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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2/5(화) 07:39
현대시 커버스토리 '지금도 솟아오르는 산'  

지금도 솟아오르는 산


1
이향지 시인은 내게 스승이자 벗이다. 스승이라는 말에도 벗이라는 말에도 선생은 동의해주지 않을 테지만, 내 안에 솟아오른 산에 대해 혹은 그 산의 깊고 넓은 그늘에 대해 내 좁은 어휘목록을 가지고서는 그보다 적절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자연인으로서도 시인으로서도 선생은 내 요량 저 너머에서 우뚝하다. 그래서 그분은 내 스승이다. 선생이 끝내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만 사숙했다고 말하겠다. 난 그분의 그늘에서 시원하고 편안했으며, 지금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다. 그래서 그분은 내 벗이다. 선생이 끝내 수긍하지 않는다면, 다만 짝사랑이라고 말하겠다. 이 글은 그 두 자리를 왕복하는 짧은 기록이다.
선생은 1942년 생이고 1989년,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마흔 일곱에 등단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체로 늦깎이 시인―더구나 여성 시인―을 보는 눈이 관대하지 못하다. 시가 문화적 교양의 일부로 편입된 후, 교양 교육의 결과로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공신력을 갖지 못한 잡지들이 이들 뒤에 있거나(이들을 부추겨 약간의 경제적 혜택을 얻거나), 혹은 앞에 있다(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이들을 유혹한다). <아줌마 시인>이란 호칭에는 확실히 경멸적인 어감이 따라다닌다. 사실 아줌마란 말이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방식에 이미 억압/피억압 구조가 내재해 있다. 그 어감을 덮어쓰면 아무리 재능 있는 시인도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군계일학이라지만 뭇 닭이 너무 많으면 학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법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교양교육의 결과로 지어지는 시들이 없지 않다. 진정성이 말라버린 채, 몇 가지 기술의 조합만으로 제작된 시들은 대개 비슷하다. 약간의 은유 구조를 가진, 늘상 그리움이 주제인, 지어낸 감정을 남발하는 시들. 그래서 늘 시들시들한 시들. 하지만 이향지 시인의 시를 이런 이름으로 묶는 것은 일종의 범죄다. 어느 시를 읽어봐도 그렇지만, 선생의 시는 다른 젊은 시인의 시보다, 물론 내 시보다도 훨씬 젊다. 사진과 약력이 주는 중후한(?) 느낌과 다르게, 선생의 시는, 김수영 식으로 말해서, 늘 살아 있다. 이 유쾌한 불일치는 신기하고 놀랍다.

방울토마토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내가 먹었다. 그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가 먹었다. 나는 방울토마토나무였는데, 지금은 없다. 효정이가 먹었다. 경로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가 먹었다. 그 아이들은 탐스러운 방울토마토였는데, 지금은 없다. 내가 먹었다. 그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가 먹었다.

방울토마토 국산
중량 412g 100g 당 310원 가격 1277원 포장 년월일 00217 판매처 암호 020443701277 업종 기타식품판매업

방울토마토 지금은 빈 용기만 있다. 동글동글 잘 익은 방울토마토. 현대백화점 식품코너에서 다시 만났는데, 새빨간 심장 한 곽을 다시 만났는데, 지금은 찢어진 투명과 빈 용기만 있다. 아침까지 있었는데, 새빨간 심장 네 알이 내 앞에 남아 있었는데, 내가, 방울토마토가, 방울토마토나무가, 한 알씩, 씻어서, 먹어서, 없다.
―「방울토마토」 전문

