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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서해의 최북단, 삼형제 섬을 찾아서  

0207 향토기행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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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최북단, 삼 형제 섬을 찾아서


억세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전신을 던져서 지켜 가는 삶터
   
글·사진 이향지 시인 www.poemgate.com


 바다는 아침이다. 아침에 떠나는 배. 아침 출항!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맑다. 바람도 없다. 이런 날은 뱃전으로 나가 경치를 구경하고 싶지만, 쾌속정에서는 그런 낭만은 허락되지 않는다. 지정된 좌석에 앉아 유리창으로 내다본다. 빠르게 지나가는 섬들과 춤추는 수평선, 창턱까지 날아오르는 하얀 물거품들을. 물거품에 얹혔다 미끄러졌다하는 부채꼴 무지개를.
 속도가 낭만을 앗아가 버리긴 했지만, 바다! 끝없는 바다! 누가 우리나라를 좁다고 했는가? 세 시간쯤 날아가서야 새로운 육지가 보인다. 소청도가 보인다. 대청도와 소청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배. 닻돌에 밧줄을 돌려 맨 뒤에야 상륙을 허락한다.
 소청도! 7년 만이다.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염려했지만, 나상선씨(67)는 트럭 옆에서 손을 번쩍 든다. 앞배로 올 줄 알았더니 뒷배로 왔느냐고, 30분이나 기다렸다고, 점심이 다 식겠다고, 말씀은 투박하지만 검게 탄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부두에는 눈에 띄게 자동차가 늘었지만, 고개 넘어 예동 마을로 들어오니 예전처럼 한가롭다. 만개한 오동꽃이 지붕보다 높아서 마을 전체가 환하다. 장어 통발 그물들이 동글동글 쌓여있어서 어촌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담장이 넝쿨들이 오래된 돌담과 굴뚝을 초록빛으로 덮었다. 대문 없는 집들. 너무나 고요하다. 무꽃 핀 남새밭에도 햇볕만 수런거린다.
 마을이 그대로인 것처럼, 민박집도 그대로다. 반기는 이모도 그대로다. 2호실. 나를 위해 비워둔 방. 그때도 내가 묶던 방. 언젠가 다녀간 곳을 다시 찾아오면, 처음과는 다른 감회가 있다. 떠돌던 기억이 집을 얻기 때문이리라.  
 예뻐라. 산부추 쫑을 데쳐서 조그만 타래들을 지어놓은 것. 하얀 접시에 소복 담아낸 그 초록빛. 초고추장도 듬뿍 따라나왔다. 상큼한 맛. 풋마늘이나 부추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이 난다. 우럭으로 끓인 매운탕과 조화를 이룬 밥상에, 또 하나의 진귀한 먹거리가 있다. '방가지' 또는 '바카지'라 부르는 소라게의 엄지발 게장이다. 이 게는 한쪽 엄지발만 큰데, 다른 부위는 먹을 수가 없고, 오직 이 엄지발만 취하여 갑옷처럼 단단한 껍질을 부스러뜨려 양념이 잘 스며들게 한다. 바카지 양념게장. 맵다맵다하면서도 젓가락이 계속 가니, 밥 한 공기를 더 먹는다. 이 싱싱하고 살아있는 맛. 청정해역 섬 맛.  

섬 맛을 좀더 깊이 느끼려면 배를 한번 타보자. 나선주 낚시어선을 빌려 타고 소청도 둘레를 한 바퀴 돌기로 한다. 통통통 소리를 내며 부두를 등지는 배. 꽁무니에 새하얀 거품 융단을 끌고 속도를 높인다. 융단 끝을 붙잡고 대청도와 백령도가 따라오더니, 모퉁이 하나 돌아서자 사라져버렸다.
 10분쯤 달리니 '흰바위'가 보인다. 분 바른 것처럼 희다고 '분바위'라고도 부른다. 육지에서 볼 때보다 바다에 떠서 건너다보니 훨씬 규모가 크고 더 아름답다. 거대한 흰 고래가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이다. 저것이 모두 대리석 덩어리라니, 석재를 탐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부디 저대로 저 자리에 영원히 있어주기를.
 흰 바위 둘레를 천천히 돌아간다. 무슨 고기가 잡히는가 엔진을 끄고 떠있는 낚싯배들. 물 속에 보이는 거뭇거뭇한 빛은 모두가 암초 아니면 해초라 한다. 섬이 하나 솟으면 사람만 둥지를 틀고 기대 사는 게 아니다. 망망대해 물고기들도 새끼를 낳고 기대 살 터전을 얻는 것이다. 흰 바위 건너에 바위섬이 하나 떠서 꽃처럼 흔들린다. 우리 배는 흰바위와 바위섬 사이를 지나간다. 배는 달리고 바다 위의 꽃은 빙빙 돈다.  

 모퉁이를 하나 더 돌아서니 예동 포구가 보인다. 포구 앞을 빠르게 지나쳐 등대 쪽으로 간다. 노화동 포구도 보인다. 소청도의 마을은 둘 뿐인데, 모두 남쪽을 향해 앉았다. 노화동을 보내고 등대 앞으로 간다. 함께 온 어부 오가실(65)씨가 저기 보세요 소 같지요? 동의를 구한다. 가까이 가보니 소보다는 거대한 벌레나 파충류 같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목을 늘였다 움츠렸다 기어가는 모습이 생명 없는 바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거북이 같다. 등대 주변엔 암초가 유난히 많다. 저 자리에 저 등대가 없었더라면 좌초하는 배가 얼마나 많았을까? 무릇 누군가를 구하고 돕는 존재들은 저렇게 외진 곳에 저렇게 쓸쓸히 비바람을 견디면서 혼자 버티는 법.

