판(우포늪' 표시되어 있음)따라 [1080] 지방도로 갈아타고 1.7km 정도 진행하면 대지면과 이방면 쪽으로 좌회전하여 '우포늪' 표지판 따르면 된다. 5번 국도 분기점에서 8km 정도 진행하면 '주매마을'표석이 서있다. '우포쉼터'가 있는 앞이다. 표석을 끼고 좌회전하여 농로를 따라 고개를 넘으면 사지포와 우포를 함께 볼 수 있는 제방으로 올라서게 된다.
○목포늪을 가까이 보려면 '소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매마을' 표석에서 이방면 소재지 쪽으로 500m 정도 더 진행하면 길 왼쪽에 '소목'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 끼고 농로로 들어서면 우포 옆을 지나 소목에 닿게 된다. 소목에는 식사를 겸할 수 있는 '우포민박(055-532-6202)과 우포 지킴이 '푸른우포사람들' 회관이 있으므로 식사도 하고 잠도 자고, 우포의 식물들을 가까이 관찰할 수도 있다.  
○목포늪·우포늪·쪽지벌을 드넓게 두루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은 이방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옥천리 쪽에 있다. 소목에서 목포늪 둘레를 따라 소로를 나서면 [1080] 지방도로다. 이방면 소재지 쪽으로 좌회전(이방면 소재지 안리 쪽에서 진입하면 우회전)하여 1.5km 정도 진행하면 '우포늪1km' 표지판이 있다. 이 표지판에서 좌회전하여 좁은 길로 들어서면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좌회전하면 목포늪을 끼고 우포늪과 쪽지벌까지 갈 수 있다. 대부분 비포장이고, 노면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주의 진행해야 한다. 목포늪과 우포늪이 갈리는 지점은 토평마을 앞에 있는 토평둑부터다.
토평둑에도 갈대와 나무들이 우거져있으므로 시야는 트이지 않지만, 틈, 틈으로 내다보는 재미가 있다. 토평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왼쪽으로 소로가 갈리는데, 우포늪은 이 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 길은 자동차로 들어가기 어려우므로, 걷는 것이 좋다. 자동차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계속 진행하면 물풀들이 모를 심어놓은 듯한 늪이 하나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쪽지벌이다. 농병아리·왜가리 등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으므로, 조용히 해야 한다. 쪽지벌까지 보고 나면 들어간 길로 되돌아서는 편이 안전하다. 운이 좋으면 그물을 올리는 어부나, 논고동 잡는 아낙네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므로, 소리쳐서 양해를 구해야 한다.
○우포·목포·사지포·쪽지벌 네 개의 본래 우포 하나였는데, 수해를 막기 위하여 둑을 쌓음으로써 넷으로 분리되었다. 어느 쪽에서 보나 풍경과 식생은 비슷하므로, 특별한 볼 일이 없는 한, 회룡마을 쪽에서 보기를 창녕군은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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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화왕산·화왕산성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억새. 정상에 오르면 일망무제로 트이는 경관, 옥천계곡의 맑은 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왕산(757m)은 선사시대의 화산이다. 정상부에는 용지(龍池)라 부르는 못(池)이 세 개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분화구다. 지금은 많이 메워져서 고인 물도 적지만, 이 못은 창녕조씨(昌寧曺氏)들이 성소로 여기는 득성지지(得姓之地)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장군이 용지 둘레에 있는 화왕산성을 수리해서 근거로 삼고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화왕산은 한자로 '火旺山'이라고 쓰고 있는데, 본래의 이름은 '火王山'이었다. 창녕의 신라 시대 이름이 화왕군(火王郡)이었고, 화왕산이 창녕의 진산 임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 될 것이다. 화왕산의 가운데 글자인 '王'이 '旺'으로 바뀐 것은 일제의 술책이다. 어렵게 풀이할 것도 없이 '旺'은 '日' '王'인 것이다.
