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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뚜껑이 덮인 우물

 

                                     이향지 시인



고궁 뒤뜰
왕비가 앉았다 떠난 툇마루에 앉아
변절한 애인을 생각할 때
뚜껑이 덮인 우물 하나 마주 앉는다
아무도 떠먹지 않는 물이나 넘실넘실 끌어안고
왕비전 뒤뜰에서 늙어버린 여자
하늘색 나무 뚜껑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오래된 돌담을 두르고 마주 앉는다
젖가슴 아래까지 차 오른 물이
그림자일망정 왕을 담았기에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여자
내가 잠시 허리를 굽혀 열어준다 해도
스스로 몸을 기우려 엎질러 질 수도 없는 여자
세상의 표면으로 길을 내어 소리쳐 흐를 수도 없는 여자
어떤 왕이 이 그늘진 뒤뜰까지 와서
저 깊은 가슴에 맞는 두레박을 내려줄 것인가
반항보다는 체념에 익숙하고
모순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여자
뚜껑을 들추면 오늘의 하늘을 담을 수밖에

나는 건너간다
뚜껑 아래 여자에게 오늘의 하늘을 보여주려고
여자 속의 왕을 부수어 바람에 날려버리려고
발등까지 덮이는 하이힐을 신고 감색바지를 입고
다가가는 고통과 다가오는 고통 사이에서
듣는 발소리
들어올리려는 힘과 누르는 힘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악취와 암흑
뚜껑 아래 우물은 썩고 있었다
살아서도 죽은 것처럼 썩고 있는 여자
완강하게 뚜껑을 잡아당기며
악취로 대답하는 여자
내 힘으로는 도저히 바꿔놓을 수 없는 여자
죽어서 살기에 꼭 좋은 곳에 두고

수수꽃다리 향기를 좇아 돌계단을 오른다

꼼꼼히 감상하느라 여름이 다 가고 가을 지나 겨울이 와도... 한 권을 손에서 놓기가 아쉬웠습니다. 이제 모두에게 은총인 가을입니다. 건강하시지요? 가을 비가 오고 태풍 소식이 있지만 끄떡 없겠지요. 선생님의 시집들과 함께 늘 제게 머물러 계시지만 한 번 전화 드리겠습니다.^^ 이 시는 숨어있는 제 방의 시화집, 초대시에 모셔두었습니다. 괜찮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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