 아진포 앞을 지날 때, 아일랜드호가 지나간다. 선체를 수면 위로 들어올려서 달리는 모습이 날아가는 새처럼 날렵하다. 잠깐 사이에 시야를 벗어나는 배. 현대에서 속도는 경쟁력이다. 속도는 돈이다. 모두들 빠른 쪽으로 더 빠른 쪽으로 이윤이 더 많이 남는 쪽으로 속도를 높이며 달려가는데, 자연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싶어한다. 자연은 문명이 싫고 피곤한 것이다.
 속도를 즐기고 속도에 기대던 사람들도 언제까지나 팽팽하게 긴장하며 견딜 수는 없다. 때때로 뒷걸음쳐서 원시에 가까운 자연 속에서 휴식하며, 문명으로부터 얻은 피로를 풀고 새로운 활력을 얻고 싶어한다. 인간도 자연 중의 한 요소일 뿐이다. 여행을 하는 이유도 그렇다. 섬, 외진 섬으로의 여행은 그런 희망들을 더욱 잘 이룰 수 있는 장소와 기회를 제공한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육지는 오르고 싶은 대상이다. 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건너고 싶은 대상이다. 뭍으로 돌아가 있으면 바다가 그리워진다. 인간은 모든 곳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하지만, 어떤 곳에서건 반대편을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는 생리를 지녔다. 살기 위해서 머무는 곳이 아니면,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여행도 그렇다. 시간과 자금이 넉넉하여 이곳저곳 옮겨 다닐 수 있다하더라도, 머무는 곳을 깊이 끌어안는 애정이 없으면, 떠나고 돌아가는 행위에 불과하다. 어디 한군데 더 가고, 무엇 하나 더 먹어보는 것이 무슨 여행이랴. 두근거리며 만나고, 뒹굴며 느끼고, 함께 살다가자.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진기한 풍경이 벌어져 있다. 거대한 닻을 크레인이 내리고 있는 중이다. 꽃게잡이를하는 닻자망 어선의 닻이란다. 꽃게가 많은 해역에 대형 닻 두 개를 그물을 매어 벌려놓고 반대편에서 꽃게를 몰아서 잡는 방법이란다. 많이 잡히는가. 그렇지 않단다. 어장넓이가 800m밖에 안되기 때문이란다. 1마일만 더 열어주면 수확을 좀 더 올릴 수 있겠는데 허락되지 않아서 빚만 늘어 안타깝단다. NLL이 멀지 않은 해역. 어장보다는 안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부들은 좁은 어장을 견뎌야 한다. 바로 앞에 고기를 두고도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이해한다. 저쪽 어부들도 그러리라. 분단의 불편을 또 한번 실감한다.

 등대로 가자. 등대로 가서 답답한 마음을 훌훌 털어 버려야겠다. 나선주 갤로퍼를 얻어 타고 소청등대로 가는 길. 그전에 왔을 때는 걸었는데, 그 사이 게으름만 잔뜩 늘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섬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장난이 아니다. 길은 어렵지만, 경치는 변한 게 없다. 항아리처럼 파인 해안에 빛나는 바다가 가득 들어앉았고, 바다 건너엔 대청도가 있다. 물결은 여전히 살아있고, 비늘들은 여전히 번쩍이고, 섬들은 여전히 바다로 이어져 있다.  
 등대 끝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환상적이다. 조금 전 저 물 목을 돌아왔는데, 저렇게 빛나는 줄은 몰랐다. 아름다워라. 등대지기들이 가리키는 방향마다 절경이 펼쳐진다. 바다. 빛나는 바다. 내 마음 풀어주네. 내려다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네. 건너다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네. 그러나 얼마나 외지고 쓸쓸한 곳인가. 이 등대와 이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겠다.

  아진포 해안에는 해당화가 만개하였다. 몽돌밭을 가로질러 꽃에게로 간다. '해당화 피고 지고, 또 다시 피어나도, 한번간 우리 님은 언제나 오시려나' 어릴 때 언니들이 잘 부르던 노랜데, 바닷가에 늘어선 해당화 무리를 만나자, 동전 먹은 자판기처럼 소리를 내며 뛰쳐나온다. 아름다워라. 추억은 어느 곳에서나 자리를 펴고, 나는 지금 어디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달이다. 보름달이다. 밤중에 바다 앞에서 혼자 달 보는 마음이여. 바다는 방죽을 넘어올 듯 부풀어올랐고, 달빛은 부푼 물위에 비늘을 털며 원 없이 반짝인다. 고양이 소리로 울던 갈매기도 바위섬에서 잠이 들고, 포구의 배들만 묶인 끈을 풀지 못하고 옆구리를 부딪치며 출렁거린다. 하늘과 땅은 고요하지만, 바다는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저 물 속엔 수많은 생명들이 살며 움직이며 숨쉬고 있겠지. 저 출렁거림은 저 반짝임은 모두 그들의 움직임 때문에 일어나는 파도. 저 물, 저 파도의 힘으로, 저 달빛의 힘으로 바닷물은 지구가 거꾸로 서도 쏟아지지 않고, 그 쏟아지지 않는 힘으로 지구는 중심을 잡고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별의 표면에서 작고 작은 내가 발에 땅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침은 공간이다. 바다는 어느새 멀리 나갔다. 내가 잠든 사이에 달과 해는 자리를 바꾸었다. 어둠은 더 큰 고기를 잡으러 대해로 갔다. 나는 멀어진 바다를 보려고 흰바위로 간다. 트럭 짐칸에 앉아서 곧추선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는 재미. 차가 곧추설 때마다 내 손바닥은 빨판처럼 짐칸 난간을 붙든다. 해송들 새순이 한 뼘씩이나 자라 꽃같이 흔들린다. 거품 융단을 길게 휘날리며 달리는 배. 이 신선한 풍경 앞에서 좀 더 머물고 싶다.  

 물 빠진 돌밭에 굴이 다닥다닥 붙었다. 굴 따러 나온 사람들과 놀며, 바위를 옮겨다닌다. 갓 딴 굴을 손바닥으로 받아 얻어먹는다. 아무 연장도 지니지 않고 나와서 남의 노동을 가로채는 맛. 단단한 껍질 속에서 한 조금 두 조금 키워온 살을 훌떡 들이키는 맛. 너무 싱싱해서 떫은 맛. 이 맛이다. 바다는. 이 맛이 나를 한없이 굽신거리게 한다.
 섬사람들은 너나없이 부지런하다. 그물 깁는 남자는 오늘도 그물을 깁고 있다. 갯메꽃들은 오늘도 노래 중이다. 목젖이 드러나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 향해 벙어리 노래를 합창 중이다. 아저씨! 아저씨는 고기는 안 잡고 그물만 기워요? 깁는 게 아니라 붙이는 거요. 그렇군요 이건 새 그물이군요. 굵은 로프에 주홍빛 그물을 붙이고 있는 남자. 쉬지 않는 노동 앞에서 또 한번 굽신거린다.
 얼마나 부지런한가, 이 섬사람들은. 바다는 하루에 두 번씩 들락거리며, 일하라 일하라 섬사람들을 독려한다. 오늘은 아진포에서 가사리를 채취하는 날이다. 해초가 충분히 자라도록 해안을 봉쇄해 두었다가, 좋은 날 잡아서 공동 채취를 한다. 이모도 나선주도 오가실씨도 거기 가려고 바쁘다. 좀 더 있어도 되는데, 배가 오기 전에 마을을 떠나야한다. 부두에서 오락가락하며 대청도로 건너갈 배를 기다린다. 바다여. 바다여.