화왕산이 '火王山'이어야 맞는 것은 여러 자료들에 나타나있다. 동국여지승람 창녕현 편 산천 조에 보면 '화왕산(火王山) : 현의 동쪽 4리에 있으며 진산(鎭山)이다'는 기록이 있고, 같은 편 고적 조에 '화왕산고성(火王山古城) :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5촌9백83척이더니 지금은 없어졌고, 성 가운데 샘 아홉 개와 못[池] 세 개가 있었다.'는 기록, 같은 편 고적 조에 있는 '옥천사(玉泉寺)' 해설 등과, 군명(郡名)에 '화왕(火王)'이란 기록 등이 그 증거다. 고산자 김정호선생이 1861년에 교간한 대동여지도에도 '火王山'으로 표기되어있고, 대동여지도보다 200여년 앞선 '첩 팔도지도(帖 八道地圖)' 경상도 편에도 '火王山'이며, 다른 고지도들도 내용은 마찬가지다. '王'이 '旺'으로 바뀐 시점은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제작된 '한국근세지도'부터다. 제작의 주체는 물론 조선총독부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빌미로 우리나라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일합방 후 더욱 박차를 가해 1:50,000 지형도를 만들었는데, 우리 명산들 중 '王'자가 들어간 산이나 봉우리들을 '旺' 또는 '皇'으로 발음은 같거나 비슷하고 의미는 전혀 다른 한자를 바꿔치기 한 것이다. 밀양의 천황산, 정선의 가리왕산, 속리산의 천황봉 등도 같은 예에 속하며, 화왕산 능선과 이어져있는 열왕산(烈旺山·662.5m)·왕령산(旺嶺山·) 등도 같은 경우에 속할 것으로 본다. 이제는 우리 명산들에서 식민지 시절의 오명들을 벗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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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창녕지석묘(昌寧支石墓)
장마면 유리 야트막한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는, 남방식 지석묘다. 원래 7기의 지석묘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열되어 칠성바위(七星巖)라 부르기도 했는데, 1912년 일본인들이 파괴하여 도로공사에 쓰고, 1기만 남아있다. 1962년 국립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여 하부 구조가 밝혀졌는데, 5개의 석실이 있었고, 석관 위에는 굄돌이 있고, 그 위에 커다란 바위를 얹은 형식이었다 한다.(경상남도 기념물 제2호)
이밖에도 부곡면 온정리 고인돌·도천면 일리와 영산면 신제리의 지석묘·계성면 사리의 사은암 등의 지석묘가 남아있어서, 선사시대의 생활 흔적과 무문토기시대의 묘제(墓制)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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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창녕석빙고(昌寧石氷庫)  
냉동시설이 전무하던 시절, 겨울에 언 얼음을 떠다 여름까지 저장하던 얼음 창고. 빙고(氷庫). 서울 한강변에 동빙고·서빙고가 있었던 것처럼, 낙동강이 가까운 창녕읍과 영산면소재지에도 석빙고가 하나씩 남아있다. 땅을 파서 반지하의 공간을 만들고, 화강암을 다듬어 두터운 벽을 쌓고, 홍예교처럼 틀을 짜서 화강암 천장을 덮고, 궁륭 같은 천장 외부는 석회 등으로 틈을 메우고, 외부는 거대한 봉분처럼 흙을 다져서 덮고, 흙 위에는 잔디를 심어 흙의 유실을 막았다. 완전밀폐가 아니라, 천장에는 공기구멍을 두어 기후에 따라 배기공을 조절했으며, 지하 바닥에는 고인물이 개천 쪽으로 흘러가게 경사를 주었다. 화학제품 단열재가 전무하던 시절, 갈대와 짚 등으로 얼음이 녹지 않도록 지켰다니 이것이야말로 자연만을 소재로 한 첨단과학의 현장이다. 잠긴 문을 열고 들어서니 냉기와 암흑이 달려든다. 어둠이 걷히면서 드러나는 규모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정교하다.  
창녕석빙고의 축조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빙고(氷庫) 우측에 남아있는 비(碑)에 '崇禎紀元後再壬戌二月初一日女四月初十日畢'이라 새겨져 있는 비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조선영조 18년(1742)에 현감 신서(申曙)등이 축조한 것이다. 빙실의 길이는 13.05m, 홍예의 높이는 약 4.75m, 너비는 4.65m. 창녕읍 송현리 명덕초등학교 맞은 편 도로변에 있다.(보물 제310호)
 조선시대 영산현이 있던 영산면소재지에도 창녕석빙고와 비슷한 형태의 빙고가 하나있다. 영산호국공원 앞 도로로 들어서서, 영산만년교 앞을 지나 함박산약수터 방향으로 계속가면 도로 우측에 있고, 축조연대와 형태는 창녕석빙고와 비슷하다.(영산면 교리, 사적 제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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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창녕교동고분군·국립창녕박물관
창녕읍 교리와 송현동 일대에는 가야시대 고분들이 대규모로 남아있다. 화왕산 서쪽 기슭목마산성 아래 있는 '창녕교동고분군(昌寧校洞古墳群)'은 그 형태나 조성술 등으로 미루어, 비화가야(比火加倻)시대의 왕족들의 무덤으로 보인다.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그 일부가 발굴 조사되어 유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가고 일부만 국내에 남아있다. 발굴 당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 고분군은 횡구식(橫口式) 또는 횡혈식(橫穴式) 고분이었으며, 금봉관을 비롯하여 순금귀고리 등 각종 귀금속으로 된 장신구와 동·철제의 무구·토기 등 대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고분군은 현재 '창녕∼밀양'을 연결하는 24번 국도에 의해 동·서로 양분되어 있다. 서쪽은 A군이라 부르며 70여기가 있고, 동쪽에 모여있는 80여기는 B군이라 부른다.(사적 제80호). 교동고분군에서 머지 않은 남쪽에 송현동고분군(사적 제81호)이 있는데, 편의상 Crns이라 부른다. 화왕산, 화왕산성, 목마산성 등과, 교동고분군 바로 옆에 있는 국립창녕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가야시대 유물들과 연계해서 보면 더욱 의미 깊을 것이다.