이 경쾌한 살육의 현장을 보라. 서로 먹고 먹히는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진정한 사랑은 그렇게 먹거나 먹히는 것이다. 예수 역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큰 음식이었다. 방울토마토는 그런 인신공양(人身供養)의 상징이다. 아즈텍인들은 전쟁 포로들의 가슴을 갈라 <새빨간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고는, 시체를 먹었다. <방울토마토>는 지금도, <한 알씩, 씻어서, 먹어서, 없다>. 이 시의 잦은 분절은, 방울토마토 한 알 한 알을 입안에 넣고 굴리기 위한 것이다.
이 시도 그렇지만, 이향지 시인의 시는, 우리 시가 자산으로 삼은 적이 거의 없는, 근육감각 이미지로 충만하다. 선생의 시는 늘 탄력적이고 역동적이다. 그것은 선생이 자신의 몸으로 시행(詩行)을 삼았다는 증거다. 선생에게는 한 줄 한 줄 시행을 건너가는 일이, 하나씩의 길을 가는 일이다. 다른 이들이 보고 듣고 중얼거리는 동안, 선생은 찾아가서 겪고 말한다. 그래서 선생의 시에는 풍경으로 제 몸을 삼은 이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몸의 굴곡과 변화가 있다. 이 느낌은 무척 생생한 것이다.

목욕을 하고 있으면 먼바다. 등을 밀어준다 먼바다가 등을 밀 동안 나는 손을 문지른다 물장구치는 불빛 속에 쪼그리고 앉아 손등. 문지르고 있으면 따뜻한 물. 차 오른다 거꾸로 서서 신음하며 미로를 통과한 물. 머리에 계속 쏟아진다 내 머리에 계속 쏟아지는 물은 맑고 투명한 탯줄. 나는 투명한 탯줄 끝에 전신을 매달고 부글거리는 거품. 씻는다 나는 탯줄에 매달린 채 거품. 씻어주고 씻는 자. 미끈거리는 양막. 다 벗고 나서 수도꼭지를 잠그면 끝없이 딸려 나오던 탯줄. 뚝 끊어진다 먼바다는 끊어진 탯줄과 함께 벽 속에 남는다 나는 끊긴 탯줄. 말라서 떨어질 때까지 타월 속에 있다 벽. 속에서는 먼바다가 혼자 태반을 낳고 나는 타월 속에 젖은 배꼽을 남기고 마른 옷. 속으로 들어간다 먼바다는 남은 탯줄. 다시 돌아간다
―「바다 밖에서의 목욕」 전문

우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고들 말한다. 시인에 의하면 그건 옳은 말이 아니다. 우리는 물에서 와서 물로 돌아간다. 인간에게는 양수가 고향이고, 인류에게는 바다가 고향이다. 목욕을 할 때마다 우리는 그걸 느낀다. 내 집 욕조까지 들어온 바다는, 우리 몸이 기억하는 시원의 장소이며, 그래서 어머니의 몸이다. 온 천지를 감싸고 있는 어머니의 몸! 그러니까 세상은 아무리 멀리 흘러왔어도, 어머니 품안이다. 어머니에게서 나 있는 여기까지 탯줄이 이어져 있다. 이 시의 술어들을 보라, 거개가 동작태들이다. 밀다, 문지르다, 물장구치다, 거꾸로 서다, 신음하다, 쏟아지다, 매달다, 부글거리다, 씻다, 벗다, 끊어지다, 들어가다, 돌아가다…. 이렇게 활달하게 움직이는 시를 본 일이 있는가. 게다가 이 동작들은 일종의 연쇄법으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한 동작은 다음 동작과 사슬처럼 이어지고, 다시 그 동작은 다음 동작의 예비동작이 된다. 이향지 시의 시행(詩行)은, 그래서 산행(山行)을 닮았다.

2
잘 알려져 있듯, 이향지 시인은 산악인이기도 하다. 최초로 금강산에 대한 상세한 안내 정보를 담은 󰡔금강산은 부른다󰡕(공저, 1998), 북한 쪽 백두대간을 섭렵한 사이버 산행기 󰡔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2001), 산행 에세이 󰡔산아, 산아󰡕(2001)를 냈다. 이 산문들에는, 글맛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제법 많은 글을 읽었다고 생각했으나, 이렇게 살아있는 글을 읽은 기억은 드물다. 등성이에선 숨이 차고, 마루에선 시원하고, 내려갈 때는 편안하고 아쉽다. 이 산문의 일부를 잘라내면, 다음처럼, 시가 된다.

