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 : [書評], 윤태근 시집 <나는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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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評], 윤태근 시집 <나는 너를 사랑한다>

'세계 너머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열망

이 향 지

여기 생선 한 마리가 있다. 굽거나, 튀기거나, 찜을 만들거나, 날 것인 채로 먹거나, 오직 생선 주인의 선택에 딸렸다. 똑 같은 생선이라도 언제 누구에게 무엇과 함께 먹게 할 것인가에 따라, 양념과 요리법이 달라지게 된다. 윤태근은 자신의 시가 기존 문학권에서 오래 엎드리며 인정받는 먼길보다, 또래들의 갈망과 회의와 슬픔에 동참하고 이해 받는 길을 우선적으로 택했다.「색에 대하여」란 시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색에 대하여」는 윤태근의 이번 시집을 이해하는 '열쇠시'에 속한다. 이 시는 그가 이미 성인(成人)이 되었음을 알리고, 자신의 존재를 성인으로 인정해달라는 세상에 대한 요구에 다름 아니다.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그의 어투는 어느새 <은빛>이며 <잿빛>으로 세계를 구분 지어 그의 <동심>을 표류하게 만들고 <허무>를 알게 한 <성인의 말씀>, <철학의 말씀>을 닮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이 청년이 아름다운 것은, 그가 원하는 피안, 즉 <은빛 세상>에 가 닿지 못한 이유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데 있다.
윤태근은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컴퓨터 출판기획자며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언어가 가르치는 사람의 그것을 닮아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그는 또 대한산악연맹 등반경기위원을 맡고있을 정도로 촉망받는 산악인다. 내가 그의 시집에 발문을 쓰게 된 동기도 그와 내가 같은 산악인이라는 데 있다. 문학의 위기, 시의 사망이 거론 될 정도로 문학과 문학인의 위상이 한껏 떨어진 세기말에, 시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또 한 사람의 청년을 알게 되어 기쁘면서도 걱정된다. 시는 <밥>도, <명예>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오직 자기 존재의 증명과 구원을 위해서 끝없이 자신을 소모할 수 있는 멍청한 사람들이 택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태근은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1994년에 이미 『인형을 향하여』란 시집을 낸 바 있다. 개인 시집을 내면 등단하지 않아도 시인으로 인정하는 우리 문단의 관행에 비추어 그는 이미 시인인 셈이다. 그러나 그는 굳이 시인이라는 칭호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쓰게 된 사람이 아니라, 시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시인으로 살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의 시의 다수가 잠언 투를 닮아있고, 덜 구체적이고, 관념의 노출이 심한 점들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 스스로 보충해야할 내용을 인지하고 그가 도착해야할 세계의 방향을 가늠하면서, 꾸준히 수련하고 개발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그는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무진장 갖고 있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시류에 편승하는 현실 참여에 있다기보다, 존재의 근원적인 슬픔을 발견하고 증거하며 살아가는 자의 비참과 고독을 노래하는 내면 쪽에 있다.

「파산」은 이번 시집 안에서도 정황이 구체적이고, 공감대가 넓은 시다. 허황한 관념이 아닌 실제로 체험한 삶이 시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앞으로 그의 시가 내밀고 뻗어가야 할 희망의 가지의 표본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시「피에 대하여」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윤태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내면의 진실이 노출되는 것이다. 시 「안개가 끼었으면 한다」는 이러한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시는 진실이다. 아무리 짙은 안개로 막고, 아무리 찬란한 수사로 가려놓아도, 시인의 내면이 말하고자하는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그가 벌거벗은 몸으로 안기고 싶은 <환한 눈> 즉 <은빛 세상>도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손짓하는 것일 수 있다. 글은 그것을 쓰는 사람을 그대로 그려놓는다. 지구촌 사람들의 일년은 365일, 일주일은 7일, 하루는 24시간, 피부 색깔과 사는 곳은 달라도 먹고 자고 배설하고 욕망하는 바가 같다. 한 사람의 시가 만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사람마다 삶의 체험이 같고, 상처가 비슷하고, 몸과 숨과 꿈이 지향하는 원형이 같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윤태근의 시는 대부분 '진실'과 '진실 아닌 것'의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태어난다. 그는 그 지점을 '경계'라고 부른다. 그는 그가 '진실 아닌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조차 '진실'이라고 말하는데, 그가 사랑하는 진짜 진실은 <은빛>이며, 그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하는 진실 즉 '가짜 진실'은 <잿빛>으로 구분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시「색에 대하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잿빛>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색깔이다. 그것은 그가 갈망하던 <은빛 세상>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빛깔이다. 그가 잿빛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빛깔이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의 빛깔이기 때문이 아니라, 잿빛이 흑(黑)과 백(白) 혼합의 부산물, 즉 회색분자를 경계하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그러면 그가 가장 흠모하는 <은빛>은 무엇을 말하는가. 시 「그늘에 대하여」를 보면 그가 원하는 <은빛 세상>은 하늘에서 내려온 순백의 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두려워하는 <잿빛>은 순백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기존의 그늘이다.
이번 시집에서 드러나는 윤태근의 사유체계는「도마뱀과 까마귀」,「이상」등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원론(二元論)에 묶여있다. '선(善)' 아닌 것은 모두 '악(惡)', '미(美)' 아닌 것은 모두 '추(醜)'라는 식으로 세계를 구획 짓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그를 집요하게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시「간격」은 그를 그런 세계로 이끌고 간 사람들이 누구였나를 알게 해준다.

어머니, 교사, 아버지, 길에서 만난 사람. 그를 둘러싼 세계는 그가 감당하기 벅찬 주문들을 늘어놓고 간섭하는 존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이 시는 <그물에 갇혀 헤엄치는 새와 하늘을 날아가는 물고기를 상상>하게 한다. 어른들이 요구하는 바가 얼마나 모순된 것이었나를…. 이제 그는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된 그가 이 모든 간섭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견한 공간은 자연 속이다. 그가 즐겨 찾는 산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에 눈뜨게 했다. 다음 시들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태근의 시는 많은 부분이 영화 <파리넬리>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의 변성을 걱정하고, 변성 전의 세계에 붙잡아두려고(머물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그 자신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그가 그 자신 안에서 머리 드는 관능을 죄처럼 꼭꼭 눌러두고 감춤으로써만이 어떤 세계(가령 사람을 품어줄 환한 눈 즉 은빛세계)에 도달하거나, 이미 도착한 세계에서 추방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이제 그는 인식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의 시들이 그 자신을 향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건강한 젊은이가 왜 그대(그 대상이 무엇이든)를 향해 용감하게 전진하지 못하고, 스스로 길을 막아놓고 「그대는 언제나 막혀있다」고 슬픈 소리만 내고 있는가.

세계는 다양한 개체들의 집합체이므로, 개체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과 대칭의 자리에 서있는 타인을 향하여, 왜 나처럼 하지 않느냐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나 또한 그의 내면이 의심하고 거부하는 기존의 한 사람이지만, 시를 통하여 '세계 너머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열망을 아름답게 보았다. 아직은 보송보송한 솜털에 감싸인 풋 열매들이지만, 한 여름 뙤약볕과 비바람을 혼자 견디면 달게 익어 드높은 가을 하늘을 만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직 그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