*국립창녕박물관(055-530-2246)에는 비화가야(AD 5∼6C경)유물 240종 1,012점 등이 전시되어있고, 계성고분 복원관도 둘러볼 수 있다. 관람시간은 3월∼9월은 09:00∼17:00, 10월∼2월은 09:00∼16:00. 휴관 일은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이며, 신정·구정 및 추석연휴에도 휴관한다. 관람료는 어른 개인 550원, 단체 440원. 어린이 등 할인료는 개인 270원, 단체 2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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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술정리 동삼층석탑(昌寧 述亭里 東三層石塔)  
 이 탑(塔)은 도로변 민가의 담 밑으로 하층기단 일부가 들어가 있던 것을 1965年 주위에 있던 민가들을 철거하여 정화 보존 조치를 취하였고 탑도 함께 해체해서 수리하였다. 이때 청동향로형용기·사리병·사리 7립(粒)·향편(香片)·유리소주(小珠) 등의 사리장치(舍利裝置)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 탑을 동탑(東塔)이라 하는 것은, 한 사찰내에 쌍탑(雙塔)이 건립(建立)된 때문이 아니라, 술정리 내에 2기의 석탑이 존재하는 이유로 편의상 붙여진 명칭이라 한다. 서(西) 삼층석탑은 약 1㎞ 떨어진 곳에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결실되어 없으나, 신라 석탑의 전형을 따르고 있어 '장중명쾌(莊重明快)한 기풍이 있는 석탑'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비교적 규모도 크고, 통일신라 초기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불국사 삼층석탑(三層石塔)과 비견되는 작품으로, 제작 시기 또한 석가탑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한다. (창녕읍 술정리 동회 앞. 국보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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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관룡사 대웅전/약사전/삼층석탑/원음각/용선대 석불좌상
관룡사(觀龍寺)는 '평풍덤'이라고도 부르는 관룡산(739m) 서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 불상 등의 유물로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팔작(八作)지붕의 다포(多包)집계 건물로 비교적 조선시대 중기 이전 사찰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대웅전(보물 제212호)과,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소실(燒失)을 면했다는 약사전(藥師殿·보물 제146호), 작지만 옹골지게 생긴 약사전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11호), 용선대 석조좌불을 닮은 약사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 고풍이 물씬 풍기는 원음각 건물, 등, 볼거리가 많은 절이다.
창녕읍에서 부곡온천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계성면 소재지 삼거리에서 '화왕산' 표지판 따라 좌회전하여, 옥천리로 통하는 도로를 따르면 된다. 창녕∼계성∼옥천 간을 운행하는 공영버스가 하루 네 차례 있다.(창녕읍 옥천리)
*창녕군 문화공보과 (055-530-2236) *관룡사 (055-521-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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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창녕 탑금당치성문기비(昌寧 塔金堂治成文記碑)  
 인양사(仁陽寺) 비상(碑像)이라고도 불리는 이 비석은 통일신라시대 헌덕왕 2(810)년에 세워졌다. 높이 159cm, 너비 45cm, 두께 167cm의 화강암 비석이다. 인양사의 금당(金堂) 후편에 세워졌던 것으로, 6.25 사변 때 피해를 입어 총탄 흔적이 나있지만, 귀부와 이수 대신에 장방형의 대석과 옥개형의 개석을 얹은 모양과, 앞면과 양 측면에는 비문(碑文)을 새기고, 뒷면에 우아한 기법으로 승상(僧像)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창녕읍 교리. 보물 제2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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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신라 진흥왕 척경비(新羅眞興王 拓境碑 )  
 한반도에 현존하는 비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 비(碑)는,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22년, 서기561년)이 창녕지방에 있던 '빛벌가야'를 병합한 뒤 세운 기념비로서, 북한산·황초령·마운령 비석들과는 달리 비문(碑文)에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제명이 보이지 않아 척경비(拓境碑)라 하였으나,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이 열거되어 있으므로 순수비(巡狩碑)에 속한다. 비석의 재료는 자연석 화강암으로, 표면을 연마한 후 글자를 음각 하였으며, 높이는 가장 높은 쪽이 299.9cm, 가장 낮은 쪽이 115.1cm, 너비는 175.5cm, 두께는 51.6cm∼30.3cm이다. 이 비석은 일제시대 목마산성 서쪽 기슭에서 소풍 온 학생에 의해 발견되었다하며, 1914년 2월7일 창녕 초등학교 일본인 교장 하시모토(橋本良臧)에 의해 알려졌다. 1924년 만옥정공원으로 옮겨 보존 중이다. (창녕읍 교상리·국보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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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창녕척화비·창녕객사
*창녕척화비(昌寧斥和碑)
조선 고종 8(1871)년 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서울·부산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으로, 창녕에도 하나 있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를 겪은 뒤 쇄국의 의지를 더욱 굳혔고,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높이 1.23㎝, 폭46㎝, 두께 20㎝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서양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오,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는 뜻의 '洋夷侵犯比戰則主和賣國' 12자를 큰 글자로 새기고, "우리들 만대자손에게 경고하노라!"는 뜻의 '戒我萬生子孫' 6자,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는 뜻의 '丙寅作辛未立' 6자가 작은 글자로 새겨져 있다.(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8호).