  대청도는 부두에서부터 전혀 다른 분위기다. 소청도에 비해 번화하다. 식당도 여관도 수퍼도 노래방도 당구장도 버스도 택시도 있다. 길도 넓다. 배도 많다. 점심 먹고 숙소를 정한 뒤 섬 일주를 떠난다. 섬 일주래야 대부분 해수욕장 순례다. 대청도는 해수욕장 천국이라 할만하다. 백령도는 북쪽에서 북풍을 막아주고, 소청도는 남쪽에서 남풍을 막아준다. 대청도 남쪽 기슭은 자생동백나무가 무리를 지어 꽃피우고 살수 있을 만큼 기후가 온화하다. 굴곡 심한 해안마다 고운 모래들이 지천으로 깔렸고,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맑고 깨끗하다. 모래밭 주변의 바위들은 모양과 빛깔이 남달라 좋은 볼거리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만나러 간다.

선진동 고개를 넘어서자 모래언덕이 나타난다. 대청도의 명물을 좀 더 가까이 보려고 옥죽포로 내려간다. 바다 앞에 이르러 산을 돌아보는 마음이여. 나미비 사막이 아름답다지만, 대청도 옥죽포의 모래언덕만하랴. 규모야 작지만 물이 가까이 있으니 갈망을 적시기 좋으리라. 그러나 이곳 모래언덕은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랫더미 여기저기에 섬풀들이 뿌리를 내리고 초록빛 잎사귀를 피워들었다. 작지만 단단하다. 저 작은 풀들은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 작업을 수행중인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해송 숲이 가로막는다. 소나무 울타리 너머엔 더 넓은 사막이 있다. 이제 이 모래언덕들은 나무와 풀들에 밀려 서서히 흔적을 감출 것이다. 옥죽포의 모래언덕은 해풍에 떠밀린 모래들이 육지로 날아올라와 쌓인 것이다. 제방공사 등으로 길이 막히자 모래들이 더 이상 날아들지 못하기 때문에 모래언덕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그럼 그 모래들은 어디로 갔는가. 멀리간 게 아니라, 옥죽포와 등성이 하나를 등지고 있는 농여 해안 쪽에 쌓이고 있다.  

  농여 해안. 농여 해수욕장. 가슴이 툭 트이는 바다 앞으로 왔다. 광활한 모래밭 위에 거뭇거뭇한 것들이 무늬처럼 박혀있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 움직이는 무늬. 모두 게들이다. 많다. 게들의 천국. 가까이 가면 일시에 구멍 속으로 숨어버릴 것이다. 나는 그들의 평화와 행복을 깨트리고 싶지 않다. 멀리서 보아도 다 보이는데, 굳이 영역을 침범할 필요는 없다. 바다로 눈을 돌리자 하얀 물결이 인다. 힘센 바람에 떠밀린 꽃잎처럼 좌르르, 좌르르, 흩어진다. 꽃잎 같은 물결 아래 누런 언덕이 보인다. 꽃잎 같은 물결은 물 속에 생긴 모래언덕 때문에 일어나는 물결이다. 옥죽포로 올라가지 못한 모래들이 농여 해안 물속에 새로운 모래섬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바다 건너엔 백령도가 있다. 저 모래들이 저 자리에 계속 쌓이면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 수도 있으리라. 대청도와 백령도 사이에 신비의 바닷길이 열릴 지도 모를 일이다.

  지두리 해안은 농여 해안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암석 지대에 둘러싸여 있어서 더없이 아늑하다. 고개를 넘어서 내려가는 길이 소청도의 아진포와 비슷하다. 이 섬에도 저쪽 섬에도 절경은 모두 해안에 있다. 바다와 육지가 서로를 깎으며 서로를 돋보이게 했다. 바다는 섬을 가두고 한 발자국도 못나가게 하지만, 섬은 이렇듯 절경들을 빚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사탄리 해안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마리 새가 서쪽을 향해 날개를 펼친 형상이다. 너울너울 날갯짓을 계속하지만, 바위 새는 날지 못한다. 수천만년을 한 자리에 박혀 물결의 포효를 들을 뿐. 그나저나 이 해안이 언제 이렇게 좁아졌지? 7년 전 왔을 때 둑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길이 넓어진 만큼 모래밭은 줄어들고, 모래밭을 수놓았던 물결무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이 가까우면 모래밭도 재빨리 모습을 바꾼다.

 '강난도정자각'에 올라 사탄포구와 갑죽도를 내려다본다. 바다는 어디가 끝인가. 물결은 어디서 집을 짓는가. 갈매기도 올라오지 않는 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바위섬을 당겨보는 맛. 이것이다. 이것을 위해 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정자를 세웠으리라.
지난번에 왔을 때는 걸어서 섬을 일주했다. 택시를 타고 다니니, 그냥 지나치는 곳이 많다. 편한 만큼 반납하여야 하는 자유가 있었다.

 독바위 부근에서 보는 소청도는 한 마리 자벌레가 더 멀리 기어가기 위해 등을 웅크린 모습이다. 소청도에서 바라보는 대청도, 백령도에서 바라보는 대청도 그렇다. 이 섬들은 삼형제처럼 모여있어서, 서로서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수산자원도 더 많이 확보하게 되었다. 두 섬의 중간에 위치한 대청도에 모래밭이 많은 이유도, 섬과 섬 사이로 돌아서 들고나는 물결과 바람의 영향일 것이다.

 오후의 포구는 분주하다. 끊임없이 배가 드나든다. 성게를 까는 사람들, 잔고기를 종류별로 고르는 사람들, 배에 실린 그물을 육지로 옮기는 크레인 트럭, 장어통발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 잘 못 걸린 고래를 숨기느라 끙끙거리는 사람. 잘못 걸린 고래를 사러온 장사꾼…. 어디로 가나 분주하고 활기가 넘친다. 배가 들어올 때마다 갈매기 떼가 배 위를 에워싸 듯 선회한다. 포구로 들어오는 배에 고기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갈매기만 보아도 안다. 날개! 날개! 그토록 선망하던 날개도 누군가 잡아온 것이나 노리기 위해 있다면 매력이 없다.  