저기 봐라! 저기 봐라! 나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해가, 해가, 해가 뜬다. 천왕봉 실루엣을 오른쪽에 두고, 산청땅 어디쯤인지 알 수 없는 나직한 산자락을 지평선 삼아, 오늘의 해가 떠오르고 있다. 거무스레한 구름바다를 잘 벼린 무엇인가로 세로 금을 긋듯이, 또 그 선(線) 순간에 붉게 열리면서, 한쪽뿐인 눈썹을 내다보다가, 엎어놓은 그믐달같이 내다보다가, 엎어놓은 반달같이 내다보다가, 턱주가리 없는 맨얼굴같이 쑤욱 내밀었다가, 아! 드디어 완전하게 무르익은 보름달 덩어리 같다가, 아! 아! 드디어 내 숨통을 막으며 선혈을 뚝뚝 떨구며, 내 뱃속까지 환하게 불을 밝히며 나를 삼키는 해! 가뭇하던 구름들 순식간에 열고 나와 눈 감겨 놓고, 흔적도 없이 태워서 먹어버린, 둥근 잉걸불 하나!
―󰡔산아, 산아󰡕(181~182면)

묘사와 갈마드는 감탄이 있으며, 풍경과 뒤섞이는 주체가 있다. 제 몸을 한껏 열어놓은 이만이 이런 영탄을 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과장된 영탄이 있고 절제된 영탄이 있다. 산행을 실천하는 이들은 단 한 번의 영탄이 있기 전까지, 얼마나 오랜 노동이 있는지를 잘 안다. 오래 올라야, 단 한 번 감탄할 수 있다. 그게 절제된 영탄이다. 지상에 들러붙어, 오지 않은 영탄을 빨래 쥐어짜듯 짜내는 영탄과는 아주 다른 영탄이다. 이런, 선생에 대한 감탄이 나에 대한 자탄으로 자꾸 바뀌고 있다.
산시집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2001)은 다시 김수영 식으로 말해서, 온몸으로 써내려간 시편들로 촘촘하다. 물은 내려가고 바람은 올라가는데, 그 길들을 오르내리는 일이 곧 산행이다. 이 시집은 우리가 그 동안 보아왔던 산시들과는 아주 다르다. 통상 우리가 접해왔던 산시들은 대개 명상집에 가깝다. 거기엔 산은 없고, 산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있다. 다시 말해 산을 제 관념의 모습에 빗댄 주체만 있다. 오랜 문학적 전통의 무게 때문에 그럴 것이다. 산은 시인의 정신적 높이를 보여주는 등가물이지, 내 시야 저편에, 우리 집 너머에, 이 땅의 곳곳에 솟아있는 다른 땅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산시들이 지어낸 산은 거대한 관념의 덩어리이다. 이향지 시인은 이 산에서 관념을 벗겨낸다. 산에게 산을 돌려주는 일, 주체가 그 산을 찾아가는 일.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시:

땀방울의 눈으로 바라보네

수락산정 땡볕, 햇살 폭포 속
자동차소리로 날아오르는, 햇살 비말 속
수락! 수락! 떨어지면서 되솟는
땀방울 속의 산!

도봉… 삼각… 불암… 아차…
수락… 바위… 나무… 사람…
왕모래… 왕모래… 왕모래… 왕모래…

땀방울의 걸음으로 바라보네

이마, 그 불멸의 암벽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썹, 그 불멸의 오버행에 걸려
출렁, 날아오르는

땀방울 속에서 산이 솟네

불끈 솟네 동글 솟네 출렁 솟네 주르르 솟네
외로움 꿀꺽 삼키며
―「수락산에서」 전문

이 시는 산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시는 아니지만, 시인이 산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이다. 시인이 받아들인 산은, 땀방울 속에서 솟아오른다. 시인은 땀을 흘리며, 땀방울의 눈으로 보고 땀방울의 걸음으로 걷는다. <불끈, 동글, 출렁, 주르르>에 담긴 음운들의 즐거움! 땀이 불끈 솟아서, 동그랗게 맺혀서, 출렁이며 가득 차서, 마침내 주르르 흐르는 즐거움. 3연의 말줄임표는, 턱에 차오른 숨을, 시인의 눈을 스치는 산들과 나무와 바위와 일행을 보여주는 상형문자다. 선생은 이 숨과 걸음을 아주 즐긴다. 살아 있음을, 살아 움직일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긴다.