*창녕객사(昌寧客舍) 만옥정 공원에 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는데, 유형문화재 제 231호인 '창녕객사'다. 자세한 축조연대도 알 수 없고, 수차례 해체와 이전으로 벽체는 사라지고 나무로 된 뼈대만 남아있으나,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300∼400년 전의 건축물의 특징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창녕읍 교상리 만옥정 공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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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산물·양파/마늘/송이버섯
양파와 마늘, 송이버섯은 창녕군의 특산물이다. 양파는 창녕의 대표적인 생산물로서 대지면·계성면·유어면 등 군 전역에서 생산되며, 재배면적은 1,385㏊ 생산량은 68,000톤 정도로 전국 양파 수확량의 약 10%를 창녕군이 차지한다. 양파는 비타민과 무기염료를 함유하여 감기·불면증·고혈압 예방 및 치료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낙동강변 비옥한 토양에서 재배되는 창녕양파는 구가 크고 육질이 단단하여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대지면은 한국의 양파시배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 양파시험장을 설립하여 육종연구에 힘쓰는 한편, 양파요리를 개발하여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창녕군의 또 하나의 특산물은 마늘이다. 비옥하면서도 유기물 및 인산함량과 유황성분이 많은 토양에서 재배되는 창녕마늘은 특유의 향이 있다. 재배품종은 난지형이 95% 정도를 차지하고 논 마늘이 대부분이며, 1,200㏊를 재배하여 12,500톤 정도를 수확한다.
창녕읍 화왕산 및 옥천계곡 일대와 고암면·성산면 등의 적송군락지 사질양토에서 4월∼6월과 9월∼11월에 채취하는 자연송이는 창녕의 또 하나의 특산물이다. 년간 1,500kg정도를  생산되며 다량 일본으로 수출된다. 관룡사 들머리 옥천리 도로변에는 송이요리를 하는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으므로, 제철에 가면 싼값에 그 맛과 향을 맛볼 수 있다.  
이밖에도 단감·사과·자두·배 등의 과일과, 오이·고추·토마토·파프리카·버섯 등도 많이 재배하며,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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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손맛/붕어찜·논우렁이국/도가니탕/영양돌솥밥
*우포민박집 붕어찜과 논우렁이국
창녕에서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은 옥천계곡 부근에서 많이 난다는 송이버섯이다. 먼 곳까지 운전해준 남편을 위해 별미 한턱 내고 싶어도, 봄 송이는 이미 끝났고, 가을 송이는 아직 멀었단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숯불구이, 삼계탕은 도처에 있지만, 창녕이 아니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우포까지 왔으니 늪의 것들을 먹어보자. 소목에 있는 우포 민박(055-532-6202)에서 일박을 결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맛이 있는 걸 물으니 가물치회를 권한다. 마당 앞에 양어장이 있어서 본바닥 가물치회를 즐길 수 있다. 푹 고아 즙을 내 먹으면 여름 보양식으로도 그만이겠지만, 우리 부부는 민물고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붕어찜은 먹을 수 있겠다. 기왕이면 논우렁이국도 같이 먹어보자. 우렁이는 나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 가서 많이 잡아 구워먹어 본 논고동이다. 논두렁에서 기웃거리다 몇 마리 잡으면 구워서 돗바늘로 알을 뽑아 먹었다. 우포늪에서는 대량으로 잡히니 삶아서 초무침을 해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논우렁이국은 아직 못 먹어봤다. 붕어찜과 우렁이탕이 밥과 함께 준비될 동안, 이방면 소재지로 나가서 차에 기름도 넣고 낙동강변도 휘이 둘러왔다.