  일몰을 보러가자. 지는 해에 복닥이는 마음을 닦아야겠다. 부둣가 건물 그림자들이 바다까지 닿는 것을 보고 강난도정자각으로 왔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뎠지만, 지는 해는 아름답다. 마주 바라볼 수도 없이 강렬하던 태양이 스스로 빛을 죽일 때, 수평선은 붉어진다. 구름도 붉어진다. 온종일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맞이하듯이, 수평선은 폭신한 구름이불을 편다.  
 태양! 빛나는 태양! 오늘 하루 쉬지 않고 내 길을 밝혀준 고마운 태양. 저 햇빛에 의지하여 농부는 모내기를 했다. 어부는 바다로 나가 그물을 올리고, 쾌속정은 섬으로 드나들었다. 여행객들은 떠나고 새로운 여행객이 도착했다. 저 햇빛에 의지하여 포구의 사람들은 성게알을 까고, 저 햇빛에 의지하여 해송은 새순들을 한 뼘이나 뽑아 올렸다. 저 햇빛이 있었기에 어제 머물던 섬을 바라볼 수 있었고, 내일 도착할 섬을 건너다 볼 수 있었다. 저 햇빛이 있었기에, 수많은 게들이 모래밭에서 바글거리며 삶을 들어올리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저 햇빛이 있었기에 수면 아래 쌓이는 모래언덕을 보았고, 길이 막히면 다른 곳에 또 그런 언덕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물방울들은 제 몸에 실린 모래가 무겁고, 파도에 흔들리는 모래알갱이들은 어디에서든 함께 모여 새로운 육지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다. 저 햇빛이 있었기에 섬의 중심에 솟은 삼각산을 보았고, 섬 둘레 소문난 경치들을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외진 섬, 모래언덕 보잘 것 없는 풀잎들을 반짝이게 했으며, 보리를 익혔으며, 까나리젖을 익혔으며, 작은 새들을 목청껏 지저귀게 했다.  
 안녕! 고마운 태양! 작별하고 돌아서는데, 해처럼 둥근 것이 뒤통수를 비추고 있었다. 해가 아니라 달이다. 둥근, 둥근 보름달. 해가 지는 시간에 소청도 쪽에서 떠올라 내 뒤통수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를 보내고 하나를 돌려주는 섬이여. 자연이여.    

 피로는 천근만근 쳐들어오는데, 달이 부르는 밤. 잠들 수 없는 밤. 부두는 정적에 싸여있고, 길은 혼자 언덕을 넘어가는데, 달빛이 흔드는 밤. 물결도 달이 좋아 출렁거리고, 배들도 달이 좋아 출렁거리고, 부두에 매어놓은 양치기개도 달이 좋아 쇠줄을 달그락거린다. 출렁거리고 달그락거리는 것들과 놀며 해 뜰 때까지 걸어가자. 아침을 서서 맞는 사람은 행복하나니.  

 일출! 지구의 반대편을 어루만지고 또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해. 어망과 부표, 로프와 닻, 황홀한 후광 속에서 춤추는 돛대들…. 포구의 사물들에게 어제의 모습을 돌려주고, 새로운 출항을 준비하게 하는 빛. 내 기다림 헛되지 않아 솟구치는 해를 본다. 어딘가 저곳은? 붉게 물든 수평선 속에 둥글게 솟구치는 해의 중심에 바위섬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그렇구나. 기린도. 황해남도 옹진군 기린도 머리를 짚고 떠오르는 해를 보는구나. 가깝다, 가깝다, 말은 들었지만 저렇게 가까울 줄이야. 저 섬과 이 섬 사이는 불과 12마일. NLL은 이 섬과 저 섬의 중간쯤에 있겠지. 국경 아닌 국경선. 그러나, 바다에는 아무런 장벽도 보이지 않는다. 물은 오고가고 고래들도 오고가고 새들도 오고가고…. 무언가 우리는?

백령도로 건너와서 자유를 얻는다. 이화장에 짐을 풀고 두무진으로 달려간다. 자유! 내 손발로 운전을 하며, 서고 싶은 곳에 서고, 가고싶은 시간에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자유가 어디 있는가?
두무진 포구에 도착하자마자 선대암을 보러간다. 단체 관광객이 오기 전에는 유람선이 뜨지 않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다녀오려는 것이다. 몽돌밭과 땡볕을 지나 솔밭으로 들어섰다. 그늘이 좋아라. 조용해서 좋아라. 소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인당수라고 한다. 봉사 아비 눈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 백 석에 팔린 심청이가 제물로 바쳐진 바다라고. 진촌리 북쪽 장산곶이 잘 보이는 100고지에 심청각을 세우고, 그 효심을 기린다. 오늘은 바람도 없고 물결도 일지 않는다. 언덕 위의 통일기원비는 조금 더 빛이 바래어 땡볕 속에 섰다. 저 비석 앞에서 장산곶까지가 17km라 했다. 헤엄을 쳐도 건널 수 있는 거리다.  오늘의 장산곶은 희미하다. 뿌연 가스가 가리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다. 충격을 줄이려고 덧대어놓은 깔판이 오히려 위태하다. 거대한 바위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바다를 지키고 있다. 바람이 몹시 불어 유람선이 뜰 수 없는 날, 이 계단을 내려가서 선대암을 보았다. 광풍이 물보라를 날려 몸이 바다로 날려갈 것 같았다. 그 드센 바람과 파도를 견디며 꿋꿋이 서있는 바위들. 하늬바다의 수문장들. 바다 앞으로 내려오면 더 잘 보인다. 때 마침 썰물 때라 갯바위를 타고 돌아가 본다. 고둥과 게, 해초와 파도, 철썩이는 소리는 여전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오늘은 너무나 고요하구나. 물위에 그림자를 눕히고 바위들은 햇볕을 쬔다. 그러나, 고요도 잠시. 배들이 지나가며 파도를 보낸다. 수면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흔들린다. 이 거친 물목에 저 바위들이 없었다면 이 섬은 서북쪽 모서리가 움푹 파였으리라.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둘로도 셋으로도 다섯 여섯으로도 보이는 바위들. 바다로 나가면 또 다른 모습이다. 두무진 포구를 벗어나서 연화리 앞까지 왕복하는 유람선 위에서 보면 더욱 그것을 느낀다. 이 두무진 물목의 기암들을 일컬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부를만하다. 금강산 해금강 바위들과 다른 점은 해금강의 바위들은 주상절리를 이룬 총석들의 집합이라는 점이다. 화산 분출로 생긴 6각이나 5각을 이룬 바위들이 기둥처럼 모여서 솟은 총석. 이에 비해 두무진의 바위들을 얇은 판을 포갠 것처럼 층층을 이룬 판상절리 암석들이다. 이런 판석들은 자각변동으로 육지가 솟구칠 때 그 변두리의 암층이 바다쪽으로 쓰러지면서 옆으로 드러누운 결과이다. 이곳 바위들은 단단하지가 않다. 부서지기 쉽고 모서리도 쉽게 닳는다. 백령도 일대에 창바위라 이름 붙은 바위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도 판상절리를 이룬 암석들이 해풍에 시달리면서 바위 중간에 금간 부분이 떨어져내리면서 창문처럼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가리비 즉석구이. 만원에 열 마리. 절반으로 갈라서 익을만하면 집어먹는다. 뱃속에선 밥 달라하고 혀끝에선 술 달라하지만, 밀물 때가 가까웠으니 느긋하게 채워줄 시간이 없다. 까나리 찌는 것을 보고 가려고 가리비까지 사먹었다. 그 과정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갓잡아온 까나리를 얇은 판에 펼쳐서 여섯 판씩 포개어, 끓는 소금물 속으로 집어넣을 때마다 뜨거운 김이 솟구친다. 5분 후엔 꺼내어 건조대로 옮기는데, 그때도 물이 부푼다. 모든 과정이 콘베이어벨트 위를 달리는 듯 손발이 척척 맞는다. 까나리를 말리는 사람, 마른 까나리를 통에 담는 사람, 판매하는 사람…. 모두들 열심히 일을 하는데 우리만 놀고 있구나. 도망치듯 차를 몰아 콩돌해안으로 간다. 모내기하는 농부들, 좁은 농로를 지나갈 때가 가장 미안하다.