십오륙 년 전, 나는 혼자 힘으로는 세 발자국도 옮겨놓을 수 없는 환자였다. 스스로 숟가락을 들 수도 단추를 채울 수도 머리를 빗을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멀건 국물조차 삭이지 못하는 날들이 숱하게 흘러갔다. 죽음은 내 안에서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점점 두텁게 에워쌌다. 아무도 소생을 믿지 않았고, 나 자신도 그렇게 떠밀려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정신만은 멀쩡했다.
그 작은 소원이 가장 큰 것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 소원을 지팡이 삼아 걸음마를 다시 시작했고, 부축 받지 않아도 걸을 수 있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방에서 마루로, 뜰로, 문밖으로, 길로, 더 좁고 울퉁불퉁한 길로, 전진해 온 여정은 느리고도 느렸다. 그 느린 전진을 3년쯤 계속하였을 때, 길 끝에 서 있는 산을 만났다. 처음 오르던 날은 더욱 느리고 비틀거렸으나, 허파꽈리가 한꺼번에 터질 듯이 고통스러웠으나, 새로운 빛과 공기를 만난 심신은 재생을 예감했다. 그 무렵, 오래 밀쳐두었던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등단도 했다. (중략) 시는 나의 종교이며, 산은 나의 예배당이다.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자서)에서

선생은 그 아픔에 관해서는 여태껏 한 마디도 해준 적이 없다. 내 옆에 있는 죽음에 관해, 다독이며 데리고 살아야 하는 죽음에 관해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인용문뿐이다. 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한국시는 움직임에 대한 아름다운 경탄어구들을 많이 잃어버렸을 것이다. 인용한 부분의 마지막 말에 기대어 말한다면, 산은 선생의 집필실이다. 그러니까, 몸으로 움직이고 땀방울의 눈으로 바라본 그 모든 풍경이, 살아 있음의 증거가, 선생에게는 시인 것이다. 나는 이 움직임이 우리 시의 새로운 경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3
아프던 시절조차, 이향지 시인에겐 체험의 시간이었다. 시집 󰡔구절리 바람소리󰡕(1995)에 실린 「그 바다」, 월간 󰡔현대시󰡕(1999. 4.)에 실린 「더그매」와 같은 시는, 환상적 외피를 갖고 있으나, 사실은 선생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옮겨 쓴 시이다. 선생의 시는 실험적인 시가 아니다. 차라리 받아쓰기하듯, 내면의 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인 시편들이라고 해야 한다. 선생의 시가 어렵다는 평가에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선생의 시는 반대로 너무 쉽다. 어렵다는 평가는, 오랜 시적 관습에 사로잡힌 독법의 결과다. 선생의 시는 <읽는> 시가 아니라, <겪는> 시다. 선생은 시법(詩法)과 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시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쓰여진 시가 시학의 핵심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건 내면의 언어가, 사실은 원형의 언어임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다. 오래 고통받던 기간을 지난 후에, 여러 풍경들이 선생을 찾아왔다. 꿈이나 환상으로 올 때도 물론 있었으나, 선명한 실상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그걸 비사실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다른 세상이, 선생에게 가끔 열렸다 닫혔던 것이다.
선생이 풍경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곧 선생의 시법이다. 세상에 열려있는 이들만이 세상이 말 건네는 얘기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다. 선생은 얼마 전 분당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선생은 그게 새로운 시적 경지를 필요로 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나는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가는 곳은 18층인데, 올려다보니 아득한 창공 속이었다. (중략) 나는 마당 있는 집에서만 살았다. 문을 열면 나무가 있고, 문을 열지 않아도 사계절 내내 나무 그림자가 수런거리는, 마당 있는 집에서만 살았다. 그런 내가 흙 한 줌 만질 수 없는 고층의 주민이 된다. 숨쉬는 공기도 그만큼 메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 불안의 진짜 이유는 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윗집 소리, 아랫집 소리, 옆집 소리를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리라는 데 있다.(중략)
그러나, 이 변화로 인하여 내 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그 동안 내 시는 울타리를 높이 치고 나 자신 위에만 엎드려 있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나’만의 울타리를 해체하고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위층 소리 아래층 소리 옆집 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또한 그들 중의 하나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과 내가 견고한 벽 속에서 함께 숨쉬고 움직이는 공동체임을 수긍해야 한다. 내 시도 자연히 그런 쪽으로 문을 열게 되지 않을까.
―「느림을 즐기며, 종점까지」(󰡔시평󰡕, 2001. 가을)