해는 지고 시장한 시간. 밥상이 들어온다. 깊숙한 전골냄비 안에 넓적한 붕어들이 고춧가루와 채소로 치장을 하고 가지런히 누워있다. 젓가락을 들어 살을 한 점 집어본다. 반쯤 말린 굴비찜처럼 쪽쪽 일어나는 붕어살. 물비린내가 물씬 풍기리라 각오했는데, 의외로 담백하다. 한 점 더, 한 점 더, 젓가락이 들락거리고 등뼈가 드러난다. 붕어 아래는 흐물흐믈 익은 무와 양파 몇 조각. 붉은 고추와 마늘…. 생선찜을 할 때와 다를 것 없는 부재료들이 양념과 함께 익어있다. 붕어는 뼈 채 먹어도 될 만큼 푸욱 익혔다. 맵싸한 국물을 듬뿍 채소 건더기도 듬뿍 밥과 함께 비벼서 땀을 뻘뻘 흘리도록 먹어보는 것. 그 희망은 이루지 못했지만 모처럼 별미를 먹은 셈이다. 무엇을 넣었기에 이렇게 맛이 담백하고 고소한가? 요리를 해준 안주인 윤갑이(59)씨는 고개를 젖는다. 특별한 것 안 들었어예. 그냥 끓였어예. 특별한 풀이나 향신료를 넣었는가? 그것도 아니란다. 그렇다면 내가 붕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붕어는 한자로 부어( 魚) 또는 즉어( 魚)라고 쓴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란 책에 '즉어(붕어)는 여러가지 부스럼을 다스리며, 순채(蓴菜)와 함께 국을 끓여먹으면 위가 약하여 음식이 내리지 않는 것을 다스리고, 회를 쳐서 먹으면 오래된 적리(赤痢)와 백리(白痢)를 다스린다'고 하였다. 내용 중 날것으로 먹는다는 부분은 좀 걸린다. 디스토마가 무섭기 때문.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란 책에는 '부( )'를 한글로 '붕어'라 하고 '강천(江川)에 사는 것은 빛깔이 금처럼 누렇고 맛이 좋으며 지택(池澤)에 사는 것은 검고 맛이 덜하다'고 쓰여있다.
논우렁이는 간에 좋다고 은근히 소문이 난 모양이다.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물풀이나 뜯어먹고 산 것이니, 지친 육체를 회복시켜줄 것은 당연하다. 나는 그런 이유보다는 우렁이국을 통해서 향수를 달래려는 것이다.
논우렁이국은 된장을 풀고, 부추를 넣어 끓였다. 오래 우린 맛이다. 국물에는 찹쌀가루를 살짝 풀어서 고동살에 배어있는 늪 냄새를 제거했다. 부추는 창녕 지방 말로는 '정구지'라 한다. 나 어릴 때 내 고향에서는 '소풀'이라 했다. 고동국이니 얼갈이배추 같은 채소로 끓여낼 줄 알았는데, 부추와 논고동은 뜻밖의 조합이다. 그런데도 누 천 년을 그렇게 어울려온 재료처럼 한 그릇 안에서 조화롭게 껴안고 있다.
함께 따라나온 반찬들은 모두 손수 가꾼 것들이다. 매운 맛이 들락말락 할 때 따서 부친 풋고추 전은 일품이다. 가죽나무 어린잎으로 담근 김치는 칼칼하면서도 향기롭다. 이 맛이다. 향토의 맛. 어떻게 만들었건 무슨 양념을 썼건, 오늘 저녁은 우포늪 붕어와 논우렁이들의 헌신으로 기념비적인 식사를 했다.(붕어찜 작은 것 10,000원. 식사 5,000원)
 
*송현리 진국명국 도가니탕
해 뜨기 전부터 일어나 우포늪을 한바퀴 돌고 창녕읍내로 들어왔다. 어디로 가면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시외버스 터미널 앞을 그냥 지나쳤다. 내 목표는 군청 쪽이다. 어느 지방이나 관공서가 모여있는 부근에는 괜찮은 음식점들이 있다. 창녕군청으로 올라가는 도로변에서 24시간 영업하는 설렁탕 집을 발견했다. 옥호는 '진국명국(055-533-6200)'. 출입문 정면에 거대한 봉분처럼 생긴 '창녕석빙고'가 있어서 찾기도 쉽다. 감자탕·뼈다귀해장국·선지해장국·설렁탕·수육·도가니탕…. 말하자면 소의 부산물들이 이 댁 요리의 주재료인 셈이다.
우리의 선택은 도가니탕. 창녕 도가니탕은 진짜 도가니탕일까? 그러나 역시 건더기는 스지(심줄)다. 손질이 깔끔해서 기름끼가 없는 점이 주인의 정성을 엿보게 한다. 뼛국물도 진하다. 딸려 나온 깍두기는 새콤하게 익었고, 배추김치도 겉절이는 가위질을 해준다. 가위질을 해주는 배추김치는 누군가 먹던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모든 것이 다 갖춰졌는데 국물의 단맛은 덜하다. 곰탕도 뼈만 끓여서는 단맛이 나지 않는다. 양지머리나 사태 같은 살코기를 함께 넣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값을 훨씬 더 올려 받아야할 거다. 구중구중 비오는 장마철. 뜨겁고 진한 국물과 쫀득쫀득하게 익힌 힘줄 덕분에, 밥 한 공기 맛나게 먹었다.(도가니탕 10,000원)

 사십대에서 오십대로 넘어올 무렵, 나는 무릎이 자주 아팠다. 아는 이들은 도가니탕을 끓여 먹으라 했다. 이에는 이! 무릎에는 무릎!이란 말씀이군요. 웃었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어느 날 단골 정육점에 도가니라는 것이 걸려 있었다. 얼핏 보기엔 기름덩어리였다. 그런데 그 중심에 간장종지만한 뼈가 박혀있었다. 기계톱날에 갖다대자마자 뼈는 두 토막이 났다. 한번 더 대자 십자가가 되었다. 너무 작은 뼈라 더 이상은 토막을 칠 수도 없었다. 양지머리도 한 토막 넣어 정성껏 끓였으나 국물이 기름 투성이였다. 그런데 기름 걷고 떠먹는 맛이 달콤하면서도 구수했다. 무릎 뼈가 아프거나 헛헛 할 땐, 사골과 도가니 양지머리 등을 섞어서 곰탕을 곧잘 끓였다. 그 진한 국으로 끓인 해장국은 더욱 맛이 좋았다. 어른들 돌아가시고 아이들 성장해서 떠나고 나니, 두 식구 먹자고 거창하게 곰탕 끓이는 일은 드물다. 소문난 집에 가서 도가니탕 한 그릇 사먹고 만다.