 콩돌해안은 더 넓어진 것 같다. 물때를 잘 맞춰오면 이처럼 드넓은 돌밭을 구경하게 된다. 동글동글한 콩돌들이 무진장으로 깔렸다. 저마다 다른 빛깔과 무늬를 지닌 돌멩이들의 천국. 내 깊은 안에서 천진난만한 아이가 걸어나온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기우뚱 기우뚱거린다. 그때마다 즐거운 웃음이 따라나온다. 돌멩이들과 놀며 한없이 머물고 싶어도 아이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된다.

  사곶 해안은 언덕으로 올라가야 잘 보인다. 콩돌해안에서 진행방향으로 곧장 오르면 된다. 다보고 나서 곧장 내려오면 염전 앞이다. 두려워 마라 길은 어디에나 있고, 막히면 돌아서면 되는 법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백사장은 과연 장관이다. 이 작은 섬에 저처럼 큰 백사장을 만드느라 지칠 법도 하건만, 바다는 노동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들이 찾아와서 밟아놓으면 새로운 물결로 어루만져 구김살 없이 다려놓는다. 이 섬이 이렇게 청정하게 버틸 수 있는 힘도 바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쉬지 않고 일하는 바다의 힘. 좀 더 가까이 느끼려고 용기포로 왔다.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백사장으로 들어가 본다. 큰 차 무거운 차 얼마나 많이 들고났는가? 아스팔트처럼 단단해진 모래밭. 파도 앞까지 새가 되어 날아가 본다. 수평선을 향해 날개를 펼치고 포효해본다. 넘을 수 없구나 파도여! 내 발자국을 지우려 쉴새없이 달려오는 파도여! 물결에 실린 저녁 빛이여!

  꿈 없는 잠을 자고, 다시 날개를 펼친다. 밤사이 안개가 섬을 덮었다. 안개등을 켜고 느리게 달려, 어제의 길들을 되짚어 간다. 중화동 포구로 들어오니 다른 곳보다 밝다. 바닷가에는 미역 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백령도 미역들은 모두가 자연산 돌미역이고 햇볕에 말린다. 해가 뜨기 전에 붙여야 누렇게 변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 허리 펼 틈도 없이 미역을 한 오라기 씩 펼쳐서 붙이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 붙이면 한나절이면 다 마른다.  

 중화동 교회는 포구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생겼다는 역사 깊은 교회지만, 입구엔 아무런 표식도 없다. 직진하는 길보다 좌회전하는 길이 넓어 보여 언덕 위로 올라갔다 되돌아 내려왔다. 더듬고 더듬어서 십자가를 발견했다. 교회 앞 뜰은 무척 넓다. 교회 앞에도 미역 붙이는 분들이 있다. 이 교회 신도이며 바로 옆에 집이 있는 박선화 할머니(85)할머니 가족이시다. 할머니 얼굴은 평화 그 자체다. 이 교회와 믿음이 얼마나 큰 선물을 하였는가 짐작케 된다. 목사님이 안 계셔서 역사관을 들어가실 수가 없다고 나보다 더 섭섭해하신다. 고마우셔라! 나흘동안 세 섬을 돌며 얻은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두무진의 아침을 다시 보러 가는 길. 연지동∼진대동을 두루 돌아보았다. 밭에선 보리가 익어가고, 논에서는 모심기가 한창이다. 두무진의 아침은 고요하기만 하다. 용기포로 돌아가서 아침을 먹고, 진총리 패총을 보러왔다.
패총도 감람암도 군사지역 안에 있어 들어갈 수가 없어서, 농로 옆 절개지에 드러난 패총만 본다. 보리밭 아래, 두터운 흙 속에, 하얀 굴껍질들이 채곡채곡 쌓여있다. 내 생각에 진촌리패총은 선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대청도의 모래언덕·오진포의 콩돌·사곶천연비행장의 규조토모래와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 같다. 백령도 둘레의 바다는 유난히 흐름이 급하고 방향이 자주 바뀔 곳이다. 그러므로 이 굴 껍질들도 사람들이 먹고 한 곳에 모아서 버린 것이 아니라, 물결에 떠다니던 굴껍질들이 파도의 힘을 빌어 한 곳으로 날아와 쌓인 것이다. 소청도에서 돌 굴 채취하는 작업을 통해서도 보았듯이, 돌에 붙은 굴을 채취할 때, 굴은 뚜껑 쪽 껍질을 잃게 된다. 사람들은 알맹이만 가지고 가므로 바위에 붙은 쪽은 바위에 남고, 도구에 의해 열어 젖혀진 껍질 쪽은 바다에 버려져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백령도 해안마다 크기와 무게를 달리하는 부유물들이 종류별로 쌓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콩돌해안으로 다시 왔다. 어제보다 더 넓어진 돌밭. 햇볕에 달궈진 돌밭은 아랫목처럼 따끈따끈하다. 나는 온돌이 그리웠다. 관광객도 없는 시간. 드러누워 쉬다가 맨발이 되어 바닷물을 밟아본다. 이런 여유. 이런 행복. 이런 휴식. 얼마나 오랜만인가.
하루만 자고 떠나리라 했지만, 새록새록 드러나는 진면목에 반하여 떠날 수가 없다. 자동차를 하루 더 빌리고, 백령도의 구석구석을 구경하러 다닌다. 정오쯤 되자 안개도 걷혔다. 햇빛이 눈부시다. 아침에 안개가 끼면 낮 햇살은 유난히 뜨거운 법. 그 뜨거운 햇살 속에서 농부들은 모내기에 바쁘다. 백령대교를 거쳐 장촌으로 가는 길에, 대민 지원을 나온 해병대 장병들을 만났다. 아름다워라, 사람 사는 세상! 섬 인구의 노령화는 어제오늘의 고민은 아니다. 섬 젊은이들이 비운 빈자리를 젊은 군인들이 메워주고 있다.
장촌 삼거리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야산 기슭에 매달린 작은 논에 모심는 사람들을 본 것이다. 모두들 기계로 모를 심는데, 다리를 둥둥 걷고 논안으로 들어가서 손으로 심고 있다. 나무 꼬챙이를 양쪽에 꽂아서 못줄을 매어 옮긴다.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위해 인천에서 왔다는 딸들과 막내 사위. 아아, 가족이란, 핏줄이란, 어렵고 힘 든 일 앞에서 저렇게 모여서 하나될 때 가장 빛나고 아름답다.