나도 아파트에서 살지만, 위층 아래층 옆집 소리가 그렇게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가끔 창문으로 베란다로 혹은 벽을 타고 다른 집 소리가 ‘직빵으로’ 들려오긴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견딜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무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의 말이 세상에 너무 예민하게 열려 있는 사람, 오감이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이 겪어야 하는 근심이 아닐까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한참 멀었다!). 선생의 결심대로라면, 이제까지의 길이 선생의 몸과 자연의 몸이 하나되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길은 선생의 몸과 이웃의 몸이 하나되는 과정일 것이다. 「好生藥局」, 「내 사랑은」, 「밥으로 죽 끓이기」와 같은 가편들은 그 과정이 먼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난 시편들이다. 그 옆에, 나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이웃으로, 함께 있다는 게 즐겁다.
올해 들어 나는 선생을 가까이 만나는 행운을 여러 차례 누렸다. 시와 삶과 사람에 대한 선생의 사랑에서 나는 많은 걸 배웠다. 주는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이것저것 얻어간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나는 자유롭게 말하고 글을 쓰되 거기에 격(格)을 부여하는 선생의 말과 글을 배웠고, 열린 마음으로 사랑하되 못난이들에게는 준엄한 마음가짐을 배웠으며, 아이처럼 웃고 노인처럼 꾸짖는 천진과 배려를 배웠다. 그래서 이제는 선생에 대해 조금 알 수 있는 것들이 생겼다. 예를 들어 꽃의 꿈을 얘기하는 부드러운 시의 결구, <뚜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로 굳은 살이 열리고 불꽃같은 통증이 심장에 꽂힐 때까지 상수리나무 뿌리에 깊게 엎어진 몸// 바퀴 하나를 떼어낸 자동차처럼 벌렁 드러누운 뒤에야 허방에 뜬 꽃잎 틈에 한쪽 발이 끼인 줄 알았으니>(「花夢」)가 하산하던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를 얘기한다는 것도 알았다. 사실은 나도 거기에 있을 뻔 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여름에 무서운 일을 겪었다. 모함과 누명을 덮어쓴 채 만신창이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누명이 벗겨지고 날 매도했던 이들이 거짓말했음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분노와 모멸감은 지금도 다 가시지 않았다. 그 일 이후로 난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꽤 오래 여항의 삶을 살았다고 믿었으나, 난 세속에 대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고 내가 있던 우물에는 작심한 돌들에 섞여 무심한 돌들까지 날아왔다. 앙심을 품고 하는 입질과 장난 삼아 하는 입질은 어느 것이나 무섭다.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가는 이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때 내 곁에는 선생이 있었다. 선생은 내 얘기를 듣기도 전에 사태를 알았고, 분노하는 날 진정시켰고, 상처받은 날 위로했으며, 나서서 꾸짖고 바로잡고 달랬으며, 결국은 모든 일이 밝혀질 것이라 예견했다. 선생은 산이, 그렇게 찾아가는 곳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산은 세상을 등진 자들의 도피처가 아니라, 세상을 안은 자들의 휴식처이다. 산을 제 마음에 빗대지 말고, 다른 이의 모습에 빗대야 한다. 내게는 선생이 그런 산이고, 내 안까지 들어온 산그늘이고, 내가 오를 때마다 조금씩 그 키를 더해 가는 산정이다. 지금도 솟아오르는 그 산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고, 그 산에 조금이나마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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