그런데 이 사먹는 도가니탕이란 것이 어디로 가나 스지탕이다. 스지란 쇠고기의 뼈와 살을 새길 때 부산물처럼 나오는 힘줄(심줄)을 말하는데, 우리말 힘줄은 어디로 가고 일본말을 쓴다. 스지(히라가나로 스지를 써주세요)! '택시'나 '트럭'처럼 친숙해져버린 일제 외래어 스지. 처음엔 도가니 그림자라도 섞이더니 이제는 완전히 스지 건더기만 띄워서 나온다.  
도가니란 '무릎도가니'의 준말이다. 무릎도가니란 소의 무릎의 종지뼈와 그 뼈를 둘러싸고 있는 고깃덩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나 소의 무릎은 네 개밖에 되지 않고, 앞발 도가니는 둘 뿐이고, 값도 만만치 않다. 곰탕집마다 감초처럼 끼어있는 도가니탕을 이름 그대로 끓이려면 소 한 마리에 무릎이 수 십 개씩은 달려있어야 할게다. 소라로 끓인 죽을 전복죽이라해도 항의하지 않고 먹는 것처럼, 스지로 끓인 곰탕을 도가니탕이라해도 말없이 먹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도가니를 모르는 사람들이 스지를 도가니로 알 것이 가장 걱정이다. 알면서도 말 않고 먹는 사람에겐, 몰라서 모르고 먹는 사람보다 더 큰 염려와 슬픔이 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비애라는 생각까지 든다.

*부곡온천 원조곰탕의 내장탕
좋은 재료를 싱싱할 때 구입하여 순서에 따라 손질하고 순서에 따라 요리한다. 불의 세기와 양념의 양, 다루고 익히는 시간 등을 재료에 따라 달리한다. 알맞는 그릇에 알맞는 모양으로 온도를 맞춰 담아낸다. 이것이 요리의 기본이다. 이렇게 하면 인공조미료나 첨가제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하면 첫 숟가락의 맛과 마지막 숟가락의 맛이 다르지 않다. 이렇게 하자면 남다른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이러자면 시작부터 끝까지 한가지 음식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여행지에서 외식을 하면서 이런 맛까지 바란다면 욕심이 과한 사람이다.
부곡온천에는 소문난 관광지니 괜찮은 음식점들이 많겠지만, 처음 묵는 곳이어서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사는 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순서를 밟아서 찾아든 집이 원조곰탕(055-536-5610)이다. 메뉴까지 내장탕으로 정하고 들어왔다.
주말 손님들이 모두 떠난 일요일 오후라 한가한 거리. 식당 안에도 손님은 우리뿐이다. 맵지 않게 먹으려면 미리 말을 해야 한다. 이미 끓여둔 국을 다시 끓일 때 기호에 맞게 준비해 줄 수 있다. 주방과 홀 사이는 창틀처럼 트여있어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가 있다. 사장이자 주방장인 송채분여사. 이 자리에서 10년이란다. 곰탕만 7년, 내장탕을 끓인 지도 2년이 넘었다한다. 처음엔 곰탕을 대량으로 끓였는데, 팔을 다친 후로는 힘이 덜 드는 메뉴로 바꾸었다한다. 사람만큼이나 음식도 빈틈이 없다. 커다란 양은 쟁반에 가득히 담겨나 온 토종음식들. 설거지를 염려해서일까 쟁반 채 놓고 먹으라는 점이 좀 그렇긴 하지만. 유순한 양처럼 숟가락을 든다.