 오후, 심청각으로 다시 올라간다. 어제는 가스가 끼어 장산곶을 제대로 못 보았다. 다시 온 보람이 있어서 월내도까지 생생히 건너다본다. 이 섬과 저 섬 사이는 불과 12km. 저 섬에도 이 섬에도 우리 동포들이 사는데, 두 섬 사이의 바다엔 배 한 척 없다. 한강 하류에서 느꼈던 단절감이 또 한번 뼛속까지 스며든다. 언제까지 이어질 분단인가?

  장촌으로 가자. 장촌포구로 가서 잠수부 이용선씨를 만나야겠다. 경력 30년 된 베테랑 잠수부. 소청도 나선주 집에서 만났다. 백령도에 오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포구로 들어가는 길은 좀 복잡하지만, 드디어 도착했다. 그는 오늘 물질을 안나가고 안강망 어선 그물을 손질하고 앉았다. 전복이나 해삼 하다못해 가리비라도 몇 마리 얻어먹을 줄 알았는데, 그물 꿰매기에 바쁜 그를 보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 그는 내 허기를 꿰뚫어 보았던가, 까나리배 타고 갔다오실려오? 그래서 훌쩍 뛰어올랐다. 카메라만 들고.

 바다는 석양이다. 배는 빠르고, 파도는 부푼다. 배는 어장을 향해 앞으로 가고 나는 풍경을 향해 뒤로 앉았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삶은 끝없이 흔들리는 것. 20분쯤 달려서 어장에 도착했다. 갑자기 속도를 늦추는 배. 멈춘 배는 더욱 흔들린다. 스치로폴 부표를 끌어올린다. 길다란 자루처럼 생긴 회색 그물이 딸려 올라온다.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끌어올리는 그물. 첫 그물엔 고기가 얼마 들지 않았다. 고기를 털고 난 뒤 그물 끝을 다시 묶는다. 납덩어리를 하나 매달아서 다시 물 속으로 던져 넣는다. 얼마나 오래 같은 일을 해온 것일까?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말없이 이루어진다. 멈추었던 배가 다시 달리다 이내 멈춘다. 두 번째 그물에도 고기는 많이 들지 않았다. 두 그물에서 털어 낸 고기가 한 통도 되지 않는다. 배가 속도를 다시 높인다. 좀더 멀리 먼 어장으로 간다. 물살이 더욱 부풀어 배가 한쪽으로 기운다. 또 다시 그물을 끌어올린다. 이번 그물은 가득 들었는가? 힘겹게 끌어올렸으나, 뒤가 터져서 텅 비었다. 네 번째 그물도 텅 비었다. 물살이 너무 세어서 고기를 담은 채 열렸기 때문이란다. 네 개의 그물에서 얻은 수확이 한 통도 채 못된다. 선주 겸 선장도, 어부들도 표정이 어둡다. 이 바다엔 까나리가 지천인 줄 알았는데, 급한 물살이 고기를 다 데려가 버렸다. 얼마나 물살이 빠른가? 까나리 한 마리를 던지자 마자 저 멀리로 떠내려 가버린다. 갈매기떼가 날아들더니 전광석화처럼 나꿔채 간다.  

