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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3/20(목) 10:35 (MSIE6.0) 218.155.187.40 1024x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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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 소감
뼈에 새기는 감사
이 향 지
기쁩니다. 눈물이 솟구칩니다. 메말라 버석거리던 눈에, 뜨거운 눈물을 되살려 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 이런 날도 있을 수 있구나, 놀랍고 두근거리고 얼떨떨합니다. 활짝 핀 꽃 울타리 안으로 갑자기 옮겨진 사람처럼, 향기로워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가로막고 있던 편견과 소외를 허물고 뼛속까지 들이치는 이 허공, 참으로 기분 좋습니다. 이 눈부신 빛과 순수의 향기를 숨쉬고 맛보고 만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추천위원들과 심사를 맡아 주신 이승훈 원구식 정과리 세 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에 가장 감사합니다. 나는 시에 기대어 성장하고 살았습니다. 나는 자주 혼자였고 더욱 혼자이고자 하였습니다. 시가 혼자임을 잊게 해 주었고 기쁨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무수한 좌절을 겪으면서도 시를 믿었습니다.
시를 찾아 절벽을 오르고 숲을 헤매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내를 건너고 어려운 능선을 넘었습니다. 산과 강과 낙도와 사막과 툰드라와 황무지, 버려진 변방과 국경선을 헤매며 남긴 수많은 르포와 산문들 역시 내 생각과 나를 시로 표현할 생생한 이미지들을 건지기 위한 노력들이었습니다.
시를 통하여 숨쉬고 말하며 내 안을 무한 여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내 안과 내 밖의 조건들이 다르지 않음을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통하여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통하여 내 밖의 것들을 껴안게 되었습니다. 내가 온 곳을 알게 하며 있는 곳을 알게 하며 갈 곳을 알게 하는 시는 나의 종교입니다.
이것이면 되었지, 더 이상 무엇을 바랐겠습니까.
<현대시 작품상> 수상자!
높디높은 절벽 위의 꽃 한 송이를 받아들게 된 시인! 그 네 번째 주인공이 바로 나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꿈꾸지 않았습니다. 나를 둘러싼 외적인 조건들이, <문학상> 같은 건 절벽 위의 꽃처럼 여기게 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것조차 불경스럽고 터무니없는 일 같았습니다. 더구나, 지난 한 해 현대시 지면에서 거론된 후보작들 모두가 빛나는 눈과 따스한 가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의 조야한 솜씨와 순정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의 시들도 많았습니다. 열심히 가는 것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는 높고 두터운 벽 앞에서, 진작부터 무릎을 꿇고 있었던 셈입니다. 두 차례 후보작에 오른 것만으로도 황송하고 고마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변이 생긴 것입니다. 어찌 놀랍고 두근거리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이 상은 우리 시단의 선후배 동료 시인들께서 무관으로 늙어가는 저를 안타까이 여겨 양보해 주신 우정의 상에 다름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모국어와 내 가족들의 희생과 현대시가 함께 베풀어 주신 커다란 선물이며 격려이며 제 생애의 덤인 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높고 높은 절벽 위의 꽃 한 송이를 양보해 주신 선후배 동료 시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드러나지 않게 제 시를 찾아서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과 친지들께도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갚으며 되돌려야 할 사랑과 감사 뼈에 새기며, <현대시 작품상>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현대시>>2003년 4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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