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2/13(수) 21:26 <시인의 詩話>-PIPE ＆ 항아리   <시인의 詩話>            PIPE ＆ 항아리                                                                   이  향  지 1. 日常이라는 항아리 ― 오지 않는 부활 마흔 일곱 살이 되면, 포수도 못 된 나는 파리채나 들고, 된장항아리에 꼬이는 쉬파리나 잡고 있어야 하나?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出口를 노려보고 있다. 사흘―, 사흘―, 사흘―, 사흘 전. 쉰 다섯 살 된 나에게 점심을 먹이려고 부엌으로 갔다. 31년 동안 행주와 칼자루를 쥐고, 크고 작은 그릇들을 고르고 버리고 지배해 온 나의 城. 죽은 것들을 다시 죽여서 볶고 지지고 끓이고 구워서 나도 먹고 너에게도 먹이는 것이 부엌城主인 나의 일. 네가 김치 값도 못 되는 詩를 붙들고 우짖는 동안, 그릇들은 시무룩해져서 설거지통에 쌓였고, 얼마 안 남은 김치도 시어버렸군. 밥통도 따뜻한 밥을 거절하는 점심을 먹을까 말까 망서리고 있을 때, 3년전부터 뱃고동 소리를 내던 고물 냉장고가, 푸른 불꽃을 튀기며 죽어버렸다. 죽은 냉장고 속에서 버티던 수박 반 토막이 서서히 체온을 회복하고 색깔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수박 반 토막은 새 냉장고 속에서 사흘을 지나도 부활하지 않는다.  ― 졸시, 『오지 않는 부활』 2. 늙은 시간의 PIPE ― 멈출 수 없는 하강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出口를 올려다 보고 있다. 사흘―, 사흘―, 사흘―,   나는 오늘을 견디려고 나의 미래를 잡아 먹는다 ― 사투르누스(크노시스)를 빌림. 언제나 이빨이 문제야. 내 이빨로는 차마 내 미래의 심장부터 덥썩 물어뜯을 수 없군 ― 루벤스를 빌림.   늙으면 『귀머거리의 집』을 지어서 살게. 내가 누구의 머리를 베어먹고 있는 중인가, 내 귀엔 내 미래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 고야를 빌림. 우연히 구한 고야의 畵集에서, 두 장의 『사투르누스』를 본다. 자기가 잡아먹은 시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고야의 영혼이, 내가 지은 ‘귀머거리의 집’을 찾아와서 내 앙상한 손끝에 잡혀주는 야들야들한 미래. 한 입 베어물자마자 끔찍한 전율이 수억년 막혀있던 PIPE를 뚫고 올라와 잠들어 있던 심장을 가동시키고, 참을 수 없는 비린내를 게워올리기 시작했다. 내 심장, 내 심장, 부를 때마다 대롱 끝에서 입을 여는, 피의 꽃송이들. 그러나, 보들레르의 『등대들』은 더욱 참혹하다. (루벤스), 망각의 강, 게으름의 동산,/거기서 사랑할 순 없지만, 생명이 넘쳐,/하늘 속의 氣流, 바다 속의 潮流처럼,/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싱싱한 육체의 베개//……// (고야), 알 수 없는 것들,――마귀 잔치판에/굽는 胎兒, 거울 들여다보는 할미들,/마귀를 유혹하려 양말을 고쳐신는 알몸의/계집애 따위로 들끓는 악몽의 세계//…… 태양神의 아비 사투르누스가 괴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제 자식을 잡아먹는 이야기는 그리스神話의 내용인데, 311년 전의 루벤스, 174년 전의 고야가 그린 그림보다, 132년 전의 보들레르가 쓴 詩가 더 지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독차지 할 수 없는 여자들에 대한 증오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있는 PIPE는 곧추 서 있다. 늙은 여자에 대한 증오와 편견은 곧추 서 있는 PIPE 내벽에 기름칠을 해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기어오를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붙들고 있게, 제발 제발 기름칠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우리는 두 번 태어났다. 한 번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한 번은 아버지의 뱃속에서 ― 유피테르와 유노.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캄캄한 出口를 노려보고 있다 ― 이아손, 요나, 알렉산더. 날마다 부활하는 태양神! 영원히 죽지 않는 시간이라는 남자. 계속해서 태어나는 계집애와 할미들! 여자, 영원한 식민지! 아, 아, 나는 이 PIPE를 어서 눕혀야 한다! 3. 中心, 그 텅빈 구멍을 향하여 ― 죽은 神들의 유혹   그 매끄럽고 둥글게 뭉쳐져서 빠르게 돌아가던 파지들의 도넛이, 한꺼번에 펼쳐지면서, 시야로 뛰어들었으므로, 나는 감은 눈을 더 깊이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잠시 본 그 도넛 중심엔 흐느적거리는 축처럼 보이는 구멍이 하나 숨을 쉬고 있었고, 비 갠 후의 하늘처럼 깊고 푸른 빛을 지닌, 그 조그만 구멍의 둘레에서는, 쉴 새없이 날개를 움직이는 빛의 허족들을 볼 수 있었다. ―졸시 『파지들의 도넛』에서.   4. 결혼이라는 항아리 ― 나팔을 불며 점프하는 여자들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하마르족 소녀들이, 결혼할 여자를 고르는 청년들 앞으로 겅중겅중 춤을 추며 뛰어나간다. 매즈라 부르는 청년들은 숲에서 꺾어온 회초리로, 나팔을 불며 다가드는 소녀를 때리기 시작한다. 소녀들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더 높이 뛰어오른다. 이제 막 유방이 봉긋해지기 시작한 소녀들이 결혼이라는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저토록 격렬한 점프를 하며 나팔을 불어대다니. 수치를 미덕으로 호도하는 풍습이여. 남성에 대한 희생과 복종심을 과시하기 위하여 더 많은 매를 자청하는 소녀들이여. 매를 피해 밖으로 나온 딸의 상처에 버터를 발라주며 매를 든 남자 앞으로 거듭 거듭 어린 딸을 밀어 넣는 하마르족의 어미들이여. 나는 튀어나가지 못해서 나팔을 불며 점프한다. 5. 空氣의 항아리 ― 별꽃/쇠별꽃/개별꽃/참개별꽃 산벚나무꽃과 개복숭아꽃이 한꺼번에 분홍꽃불을 질러, 거무티티하던 산자락을 구워먹을듯이 휘감는 5월이면, 햇잎이 돋기 시작하는 활엽수 그늘에서 개별꽃과 참개별꽃도 핀다. 넉장이나 다섯장의 꽃잎이 모자라 대대손손 ‘개’字를 이름 앞에 붙이고 살아야 하는 개별꽃들. 꽃잎이 열장인 별꽃과 쇠별꽃들이 민가 근처에서 우거져 태양을 흔들고 있을 때, 개별꽃과 참개별꽃들은 바람 센 능선을 기어 오른다. 오, 눈물겹도록 여린 꽃대 위에서 별같은 눈을 뜨고, 피처럼 붉은 꽃술을 치켜든 개별꽃들이여,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이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내 詩의 씨앗들이다. 나는 나를 죽이면서 詩를 붙들고 있다. 이것만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지막 방식이라는 걸 다. 아무도 밀어주지 않는 그네를 하늘 높이 솟구쳐 보이려면, 그네줄이 끌려오는 곳까지 뒷걸음을 쳐야 한다. 반동, 반동, 반동을 이용해서 발을 구르며, 하늘까지 솟구친 후에는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