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1/6(월) 14:54 (MSIE5.5) 220.78.33.219 1024x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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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고난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 중에서
[시/소]
고난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
이성우 문학평론가
현명한 사람은 큰 고난도 작게 처리해버리고,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고난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스스로 고민에 빠진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 로슈푸코의 말이다. 관습적인 도덕심 밑에 숨은 이기주의를 집요하게 폭로함으로써 냉소가라는 평판을 얻었던 그의 이 말에는, 인간심리의 미묘한 심층을 날카롭게 저미는 일면이 있다. 그런데 그의 이 말은 뒤집어놓아도 또한 바로 보이는 묘한 구석을 지니고 있다. 뒤집어놓으면 이렇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큰 고난을 작게 처리해버리고, 현명한 사람은 조그마한 고난도 현미경으로 확대해 스스로 큰 고민에 빠진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은 물론 남의 조그마한 고난이라도 현미경으로 확대해 스스로 큰 고민에 빠지려는 사람들. 그러니까 현명한 듯하지만 스스로를 괴롭히는 어리석은 사람들. 그러나 그 반대로 말해도 역시 들어맞는 사람들……. 여기까지 쓰고 읽는 나와 당신을 포함해, 이런 글쓰기를 촉발한 다음과 같은 시를 쓴 시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 아닌가?
…………(중략)…………
…(중략)…. 반면에 다음 작품은 곤나에 처한 시적 대상과 분리된 시선을 유지한 경우이다. 이때 시적 대상은 일종의 반면교사가 된다.
그 소는 말뚝에 묶인 채 죽었다
불어나는 흙탕물 속에서 제 앞만 보고 헤엄을 치다 죽었다
물이 빠지고 다리를 걷은 사람들이 죽은 소를 건지러 갔다
소의 둘레엔 옛날 성(城)을 싸고 흐르던 해자처럼 깊은 도랑이 나 있었다
소는 제가 건너가려던 물 속에 깊은 강을 팠던 것
사람들은 자기들 가슴속에도 파여 있는 도랑을 그때야 발견했다
― 이향지, 「소」(『현대문학』5월호) 전문
고난에 처한 자의 절박함은 때로 극대화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 고난을 당한 대상의 다급함은 오히려 스스로를 '제 앞만 보는' 어리석음의 늪에 빠뜨리고 만다. 그 이율배반의 정황을 이 시의 화자는 냉정한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다. 말뚝에 묶인 채 불어나는 물에 갇힌 소는 실제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상징의 존재이기도하다. 그 어리석은 소가 자신이 건너야할 물 속에 도리어 해자처럼 깊은 도랑을 팠다는 것이다. 해자는 본래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구된다. 그런데 해자를 생존의 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은 애초부터 배타성을 전제로 한다. 자신과 타자 사이에 건너기 힘든 단절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고난에 처한 悶“?강요되기 십상인 다급한 선택 혹은 어리석음이 고난의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것. 시인은 이 씁쓸한 이치를 시적 대상과 철저히 분리된 시선을 통해 드러낸다. 아울러 시인은 마지막 행에서 '사람들'을 불러와 그 같은 인식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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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00년 6월호, [현대시하이라이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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