 으음 이 맛이다! 국물을 맛난 혓봉오리들이 오케이 신호를 보내온다. 제대로 순서를 밟아 끓여낸 음식. 채소와 고기가 알맞게 물러 신선한 맛을 낸다. 고기맛은 채소에 스미고 채소 향기는 고기에 스며, 국물도 건더기도 맛나다. 곱창·양·갈비·살코기·무·배추…. 찹쌀을 절반쯤 두어 지은 밥, 가죽김치·열무김치….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다. 야단스럽지 않으면서도, 진한 맛이 난다. 잘 만든 음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함께 나온 반찬들에도 정성과 연륜이 배어있다. 망설이지 않고 권할만하다. 원탕 부근 신라장 옆이다.(내장탕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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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특구/부곡온천(釜谷溫泉)
창녕군 부곡면 거문리 일원 146만평에 조성된 온천관광단지로, 1997. 1. 18.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동국여지승람의 영산현 조에 "온천이 현의 동남쪽 17리에 있더니 지금은 폐했다"라는 기록과 '온정역(溫井驛) : 현의 동쪽 20리에 있다.' 등의 기록이 있어 오랜 전부터 부곡에 온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73년 신현택옹이 발견했다하며 최고 78℃의 온천수를 하루 6천톤을 채수할 수 있는 유황온천이다. 유황이외에도 규소, 염소 등 20여종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어 호흡기질환, 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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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알차게 보는 코스 가이드
무엇에 더 관심을 가졌느냐에 따라 길은 달라진다. 산이냐, 늪이냐, 강이냐, 유물이냐, 온천에서의 휴식이냐. 창녕을 골고루 보려면 최소한 3박 4일은 잡아야 한다. 제1일은 '우포늪'을 중심으로 보고, 제2일은 창녕읍 중심부의 유물과 화왕산 주변을 보고, 제3일은 낙동강과 그 주변의 유물을 보고, 제4일은 부곡온천과 그 주변의 유물을 본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다녀온 필자의 행보를 참고하셔서, 알찬 여정 꾸리시길 빈다.  
○제1일 : 경부고속도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 통과(10:30)∼구마고속도로(금호분기점 가까우면 '마산'쪽 표지판 따라 날갯길로 우회전해야함. 2km전, 1km전 예고표지판에 '마산' 표시가 U턴해야 되는 것처럼 나타나 있는데, 위치를 벗어난 것이므로 당황하지 말고 우회전하여 큰 도로로 올라서면 구마고속도로임)∼창녕나들목 통과(14:50) *서울∼금호분기점 고속도로비 11,800원. 화원∼창녕 도로비 2,000원.
창녕 나들목 나서자마자 우회전하여 20번 국도 타고 대대리 쪽 우포늪으로 감(본고 '우포늪 상세 안내' 참고)∼소목 행(창녕 읍내 오리정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5번 국도 '대구·대합' 표지판 따르다, 대지면 입구에서 1080지방도로 좌회전하여 '우포늪' 표지판 따름.)∼소목에 도착. 목포늪 구경∼이방면 소재지 거쳐 낙동강변까지 드라이브∼소목으로 되돌아와서 식사 후 민박('우포민박(055-532-6202, 532-9052)' 1인당 10,000원. 식사 가능).
○제2일 : 민박집 출발(5:30)∼'목포늪∼우포늪∼쪽지벌' 구경∼창녕읍내행(이방면 소재지 안리에서 좌회전하여 창녕읍내 쪽으로 가다 20번국도 따르면 된다. 도중에 낙동강 적포교 건너 합천군 적교에서 성산을 건너다 볼 수 있음.)∼창녕읍내 유적지 '창녕석빙고·교동고분군' 둘러봄(오리정 사거리에서 창녕군청 쪽으로 우회전하여 20번 국도 '밀양·청도' 표지판 따름)∼만옥정 공원('진흥왕 척경비·창녕객사·대원군 척화비' 등 있음. 도로변 표지판 따름.)∼'술정리동삼층석탑' 구경(복잡한 시장통을 통과해야하므로 안내인을 동행할 것)∼'탑금당치성문기비'구경(비사벌장 모텔 뒤편 밭 가운데 있음)∼옥천계곡·관룡사·용선대 구경(창녕읍 오리정 사거리에서 '마산·부곡온천'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5번 국도 타고 가다, 계성면 퇴천삼거리에서 '화왕산' 표지판 따름. 관룡사까지는 경사가 급하고 좁은 길이므로 주의운전 요함.)∼'남지교·창녕낙동강교' 구경(계성면 소재지에서 1080 지방도로 타고 남지읍내 진입 직전 좌측 둑으로 올라가면 낙동강과 함께 조망 가능함.)∼낙동강변 드라이브(남지∼우강∼길곡∼임해진∼본포 거침. 후포∼본포교 부근 약 1km는 아직 비포장이므로 주의진행 요. 본포교로 바로 올라가기는 곤란하므로 마을 쪽으로 좌회전, 후포마을로 나올 것.)∼청도천 거슬러 오르며 창녕/밀양 경계 풍경 조망∼창녕읍∼주매리행(사지포·우포늪 구경)∼창녕읍내로 돌아와 식사 후 1박('비사벌장 모텔·055-532-0609. 1실 25,000원. 도로반대편 방이 조용함).
