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8(금) 17:21
<나를 움직인 책>악의 꽃  

<나를 움직인 책>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이  향  지 (시인)

《이미 각자 제 자리를 차지한 때에 뒤늦게 와서, 어쩔 것인가? 어디로 내디딜까? 어느 좁은 공간으로? 고참들이 정신의 모든 분야를 쥐고 있었다. 내 것이 되기 전에 이미 유산(遺産)은 차지되었구나! 》
 보들레르(1821-1867)가 자신의 소년기부터 가장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는, 생트 뵈브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시집 <죠제프 들로롬>에 실려있는 시,「8월의 思念」이다. 생트 뵈브가 젊은 시절, <제 자리><공간><분야>를 찾을 수 없을만큼 모든 선배들이 이미 先占한 뒤에 온 사람의 고뇌와 절망을 노래했듯이, 보들레르 역시 어린 시절부터, 생트 뵈브의 시를 애송하며, <뒤에 온 사람>의 고뇌와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들레르는, 빅토르 위고의 評처럼 <예술의 天空에 새로운 전율>을 일으킨 새로운 <고유의 領地>를 개척하였다.
 샤를르 보들레르! 그의 死後 130년이 가까운 지금에도 그가 남긴 「악의 꽃」은, 현대시의 바이불로서, <삶이 무엇이며, 내가 누구인가?>를 추구하는, 시인 학자 예술애호가들의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뒤에 온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 일찍 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理想, 그의 美觀, 너무나 진지하고 앞선 方法들은, 퇴폐의 대명사처럼 매도 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성공을 믿었다. 그는 유한한 생애를 예술의 완성에 바쳐, 死後의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인간 보들레르는 비록 허망했을지라도, 시인 보들레르는 <뒤에 온 사람>들의 등대가 되어, 영원히 살고있는 것이다.  
 내가 보들레르의 시집「악의 꽃」을 만나게 된 것은 책이 귀하던 60년대 중반, 내 시를 좋아하는 내 남편을 통하여서였다. 그러나 우리는 사느라 바빠, 박남수 선생님의 번역본인 그「악의 꽃」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 나의 시들도 사는 일에 떠밀려, 그 「악의 꽃」처럼 먼지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아버님(『반달』의 작가 尹克榮님)의 책상엔, 일본어판 「惡의 꽃」이 자주 펼쳐져 있었다. 그 후 또 한권의 「악의 꽃」이 우리와 상주하게 되었다. 지금은 절판된 정음사의 세계문학전집 53(정기수 번역; 이 책에는 보들레르의 운문시 「악의 꽃」은 물론, 산문시「빠리의 우울」과 「내밀일기」까지 모두 수록되어 있다.)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은 주로 정기수 선생님의 번역인 정음사의 「악의 꽃」과, 탐구당에서 발간한 김붕구 선생님의 번역 <보들레르, 파르나스派詩(비록 70여편만 실려있을뿐이지만 현재로는 제일 나은 번역본으로 평가받고 있다.)>를 비교하며 보들레르를 만나고 있다.
 보들레르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좀더 깊이 접근해보려면, 문학과 지성사의 <보들레에르(김붕구 저)>를, 사전을 뒤지는 수고를 귀찮다 않을 수 있다면 신아사의 <보들레르. 악의 꽃 평전(유제연 편저)>을, 현재 우리나라의 보들레르 번역 실태를 파악해보고 싶다면, 민음사의 <보들레르 시전집(박은수 옮김)>과 <빠리의 우울(윤영애 번역)>등을, 보들레르의 예술론을 근거로 한, 열화당의 <화가와 시인(윤영애 역)>등을 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지난 3년여를, 거의, 보들레르에 빠져있었다. 나는 그를 읽으며 죽어서도 뛰고있는 그의 맥박 앞에 절망한다. 나는 아직도 가면에 익숙하며, 진실을 꿰뚫는 소리를 비켜가려 하며, 내일은 향기롭고 달콤한 것이라 삶에게 속삭이려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절망에 머무르기 위하여 그를 읽지는 않는다. 어떠한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도 힘있고 당당한 언어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실체를, 완전한 작품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보들레르! 시간과 공간과 性을 초월하여, <저주받은 시인> 그 자신을 향하여 내려치던 그의 그 채찍소리를 듣기 위해 읽는다. 어떠한 결과도 과정보다는 덜 중요하며, 어떠한 증오도 사랑을 내포하고 있으며, 어떠한 절망도 희망을 회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킁킁거리며……!  143년전에 발표한 그의 시,『人間과 바다』를 읽으며, 맺는다.

  人間과 바다

자유인이여, 언제나 너는 바다를 사랑하리!
바다는 네 거울이니, 너는 그 파도의
끝없는 전개 속에 네 넋을 관조하노니,
네 마음또한 그보다 덜 쓰지 않도다.

너는 즐겨 네 영상(映像) 품안으로 뛰어드나니
눈과 팔로 그것을 포옹하며 네 가슴은
그 길들일 수 없는 야성(野性)의 비탄 소리에
때로 자신의 들끓음을 잊는구나

그대들 모두 침침하고 조심스러워
인간이여, 아무도 네 심연(深淵) 바닥을 측량 못했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속의 재보를 모르나니,
그토록 그대들 악착스레 비밀을 지키는구나.

그런데도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두고
그대들은 무자비하고 가차없이 서로 싸우니,
그토록 살륙과 죽음을 사랑하는가,
오 영원의 투사들 어쩔 수 없는 숙원의 형제여!

                                         <한산신문/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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