 수확도 없이 돌아오는 길. 경치만 아름답다. 바다에서 보는 일몰은 육지에서 보는 일몰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아름답다 말할 수 없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삶은 이다지도 혹독하구나. 그러나, 이 깊은 물 속 어디선가, 그물을 빠져나간 까나리들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있으리. 포구로 돌아오니 다른 배는 너무 많이 잡아와서 삽으로 퍼담고 있다. 빈손으로 돌아오다시피 한 남3호 선원들. 저분들의 쳐진 어깨가 내일은 만선으로 활짝 들어올려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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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도·대청도·백령도, 어떤 곳인가?
 '소청·대청·백령' 세 섬은 서해 최북단의 땅으로, 서해 방위의 전초 지역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과 대청면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는 북한의 장산곶 쪽이 훨씬 가깝다. 세 섬 중 가장 크고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은 백령도인데, 인천∼백령도 간 거리는 228km나 되지만, 백령도에서 가장 가까운 황해남도 룡연군 월내도 사이는 12km에 불과하다. 룡연군(북한 지명들은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으므로 현지 표기를 따름)은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연군에서 갈라져서 새로 생긴 군이다.
현재 백령도가 속한 옹진군은 북한에서도 같은 지명을 쓰고 있다. 남한의 옹진군은 100개의 섬(유인도 25개, 무인도 75개)로 이루어져있지만, 북한의 옹진군은 남북 분단 전의 옹진군 대부분 지역과 벽성·대탄 일부를 넘겨받아 이루어 졌다. 인천에서 연평∼백령에 이르는 해역은, 북한의 개성∼백천∼연안∼청단∼해주∼벽성 지역과, 강령∼옹진∼룡연 3개 군의 서쪽 수역을 완전 봉쇄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겐 그만큼 소중하고, 북한에겐 답답한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대연평·소연평을 포함하는 서해5도와 그 인근 해역은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따라서, 이들 섬 주민들의 어업도 철저한 통제와 지도·보호 속에서, 정해진 구역 정해진 시간대에만 행해진다.        
 백령도(白翎島)는 38°선 바로 아래 위치하며(북위 37°52′, 동경 124°53′), 1945년 해방 후 북한 관할이었으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조인과 함께 남한 쪽으로 넘어왔다. 고니처럼 생겼다해서 고니섬 또는 곡도라 불렀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하며, 고구려 때는 곡도였다. 고려 태조 때 지금의 백령으로 고치고, 현종9년(1,018)에는 백령진(鎭)을 두었으며, 조선 세종 10년(1,428)에는 강령진(강령의 옛 이름이 백령이었다)이라 부르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고, 1953년 7월 27일 백령면으로 수복, 휴전과 함께 남한 관할이 되었다. 백령도의 면적은 46.22㎢. 이중 농지 비율은 25%, 산림은 66%. 인구 4,342명(2001. 4..1.현재)이며, 주민의 60∼70%가 농업에 종사한다.
 백령도 남동쪽에 인접해있는 대청도(大靑島)는 인천에서 202km 떨어져 있으며, 소청도(小靑島)와 묶어 대청면(大靑面)이 되었다. 대청도 면적은 12.586㎢, 가구 수는 471세대. 소청도 면적은 2.93㎢, 가구 수는 119세대이며,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며 살고 있다. 소·대·백령 세 섬의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백령도의 두무진·사곶 천연비행장·콩돌해안, 대청도의 옥죽포·사탄·지두리·농여·독바위 해안 등의 해수욕장들, 소청도의 흰바위(분바위) 해안, 아진포, 소청등대 등은 소문난 명소들이다.
인천을 기항지로 하는 쾌속정들의 운항으로 이들 섬은 일일생활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휴양지·관광지·낚시터로도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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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이야기
 우리나라는 섬나라는 아니지만, 남북 분단으로 북쪽 육로가 막혀 있으니, 섬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한반도에는 딸린 섬이 많다. 우리나라 부속도서 총수는 남·북한을 통 털어 3,719개(1984년 현재)나 된다. 이중 사람이 거주하는 유인도는 643개, 무인도는 3,076개다. 한반도 부속도서 3,719개 중, 휴전선 이북에는 518(유인도 126, 무인도 392)개(1945년 기준), 휴전선 이남에는 3,201(유인도 517, 무인도 2,684)개가 있다(1984년 현재). 1973년도 내무부에서 편찬한 도서지(島嶼誌) 내용을 보면 남한 쪽 유인도가 705개에서 518개로 줄어들고, 무인도 숫자는 2,195개에서 2,684개로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유인도 숫자가 줄어든 것은 대규모 간척, 매립 공사, 연륙교 신설 등으로 인하여 육지로 편입된 섬이 많기 때문일 것이고, 무인도 숫자가 늘어난 것은 섬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여 그 존재 밝히기에 힘썼기 때문일 것이다. 섬들의 육지 편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섬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국토의 아우트라인도 많은 부분 직선화되고 단조로워질 것이다.  
 소청·대청·백령도가 소속된 인천광역시 옹진군은 100개의 섬으로만 이루어진 섬 왕국이다. 이 중 유인도는 25개(백령도·대청도·소청도·대연평도·소연평도·모도·장봉도·시도·신도·영흥도·선재도·측도·승봉도·대이작도·소이작도·자월도·소야도·덕적도·굴업도·백아도·울도·지도·문갑도·부도)섬이며, 무인도는 세 배나 많은 75개 섬이다.
우리 한반도의 동·서·남·북 네 극점(極點)은 한 곳만 육지일 뿐, 세 극점은 섬으로 되어있다. 최 동단(極東)에 위치한 섬은 독도(獨島), 최 서단(極西)에 위치한 섬은 마안도(馬鞍島), 최 남단(極南)에 위치한 섬은 마라도(馬羅島)이며, 두만강 물길이 휘어도는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동(極北) 모서리만 육지에 속한다.
 섬도 육지다. 바다·호수·큰 강물 속에서 수면 위로 솟구친 부분을 섬이라 일컫는데, 엄밀하게 따지면, 지구 위의 모든 육지는 섬인 셈이다. 그래서 세계는 약속을 정하여, 오스트레일리아(762만7천㎢) 이상의 큰 육지를 대륙이라 부르고, 그린란드(217만5천6백㎢) 이하의 육지를 섬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섬은 만조 때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이는 지역을 말한다. 간척, 매립되었거나, 방파제, 방조제, 교량 등으로 육지와 연결된 도서와 제주도 본도는 섬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제주도·거제도·남해도·진도·완도·강화도 등은 섬에서 제외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5대 도서는 울릉도·거금도·자은도·압해도·교동도 순이고, 백령도도 15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어릴 때 큰 순서대로 5대 섬 이름을 외우던 일도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섬은 보배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씨뿌리지 않고 김매지 않고 거두는 밭이며 논이다. 조선시대에 지리적으로 멀거나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써서, 섬 주민들에게 섬을 비우고 뭍으로 들어와서 살게 한 적이 있었다. 그 기간이 무려 200여 년이나 되었다니, 한심하고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다 속의 작은 섬들. 그 작은 육지를 둘러싼 풍성한 보고의 존재를 미처 몰랐던 때문이리라. 바다 속의 작은 섬들, 그곳 주민들의 불편과 외로움을 좀더 껴안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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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도의 명소들/소청등대·흰바위·아진포
소청도는 작지만 아름다운 섬이다. 해안선이 굴곡이 심하고, 빛깔과 모습이 다양한 바위들이 둘레를 이루고 있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아기자기하지만, 배를 타고 돌면서 바라보는 풍경도 압권이다. 무엇보다도 깨끗하고 조용하다. 술집도 식당도 노래방도 없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조사들에겐 손맛 짭짤한 낚시터로 잘 알려져 있다.