○제3일 : 모텔 출발(6:30)∼장마면 강리 능선에 있는 '창녕지석묘' 구경∼대대리 쪽 우포늪 진입 가능한 부분 모두 구경하고, 이방면 쪽으로 가서 목포늪·우포늪·쪽지벌 보고 돌아와 쪽배를 빌려 타고 늪 안 구경∼부곡온천으로 가서 온천욕 후, '영산 나들목' 거쳐 상경.(부곡온천에서는 '영산나들목'을 이용하는 편이 편리함.) ※1차 : 총 주행거리 1,021km.
※2차 : 우천으로 사진이 좋지 않아, 귀가 후  5일만에 다시 창녕으로 내려감. 사지포·우포늪·소목·목포늪·쪽지벌 구경 후∼부곡온천에서 1박(*현대호텔·055-536-5391 ※원탕에서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길목에 있다. 객실에서도 온천욕이 가능하고, 대형 온천탕을 갖추고 있다. 온천탕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1실 30,000원).
○제4일 : 부곡온천 출발(6:00)∼영산만년교·영산호국공원(구마고속도로 '영산 나들목' 직전 사거리 부근 '영산제일주유소(SK주유소)' 우측 도로 100m 지점에 있음) 구경∼도천면∼길곡면 쪽으로 내려가 낙동강변 농사 구경∼창녕읍 장날 구경(매 3일과 8일, 술정리 도로변와 오리정 사거리 부근 도로변에 5일장이 선다. 생산자들이 들고나온 마늘·양파·채소·과일·콩·보리 등을 싼값에 구매가능.)∼목포늪·우포늪·쪽지벌을 한번 더 보고 창녕나들목 통해 상경.
※떠나기 전에 : 창녕지방을 자세히 보려면 1:50,000 국립지리원지형도 '창녕·청도·남지·창원' 4매가 필요하다. ※1:100,000 '전국도로관광상세도' 한 권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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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
승용차로 갈 경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경부고속도로 타고 가다, 서대구 '금호나들목'으로 나와, '마산[45]' 표지판 따라 구마고속도로(마산방향) 갈아타고 가다, '창녕 나들목'으로 나오면 되고, 충청과 강원, 경북 내륙 지방에서도 경부고속도로 진입한 뒤 위와 같이 하면 된다.
대구보다 남쪽에 있는 부산이나 동부 경남 지역은 남해고속도로 진입하여 '중리나들목'에서 구마고속도로(대구방향) 갈아타고 진행하다 부곡온천을 먼저 들릴 경우 '영산나들목'으로 나오고, 우포늪이나 화왕산을 먼저 들릴 경우 '창녕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또, 남해고속도로 '진영나들목'에서 국도로 진입(진영방향)하여 밀양, 수산 방면으로 진행하다 수산대교 건너 '창녕' 표지판 따르면 된다.
울산 쪽에서는 양산∼김해∼남해고속도로∼마산 '중리나들목'에서 구마고속도로(대구방향)타고 '창녕나들목'으로 나오거나, 울산∼언양(고속도로)∼석남고개∼밀양을 거쳐 창녕방면으로 들어오면 된다.
광주를 비롯한 전남 쪽에서는 남해고속도로 타고 오다 함안 중리나들목에서 구마고속도(대구방향)로 갈아타고 오다 영산나들목이나 창녕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전주를 비롯한 전북지역에서는 88고속도로(대구방향) 타고 오다 화원나들목에서 구마고속도로(마산방향) 갈아타고 오다, 창녕 나들목으로 진입하면 된다.
시외버스
*서울→창녕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1일 5회 운행(첫차 09:40. 막차 17:00. 요금 18,900원)
*창녕→서울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5회 운행(09:25. 막차 17:00. 요금 18,900원)    
*부산→창녕 ; 사상터미널에서 40∼50분 간격으로 운행(첫차 07:00. 막차 20:30. 5,600원)    
*마산→창녕 ; 합성터미널에서 20∼30분 간격으로 1일 34회 운행(첫차 06:00. 막차 21:00. 요금  3,100원)
*대구→창녕 ; 서부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첫차 6:50. 막차 21:00. 요금 2,900원)  
*부곡온천은 각 터미널에서 부곡행을 이용하고, 창녕시내버스는 창녕군 홈페이지나 창녕군청 관광진흥계에 문의.
열차편
경부선 마산역이나, 동대구역이나 대구역까지 온 다음 창녕행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마산역 : 마산합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녕행 버스를 갈아탐.
*동대구역, 대구역 : 서부시외버스터미널(지하철: 성당못역 하차) 창녕행 시외버스로 갈아탐.  
항공편
김해국제공항에서 공항리무진으로 마산까지 온 후 창녕행 시외버스 이용.
대구국제공항에 내려 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와서 창녕행 버스 이용.

*창녕군청 관광진흥계 055-530-2241∼2
*창녕군청 홈페이지 http://www.c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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