흰바위는 분바위라고도 부른다. 달빛에 하얗게 띠를 두른 듯 하다하여 월띠라고도 부른다. 섬 동남쪽 해안에 흰빛 바위가 옹기종기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길이 50m되는 굴이 안으로 뚫려있다. 모두가 질 좋은 대리석으로, 인근에 대리석 채취장이 있다. 예동(소청1리)마을 해안도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고개 하나를 넘으면, 바위 쪽으로 내려가는 소로가 있다. 길 밖 숲은 지뢰지대이므로 길만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물때를 잘 맞춰 가면, 홍합과 고둥들을 잡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소청등대는 소청도 서쪽 끝 83m 고지에 있다. 설치 연도는 1908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생긴 등대다. 100여년 역사에 걸맞게, 외지고 어려운 물 목을 지키며, 서북해 일대와 함께 중국 산둥반도, 만주 대련지방을 항해하는 각종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일제를 거쳐 8.15광복 후 오늘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지켜본 등대이기도 하다. 공식명칭은 '소청도 항로 표지 관리소'다. 소장을 비롯한 직원 3명이 상주하며, 허락을 받아야 입장할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등대마다 고유번호가 있어서 등대불 점멸과 무적을 울리는 간격이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소청등대는 45초 간격으로 점멸한다. 등대불은 40초 동안 4번을 깜박이고, 5초 쉬기를 되풀이한다. 안개시의 무적은 40초 쉬고 5초 울리기를 되풀이한다. 배들은 그 반짝임을 보거나, 무적만 듣고도 자신이 있는 해역을 알고 항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등대 끝에서 내려다보는 물목 풍경과, 광활한 바다. 등대를 오가며 만나는 해안풍경들은 시원하면서도 아름답다. 굴곡과 요철이 심한 섬 능선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길게 거쳐야 하므로, 현지 차량의 도움을 받거나 걸어야한다. 걸을 경우 왕복 3시간 이상 잡아야 하며, 도중에 인가도 없으므로, 마실 물을 준비할 것.  
아진포는 대청도가 마주 보이는 북쪽에 있다. 항아리 안처럼 아늑한 해안에 동글동글한 몽돌이 가득히 깔려있다. 명칭은 노화동 해수욕장. 몽돌밭 둘레엔 자생 해당화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 5월말이면 만개한 해당화와 그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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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의 명소들/모래언덕(砂丘)·노송군락·동백나무자생지
물결에 떠다니던 모래알갱이들이 조수와 바람의 힘을 빌어 육지로 날아와 쌓였다. 같은 지역에 쌓이고 또 쌓여서 사막을 방불케 하는 모래언덕을 이루었다. 희고 고운 모래들이 시간과 계절과 빛의 방향에 따라 진풍경을 연출한다. 대청도의 모래언덕은 바로 이런 곳이다. 길이 약 2km, 너비 약 1km. 방조제 공사 등으로 인하여 면적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색다른 명소다. 선진동 포구에서 내동과 옥죽포 등으로 통하는 큰 도로를 따라 고개 하나를 넘으면, 고갯마루 바로 아래쪽에서부터 바다 앞까지 이어져있다. 마을 가까운 쪽은 풀이 많이 돋고, 시멘트 수로에 가로막히고, 그만큼 거리가 멀어져서 감동이 덜하지만, 바다 앞까지 내려가서 오른쪽 둑길로 파고들면 때묻지 않은 모래언덕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언덕머리마다 섬 풀꽃들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촬영을 하려면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 하므로, 대청면 사무소(032-836-2004)에 문의 할 것. 국토 방위의 최전방이고, 모래더미에 차바퀴가 빠질 염려도 큰 곳이므로, 무리한 접근은 금할 것.  
대청도가 자랑하는 노송군락은 큰 도로에서 가지를 쳐서 옥죽포로 내려가는 도중에 있다. 수령 150년 이상 된 소나무 20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거목들은 아니지만, 줄기가 굽고 잎 돋은 모양들이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자동차 길이 소나무 군락 사이를 지나가고, 그물이며 어구들을 어지럽게 나무에 기대놓아서, 느긋하게 감상하기엔 어렵다.  
사탄동해안 북쪽에 있는 자생동백나무숲은 우리나라 동백자생지 중 북방한계선에 속한다. 대청도의 남쪽 해안이 그만큼 따뜻하고 온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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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대청도의 해수욕장들
사탄동·답동·농여·지두리·옥죽동·독바위 해안
대청도는 해수욕장 천국이라 할만하다. 해안선이 굴곡이 심하고, 호(弧)를 이룬 해안마다 결 고운 모래들이 드넓은 백사장을 이루었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고 파도도 잔잔하고 조용하면서도 깨끗하다. 선진동부두에서부터 시계바늘 반대 방향으로 섬을 한바퀴 돌다보면, 옥죽∼농여∼지두리∼사탄∼독바위∼미아동∼답동 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사탄동해수욕장으로, 길이 1km, 너비 500m의 백사장. 썰물 때면 모래에 새겨진 물결 무늬가 곱다. 잘 생긴 해송 숲이 감싸고 있고, 마을도 멀지 않다. 마을 앞을 지나 15분 정도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 '강난도정자각'에 이른다. 정자각에 올라 내려다보는 갑죽도와 바다풍경, 일몰 등이 인상적이다.
답동해수욕장은 길이 1km, 너비 300m. 간조시에도 갯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운 백사장과 탁 트인 수평선이 장점이다. 갯바위 낚시를 겸할 수 있는 곳이어서 최상의 피서지.
농여해수욕장은 길이 2km, 너비 500m로 가장 넓고 깨끗하며, 마을도 멀리 있고,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작은 게들이 바글바글 모래 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사람이 다가가면 일시에 숨어버리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지두리 해안은 다른 해수욕장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한적하고 조용해서 가족단위 피서지로 좋다.
독바위해안은 소청도와 마주보는 해안으로, 기암괴석들이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갯바위 낚시가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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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의 명소들
사곶천연비행장·콩돌해안·두무진·중화동교회·패총·감람암
사곶(沙串) 천연비행장은 용기포에서 백령대교 수문 앞까지 펼쳐져 있는 길이 약 3km, 너비 약 100m(간조시 너비는 약300m)의 광활한 백사장이다. 입자가 고운 규조토로 이루어져 있어서, 간조시에는 비행기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을만큼 단단해진다.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서 해수욕장으로도 이름났다. 안쪽에 제방을 쌓고 담수호를 만들면서, 백사장과 담수호 사이에 시원한 제방도로가 뚫려있다. 사곶동과 용기포 부두 쪽에 출입구가 있다.(천연기념물 391호).
 콩돌해안은 장촌을 지나 담수호 쪽으로 가다, 화동 삼거리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우회전( '콩돌해안'팻말이 서있음)하여 1.5km정도 가면 닿게 되는 해안이다. 본래 이름은 오군포(五軍浦)다. 길이 약 2km의 너비 약 100m의 해안에 동글동글하고 빛깔이 아름다운 조약돌이 가득히 깔려있다. 콩알만한 것에서부터 애기 주먹만한 것까지 모양도 빛깔도 가지가지다. 대청도와 소청도가 겹쳐서 건너다 보이고, 연꽃바위도 보인다. 썰물 때를 잘 맞춰가면 더욱 넓은 콩돌밭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천연기념물 제392호).
두무진(頭武津)은 백령도 서북쪽 모서리에 있는 조그만 포구다. 해안 경치가 아름다워서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린다. 판상절리(널빤지처럼 쌓인 바위보양을 말함)를 이룬 암석들이 풍우에 시달리면서 온갖 형상을 빚어놓았다. 유람선을 타고 해안을 돌아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돛대처럼 생긴 선대암(仙垈岩)이다. 유람선 선착장에서 왼쪽 해안으로 가면, 언덕으로 통하는 소로가 있다. 언덕 위에 올라서면 장산곶이 잡힐 듯 가깝다. 그 언덕에 '통일기원비'가 서있다. 언덕을 넘어 계단을 내려가면 선대암 앞에 닿는다. 육지와 바다, 두 곳에서 다 보기를 권한다.(명승 제8호)
중화동교회는 1897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생겼다는 역사 깊은 교회다. 백령내연발전소 삼거리에서 중화동포구를 거쳐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
 진촌리 패총(貝塚)은 진촌리 도심에서 고개를 넘어 바다 쪽으로 가면 있다. 도로 설치 등으로 대부분 유실되고 보리밭 아래 지층에서 흔적을 구경은 하였으나, 꼬불꼬불한 농로를 통해야 하므로 현지인의 도움 없이는 찾기 어렵다.  
 감람암(橄欖岩)은 철, 마그네슘 따위의 규산염으로 된 광물을 말하는데, 짧은 기둥모양으로 결정이 되며 올리브빛이나 누른 갈색, 또는 잿빛을 띤다. 빛이 곱고 맑은 것은 보석으로 쓴다. 백령도의 감람암은 화산 분출로 생긴 현무암내에 감람암이 끼어 있는 희귀한 기념물이다. 진촌리 북쪽 하늬바다 해안에 분포하고 있으나, 군사지역 안에 있어서 관람은 어렵다. (천연기념물 제393호).
**************<<월간 산>>2002년 7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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